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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아모스 8장 강해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8-08 00:00:00
조회수 : 5,56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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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8장 강해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아모스 8장 1-아모스 8장 14
아모스 8장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장차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세 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즉 메뚜기, 불 그리고 다림줄의 환상이었습니다. 선지자 아모스의 중보 기도로 인해 두 차례나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뻔한 재앙이 정지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 환상에서는 중보 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 성취됩니다. 또한 거짓 제사장 아마샤가 자기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모스를 모함하고 괴롭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오늘 8장은 아모스가 본 네 번째 여름 실과 환상(1-3절)과 마지막 설교(4-14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심판의 날에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끝을 보여주심)

1-3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먼저 1-3절은 아모스가 본 네 번째 환상으로 여름 실과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광주리 안에 과일이 풍성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경제적인 번영을 말합니다. 지금이 이스라엘의 최절정기입니다. 정상에 선 때입니다. 이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끝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지만 그 의미는 둘 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첫째, 무르익어 상해 가는 여름 실과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은 쌓일 대로 쌓여 이제 심판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둘째 무르익은 여름 실과를 따서 광주리에 담아 옮기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팽배한 죄악 때문에 포로로 잡혀 이방 땅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름 실과’(히, 카이츠)와 ‘끝’(히, 케츠)의 히브리어는 유사한데, 이는 문학적 기교로서 심판에 대한 위기의식을 주고자 한 아모스의 언어유희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나 조만간 썩을 수밖에 없는 여름 실과처럼 지금은 부강하나 부패로 인하여 멸망으로 끝날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 내재된 부정한 요소는 비록 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해도 계속 버려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성도들은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을 지닐 뿐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장래의 일에 대처해 나가도록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오래 참으십니다. 사람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는 기다리신 후에 비로소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며, 또한 멸망 받아 마땅한 자에게는 더 이상 핑계댈 수 없는 심판입니다. 앞에 여러 번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은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선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바뀝니다. ‘궁전’이란 ‘성전’을 뜻하기도 합니다. 궁전의 노래는 ‘궁전에서 부르던 연락의 노래’(6:5) 혹은 ‘벧엘의 성전에 모여서 부르던 예배 노래’(5:23)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부귀와 영화가 끝나고 앞으로는 슬픔만이 남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으므로 울 수도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상태를 당합니다. 그들은 잠잠히 시체들을 내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풍요로움 속에 궁전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향락을 즐겼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그 노래가 애곡으로 변하며 곳곳에 시체가 쌓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삶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그 끝은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끝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돈에 눈이 멀은 자들)

4-6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4-14절은 아모스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4-6절은 사회적 불의와 경제적 부정에 대한 진노와 책망의 선언이며, 7-10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곤고한 날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1-14절에서는 혹독한 영적 기근의 심각성과 곧 닥칠 영육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말하여도 세상 물질의 경제권을 쥐고 빈민을 압박하는 죄로 말미암아 이 땅 백성이 떨며 애통하는 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최고로 풍성할 때 다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지 못해서 망합니다. 그 풍성한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잘 나누어 주는 것이 망하지 않는 길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나누어 주는 것이 지속적인 번영의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삼키고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거짓으로 장사하고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더한 고통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아모스는 특별히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되는 사회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 정의가 실천되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궁핍한 자’란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이지만, ‘가난한 자’란 경제적 빈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들에게 짓밟히는 비천한 계급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가난한 자와 약자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아모스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부정과 불의는 지배자들의 재판 과정에서뿐 아니라(5:7-13) 시장 등 사회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매달 초하루는 전제와 번제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인 관심만 가득하여 이 날에 장사를 하지 못하는 것만을 걱정했습니다. 또한 부피를 재는 단위인 되와 추는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상도덕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세 이후 공정한 재판과 더불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런 계량 단위를 부정하게 만들어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가중화됩니다. 밀의 찌끼를 자기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팔았습니다. 참으로 무자비한 일입니다.

