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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작성자
 오요한
날짜
 2018-09-02
조회수
26
제목
 주일메시지 바울, 공회 앞에 서다

20180902사도행전메시지(23) 찬송가 400(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바울, 공회 앞에 서다

말씀/사도행전 21:1-22:30
요절/22:30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 흑암의 세상에 생명과 진리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후 오늘날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를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를 사하여 주옵시고 사도바울과 같이 주의 사명을 따라 살 만한 자로 성장시켜주옵시길 기도합니다. 천안 UBF 통해서 캠퍼스에 말씀을 허락하시고 학생구원역사를 이루어주옵소서. 이시간 부족한 저를 통하여 귀하고 아름다운 사도바울의 생명역사를 전하여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월이 왔습니다. 놀랍습니다. 이젠 2018년의 여름이 가고 뒷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세상이 변하고 우리도 변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이 위대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되고 귀한 성령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 소중스런 일을 해야겠습니다. 제가 매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믿는 자들이 항상 행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 예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읽는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크리스챤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크리스챤을 언제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진리를 사랑하고 또 구도자들을 사랑한 민족성이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원광법사(圓光, 542-640)라는 구도자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젊은이들이 그 분을 찾아가서 인생의 목표가 될 만한 말씀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그 젊은이들에게 계율을 다섯가지 주었습니다.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殺生有擇, 臨戰無退! 그 젊은이들이 이 계율을 받고 화랑도를 이루어 신라 나라를 강하게 하고 삼국을 통일해서 오늘날 이 나라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거룩한 선생을 찾아가서 길을 물은 것도 아름답고 그 답을 받아 행한 것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의 성령의 진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라시대 사람들처럼 힘써 주 예수의 진리를 따라야겠습니다. 그때에 이 사회와 나라가 부강해지고 세계의 제사장 나라가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영적인 화랑도와 같습니다. 우리 천안 UBF가 이 성령시대 하나님나라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말씀에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성령의 사람인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밀레도에서 행한 역사를 배웠습니다. 밀레도에서 헤어질 때에 형제들이 다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밀레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의 여정과 그 행로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체포되었으며 어떻게 주님 역사에 사용되었는가 성령의 은혜를 배워보겠습니다.

