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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나훔 3장 강해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이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0-20 00:00:00
조회수 : 3,96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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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3장 강해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이유

나훔 31-나훔 319

요절 나훔 3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1장에서 나훔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고 유다는 구원하실 것에 대해 개괄적으로 말씀한 후 2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니느웨가 어떻게 공격과 약탈을 당할 것인가를 매우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어서 마지막 3장에서도 2장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격앙되어 있는 강렬한 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훔이 하는 예언의 초점은 왜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지에 관한 이유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한때 번창했던 이 오만한 도시의 영적인 부패 상황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본문의 내용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7절까지는 니느웨의 폭력과 속임수가 수치를 가져올 것을 말씀합니다. 8-11절까지는 테베(노아몬)에 대한 니느웨의 태도가 자기 자신의 패망을 불러 올 것을 예언합니다. 마지막으로 12-19절까지는 니느웨의 방어 노력이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잔혹한 피의 성 니느웨)

 

“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니느웨 성은 망합니다! 니느웨 성은 피의 도성입니다!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 도성입니다! 너는 망한다!’라는 말은 큰 슬픔의 일이나 임박한 죽음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감탄사입니다. 니느웨는 문자 그대로 피의 성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살인으로 그 성은 피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Maier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니느웨는 포로들에게 온갖 잔학 행위를 떡 먹듯이 일삼았다. 손발을 자르고, 귀와 코를 도려내고, 눈을 뽑아내고, 목을 쳐 떨구는가 하면, 나무에 매달아두거나, 성문 앞에 쌓아두었고, 심지어 산 사람에게 말뚝을 박고, 아주 천천히 최후의 한 조각까지 온 몸의 껍질을 벗겨내는 따위의 마성(魔性)을 드러내었다.” 니느웨는 또한 궤휼, 즉 속임수와 거짓말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앗수르가 써먹은 책략을 보면 이 궤휼의 특성이 아주 명백히 드러납니다.(왕하 18:31).

 

(행한 대로 당하는 니느웨)

 

“2.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나훔 선지자는 1절에서 니느웨의 죄를 개괄적으로 지적한 다음, 2-4절에는 이어 몇 가지 신랄하고 생생한 묘사로 이 도시에 대한 마지막 죄목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점층법을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채찍에서 병거 바퀴, 다시 , ‘병거, ‘기병으로, 그리고 살육 당한 떼와 큰 무더기 주검(무수한 시체)으로 강도가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바로 니느웨가 당한 공격을 의미하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다 니느웨가 자기들의 전술로 써먹던 잔인한 방법들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많은 시체 무더기를 쌓았던 니느웨는 이제 자기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일 차례가 된 것입니다. 찢어지는 듯한 말채찍 소리, 요란하게 울리는 병거 바퀴 소리. 말이 달려옵니다. 병거가 굴러옵니다. 기병대가 습격하여 옵니다. 칼이 번쩍이며 불이 납니다. 창은 번개처럼 번쩍입니다. 떼죽음, 높게 쌓인 시체 더미, 셀 수도 없는 시체. 사람이 시체 더미에 걸려서 넘어집니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 3세는 적들 앞에서 사람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려놓고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왕들은 정복한 도성의 입구에 시체를 마치 장작처럼 쌓아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그와 같이 심판을 받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

 

“4.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이렇게 심판을 받는 것은 니느웨가, 창녀가 되어서 음행을 일삼고, 마술을 써서 사람을 홀린 탓입니다. 음행으로 뭇 나라를 홀리고, 마술로 뭇 민족을 꾀었기 때문입니다. 마술이란 자신들의 잔인함을 미화시키는 니느웨의 외교정책을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살육이 임하게 되는 이유는 마치 음녀가 음행을 탐하는 것처럼 니느웨가 권력을 탐해왔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열국을 자기 수하로 유혹하기 위해 군사적인 지원과 권력을 팔았습니다.

음녀는 니느웨가 섬기던 여신 이스달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매우 음란하고 야만적인 일들을 많이 한 신이라고 합니다. 열국에 대한 니느웨의 통제력 행사는 마법과 마술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열방을 정복한 후 그 민족들을 음행과 마술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통치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미래를 알기 위해 점을 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무수한 주문(呪文)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한 새나 동물이나 구름의 움직임, 간밤에 꾼 꿈 등에서도 징조를 읽곤 했다고 합니다.

