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아모스 3장 강해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8-03 00:00:00
조회수 : 2,774

문제지풀이(2)

    iconA_30840A.hwp  (32.00KB)

    iconA_30840B.hwp  (45.00KB)

아모스 3장 강해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아모스 3장 1-아모스 3장 15
요절 아모스 3장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였고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는 심판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첫 부분은 1-8절로 이스라엘은 아모스의 예언을 들어야함이 당연하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9-10절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방인들더러 들어보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11-15절로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사자와 같은 자로 키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1. 2a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주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모든 족속에게, 여호와가 선언하십니다. 아모스 예언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이지만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모든 족속’이란 구절을 보면 남유다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어라’는 아모스가 자기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었습니다(2절, 개역성경).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구별되게 불러내신 백성입니다. 여기서 "안다"(히. 야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경험을 통해 상대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여호와는 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오직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 중에서 이스라엘과 유별나고 독특한 관계를 맺으시고 은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특별한 언약관계로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맺으시고, 애굽에서 해방하시며, 율법을 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구속사의 통로로 삼으시고, 그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만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똑같은 구원의 은혜가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맡은 자가 순종치 않고 범죄한다면 보응을 내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랑받은 자를 심판하심)

"2b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이 모든 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속사의 선민으로 삼으셨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여호와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처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사랑을 받았던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 때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채찍질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8) 채찍질하여 아들처럼 거룩하게 키우십니다. 남의 자녀는 놔두지만 자신의 자녀는 잘못을 징계하십니다. 자녀에게는 요구수준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과 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뜻이 같은 사람)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하나님과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3-8절에는 7절을 제외하고는 9개의 비유적 또는 비교적인 질문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3절의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는 견해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로 보면 하나님과 동행해야 마땅한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문맥상 후자의 해석이 옳은 것 같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같이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아모스와 하나님은 마음이 합하였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사자가 먹이를 잡지 않았는데, 숲 속에서 부르짖을 수 없습니다. 젊은 사자가 움켜잡은 것이 없는데, 굴 속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젊은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부르짖습니다. 사자는 먹이를 구할 때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먹이를 낚아채면 소리를 냅니다.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사자와 같은 사랑의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시겠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사자는 자신의 새끼를 지상의 왕자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자같은 제사장 나라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심판을 통하여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합니다. 하늘에는 독수리같이 지상에서는 사자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을 훈련하십니다. 사자 소리와 같이 하나님 말씀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고, 당당한 이유가 있어서 나온 것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처럼 사자의 입으로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사자가 먹이를 발견하였거나 포획한 후에는 포효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아모스 자신도 담대하게 예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자의 발톱 안에 잡혀 있는 사냥감처럼 이미 빠져 나갈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발톱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예언을 받아서 그들에게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아모스 개인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북쪽 사람도 아닌 남쪽 사람이 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간첩 내지는 여러 죄목으로 체포되고 처형될 위험부담이 매우 높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사자처럼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새끼를 사랑하시는 사자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듣던지 아니 듣던지 하나님의 메시지는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자의 사랑으로 부르짖습니다. 그들을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과 심지어 개인적으로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가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필연적인 재앙)

“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덫을 놓지 않았는데, 새가 땅에 놓인 덫에 치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걸린 것이 없는데, 땅에서 새 덫이 튀어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덫을 놓으셨습니다. ‘덫(창애)’이란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을 말합니다. 사람이 덫을 은밀히 놓아 새를 잡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재앙으로 저들의 죄를 벌하십니다. 재앙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예언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재앙을 우연으로 생각하는 자는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Lehman Brothers가 파산하고 Merrill Lynch가 Bank of America에 극적으로 구제 합병되었고, AIG는 미국의 연방 준비기금(Federal Reserve)으로부터 850억불이라는 거금으로 구제하는 등, 국제 금융권에 거대한 위기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칫 이것은 전 세계에 미치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 또한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재물이 얼마나 헛된 물거품이 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면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모든 생활에 검소, 절약하면서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더욱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비상 나팔을 부시는 하나님)