66.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간 역사(21:1-16)
1,2을 보십시오.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사도바울이 에베소 장로님들을 통곡으로 작별하고 밀레도를 떠나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를 거쳐 이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그 당시의 지중해를 오가던 여객선의 행로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해양학자들은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항해로를 보고 당시의 지중해 해상로를 알게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또 해양학적으로 참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여러모양으로 실제적인 세계역사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베니게로 가는 배를 타고 가면서 왼쪽으로 구브로를 두고 수리아로 행선했다는 기록은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집니까? 마치 우리 자신이 지금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이 기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진실하고 정확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하루 우리 인생의 기록을 남겨야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의 기록은 역사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1884년에 우리 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닥터 알렌은 그 해 12월 일어난 갑신정변의 현장인 경복궁내에서 칼에 찔린 사람들을 치료하고 기록에 남겼습니다. 그때 민영익이라는 고관을 치료했는데 그가 살아났습니다. 그가 알렌에게 감사하여 병원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병원인 광혜원이었습니다. 고종황제는 이 알렌을 왕실 주치의로 삼았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다음 해에 언더우드 아펜젤러같은 위대한 선교사님들이 수월히 역사를 섬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기록이 수백년 수천년 후에 남아서 이 시대의 역사를 입증해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기록을 잘 남겨야겠습니다. 이제 2학기에 수요 Bible Academy를 하는데 매주 기록을 잘 남기고 사진도 찍어 두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미래의 산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제 두로에 도착하여 제자들을 만나 이레를 7일을 머물렀음을 말해 줍니다. 이때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도록 권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신변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담대히 올라가셨듯이 사도바울도 담대한 믿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였습니다. 두로에서 돌레마이로 가고 거기서 하루 있다가 가이사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가이사랴에는 그 유명한 빌립집사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빌립집사님의 네 딸로 믿음이 좋아서 주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였습니다. 빌립 집사님의 가정교회가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해도 자식들까지 믿음이 좋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 집사님은 네 따님이 다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란 말씀의 종이었다는 뜻입니다. 빼어난 성경선생이었던 것입니다. 참 감사하고 대단합니다. 우리도 믿음의 가정을 잘 감당해서 자녀들이 더욱 위대한 주의 종들이 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그때에 유대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사도바울의 띠를 가져자가 자신의 수족을 잡아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결박하여 이방인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다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포기하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라고 답했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예, 여기서 보면 우리가 성령을 받아 예언을 하드라도 사람의 정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정을 조심해야겠습니다. 바울을 인간적으로 걱정하는 것과 성령의 방향은 다른 것입니다. 비록 예수살렘에서 체포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적극적으로 감당하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감옥을 통해서 로마로 보내시고자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바울에게 고생이 된다고 가지말라고 하니 성령의 방향과 옳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어려워지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랴의 형제들도 사도바울을 보내기로 결심을 하였던 것입니다. 요즈음 뉴스에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좋은 성적을 주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자기 자식에게 억지로 좋은 성적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그렇게 살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팔이 안으로 굽게 하지 말고 적극적을 밖으로 펴서 진리의 성령을 따라야겠습니다. 인간적인 고통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신 성령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67.바울이 야고보를 방문하다(15-26)
15절 부터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은 바울에게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곳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고향과 같은 곳에 돌아왔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동안 주 안에서 귀한 역사를 섬기고 귀신들과 악행들과 가난과 질병의 어두운 세상에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귀향했으니 바울은 얼마나 감개무량했겠습니까? 또 예수살렘에는 바울을 잘 아는 과거의 친한 친구들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가말리엘 선생님 제자들의 동창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바울은 가장 먼저 야고보에게 갔습니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동생으로서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장이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야고보에게 간 것은 그가 가장 원한 것이 주 예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신 일들을 하나님의 교회 앞에 보고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교회에서 선교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보고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주의 교회에 보고하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때 바울은 마게도냐의 성도들이 기근으로 힘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한 돈을 전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만사를 뒤로 하고 가장 먼저 야고보를 찾아 교회로 간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오랜 여행 후 예루살렘에 와서 부모형제나 일가친척을 먼저 찾기보다 주의 교회를 먼저 찾고 주의 종에게 문안하고 주님의 역사를 보고한 것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요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교회를 이러한 사도바울을 통해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도바울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에 우리 교회가 하나되고 충만해지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사명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구원역사 생명역사 승리역사가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힘있게 하고 기뻐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지난 학기에 우리중에 학생들 역사가 있었고 또 이제는 새롭게 목동들이 서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천안 UBF역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루살렘교회와 같습니다. 2학기에 더욱 귀한 형제자매 제자양성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성경공부를 착실하게 하십시오. 반드시 말씀공부 공책을 만들고 또 소감을 쓰며 일대일을 해야합니다. 그 때에 우리에게 사도바울과 같은 생명구원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성경공부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역사가 없고 구원역사가 없으면 교회는 금새 흩어집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사도바울을 깊이 사랑하고 도와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사도바울의 이방인 구원역사가 예루살렘의 전통 유대인들에게 마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오해를 주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바울과 함께 유대인으로 개종하려는 이방인 형제 몇을 함께 성전에 보내어 결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사도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정통 유대인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지혜롭고 정직한 방법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사랑의 성령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68.바울이 체포당하다(27-40)
그런데 바울이 성전에세 결례를 행하고 그 만기된 것을 신고하였는데도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27-30절을 보십시오. ‘그 이레가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렵혔다 하니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로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바울은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율법에 정한대로 결례를 행하고 그 기간을 만기까지 잘 지키고 제사장에게 신고했습니다. 그러데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사실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리를 충동하여 마치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와서 율법을 어겨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 것처럼 선동하고 소동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31절을 보면 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긴급한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때에 로마군 천부장이 그 소식을 듣고 백부장과 군인들을 데리고 달려가니 그들이 바울 치기를 멈추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생명을 잃을 지경에 있었습니다. 35절을 보면 바울은 군인들에게 들려서 겨우 그 상황을 벗어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그 무리들은 바울을 없이하자고 외치면서 군인들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헬라말을 하였습니다. 천부장은 로마의 장교이기 때문에 그제서야 바울이 보통사람이 아니요 로마지성인임을 알고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부장은 혹시 바울이 전에 소요를 일으킨 애굽인인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의 시민임을 밝혔습니다. 그것은 로마시민임을 의미했기 때문에 천부장은 바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할 기회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바울은 참으로 우발적인 소동으로 로마군에게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천부장에게 헬라말을 하는 로마인으로 밝혀져 마침내 예루살렘의 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역사입니까? 사도바울이 성전에서 무리에게 오해받고 폭행당하고 로마군에게 체포 당한 것이 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어떤 기막힌 상황에서도 성령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신다는 진리를 깊이 깊이 믿어야하겠습니다!


