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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아모스 9장 강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8-10 00:00:00
조회수 : 2,77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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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9장 강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아모스 9장1-아모스 9장 15
요절 아모스 9장 11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8장에서는 네 번째 여름 실과 환상(1-3절)과 마지막 설교(4-14절)가 기록되어 있으며 말씀을 듣지 못한 기길 심판을 보여 줍니다. 9장은 이스라엘의 멸망(1-10절)과 남은 자의 구속과 회복(11-15절)을 약속하는 결론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세 가지 성품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악을 미워하시며(시 5:5, 6), 그 악을 보수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1-4절), 둘째로 모든 심판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5-6절),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진멸을 예언하시면서도 그 가운데 일부를 구원하며 회복시키시는 사랑(7-15절)의 하나님입니다.

(성전의 파멸)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아모스가 보니 주님께서 제단 곁에 서서 명령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제단 곁에 서’ 히브리 원문에는 단 앞에 정관사가 붙어 ‘그 단’, 즉 특정한 제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제단은 북이스라엘에 있는 벧엘의 단이라기보다는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모스는 사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면서도 항상 남유다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겠다는 결론(11절)을 통해 유추해볼 때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루살렘의 단으로 보아야 하는 다른 이유는 9장에서 ‘이스라엘’은 사실 전체 이스라엘을 가리키며(7-9절), 또한 예루살렘의 제단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한 이스라엘 전체의 합법적인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상의 제단 곁에 하나님께서 서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주님은 기둥 꼭대기를 쳐서 문지방까지 흔들리게 하여 사람들이 머리에 무너져 내리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도 칼로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도 그 심판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는 사람을 아끼지 않고 전멸시키되 어디를 가든지 소용없고 순종치 않던 무리는 다 살육을 당하게 하십니다. 1-6절까지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기점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멸망 받을 것이 예언됩니다. 심판에 앞서 성전이 파멸되는 것은 이스라엘 멸망의 일차적인 원인이 종교적 타락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했던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에 소수의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심판이 보류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종교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과 부패를 조장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진노케 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교회부터 심판하신다는 사실과, 교회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패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지 2-4절을 보면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철저한 심판)

2-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죽음의 세계까지 뚫고 내려가도 주님께서 찾아오겠고 하늘 높이 올라가더라도 끌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심판을 피하여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장 깊다고 생각되는 ‘땅 속’에서도 피할 수 없고,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하늘’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므로 인간은 마땅히 그 죄에 따라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멜 산 꼭대기에 숨더라도 찾아서 데려오겠고 주님을 피해 바다 밑바닥까지 숨어도 뱀을 시켜 물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국토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갈멜산’ 꼭대기나 깊은 장소라고 생각되는 ‘바다’ 밑바닥에서도 그는 자기를 숨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뱀’이란 고래나 상어와 같은 큰 물고기(나카쉬)를 가리킵니다. 갈멜 산은 해발 600m나 되는 높은 산인데 이곳에는 도적들이 숨을 수 있는 약 2천개의 동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갈멜 산의 숲은 유난히 숨기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카락 한 가닥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적국에 끌려가도 적군의 칼에 죽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또 피할 수 없는지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죽음의 세계부터 시작하여 바다 밑바닥까지 어디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곳은 없습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죄악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또한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비록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는 이방 땅에 사로잡혀 갔다 할지라도, 거기에서도 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분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요 5:24).

(지진으로 인한 심판)

5절을 보십시오.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 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에게 큰 지진의 재앙을 주실 것이라고 몇 번씩 말씀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큰 지진인지 나일 강이 범람할 때 솟아오르고 낮아짐 같이 커서 그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분은 ‘주 만군의 하나님’(5절), 즉 모든 백성과 자연을 다스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6절). 이와 같은 능력의 하나님이 천재지변을 일으켜 악한 자를 심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면 그 신실함으로 인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한번 큰 지진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합니다. 그 죽는 사람 중에는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 친척, 이웃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진은 또 생활 터전을 모두 무너뜨려 버립니다. 다시 회복하기에 많은 시간이 들고 물질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지진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 지진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6절을 보십시오.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집을 하늘에 지으시고 땅에 창공의 기초를 두신 분이십니다. 바닷물을 불러 비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의 이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높은 궁전을 세우신’다 함은 하늘에 드리워 있는 구름들이 여러 층계로 되어 있는 것이 마치 궁전과 같이 되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땅 위에 푸른 하늘을 펼치시며’는 마치 하늘이 아치형 또는 반원형으로 땅에 연접한 것이 마치 그 기초를 땅에 둔 것 같다는 심미학적 표현입니다. ‘바닷물을 불러 올려서 땅 위에 쏟으신’다는 것은 바다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공중에 올려 응고됨에 따라 비가 되어 지면에 내려오게 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세계 만민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특별히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랑으로 키우시고 전적으로 지켜주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악으로 살 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7-10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에게는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똑같’은 것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검은 피부가 희게 되지 않는 것처럼 악으로 물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탄식하는 말입니다. 여호와 주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블레셋 족속을 갑돌에서, 시리아 족속을 기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은혜를 베풀어 갑돌에서 올라오게 했지만, 장차 블레셋을 진멸하실 것입니다(렘 47:4). 이처럼 이스라엘도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지 않는다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리아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했지만, 이들도 다시 기르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종의 자리인 포로 생활로 보내십니다. 결국 외부적인 특권만을 의지하여 교만하여지고 인격의 이면에 있어서 불신자와 다름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속을 위한 수단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큰 자부심, 즉 선민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았다는 안일함으로 주의 뜻을 저버리고 범죄한다면 선택받음은 아무런 효험도 가지지 못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야곱의 집에 남은자를 허락하심)

