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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아모스 4장 강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8-03 00:00:00
조회수 : 3,58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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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4장 강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아모스 4장 1-아모스 4장 13
요절 아모스 4장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루었습니다.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사자처럼 행하는 심판을 말씀합니다. 4장에서는 아모스의 두 번째 설교가 나오는데 배역한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시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3절까지로서 이스라엘의 사치한 부유층의 쾌락적인 삶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는 4-5절로 더욱 깊어지는 우상 숭배의 범죄상에 대해 지적합니다. 세 번째로 6-11절까지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탄식이 나오고 마지막 12-13절에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귀부인의 죄)

1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스라엘의 죄악 뒤에는 이스라엘의 상류층 귀부인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1). 아모스는 그의 두 번째 설교에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으로 사치를 일삼은 지배 계층에 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아모스는 그들을 바산의 암소라고 합니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착취, 강탈하여 향락을 충족시킨 특권층 혹은 기득권자들의 비대한 모습을 기름진 바산의 암소 떼에(시 12:12 겔 39:18) 비유합니다. ‘바산’은 목초가 많고 기름진 곳으로 요단강 동쪽 산지의 북쪽에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암소들’이라고 하는 것은 부유층 부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치스러운 여인들이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학대하고 압제하면서 쾌락을 추구합니다. 남편의 권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재물을 축적하고, 남편들이 부패를 행하도록 조종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편들을 지배하여 그들을 시켜서 술을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탐욕과 쾌락으로 가득한 귀부인들이 이스라엘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타락한 모습입니까! 여성들이 이렇게 타락하여 암소처럼 동물적인 본능만 충족시키는 생활을 하면 남편들도 자연히 병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사회는 병들고 맙니다. 여성들의 부패는 필연적으로 남성과 사회의 부패를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한참 문제가 된 크리스천 부유층 여성들의 소위 모피로비사건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귀부인들에 대한 심판)

2,3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귀부인들을 도살당하는 짐승처럼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갑니다. 그들의 비참한 종국을 갈고리에 걸려 끌려가는 물고기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죄를 그냥 둘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죄악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갈고리’와 ‘낚시’라는 이중적인 용어를 쓴 것은 그들이 심판을 피할 길이 전혀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옛 비석에 보면 포로들의 입을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가는 광경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그 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은 죄악임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끌고 가서 하르몬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하르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되어 가다가 버려진 어떤 지방 이름입니다.

(나누는 테드 티너의 삶)

부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재물이 생길수록 더욱 경건하고 근신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즉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은밀히 섬기는 일에 더욱 힘써야합니다. 1980년도 세계 최초로 24시간 뉴스 채널 CNN을 설립한 테드 터너.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끈기 하나로 CNN을 세계 최고의 뉴스 채널로 키워냈습니다. 현재는 CNN뿐 아니라 타임지 등 언론사는 물론 영화사, 스포츠팀을 두루 거느린 그룹 타임워너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인생관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나야말로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이루려고 마음먹은 것은 모두 이루었으니까요. 나머지 삶은 세상을 위해 살 겁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팝콘을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팝콘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만족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위해 그는 핵 감축을 주장하고 여성 권리를 인정하라고 외칩니다. 또 집안과 회사에서는 짠돌이로 소문났지만 해마다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재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불을 UN에 내놓았으며 환경단체 등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자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터너도 처음 100달러를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수표책에 사인할 때는 두 손이 벌벌 떨렸다고 합니다. 그 돈이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수십 번을 망설인 끝에 사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아까운 마음이 처음보다 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부 횟수가 늘어날수록 돈을 내놓기가 쉬워졌고 더 많은 금액의 수표책에 사인할 수 있었습니다. 테드 터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나눔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나눔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큰 것을 주기란 힘듭니다. 작은 것부터 나누는 연습을 통해 점점 큰 것까지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이 최근까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최근에 미국 루터교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형식주의 우상숭배자들)

