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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아모스 5장 강해 공의를 강같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8-04 00:00:00
조회수 : 4,00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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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장 강해 공의를 강같이
아모스 5장 1-아모스 5장 27
요절 아모스 5장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4장에서는 아모스의 두 번째 설교가 나오는데 배도자 이스라엘의 죄된 행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초청합니다. 5장은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재앙이 내려 망하게 될 때에 살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본 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15절로 이스라엘의 살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아모스의 애가와 탄식어린 경고 그리고 간절한 권면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시 찾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공의로운 사회를 이룰 것을 촉구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16-27절로 불가피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필연적 심판을 드러낸 본문은 미래의 심판 양상을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특히 여호와의 날에 대한 당시의 낙관론적 생각과 형식적인 제사를 규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공의의 실행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간절히 권면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을 위한 애가)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기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아모스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애가’란 사람이 죽거나 민족이 멸망했을 때 애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애국심으로 애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애가는 유다의 멸망을 보면서 애가를 부른 예레미야의 애가와 짝을 이룹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망할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30년 후면 이스라엘이 망할 것을 분명히 봅니다. 이러한 영적인 통찰력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려졌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자기 땅에 던졌으나 일으킬 자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정결한 신부로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처녀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한 번도 외세에 짓밟힌 적인 없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처녀라고 합니다. 이 이스라엘이 이제 망합니다. 다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른 누구도 일으킬 자가 없어 영원히 멸망당할 것을 보여 줍니다.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의 역사)

“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천명이 행군 나거던 성읍에는 백명만 나가고 백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파괴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10분의 1만 남게 되고 그 나머지는 멸망당할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앞으로 ‘남은 자’(15절)를 긍휼히 여겨 그들을 통한 구원의 성취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죄를 범하는 무리들은 물리치고 그 중에 불의에서 떠난 경건한 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남게 하십니다. 남은 자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때 최종적으로 밝혀집니다. 그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어떻게 하면 남은 자가 될 수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찾는가)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은 심판을 받을 이스라엘에게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다 하여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찾는 자는 살게 됩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면 새 생명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찾는다’는 말이 나오는 데 우리가 먼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스스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가르침을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의롭고 거룩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대하 16:9).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찾으며 그것들을 더 의지합니다. 돈, 명예, 지위, 학식, 경험 등 이 세상 것을 의지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찾아 구원의 축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무엇을 전심으로 찾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여호와를 찾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찾되 자신의 이익과 욕심에 따라 하나님을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의 도구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송아지 우상을 두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부귀영화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기보다는 나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려 하였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잘못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주관자이시며 주재자는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우상을 찾는자는 망함)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으면 망하게 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5-8). 하나님을 찾되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만 구해야 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으로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곳입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사가 된 곳입니다. 이 유서 깊은 브엘세바도 타락한 이스라엘에 의하여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장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었던 곳도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항상 재점검되어야 하며 과거를 항상 창조적으로 새롭게 수용해 나가는 깨어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반복하여 하나님을 찾아야함)

다시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기서 ‘찾는다’란 간절히 반복적으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찮은 물건 하나 잃어 버려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전심으로 찾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잃고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눅 14:26).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찾되 하나님의 방법대로 찾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따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자신을 찾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북왕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지파는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요셉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은 사람들)

사울은 자기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지와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고 베냐민 땅으로 두루 다니면서도 못 찾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사무엘을 찾아 갔다가 나귀도 찾고 하나님도 만나게 됩니다(삼상 9:3-10:8).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니 너무 많이 잡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잡았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도 깨닫게 됩니다(눅 5). 그리고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정의를 버린 자는 망함)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현재 이스라엘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은 정의를 쓰디쓴 독초로 변하게 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공의를 땅에 던졌습니다. ‘공법’이란 심판, 재판 등을 가리키며 ‘정의’와 동의대구법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인진’이란 호세아서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먹을 수 없는 독초의 한 종류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저주의 식물’이라는 뜻인데 그 잎사귀의 맛이 매우 쓰고 결국 사람을 죽게 하기 때문에 고난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위정자들은 유익을 주어야 할 법과 권력을 통하여 오히려 백성들에게 쓴 쑥처럼 해를 끼쳤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공의를 행하며 심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정의를 행해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함)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9.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묘성과 삼성은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는데 묘성은 황소 좌의 세 별이고 삼성은 오리온자리의 세 별입니다. 묘성과 삼성은 여호와의 위엄과 진노의 위용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들을 창조하셨고, 낮과 밤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우주의 통치자(공의)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닷물이 비가 되게 하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노아홍수),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시고 세상의 강한 자를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라도 공의르 버린 자는 갑자기 패망하게 하십니다. 공의를 버린 자에게 재앙이 홀연히 올 것입니다. 자기 홀로 땅에서 영원히 살아 보려는 욕망을 가진 자는 망하게 됩니다(9-11)

(정의로운 재판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

“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 없는 자를 밟고 부당한 세를 거두었습니다.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의인들은 이들의 죄를 꾸짖었습니다. 그 당시 부자들이 빈민들을 착취한 죄와 의인을 억울하게 한 죄를 꾸짖었습니다.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는 성문에 앉아서 회의 또는 재판하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책망을 듣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했습니다. 악인이 의인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멀리하면서 연약한 자를 학대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옳은 지도자들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악을 조장하자 심판을 경고합니다. 그들은 건축한 집에 살지 못하며, 농사한 포도원에 살지 못합니다.

