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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스라 10장 강해 에스라의 개혁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1-26 00:00:00
조회수 : 4,57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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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10장 강해 에스라의 개혁

에스라 101-44

요절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는 일이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망합니다. 남유다는 그 후 136년 후에 바벨론에 의해서 망합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망한 후 70년이 지나서 유다 사람들은 사만 이천 명 정도가 귀환합니다. 그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 후 다시 60년이 지나서 에스라를 중심으로 만 명 정도의 사람이 귀환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라가 이차 귀환한 후에 유다를 개혁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개혁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고 북이스라엘과 같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유다에서 메시야가 태어나서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 기독교가 위기에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구원역사를 계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통곡하는 에스라)

 

1절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가 이스라엘에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에는 이방 여자와 결혼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성경 선생이었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여자와 결혼한 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망한 것도 불신자와 결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이 분열된 것도 솔로몬이 이방여자와 결혼하였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하여 씨도 없어진 것도 이방여자와 결혼하였기 때문입니다. 남유다가 망한 것도 이방여자와 결혼하여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포로에서 돌아왔는데 그들은 아직도 이방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방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남유다마져도 북이스라엘처럼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남유다가 사라지면 구속역사는 단절됩니다. 에스라는 말씀 공부를 통하여 이 사건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그는 앞장 서 수염을 뜯고 옷을 찢으며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다시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혁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조를 바꾸는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개혁은 죄를 깨닫고 통곡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현실을 보면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때 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하면 망한다는 말씀을 공부하고 우상이 만연한 현실을 보며 애통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전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 앞은 성전 마당을 말합니다. 만일 에스라가 성소 안에서 기도를 했다면 백성들이 에스라의 기도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엎드려는 쓰러지다 혹은 넘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로서 극도의 슬픔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모습을 말합니다. 울며는 어떤 비극적 사실로 인하여 통곡 혹은 애곡하는 것을 말합니다.(23:2 삼상 1:10 삼하 1:24 22:10). 에스라는 극도의 슬픔으로 엎드려 울었습니다. 에스라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백성들의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인 양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9:6-15) 여기서도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며 통회 자복하고 있습니다.

많은 백성이 에스라를 따라서 통곡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많은 백성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였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에스라가 죄에 대해 옷을 찢고 수염을 뜯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9:3) 다음으로는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의식 및 그의 간절한 기도 내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킨 요소 중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의 정치적 사법권을 소유한(7:25) 신분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백성이 통곡하였다는 것은 에스라가 울었다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같이 에스라에게 적용된 단어가 백성들에게도 적용됐다는 사실은, 여기의 백성들의 통곡이 에스라의 신앙적 태도에 대한 적극적 반응임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은 다 공감할 것입니다. 교회에 이성문제, 물질문제, 권력다툼 문제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우리는 믿은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가져야합니다. 십계명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죄를 발견해야합니다. 특히 물질 문제 이성문제에서 분명히 살아야합니다.

요즘에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는 문제. 바람피우는 문제, 이혼하는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습니다. 물질중심으로 되었고 권력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교회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문제가 들어오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이런 요소를 조금이라도 용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를 회개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 문제로 회개해야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런 죄와 타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문제를 애통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회개하면 소망이 있음)

 

2절을 보십시오.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에스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기에 앞서, 백성들로부터의 자발적 결단이 나타나도록 기다리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에스라가 엎드려 있자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했습니다. 스가냐라는 이름은 본절을 포함해서 본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틀어 6회 나오지만(8:3, 5 3:29 6:18 12:3), 그중 어느 하나도 본절의 스가냐와 동일시 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엘람 자손은 262:7 8:7 등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스가냐는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스가냐가 죄악 중에서라도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스가냐는 에스라의 간절한 자복의 기도와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로 인하여 백성들이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범죄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소망은 기다리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극한의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끈기있게 고대하는 것(49:18 40:31)입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죄 없는 자가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면 다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쓰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보아야합니다.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소망을 보아야합니다.