바벨론이 니느웨성을 공격합니다. 여기서는 니느웨를 음녀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영적인 간음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을 떠난 것 자체가 바로 우상숭배이며, 이 세상의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행동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17:519:2에서 이 죄악된 세상을 음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니느웨)

 

“5.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6.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제 여호와가 니느웨를 치십니다. 여호와 만군의 주가 선언하십니다. 여호와가 니느웨의 치마를 그 얼굴 위로 걷어 올려서 그의 벌거벗은 것을 뭇 나라가 보게 하고, 그의 부끄러운 곳을 뭇 왕국이 보게 하십니다. 니느웨가 다른 나라들을 대적하여 저질렀던 염치없는 행위들은 이제 그 부끄러움과 수치가 백일하에 노출됨으로써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권력과 여신을 섬겼지만 그에 의해서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대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2:13)

어떤 나라든 그 나라가 아무리 부하고 강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믿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의 생명을 짓밟는다면 하나님은 그 나라의 대적이 되실 것입니다. 니느웨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그들에게 불명예와 수치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수치를 당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물을 니느웨에게 던져서 그를 부끄럽게 하고, 구경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더러운 것즉 인간의 배설물과 능욕으로 불명예와 망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더럽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을 가리켜 사용되는 말입니다. 특히 우상을 지칭하여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29:17 4:1 20:7-8). 따라서 이제 니느웨의 영광은 더러운 것으로 탈바꿈하고 말 것입니다.

 

(니느웨를 위로할 사람이 없음)

 

“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그를 보는 사람마다 "니느웨가 망하였다만, 누가 그를 애도하랴?" 하면서 애도할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사람들이 니느웨를 피하여 달아나니, 그를 위로할 자들을,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니느웨 성읍이 요나 시대에는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았지만 이제 100년이 지난 후에는 전혀 동정을 받지도 못한 채 완전히 멸망할 것을 수사적인 질문으로 강조합니다. 니느웨가 수치를 당하고, 마침내 황무하게 되고도 위로할 자가 전혀 없게 되는 그 날 그들의 멸망은 절정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니느웨가 얼마나 잔인했었던지 이제 그토록 큰 피해를 입고 있어도 누구 하나 와서 거들떠 봐주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한때 매력을 뽐내던 기생이 이제 그 수치가 다 드러나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매력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이웃 나라들을 유혹하며 음녀처럼 부도덕한 행위들로 타락시켰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망하게 한 이집트처럼 망하는 앗수르)

 

“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9.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10.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11.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니느웨가 이집트의 테베(노아몬)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테베는 나일 강 옆에 자리 잡은 테베, 강물에 둘러 싸여 그 큰 물이 방어벽이 되고 그 큰 물이 성벽이 된 그 성읍입니다, 이제 니느웨의 힘은 앗수르가 주전 663년에 정복했던 애굽의 도시 테베 또는 노아몬보다도 도덕적으로 나을 것이 전혀 없는 도시이므로 마땅히 테베처럼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인들이 이 도시를 노아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몬 의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의하면 이 테베라고 하는 도시는 문이 백 개나 있었던 이집트 남쪽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전들, 스핑크스 그리고 오벨리스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도성이었다고 합니다. 그 위치는 지금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60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나일 강의 동편 제방 위에 건설되었으나 그 외곽 지역은 양쪽 해안에 다 퍼져있었습니다.

테베의 한 가지 장점은 그 전략적인 위치였다고 합니다. 사방이 물로 둘려져 있었고 여러 가지 운하와 수로가 여기저기 많은 지역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시 방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적군들은 도시 심장부에 들어가려면 수많은 운하를 건너야만 했는데, 그것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가 얼마든지 그들의 힘이 되어 주고 붓과 리비아가 이집트를 도와주었습니다.

테베의 또 한 가지 강점은 정치적으로 유력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니느웨에게는 아무런 동맹국도 없었습니다. 테베는 당시 구스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이 구스는 나일 강 상류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오늘날의 이집트 남부, 수단, 그리고 에티오피아 북부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나일 강 하류 지역은 애굽에 속해 있었지만 테베는 당시에 구스에 속해 있었습니다. ‘리비아는 때로 같은 이름으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여기처럼 함께 언급될 때에는 이 홍해와 맞닿은 해안을 가리키고 그 남방 끝은 오늘날의 소말리아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테베의 동맹국들은 동서남북 사방에 퍼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니느웨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요새의 테베의 성읍의 주민도 사로잡혀 가고, 포로가 되어서 끌려갔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길거리 모퉁이, 모퉁이에서 나동그라져서 죽고, 귀족들은 제비 뽑혀서 잡혀 가고, 모든 지도자가 사슬에 묶여서 끌려갔습니다.