69.바울의 사람을 뒤흔드는 설교(22:1-29)
1절을 보십시오.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바울은 담대히 설료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히브리 말로 하니 모든 군중이 조용해졌습니다. 이것은 정말 위대한 설교였습니다. 또한 동시에 사도바울의 위대한 간증이요 위대한 선교보고입니다. 사실 바울은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에 선교보고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예루살렘 모든 군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교보고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합니까? 우리는 이 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설교를 하고 간증을 하고 선교보고를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는 자신이 태어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교육받고 자랐는지 분명히 밝혔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열심을 말했습니다. 자신이 정통유대인으로서 예수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잡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말했습니다. 7절을 보면 다메섹에 갈 때에 하늘에서 빛이 비치고 ‘사울아 사울아 내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음성이 들렸고 자신이 ‘주님 누구시니이까’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하셨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눈이 멀었는데 아나니아 형제가 고쳐준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께 순종하여 회개한 과정을 말했습니다. 넷째, 자신이 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진실을 고백하였습니다. 21절에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위대한 설교를 통해서 자신의 인간성과 믿음과 사명을 온 예루살렘 앞에 다 고백하였습니다. 이 설교는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설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우리가 소감을 쓰고 메시지를 전할 때에 사도바울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나 자신의 인간적 배경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주 예수의 구원의 구원의 은혜를 말해야 하고 또 사명의 부르심을 분명히 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설교요 진정한 소감입니다. 이러한 연설은 인간이 스스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의 생명의 선교보고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여러분, 이것이 진리의 성령역사에 대한 죄인들이 반응입니다. 그들은 마치 마귀든 자들과 같이 되어 설교중간에 괴성을 지르고 설교하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 속의 악령이 미쳐서 날뛰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도 불신의 사람들은 주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화를 내고 귀를 막습니다. 자신의 죄와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당황한 사람은 천부장이었습니다. 로마총독은 유대인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귀찮아했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그는 아무 잘못이 없는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서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산첩첩물첩첩 사도바울은 악인들에게 겹겹이 둘려싸여 있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도바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따져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한마디 말이 천부장의 가슴을 꿰뚫어버렸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자신보다 우월한 로마시민인 것을 알고는 그를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민의 자격이 그처럼 강력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의 로마시민권을 그렇게 이용하셔서 그 생명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위험에서 구원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찬양드립니다!


70.공회앞에 서다(30)
30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자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역사입니까? 사도바울은 이제 이스라엘의 최고 귀족회의인 공회앞에 서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사람들 앞과 왕들 앞에도 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대로 사도바울은 참으로 주 예수의 제자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모인 공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밝히 증거할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일이 아니요 진정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조용히 선교보고를 하고 마게도냐의 헌금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루살렘 모든 시민 앞과 또한 이스라엘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나 이 시대에 믿음으로 살면서 언제든지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하고 담대히 믿어야겠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이 시대의 전세계 시민들과 지도자들 앞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성령의 역사를 전하는 위대한 설교자요 선교보고자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교보고를 하는 역사를 주께서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밝히 보여줍니다. 주님은 그를 예루살렘 교회 뿐만아니라 온 이스라엘과 로마 천부장에게까지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체포된 상태였지만 그것은 주의 더욱 큰 역사를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성령충만한 종으로 2학기 역사에 사용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