 

(불신자의 아내를 내 보내기로 언약을 세움)

 

3,4"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주님의 교훈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가냐가 내 주라고 부른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 경외심이 있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스가냐는, 영적. 도덕적인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아울러 지녔던(7:25) 에스라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하여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백성들에 대한 율법 교육이었으므로(7:10) 스바냐는 에스라를 교훈을 따르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의 교훈은 조언하다 및 훈계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교훈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은 문제에 대해 에스라가 제시하는 방침 혹은 해결책을 말합니다. 그들은 에스라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보내는 것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굿나는 원인 무효의 법적 상태였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한 행동이었습니다. 소생, 즉 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내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꽤 잔인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은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는 관계로 틀림없이 이방의 풍습이나 종교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허다한 다신 종교로부터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여기서 보내기로 는 나가라는 뜻을 지닌 동사의 사역형으로서 강제로 나가게 하는 것 혹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25:28, 30, 31, 33)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파기되었던 언약을(31:32)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갱신했듯이(6:16, 17). 최근의 범죄(9:1, 2)로 인하여 또 파기된 언약(9:10, 15)을 다시 갱신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이 율법의 기준에 따른다면 원인 무효임을 인식하고, 율법의 기준에 의거하여 그 결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율법은 넓게는 모세 오경, 좁게는 그 중에서도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금지한 신명기 말씀을 의미합니다(7:3, 4). 그리고 신24:1-4에는 수치되는 일이 있으면 이혼을 허용하는 규례가 나옵니다. 따라서 에스라의 교훈에 따라 스가냐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 사실을 수치되는 일(24:1)에 해당된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에스라가 이 일을 주장하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도울 테니 일어나서 힘써 행하라고 합니다. 그 문제는 에스라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도록 만드는 일이 에스라의 소관이라는 말입니다. 에스라가 율법 교육을 위해 팔레스틴에 귀환했으므로 에스라는 말씀을 준행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7:10) 일어나라는 말은 특별한 일의 실행을 위한 의지적 결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1:5).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할 때도 일어나라고 한 바 있습니다(대상 22:16). 그들도 에스라를 도와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사람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였습니다. 무리가 에스라의 말대로 이방여인을 쫓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던 세 계층이었습니다. 이처럼 세 계층이 모두 맹세한 것은 에스라가 각계각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까지 통혼의 악습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컨대 느헤미야 당시에 대제사장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경우가 그러합니다(13:28). 그런 지도자들도 회개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금식하는 에스라)

 

“6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스라가 들어간 방은 성전의 양쪽에 있던 방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방은 제사장 혹은 레위인들이 봉사를 준비하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8:29). 여호하난은 엘리아십의 손자입니다.(12:22) 그는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3:1 12:10).

에스라가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가서 사로 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들어가서 밤을 지세웠습니다.

모세도 백성들의 죄에 대한 중보를 위하여 이런 금식을 하였습니다.(34:28 9:18). 물도 먹지 않는 금식은 먹는 것만을 금하는 금식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의미를 나타냅니다(삼상 1:7 20:34 삼하3:35). 이런 개혁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많은 부작용이 따릅니다. 에스라는 사단이 이 역사를 훼방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금식기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람들을 소집하는 절대적인 명령)

 

7절을 보십시오.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스가랴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에게 공포하였습니다. 공포하는 것은 건너다 혹은 지나다라는 뜻을 지닌 말로 음성, 풍문을 뜻하는 말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음성을 지나가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사자(使者)를 통해서 에스라의 메시지를 전국에 전달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언은 필경 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쳐져서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언약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1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23:17), 그들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언약을 갱신하고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명절에 예루살렘에 모이듯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다 예루살렘에 불러 모았습니다.

 

“8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서 삼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와야 합니다. 방백들과 장로들이 에스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에게 도움을 다짐했던 사람들(4)과 거의 같은 인물들입니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이들의 훈시 형태로 시달된 것은, 외면상으로 나서서 권위를 행사하기보다는 가급적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에스라의 의도입니다. 삼일 내에 그들이 오지 않으면 그 재산을 몰수합니다. 에스라는 아주 강하게 절대적인 법을 만들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스라엘의 영토는 남쪽의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의 벧엘까지여서, 멀다고 해도 예루살렘에서는 불과 약 60k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심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던 백성들이(7) 그 거리를 삼 일 이내에 가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으로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습니다.(7:26). 몰수하는 것은 히브리어 하람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죄를 범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불태워 없애버리며, 동물은 죽이고 심지어는 범행한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6:21). 결국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의미의 사법권을 이처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활용했습니다.