여러 가지 지리적 외교적인 강점에도 불구하고 테베는 앗수르의 앗수르바니팔 왕에게 함락되고 맙니다. 테베의 백성 대부분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갑니다. 테베의 어린아이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됩니다. 앗수르 군인들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길모퉁이마다 이 일을 자행합니다. 백성들 사이엔 극도의 공포와 고통이 하늘에 사무쳤고, 테베의 뒤를 이를 후세대의 씨가 마르게 될 형편이었습니다. 테베에 대한 이런 극악무도한 잔학 행위들이 니느웨의 죄를 더하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간 테베인들 중에 일반 백성들은 그대로 포로 상태로 집단 거주하게 된 반면,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어졌습니다. 아마도 니느웨인들의 노예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귀족들로서는 매우 비굴하고 수치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포로 중 제비 뽑히는 자들은 주로 평민이었는데 여기서는 귀족들이 평민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앗수르의 니느웨도 또한 술에 취해서 갈팡질팡하고, 원수를 피하여 숨을 곳을 찾아, 허둥지둥 할 것입니다. 니느웨가 테베에게 한 일이 이제 니느웨에게 그대로 되돌아 올 것을 예언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공격을 받을 즈음에 취한사람들처럼 의식과 방향을 잃은 채 피난처를 찾아 우왕좌왕할 것입니다. 사실 니느웨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었는데(1:10), 그 바람에 그들은 방어 능력을 상실한 채 향방 없이 좌충우돌하여 큰 피해를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숨을 곳을 찾아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은 흔적도 없이 멸망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니느웨의 유적지는 1842년 그곳이 발굴될 때까지 숨겨져 있었습니다.

 

(불에 타는 니느웨)

 

“12.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13.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니느웨의 모든 요새가 무화과처럼 떨어질 것입니다. 흔들기만 하면 먹을 이의 입에 떨어지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될 것입니다. 적들이 공격을 감행해올 때, 니느웨는 자기의 모든 산성이 허약해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봄에 맺히는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는(13:20) 나무를 살짝 흔들기만 해도 우수수 땅에 다 떨어집니다. 조금만 손을 대어도 먹는 자의 입으로 무화과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수비도 침략자의 발 앞에 이렇게 쉽고 빠르게 무릎을 꿇게 되고 말 것입니다.

과연 이 일은 주전 612년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앗수르의 군인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군인들은 모두 여자들처럼 연약합니다! 밀어닥치는 대적들 앞에서 니느웨 땅의 성문들은 모두 열리고, 빗장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침략자들을 보는 순간, 성 방비를 힘쓰고 있던 장정들이 일시에 용기를 잃고 여자같이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여인은 두려움이 많고 방어 능력이 없습니다.(19:16 50:37 51:30) 한때 사자처럼 날뛰던 앗수르인들이 두려움에 질려 무력해지고 맙니다. 범람하는 물에 의한 성벽 유실에 힘입어 적군들은 쉽게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문과 빗장에 불을 지르고 물밀듯이 성안으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대비책이 소용없이 망하게 됨)

 

“14.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이제 니느웨가 에워싸일 터이니, 물이나 길어 두라고 하십니다. 옛날에 전쟁을 할 때 도시가 포위를 당하게 되면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는 깨끗한 식수를 충분히 공급하는 일이었습니다. 니느웨의 요새를 탄탄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수렁 속으로 들어가서 진흙을 짓이기고, 벽돌을 찍어 두라고 합니다. 니느웨가 아무리 수비책을 찾아 애를 쓴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심판을 막을 도리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제 파멸의 장면은 산성과 성문에서(12-13) 성 내부로 옮겨집니다(14-17). 조롱조의 아이러니를 사용하여 나훔은 니느웨의 군인들에게 한번 수비를 잘 해보라고 명령합니다. 적군이 도시의 성벽을 허물게 되면 수비하는 도시는 새 벽돌과 진흙으로 이 부분들을 수리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탄탄하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수리하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니느웨의 잔해를 발굴했던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적군이 성벽의 일부를 무너뜨렸을 때 그 인근 지역을 방비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쌓았던 2차 방벽의 흔적들도 발견해 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앗수르는 멸망할 것임을 나훔 선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느치가 풀을 먹어 치우듯이, 산성에서 불이 나와 니느웨를 삼킬 것입니다. 칼이 니느웨를 벨 것입니다. 느치처럼 숫자나 불어나 보라고 합니다. 메뚜기처럼 숫자를 많이 불어나 보라고 하십니다. 모든 방비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이윽고 을 동반한 재난이 니느웨를 강타하게 됩니다. 시내로 들어온 적군은 많은 사람들을 칼로 살육합니다. 그 군대는 마치 온 사면의 농작물을 완전히 다 먹어치우는 느치와도 같을 것입니다. ‘느치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하라는 나훔의 명령은 니느웨인들에게 이미 주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숫자를 늘려서 어떻게든 방어를 해보라는 말이지요. 그게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이 말씀을 적군들에게 주어지는 명령으로 본다면, 이것은 숫자를 늘려서 니느웨 정복을 성공리에 끝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많은 수의 상인과 방백들이 다 도망갈 것임)

