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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작성자
 오요한
날짜
 2018-08-05
조회수
144
제목
 18년 8월 첫째주 천안 ubf 주일메시지

18년 8월 첫째주 천안 ubf 주일메시지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마가복음 15장 6-마가복음 15장 15
마가복음 15장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로마총독부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십자가 형으로 넘겨지는 장면입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데는 세 사람들이 영향을 줍니다. 첫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총독에게 넘겨줍니다. 둘째는 무리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셋째는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줍니다. 이들의 죄에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죄의 본성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새롭게 사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시기로 넘겨준 대제사장들)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우리 나라에 광복절이 되면 광복절 특사로 죄인들을 사면하는 전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유월절이나 오순절 초막절 같은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원하는 죄인을 사면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명절 특사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심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반역자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고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로 넘겨준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월절 명절 특사로 놓아주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과 함께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바라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평범한 이름입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을 석방하기를 원하는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의 증언을 통하여 에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첫 번째 죄가 대제사장의 시기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당시에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은혜로운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 능력을 행하자 백성들이 대제사장보다 예수님을 더 존경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런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예수님이 대신 해주시니 감사해야합니다.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을 함께 기뻐해야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배워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존경받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면 그들이 전과 같이 양들의 인정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시기심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시기심으로 몰락한 사람들)

우리는 이런 시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역사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인류최초의 살인이 시기심 때문입니다. 가인이 시기하여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이 새로 태어난 동생을 시기하여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이런 형의 시기심은 가인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이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벨을 통하여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어떤 제사인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아벨처럼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러지 않고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는 아벨을 죽이면 믿음으로 드리지 않은 자신의 죄가 가리워질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가인은 시기심으로 인류 최초로 살인을 하였습니다. 이런 시기심의 끝판왕은 사울왕입니다. 사울은 초기에 자신은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행구 사이에 숨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고 전쟁에서 이기자 왕으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나타나 사울과 이스라엘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아무도 골리앗을 물리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혜성처럼 나타나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려뜨렸습니다. 불레셋과 싸워서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울은 다윗을 세워주어야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왕위도 더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사울은 충신인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을 죽이면 자신이 인정받을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시기심은 비교의식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 영광의 죄에서 나옵니다. 백설공주에 보면 왕비는 자신보다 더 예쁜 백설공주를 독이든 사과를 주어서 죽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기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큰 죄임을 알아야합니다. 이런 죄가 나타날 때 우리는 빨리 시기심을 회개해야합니다. 회개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시기심을 극복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요셉은 열두 아들 중에 열한째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로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은 총리가 되고 형들은 요셉에게 곡식을 사러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간첩으로 몰기도 하고 도둑으로 몰기도하여 그들의 시기심의 죄를 회개시켰습니다. 그후 형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동생 베냐민에게 먹을 것을 다섯 배를 주었는데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동생 베냐민이 감옥에 갇혔을 때는 함께 슬퍼하여 형 유다가 대신 감옥에 갇히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기심을 극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함께 기뻐하고 다른 사람이 고통할 때 함께 슬퍼합니다. 저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보고 마음에 기쁨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잠시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에 깊은 시기심의 죄악이 있음을 깨닫고 곧바로 회개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이루는 목자들이 나이는 어릴지라도 열심히 배우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들)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명절 특사로 예수님을 놓아줄까 물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자 무리는 예수님 대신에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소리지르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외쳤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한번 그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왜 그럽니까? 에수가 도대체 무슨 악한 일을 하였습니까?”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더욱 소리질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주신 떡을 먹은 자도 있고 말씀을 들은 자도 있고 병고침을 받은 자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무슨 일입니까? 왜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것입니까? 무리들의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욕구가 좌절되자 기분이 나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배경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충분히 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때 유다는 바벨론에서 망한지 600년쯤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사람들은 유대인에게 가혹한 세금을 수탈하여 유대인들은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고통할수록 메시야를 대망하였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그들을 로마통치 아래서 건져주고 다윗과 같은 나라를 세울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에수님이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자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모세가 물을 피로 바꾼 것처럼 예수님을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삼십팔년된 병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자를 살리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바람과 바다를 잔진케 하고, 군대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로마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그들은 감람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로마 정부를 몰아내고 왕으로 선포할 것을 믿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믿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였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때가 이 때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로마 총독이 있는 안토니아 요새로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동족의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싸우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세상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데 취업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런 우리의 소망을 우리의 때에 이루어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안 들어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서운한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이런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순수해져야합니다. 이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나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항상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십자가에 넘겨준 빌라도)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애를 쓴 빌라도는 죄가 없습니까? 물론 종교지도자들 만큼 큰 죄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빌라도도 똑 같은 죄인입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주고자 바라바를 놓아주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39대의 채찍질을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명절 특사는 백성들이 원하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놓아주었다고 자신의 죄를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손을 씻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저자는 그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인본주의자입니다. 그가 무리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풀어주지 않고 예수님을 풀어주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무능한 총독으로 경질될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자신이 살려고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을 내린 것입니다. 그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십자가에 넘겨준 것입니다. 이것이 빌라도의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사람을 기쁘게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다보면 우리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도 전과 같이 담대하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고자 하면 죽어도 좋고 망해도 좋습니다. 제가 금요일 장원보 형제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의 신앙은 대단하였습니다. 그의 시아버지가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점쟁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제사를 모시지 않으면 재산을 하나도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원보 어머니는 그 재산을 거절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많은 재산을 포기하였습니다. 그것이 원보어머니의 자랑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항상 말한다고 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재산을 거절한 것 알고 계시지요? 제에게 하늘나라에서 상을 준비하고 계시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면 우리는 가난할 것도 각오하고 망할 것도 각오하고 죽을 것도 각오해야합니다. 그래야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아멘!

(결론 공통적인 죄는 자기 사랑)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세 명의 죄를 보았습니다. 첫째 대제사장이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못박았습니다. 둘째 무리들은 세상적인 욕망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셋째 빌라도는 자신의 지위와 만족을 위해서 에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 세 가지 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광, 자기의 욕망, 자기의 만족을 얻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죄는 한 마디로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기준이 될 때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서 살아야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8년 8월 첫째주 천안 ubf 주일메시지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마가복음 15장 6-마가복음 15장 15
마가복음 15장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천안 ubf 주일 메시지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