삼 일내에 오지 않으면 포로 귀환 명단에서 그들을 쫓아냅니다. 쫓아내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7:26의 귀양보낸다는 말과 동일하지만 원어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여기의 쫓아내리라는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의 수동형으로서, 본질상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분리되어진다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9:1 16:21 대상 23:13 9:2). 에스라는 앞의 재산 적몰처럼,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사법권을 이용하여 그들의 모임에서 쫓아내 철저히 회개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의 모임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 곧 구약 성도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단어입니다(12:6 16:3 16:3 23:1 20:2 대상 28:8 5:13).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볼 때 이는 성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시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그리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함으로써 어려움과 위기의 때에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형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할 때는 절대성이 있어야합니다. 예외를 두면 개혁은 유야무야되기 쉽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9절을 보십시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은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했던 중요한 두 지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는 물론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지파와 기타의 다른 지파들도 포함합니다. 레위 지파는 특별히 구별된 부류라는 점에서 또한 다른 지파들은 극소수였다는 점에서 언급되지 아니했습니다. 여기의 유다와 베냐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틀어 가리킵니다.

에스라의 명령에 대해(7, 8) 백성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그대로 삼일 이내에 모였습니다.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입니다. 구월은 기슬르 월(1:1)이라고도 불리우며, 양력으로는 12월로서 한 겨울이자 또한 우기에 해당합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는 데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았습니다. 큰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들은 죄와 비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 두 가지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 억수같이 퍼붓는 비로 인해 흠뻑 젖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비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여겨졌던 까닭에(삼상 12:17, 18 13:11, 13) 떨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떨었습니다. 여기서 ''이 일''은 백성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한 것과, 그에 따라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사실을 말합니다.

 

(회개의 결단을 촉구하는 에스라)

 

“10,11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방여자를 아내로 삼는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에스라에게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덧붙여진 까닭은, 에스라가 어떤 자격을 갖고 백성들을 소집하였고 신앙적 명령을 하는지를 밝히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입니다. 본서 저자인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이 기후상의 악조건 아래서도 그같이 모이게 된 동기 중의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해야합니다. 죄는 사람 앞에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문제입니다. 죄를 자복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감사하다 혹은 찬양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한 그러한 공의로운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고는 죄를 인정하고 이제는 고치겠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뜻대로 행하여 회개의 열매로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여인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 뜻대로 하는 것은 원어상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라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항상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이방 백성, 이방 여인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뜻합니다. 끊어버리라는 원어상 8절의 쫓아내리라와 동일한 동사(8절 주석 참조)입니다.

 

(회개의 결단을 하는 백성들)

 

12“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사실 인간관계를 인위적으로 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스가랴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은 에스라의 기도와 금식을 받으셨습니다. 주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해결 안에 적극 동조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대하 15:14 9:4 참조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그때는 많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능히 밖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회중들은, 많은 사람들을 어떤 조직 체계 없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기후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계속 노천에 있게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다는 것은 표준번역이나 우리말 성경에는 범죄자들이 너무 많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은 범죄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쫓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신중히 조사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다 신중하게 조사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전 광장에서의 모임을 일단 해산시켜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회중을 위하여 방백들을 세우고 이방 여자와 결혼한 자는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자고 합니다. 우리 방백들은 에스라를 도와서 최종적 판단을 할 지도자를 말합니다. 에스라는 방백을 임명하여 예루살렘에 남도록 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세우고는 임명하다란 의미입니다.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를 오게 하자고 한 이유는 그들이 에스라와 방백 앞에서 이방 여자를 내보내기로 서약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각 고을은 범죄한 자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가리킵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각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이들, 곧 장로들로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19:32 , 삼상 30:26-31). 숙곳 같은 곳에는 무려 77인의 장로들이 있었습니다(8:14).

재판장은 7:25의 유사와 동일합니다. 장로와 재판장은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 범법자들이 에스라 혹은 방백 앞에서 진술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와, 그들의 서약 내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야 할 책임을 갖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같은 역할 수행은, 이들이 범법자들과 같은 고장에 살던 사람들이어서 범법자들의 이후 동향을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관계로 충분히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온전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나게 해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관계하여 두려워한 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보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떠납니다.

