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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2013 성탄 메시지

작성자 : 유요셉
작성일 : 2013-12-24 00:00:00
조회수 : 556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경구절 2:1-2:20

요절 10-11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good news of great joy)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Merry Christmas! 루돌푸 사슴코라는 노래를 아시나요?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루돌프는 유난히 코가 붉어 친구 사슴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사슴이었고, 못생긴 빨간 코 때문에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산타가 찾아와 썰매를 끌어줄 사슴을 찾았고, 동네 사슴들은 저마다 영광스런 산타 썰매를 끄는 일에 뽑히려고 모여 들었습니다. 산타는 그 중에서 루돌프에 눈여겨 보았고,다른 사슴들이 놀려대던 그의 빨간 코가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후 루돌프는 친구 사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산타의 썰매를 끌고, 선물꾸러미를 나누어주는 신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이야기입니다. 루돌프 사슴은빨간 코 때문에 소외당하며 살았지만, 산타를 만난 후 선물을 나누어지는 기쁘고 신바람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우리도 예수님을만나면 어두운 세상의 죄와 짐을 벗어버리고 항상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우리가 오늘성탄 말씀 잘듣고,(루돌프와 같이)예수님 탄생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나누어 주는신바람나는인생을 살 수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 전역에 인구조사를 실시하라!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는가이사 아구스도가로마의 황제였습니다. 그는 신하들에게온 나라 사람들의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황제의원래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이며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잘아는 옥타비아누스입니다. 특히 삼두정치와 세제 개혁을 통해서 로마제국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전 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속주민에 대해 불시에 임의로 징세를 하지 않았고, 새로 정복한 지역의 기반을 닦고 고정 세율로 직접세를 징수 하였습니다. 또한, 해마다 속주가 내야할 세금의 양을 정했는데, 이를 위하여 인구조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인구조사는 수리아에서 구레뇨가 총독이 되었을때 처음 행한 것인데, 이스라엘이 수리아에 복속되어서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그런데 가이사의 인구조사소식은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기쁜 소식이 아니였습니다.지금은 인구조사를 하면 자신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등록를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인구조사를 위해서는자비를 들여 본적지까지 이동하여, 등록을 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이 소식을 들은 가난한 목수 요셉도나사렛에서 만삭이된 아내를 이끌고베들레헴까지 가야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200km정도 있데 이는 차로 가면 시속 100km/hr로 두시간 정도 타고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지금은 자동차나 KTX가 있어서 출퇴근 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거리지만, 당시에는 걷거나 나귀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 이틀은 가야할 먼거리였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약소국의 백성으로 태어나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호적을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 졌을까요? 제 처도 임신을 3번이나 했기 때문에 요셉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갔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아내가 아이를 가지면 처음 몇달과 막달이 매우 힘이듭니다. 임신 초에는 산모가 입덧이 심해서 힘들고, 막달이 되면 아이가 부쩍 커서 아이의 무개때문에 힘이 듭니다.아이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다리에쥐가나고 붇기도 합니다. 그래서 막달이 되면차라리 아기가 그냥 빨리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만삭의 몸으로 베들레헴으로 가야하는 길이 매우어렵고 서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요셉가 마리아가 베드레헴이 다다랐을 때 마리아는 잉태가 가까워진것을 느끼고 이를 요셉에게알렸습니다. 요셉은 깜짝 놀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방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여관은 다른 호적하러 온 사람들로 인해방은이미만원이였고, 아무도 가난한 그들에게선듯 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요셉의 사정을 불쌍히 여긴 한 집 주인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신의 마굿간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럼 마굿간에서 잉태를 기다리는 요셉과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미가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요셉이 이 말씀을 기억했다면 그들의 슬픔이 큰 기쁨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혹시 이러한 경우를 당한 적은 없는지요? 요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오바바케어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바마 케어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민 의료보험 같은 것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에 있는 저소득층은 높은 보험료 때문에 보험을 들지 못했습니다. 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아플때 병원에 가면 병원료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집에서 참거나, 혹은 치료를 받아도 기본적인 것들만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력이 있거나 보험금을 많이 지급해야 할것 같은 사람들은 보험회사에서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예를들어 에스더목자와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에스더목자가 임신중이였습니다. 우리는 임신 중이기 때문에 병원에 반드시 가야 하는 상황이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에스더 목자가 임신성 당료가 있어서 고위험성 임산부로 분류되어 보건소에서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험을 들기 위해 노렸했지만, 아무런 보험사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보험 없이 병원을 다녔는데 초음파 검사만 70만원 이상 나왔고 다른 피검사, 의사 보는 비용등등을 따지면 의사를 한번 보는데 많게는 100만원 이상 나왔습니다. 거기에 의사가 우리가 말을 잘 못알아 듣는다고 판단을 하여, 전화 통역 서비스 까지 받아서 병원비가 눈덩이 처럼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잠깐 슬퍼할 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교지에 있으면서 물질문제가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물질을 소비할 것을 계산해서 쓰려고 하면 항상 부족하여 스트래스가 너무 많았습니다. 때문에 더이상 물질을 계산하지 않고 우리를 먹이실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물질에대한 걱정보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때 항상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중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날 때 큰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II.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예수님!