 

“16.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니느웨는 상인들을 하늘의 별보다 더 많게 하였습니다. 느치가 땅을 황폐하게 하고 날아가듯이 그들이 날아가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나훔 선지자는 다시 느치이야기를 합니다. 니느웨는 수많은 상고(商賈-상인)’와의 무역을 통하여 부를 엄청나게 모았으나, 이제 그 거래처 상고들은 채소밭을 죄다 갉아먹는 많은 느치떼와 같이 될 것입니다. 비록 니느웨가 무역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이제 그 거래처 상인들이 부정 이득을 통해 똑같은 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니느웨 상품들을 도로 취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군대도 부()도 니느웨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니느웨의 수비대가 메뚜기 떼처럼 많고 그의 관리들이 느치처럼 많아도, 추울 때에는 울타리에 붙어 있다가 해가 떠오르면 날아가고 마는 메뚜기 떼처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말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격의 메뚜기가 등장합니다. 니느웨가 공격을 당하게 되는 날, 방백들과 대장들은 너무나 두려워 야반도주를 할 것입니다. 메뚜기는 저녁에 추울 때는 울타리에 달라붙어 있지만 아침에 해가 뜨면 곧바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이 성벽(울타리)을 지키던 장수들도 공포에 질려 순식간에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1845년이 될 때까지 니느웨가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 아무도 발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니느웨는 회복이 불가능함)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앗시리아의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앗수르의 목자들이 다 죽고 그의 귀족들이 영영 잠들었습니다. 그의 백성이 이 산 저 산으로 흩어졌으나, 다시 모을 사람이 없습니다. 18-19절에는 마치 장송곡 가사와도 같은 마지막 예언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 당시인 주전 612년에 앗수르를 통치했던 왕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또 하나는 니느웨가 함락된 지 3년 뒤인 주전 609년에 앗수르 제국을 다시 일으켜 보려고 노력했던 앗수르우발릿 왕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대개 후자 쪽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앗수르우발릿 왕은 황무하게 되어버린 제국을 둘러보면서, 그의 지도자들(목자와 귀족)은 다 죽었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백성들은 다 흩어져서, 그들을 다시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난공불락을 자랑해 온 이 제국이 이제 완전히 멸망한 것입니다. 니느웨의 상처는 고칠 길이 없고, 그 부상은 치명적입니다.

그의 소식을 듣는 이들마다, 그가 망한 것을 보고 기뻐서 손뼉을 칩니다. 그의 계속되는 학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불살라지고 약탈당한 도성 니느웨의 참상은 마치 치명적인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함락된 정도가 너무도 고칠 수 없고 중하여, 이제 니느웨의 재건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고고학이 아주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포학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압제를 당한 적이 있는 모든 열국들은 이제 니느웨가 궤멸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그 악행을 늘 받을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니느웨가 함락되어 그 악행도 끝이 났다고 하니, 이는 누구보다도 특히 유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니느웨에게는 진노하시고 주를 의뢰하는 백성들은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보이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 나훔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다시금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결국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니느웨가 요나의 경고를 받아 잠시 회개했지만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그들의 잔혹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신다는 진리를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님의 크신 위로가 넘치게 됩니다.

나훔의 이 예언은 1차적으로 앗수르의 멸망과 유다의 회복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심판과 성도의 구원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고 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잠잠히 주님을 기다려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아멘.

나훔 3장 강해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이유

나훔 31-나훔 319

요절 나훔 3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나훔 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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