 

(반대 속에서 회개하는 사람들)

 

15“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그러나 요나단과 야스야가 일어나 이 일에 반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여기의 반대는 회중들이 제시한 방법(13, 14)에 대한 반대를 말합니다. 므술람과 십브대는 에스라와 회중들의 제안을 도왔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의 자손이 에스라의 말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적극 돌아서려는 등 대단한 영적 각성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한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서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과정에서 줄곧 배후에 있다가, 이제 구체적인 결단이 내려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적 결정이 자발적 절차에 의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에스라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라고 말한 것은 에스라 자신의 조처가 세속적 권한을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신앙적, 영적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족은 가문 혹은 가족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 여러 종족의 명단은 2:3-59에 나와 있습니다.

지명된 족장에서 지명된 은 문자적으로 그들 모두는 이름에 따라 등록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에스라는 족장들과 함께 101일에 앉아 이 일을 조사하였습니다. 시월 초하루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모였던 날로부터 열흘 후입니다(9). 이 열흘 동안 심사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이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조사하여 는, 한 마을의 장로 및 재판장(14)이 검사처럼 피의자를 데려오면 피의자와 장로 및 재판장 양측의 말을 듣고 그 피의자의 범법 여부를 판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앉아(야쉬브)서 조사할 때 앉아는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전 위치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삼상 1:9 왕상 1:35, 46).

세 달이 걸쳐서 일월 일일이 되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정월 초하루는 태양력으로 3월 중순에 해당되므로, 조사를 시작한 시월 초하루(16), 12월 초하루로부터는 약 석달 후입니다. 에스라 등이 조사 활동을 위해 소요한 시간은 안식일을 제외하고도 약 75일 정도가 됩니다. 물론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하여 날짜가 공연히 연기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18-44절의 범법자의 수효는 불과 110명밖에 안 됩니다. 장로 및 재판장들에 의해 고소되었지만, 심사 결과 무죄인 경우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려 75일 동안에 귀환자가 오만 명 정도이고 앞에서 범죄한 자가 많다고 하였는데 불과 110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결국 조사위원회의 심사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사한 사람들 중에 회개한 사람들은 받아주었을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을 받아주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구약에서 이방인들 중에서 회개하고 할례하면 유대인으로 편입시켜 주었습니다. 애굽에 나올 때도 이방인이 함께 나왔습니다. 바벨론에서 나올 때 기록된 느비딤 사람도 이방인입니다. 심지어 이방인 가운데 메시야의 조상으로 쓰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모압 사람 룻과 헤사람 밧세바나 여리고 사람 라합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쫓아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새롭게 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제사장들)

 

18-22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서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하림 자손 중에서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바스훌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더라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의 자손 중에도 있었습니다. 1:1 등에 의하면 예수아는 요사닥의 아들로서 언급됩니다. 본문은 요사닥의 아들인 예수아의 자손들과 그 형제로 번역됨이 옳습니다(RSV NIV). 이들은 대제사장 가문의 후예라는 점에서 특별히 영적 모범이 되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이처럼 대제사장 가문의 범법 사실을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 초두에 올려 놓음으로써,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패상이 보편적이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습니다.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였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손을 내뻗었다의 의미로 이는 맹세할 때 흔히 취해지는 자세입니다(왕하 10:15 17:18).

속건제는 보통 비고의적으로 피해를 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습니다(5:14-16).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면서,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한 것입니다.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혈통상의 순수성에 대한 의식이 다소 둔화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이러한 설명을 지지하는 근거가 됩니다. 아니면 그들이 엄연히 통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환경에 순응하느라고 그 죄악을 스스로 묵인해 버렸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속건제를 드린 것은 속죄제와의 분명한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될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한 율법 교육을 다짐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7: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했었음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스바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란 뜻입니다.