(악인에게 잠잠하신 하나님)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여호와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재판하였습니다. 불의한 자가 세력을 쥐고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중심해서 움직였습니다. 이런 ‘악한 때’는 진실한 자들로 하여금 바른 말을 못하게 합니다. 정의로운 자의 자유를 빼앗고 폭력과 압제가 난무합니다. 이런 때는 의인들이 곤욕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습니다. 아모스는 지금까지 공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의인을 핍박하자 아모스는 이런 때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않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불의에 항거하여 꾸짖기를 멈추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억울한 재판을 받으시면서 잠잠하셨지요. 이것은 권세의 침묵이요 사실은 더 큰 심판을 웅변적으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살 길임)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이스라엘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구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14-15).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고 외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합니다. 정의를 행해야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을 구할 때에만 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가치관이 비뚤어진 시대에서 선을 구하는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을 구하는 이 길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살 길입니다 . 선을 구하면 주 만군의 하나님이, 참으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행여 주 만군의 하나님이 남아 있는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실지 모릅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살 길임)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은 절망적인 이스라엘에게 살 길도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살 길입니다. 그 시대에 재판정으로 이용되었던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공의를 미워하고, 불의를 좋아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의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야 합니다. 법정에서 올바르게 재판해야 합니다. 그들이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의 종교적인 성소를 찾아 재물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는 것은 악을 미워하고 버리는 것, 선을 사랑하고 구하는 것입니다(14,15). 그들은 심각한 재앙으로 울부짖기 전에 울며 회개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정의를 행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특별히 진노 중에 있는 백성들이 회개하고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구원받았던 라합 가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선을 버린 자를 심판하심)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17.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아모스의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광장마다 통곡 소리가 들리고, 거리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우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합니다. 16절의 ‘슬프도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호이’라는 단어로서 ‘아이고’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농부들을 불러다가 울게 하고, 울음꾼을 불러다가 곡을 하게 할 것입니다. ‘울음꾼’이란 직업적으로 울어 주는 자를 말하는데 보통 여자들이었습니다(렘 9:17). 포도원마다 통곡 소리가 진동할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며 심판하시는 날,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불의에 동참을 한다면 애통이 오는 날에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진노의 날에 똑바로 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주의 날을 사모해도 선을 행하므로 준비하지 않은 자는 멸망합니다(16-20).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악을 범하는 자들이 비통함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은 공의를 버린 범죄자들에게 참혹함으로 다가옵니다.

(구원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됨)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날이 구원과 빛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여호와의 날’을 하나님께서 이방 열강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로 정치적 맹주의 위치에 오르도록 하시는 날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하였으므로 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여호와의 날이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참혹한 심판의 날이라고 선언합니다(18-19). 여호와의 날에는 의인과 악인이 구별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심으로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위대한 축복의 날이 됩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은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회개치 않고 있으므로 그 날이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들은 결코 종교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심)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회개가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화려하고 열광적인 찬양소리도 듣기 싫어하십니다. 과거 조상들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절기를 지키며 성회를 열며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공법과 정의를 떠난 자는 용서하지 않으시고 원수에게 사로잡힘을 당하게 하십니다.(21-2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재앙을 내려도 살 길을 열어 주면서 재앙을 내리십니다. 적은 자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는 구원하십니다. 선을 행하고 정의를 행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물론 그들이 바친 제물은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진실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핵심 되는 것을 놓쳐 버렸습니다.

(예배보다 공의를 행할 것)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들은 예배드릴 때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파의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베델에서의 북이스라엘 예배는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의 모방했습니다. 참된 신앙과 회개는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를 사모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공법과 정의가 없이 하나님의 전에서 정교한 음악 소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의 신앙 고백하는 일체의 행위들을 금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날마다의 생활에서 순종하는 것에 소홀하였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예배를 드리기 전에 공법이 공법답게, 정의가 올바로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물 같이, 하수 같이 흘리게 하라는 것은 아무런 방해가 없이 자연스럽게 실현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지적된 예배 행위들, 즉 장엄한 모임(21절), 제사(22절), 음악(23절) 등은 그것에 합당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 행위에 더하여 의로운 참 행동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사회 정의와 영적인 의로움은 아모스 예언의 최대 핵심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그리고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게 하려면 공평과 정의가 흐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4).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다 망함)

“2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26.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가문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 희생제물과 곡식제물을 바친 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낼 때에는 제대로 제물을 가져올 수가 없어서 번제를 드리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왕으로 떠받드는 식굿(몰록이라는 이방신)의 신상들과 너희의 별 신 기윤의 신상들을 그들이 짊어지고 갈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하게 됩니다. 여기서 ‘식굿’이란 이스라엘이 숭배했던 우상의 이름인데, 앗수르 비문에서는 식굿이 ‘토성신’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토성신을 ‘그들의 왕’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보다도 일월성신을 더 존귀히 여겼습니다. ‘기윤’은 본문에서 우상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앞에 언급된 식굿과 함께 목성과 관련된 앗시리아의 별신 우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별의 숭배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보편적인 일이었으며 그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에서도 많이 유행되곤 했습니다(신 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우리도 자칫 우리 주변의 큰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을 함께 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그들을 다마스쿠스 저 너머로 사로잡혀 가게 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입니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심판을 외치는 이유)

아모스가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것은 마치 요나처럼 그들이 망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써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표현을 빌리면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살피십니다. 이 거룩하신 주님 앞에 바로 서서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사랑과 공의를 실천함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모스 5장 강해 공의를 강같이
아모스 5장 1-아모스 5장 27
요절 아모스 5장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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