“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성읍 안에서 비상나팔이 울리는데,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상 나팔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전쟁은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던지 사명 있는 자에게는 그 비밀을 알려준 뒤에 재앙을 내리기도 하시고 보호하기도 하시므로 사명을 맡은 자로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재앙’이 임할 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회개하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읍에 재앙이 덮치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재앙의 예고를 들으며 두려워하며 회개해야합니다. 비상 나팔을 듣고도 준비하지 않는 자는 바보입니다. 30년 후면 그들에게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 위기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덫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과 멸망을 알리는 나팔이 울리기 훨씬 전에 선지자를 통해서 수없이 경고하고 경종을 울렸지만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신앙, 성전과 종교 지도자들과 각종 종교적인 행사 등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뜻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그들과 동행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을 심판하셨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함)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참으로 주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대한 징계도 먼저 예고하신 후 심판을 행하십니다. 가령,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등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본 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예고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에 속합니다. 선지자를 선견자라고도 하는데 먼저 알고 보는 영적 통찰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이것을 미리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엎드릴 때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데, 누가 겁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라는 말씀은 하나님 심판 선포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임박한 전쟁과 멸망의 예고를 가리킵니다(사 5:29 렘 2:15). 사자의 으르렁거림은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강한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자새끼처럼 이스라엘을 키우고자하는 하나님의 소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아모스가 자기의 예언이 여호와에 의한 것임을 밝혀 줍니다. 예언자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니,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려면, 이러한 선지자의 태도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자를 무서워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에 불붙는 것같습니다.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의 예언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로 듣고 회개해야합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사마리아에 학대와 겁탈을 고발하심)

“9.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블레셋 아스돗의 요새들과 이집트 땅의 요새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사마리아의 산 위에 모여서, 그 도성 안에서 일어나는 저 큰 혼란과, 그 속에서 자행되는 억압을 보라고 해야합니다. 둘째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의 범죄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아스돗과 이집트 사람들에게 사마리아로 와서 보라고 합니다. 무엇을, 왜 보라고 하였을까요? 아스돗(앗수르의 잘못된 표기라고 한다)과 애굽은 이방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나님 심판의 증인으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이들로 곧 멸망할 이스라엘의 현실인 무질서와 학대를 보라는 말입니다. 왜 보라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민도 범죄하면 가차 없이 심판하는데 하물며 이방인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만한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을 통탄하십니다. 여호와 주가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바른 일을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폭력과 강탈로 탈취한 재물을 저희들의 요새 안에 쌓아 놓습니다. 여기서 ‘폭력’은 불의와 가혹함과 무자비함을 가리키고, ‘강탈’은 파괴와 약탈과 살상을 뜻합니다. 이것은 잔인무도한 권력자들의 사회적인 범죄상을 말합니다. 이방 나라들에서도 사마리아처럼 포학을 행하지 않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를 초청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치부를 보게 하시고 조롱하게 하시고 심판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자처럼 심판하심)

“11.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그러므로 여호와 주 하나님이 선고하십니다. 적군이 이 나라를 포위하고, 이스라엘의 방어벽을 허물고, 너의 요새들을 약탈할 것입니다. 여호와 주가 선고하십니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 하나를 건져내듯이,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출되기는 하지만 침대 모서리와 안락의자의 다리 조각만 겨우 남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면에 대적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힘을 쇠하게 하시고 약탈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건져낸다고 하더라도 사자의 입에서 두 다리 뼈 조각이나 건져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12). 하나님은 사자처럼 심판하십니다. 사자는 새끼를 사랑하지만 적을 공격할 때는 무섭습니다. 사자처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무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실제로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성취됩니다. 왕궁에서 사는 자들도 극소수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노 중에도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남은 성도들의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들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상숭배와 사치를 심판하심)

“13.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을 듣고서, 야곱 가문에 전해야 합니다. 여호와 주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이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죄를 징벌하는 날,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벧엘의 제단들도 징벌하십니다. 그 때에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십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벧엘은 야곱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벧엘 제단에 나아가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단을 헐고 제단의 뿔을 파괴하십니다. 여기서 ‘제단의 뿔’이란 제단을 대표하는 부분으로 속죄의 능력, 권위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우상은 파괴됨을 예언하였습니다. 또 여호와가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짓부수십니다. 그러면 상아로 꾸민 집들이 부서지며, 많은 저택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상아궁, 왕과 귀족들의 부패의 온상인 상아궁도 파괴하십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벧엘의 제단들 그리고 상아로 치장된 겨울 궁, 여름 궁들이 이스라엘의 죄들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벧엘의 제단에서 여전히 우상에게 제사는 드려지고 있었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온갖 방탕과 향락과 사치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뜻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북이스라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세속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를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배척하였고, 오히려 멸시하며 죽였던 것입니다.

(심판을 예고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 징계하신다는 사실입니다(1-2절). 하나님은 사자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해도 전혀 징계하시지 않으면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버린 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자와 같이 우리를 세계에서 우뜸 가는 제사장 나라로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늘 행복한 꽃길만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런 슬픔을 주셨을까하며 의심해야 할까요? 그러나 가난과 해를 당하는 고난이 성도에게 있을 경우, 그 고난은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고난을 당하는 성도의 태도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이뤄 가시는 선을 기대하는 것이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성도에게 임하는 고난이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성도를 성도답게 이끄시는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심판 예고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받아들여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엄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은 오히려 참된 길을 가르쳐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준행하는 민족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영광된 것인지를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진노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사자처럼 키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아모스 3장 강해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아모스 3장 1-아모스 3장 15
요절 아모스 3장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아모스 3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