(죄악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야곱의 영광은 영원불멸하셔서 맹세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하는 짓을 하나하나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자신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더욱 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난 봐주시겠지 하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정말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임할 애곡)

8-10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떠나 죄악 가운데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이 솟아오르다 낮아지는 지진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땅이 지진을 일으킴은 사회 질서의 혼란을 말하고, ‘온 땅이 솟아오름’은 물이 땅에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처럼 팽창하리라는 비유입니다. 애굽의 나일강물이 솟아올라서 온 지면을 휩쓸어 내려감같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해가 대낮에 떨어져 어둠이 있게 하시는 것과 같은 자연 재앙을 보내셔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 진노의 날은 흑암의 날이요, 모든 사람이 애통하는 날입니다. 그날에 용서 없는 진노가 옵니다.(9-10). ‘해로 대낮에 지게 함’은 이스라엘 번영의 절정 때에 이스라엘 베가 왕이 당할 갑작스러운 죽음을 은유적으로 예언합니다. ‘대낮’은 가장 위험이 적은 시간으로 행복을 상징하나 갑자기 밤중과 같은 불안의 때가 옵니다. 본문은 이러한 진노와 재앙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지 그들의 고통은 매우 커서 기쁜 명절 때도 슬픈 울음으로 울겠고 모든 노래가 죽은 사람을 위한 노래가 됩니다. 독자를 잃은 슬픔같이 애통하며 이스라엘의 끝은 슬프고 고통스런 날이 됩니다. 예언 성취 때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구체적인 애통 광경을 통해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게’함은, 그 고통이 쉬 지나가고 말 것이 아니고 계속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죄악 가운데 산 이스라엘의 끝은 매우 비참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장차 이스라엘에 기근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

11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기근을 심판으로 보냅니다. 이 기근은 양식과 물이 없어 오는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오는 기근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실제 말씀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말씀이 있지만 아모스와 같이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만을 전합니다. 북이스라엘에 참선지자가 없어졌습니다. 공의를 전하는 참선지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700년 동안 북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혼란한 정국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자 그렇게 기도해도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아무리 진리를 들어보려고 해도 들어 볼 수 없는 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육신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을 가진 인간은 영적인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특권은 제사장과 선지자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부족함 없이 공급받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스스로 배척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의 일환으로 말씀 공급을 멈추십니다. 그들에게는 귀를 즐겁게하는 말씀만 있습니다. 위로의 말씀 축복의 말씀만 있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앙 가운데 가장 큰 재앙입니다. 암환자에게 암환자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암환자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에 골몰하기 이전에 영적 기갈 상태를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은혜의 복음, 영광의 복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을 잃어버린 영적 기길이 오면 다 비틀거립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말씀을 귀로 듣지 못한다는 것보다 그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나의 말씀으로 받지 못할 때 마음에 말씀에 대한 기근을 느끼게 됩니다. 밥을 먹어도 계속 배고프고 물을 먹어도 계속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자의 피곤함)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고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총각’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찾아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그 뜻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말씀을 듣지만 마음이 피곤합니다. 그들은 기복적인 메시지만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죄사함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회개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공신학,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령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고 힘을 줍니다. 젊은 남녀를 아릅답게 합니다. 사울이 왜 죽었습니까?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과 둠밈으로도, 선지자로도 말씀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쟁을 해야 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 갈하다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치다가 망했습니다. 남유다가 그래도 더 존속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등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비전입니다. 말씀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은 정상에 섰어도 자만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더욱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현재에도 이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은 많은데 정말 우리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말씀이 인생의 축복과 성공과 번영만을 강조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홍수가 나서 물은 많은 데 그곳에 먹을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도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를 못하고 영적으로 매우 곤고한 상태가 되게 됩니다. 현재 많은 교회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움 속에 있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자신의 편한 대로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주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들이 만족을 줄 줄로 압니다.

(우상숭배자의 심판)

14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하며(신 6:13 10:20), 이를 준수할 때 복을 받습니다(렘 4:2). 그러나 헛된 우상으로 맹세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멸절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과 ‘단’의 신과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을 찾고, 우상을 두고 맹세했기 때문에 영원한 진노가 선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아모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나 유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 있을 것을 깨우쳐 줍니다. 단의 신들이나 브엘세바의 신들에 우상에 맹세한 자는 결국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외에 우리를 진정 살리는 길은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안일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공급되지 않으면 영적인 기근을 더 심하게 느끼게 되고 말씀을 받지 못하면 육신은 살았지만 영은 죽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살리는 양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삶)

현재 대학 캠퍼스에도 육신은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영적으로는 죽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비틀거리며 다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로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UBF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우리의 말씀으로 먼저 받고 그 말씀을 양들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정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우리 영혼의 생명수 되는 그 말씀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모스 8장 강해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아모스 8장 1-아모스 8장 14
아모스 8장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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