임멜 자손, 하림 자손(21), 그리고 바스훌 자손(22)은 모두 귀환한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입니다. 마아세야는 여호와의 일이란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의 소유자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만 모두 13명씩이나 나온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이 이름은 그 당시에 매우 흔했었음이 분명합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이신 하나님,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웃시야는 여호와의 능력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엘료에네는 여호와를 향하여 나의 눈을 드나이다라는 뜻이고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느다넬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요사밧은 여호와께서 판결하심, 엘라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레위인들)

 

23-24절을 보십시오. “레위 사람 중에서는 요사밧과 시므이와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와 브다히야와 유다와 엘리에셀이었더라 노래하는 자 중에서는 엘리아십이요 문지기 중에서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더라

 

레위 자손 중에와 노래하는 자의 자손 중에도 있었습니다. 시므이는 유명한, 글리다는 불구가 됨(8:7), 브다히야는 여호와께서 여셨다, 유다는 찬양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입니다. 엘리아십 하나님이 돌이키실 것이다란 뜻입니다. 살룸은 보상, 델렘은 압박, 우리는 불같은 이란 뜻의 이름입니다.

 

(이방인을 아내로 맞이한 이스라엘 사람들)

 

25-4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중에서는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요 엘람 자손 중에서는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삿두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요 베배 자손 중에서는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요 바니 자손 중에서는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이요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요 하림 자손 중에서는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요 하숨 자손 중에서는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요 바니 자손 중에서는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느보 자손 중에서는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스가랴 저자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들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이 제사장들까지 포함한 전 백성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으나(6:17) 여기서는 성직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 대한 총칭입니다(25).

라먀는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신다, 잇시야는 여호와께서 빌려 주실 것이다, 말기야는 왕은 여호와이시다의 뜻이고, 미야민은 운이 좋은, 브나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셨다의 뜻입니다. 맛다냐는 여호와의 선물,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압디는 여호와의 종, 그리고 여레못은 높은 곳이란 뜻을 지닙니다. 사밧은 주는 자, 아시사는 강력함이란 뜻입니다. 여호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의 뜻이 있습니다. 삽배는 순결한, 아들래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합니다. 여기의 므술람은 15절의 므술람과 동명 이인입니다(15). 말룩은 통치하는, 아다야는 여호와께서 꾸미셨다, 야숩은 그가 돌아올 것이다, 스알은 간구라는 뜻을 지닙니다. 앗나는 즐거움, 글랄은 완전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브사렐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서, 빈누이는 세워진, 므낫세는 잊게 하는 이란 뜻을 가집니다. 하림 자손은 제사장 계열이었던 21절의 하림 자손과는 다릅니다(2:32). 시므온- 들음의 뜻이 있습니다. 베냐민...스마랴 이들도 역시 하림 자손들입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그리고 스마랴는 여호와께서 지키셨다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맛드내는 자유로운, 맛닷다는 여호와의 선물, 엘리벨렛은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 여레매는 높아진의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아대는 장식품, 아므람은 고귀한을 의미하며, 우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의미합니다. 베드야는 여호와의 종을, 글루히는 완성된을 뜻합니다. 이들도 모두 바니 자손입니다. 와냐는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므레못은 높은 곳들의 뜻이며, 에랴십은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 란 뜻입니다. 야아수 -그들이 할 것이다 란 뜻입니다. 바니는 세워진의 의미가 있습니다. 셀레먀는 여호와의 감사 제물을 의미하며 나단은 주어진 이란 뜻을 지닙니다. 막나드배는 무엇이 관대한 사람과 같은가? 의 뜻이고 사새는 흰 듯한, 사래는 지배하는이란 뜻입니다. 아사렐은- 하나님의 공의란 뜻입니다. 요셉 그가 말할 것이다 를 의미합니다. 여이엘은 하나님께서 이끄신다의 뜻이 있고, 맛디디야는 여호와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비내는 수지가 맞아떨어짐, 잇도는 하나님께서 아셨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본절은 에스라의 개혁 조처가 완전히 매듭지어졌다는 분명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이것과 병행 구절인 에스드라상 936절을 좇아서 본절의 후반부를 그래서 그들이 그녀들을 그 자녀와 함께 보내었다로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 부분을 ''난하주''로 처리하였습니다(NIV, RSV). 그러나 칠십인역의 내용은 여기의 맛소라 본문과 일치하므로 굳이 그같은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다는 것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른 범법자들의 이혼이 엄청나게 큰 인간적 고통을 수반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사실 자녀까지 낳았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에스라의 지도를 따라서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적 개혁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에스라 10장 강해 에스라의 개혁

에스라 101-44

요절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10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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