8절을 보십시오.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편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도 긍휼하심을 베풀어 야곱의 집을 온전히 멸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에는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종으로 끌려가나 결국 그 일부가 본토로 다시 돌아오며, 마침내는 이들 중에 만민을 구속하실 메시야가 출현할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고 바울은 롬 9:7에서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현재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Messianic Jews는 약 12만 5천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교회는 약 350개로 추정합니다. 미국의 뉴욕에도 Jesus for Jews라고 하는 유대인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나라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고 죄악가운데 계속 살면 결국 심판하셔서 이 땅에서 모두 없애버리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완전히 멸하지는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또한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섞여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법을 떠나 죄악가운데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심판 선포에 뒤이어 주어진 이 구원의 약속은 선택받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어서 하늘나라의 씨앗을 삼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을 완전히 회복시키십니다.

(알곡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9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곡식을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체질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 가운데서 걸러내서 한 명도 땅에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자는 결코 죽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농부가 타작마당에서 사정없이 체질해도 알곡은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는 것 같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도 잃지 않고 구원하되 교만한 죄인들은 죽임을 당합니다.(9-10).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국 중에서 체질할 것을 선언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만국 가운데 흩어져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알갱이는 보존하실 것을 약속하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환난 중에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고 남은 자를 두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 아모스는 12절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에돔에도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닌 믿음으로 태어날 영적 이스라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심판)

10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는 없을 것이라며 거짓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고 삶에 안주하게 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게 막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죄가 있을 때에는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양들이 죄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죄를 묵인하고 심판이 없을 거라고 거짓되게 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죄인은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알갱이는 떨어지지 않으리란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 이면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죄인’이란 과거에 범죄한 자가 아니라 자기의 죄악을 회개치 않고서도 재앙을 받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속이는 자를 가리킵니다. 렘 6:14에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면서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말하지만 평강이 없다고 말씀을 전합니다. 거짓된 안전, 위선적인 평강은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11-1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주님의 날에 다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아모스의 예언이 있은 후 30년 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여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후에 다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성전을 회복케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왕입니다. 자신이 왕이 아닌 것을 아는 진실한 왕입니다. 이런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지 않으시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시고 말씀의 공동체, 정직과 공의가 강 같이 흐르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자 하십니다. 아모스는 다시 환난 당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날’은 아모스서의 주요 주제가 되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은 임시로 사용하려고 엮은 초막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왕국이 아무리 강력한 국가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한 초막에 불과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스스로 분열되고 원수들에게 점령되어 폐허화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한 두목을 세우고 일어날 것을 바라본 호세아의 예언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회복된 왕국은 역사적인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에돔의 남은 자’란 에돔에도 구원받을 자가 있어서 다윗 왕국의 시민이 될 것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이들은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을 자의 대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행 15:15-18). 그 때 이스라엘은 얼마나 축복이 넘치게 됩니까?

(풍성함의 회복)

13-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추수할 것이 너무 많아 추수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파종을 하고 포도가 잘 되어 온 산이 포도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땅에 심으셔서 다시는 뽑히지 않고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며 기쁨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13-15절에서는 새로운 다윗 왕국, 즉 메시아 왕국의 번영과 그 백성들의 행복이 가득 찬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을 보여 줍니다. 13절은 먼저 무르익은 곡식이 산과 들에 풍성할 것을 의미합니다. 회복된 다윗 왕국의 영적인 축복이 절정을 이루어 그 나라가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을 보여 줍니다. 환난과 역경에서 돌이킴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회복 등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도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보다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강조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의 언약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질 것임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약속의 성취)

이 회복의 약속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죄악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주시고 부활하셔서 진정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공의를 회복하셨고 성령으로 우리가 공의를 행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볼 때 죄악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마음에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십니다.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현재 우리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항상 기쁨으로 살게 하여 주십니다. 죄악들로 어두워진 우리 내면을 치료하여 주시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시고 영적으로 죽은 우리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사회정의가 서는 나라를 만드십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드십니다 물론 완전한 공의가 있는 나라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이루어집니다. 이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다시 넘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9장 강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아모스 9장1-아모스 9장 15
요절 아모스 9장 11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아모스 9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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