4,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렸고, 수은제(감사예물)와 낙헌제(자원제물)를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실생활을 꿰뚫고 계십니다. 4-5절은 하나님께서 반어법을 통하여 여호와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의 위선적 신앙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영성(spirituality)이 전혀 없는 종교(religion)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의 이러한 사회문제 배후에는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많은 백성들이 형식상으로는 하나님께 열심인 듯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의 개념을 혼합시킴으로서 여호와 신앙을 근본적으로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위선적이요 형식주의적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주님 앞에서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은 화석화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면서 주님 앞에 매일매일 순간순간 무릎 꿇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벧엘과 길갈은 원래 이스라엘의 옛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지였지만 후에는 우상숭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호 4:15 9:15 12:11). 가령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곳이며, 세겜을 떠나 단을 쌓고 회개한 곳입니다. 그 후에 그곳은 거룩한 예배 장소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삼상 10:3). 그리고 길갈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점으로, 온 백성이 할례를 행한 곳이며, 유월절을 지킨 곳입니다. 그러나 아모스 당시의 벧엘과 길갈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바뀌고 만 것입니다. 단을 더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그들의 형식주의적 신앙도 커져만 갔습니다. 여기서 ‘삼일’마다 십일조란 원래 ‘삼년’마다 한번씩 내는 십일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섬기는 의식을 조롱하는 것으로, “삼년 만에 드리는 십일조를 삼일 만에 드려 보라” 그래도 그들의 죄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대단히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 탐욕을 좇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겉모습만 대단한 종교적 제의와 헌신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실제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않는다면 화려하고 대단한 예배는 죄를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원하십니다. ‘감사제물(수은제)’란 예기치 못했던 은혜나 축복을 받았을 때에 드려진 화목제의 일종인데 반드시 누룩이 없는 예물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레 7:12-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섞고 있습니다. ‘자원 예물(낙헌제)’란 순수한 경건심에서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사적인 감사예물(레 22:18 민 15:3)로서 가끔 자원하는 예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레 7:16). ‘큰소리로’ 하라는 것은 사적인 제사를 다른 사람에게 선전하듯이 제사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힘껏 해 보아도 소용이 없고 도리어 범죄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형식적인 제사에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선전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겸손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 우리의 모습을 좀더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6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13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속에서 일련의 다섯 가지 사건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징계들이 결국 그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기 위한’ 긍휼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패역한 길로 치닫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은 결국 이스라엘이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참회가 없었습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철저하게 부패한 죄성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깨닫고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돌아오지 않았느니라는 말을 5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기근의 재앙)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양식이 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이를 한가하게 함, 즉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왕상 18:2 왕하 4: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물부족의 재앙)

7,8절을 보십시오.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추수하기 석달 전에 비를 멈추게 하십니다. 기갈로 비틀거리며 성읍에서 성읍으로 다니게 하십니다. 두 번째 재앙은 비가 오지 아니하여 음료수가 부족하게 되는 가뭄 재앙이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추수 전에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에 큰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식수도 부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

9절을 보십시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셋째는 하나님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팥중이 재앙을 내리십니다. 잎마름병(풍재), 깜부기 재앙, 메뚜기(팟종이)의 재앙이 동시에 임하였습니다. 풍재란 보리 같은 곡식의 이삭이 까맣게 되는 흑수병(smut)을 말한다고 합니다.

(전염병과 전쟁의 재앙)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전염병과 전쟁의 칼로 이스라엘을 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로 마치 애굽의 재앙처럼 염병과 전쟁의 재앙이 임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진의 재앙)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읍이 무너졌어도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성읍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졌다는 것은 아마도 웃시야 왕 때에 발생한 지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돌이키기 위해서 오래 참으며 온갖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매와 재앙의 채찍을 들고 쳤지만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6,8,9,10,11). 참으로 무지하고 완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삶)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만날 나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이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하면 오늘 하루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1에 보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철저히 살펴야합니다. 나 자신을 철저히 살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없는지, 죄가 없는지를 깊이 살피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2에 보니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심령의 죄가 깨달아질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사죄의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날 하나님을 소개함)

13절을 보십시오.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산과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 창조하셨습니다. ‘바람’은 ‘영(루아흐)’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밝히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시고, 셋째로는 빛과 어두움, 낮과 밤을 주관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며, 넷째로 땅의 높은 곳도 밟으시는 심판주 하나님, 즉, 교만한 자를 낮추실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치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1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징벌하시는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회개로 준비하는 삶)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크고 두려우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생활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림과 가뭄과 질병과 전쟁 등,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든 재앙을 우연으로 돌리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완악한 범죄자들을 내어 버려두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아무런 형벌이 없다면 사실 그것은 더욱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리고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순간마다 죄를 회개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모스 4장 강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아모스 4장 1-아모스 4장 13
요절 아모스 4장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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