6-7절을 보십시오. 결국 마리아는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았고 첫아들 아기 예수님을 말 구유에 뉘었습니다. 우리는 말구유에 뉘인 예수님을 그림이나 인형으로 보아서 말구유에 뉘인 예수님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말 구유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소의 밥그릇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밥그릇을 씻어서 사용하지만, 말 주인이 말의 밥통을 매일 닫아줄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에서 눕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외모나 재력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어디가서던지 대우를 받는 다고 생각을 합니다. 때문에 좋은집, 좋은차, 명품등을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이러한 문화속에서 사는 우리는 오늘날 예수님이 오늘 말구유에 오신다면 예수님을 기뻐하며 맞이 할 수 있을까요?만약 초라한 행색의 두 남녀가 우리 집에 찾아와 잠시 머물며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이를 보고 우리는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이 기뻐 할 수 있을까요?

8-9 절을 보십시오.베들레헴 주위에서 양치는 목자들이 밤에 양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들은 가장 먼저 이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생각할 때주의 사자가 마굿간 주인에게 나타났다면 예수님은 곧 따듯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나타났다면 예수님은 로마의 왕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의 사자는 낮은 계층에 속하는 양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났고, 그들은 성탄의 첫 증인 들이 되었습니다.선듯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충성되고 그들의 마음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복음이 가난한 나라에 잘 전하여 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부자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 가기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예수님보다 자신들의 소유를의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는 현재의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는 소식은 심각한 표정으로 듣지만, 내가산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에는 웃음 뛴 얼굴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럼 나는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요절입니다. 10-11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갑작스러운 천사들에 방문에 두려워하는 목자들에게 천사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할 구원자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으니 기쁘십니까? 기쁨의 사전적인 의미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나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었을 때의 행복한 마음을 ‘기쁨’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찾아오는 기쁨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기도하던 신은영자매가 미국비자를 받은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서다윗이 카이스트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입이 떡벌어질 만큼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쁜 소식을 들으면 그동안 힘들 기억들이 눈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큰 보상을 받은 것 같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저도 올해 학위를 받았을 때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쁨은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합니다. 기복이 있습니다. 왜 일까요? (드라마) 이 장면을 보면 남자는 여성의 한마디 한마디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합니다. 감정의 기복이 아주 심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그가추구하는 기쁨이 기준이 바로 여자친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기쁨은 소금과 같이 사람을 갈증나게 합니다. 좋은 차를 가지고 싶어서 저축을하여 좋은 차를 사면 이제는 좋은 집을 가지고 싶어하게 됩니다. 성취의 기쁨은 잠시뿐이고 다시 피곤하고 목마른 삶이 지속됩니다.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세상적인 기쁨보다는 절대적인 기쁨을 찾을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말씀으로 2주간 요한계시록을 배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책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단이 나오고 죄를 진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를 공부하며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별을 받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우리의 인생은 한계적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마라톤 선수는 앞으로만 뛰어가지 뒷것음질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마라톤의 결승선에 승리의 영광이 있을지 낭떠러지가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길을 찾아서 믿고 뛰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사람들은 어둠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천국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지만,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해 낭떨어지로 밀려 떨어졌습니다. 선지자들이 중간 중간 등불을 켜놓았지만, 사람들은 그 등불이 있는 곳을 천국으로 생각하다가 실족했습니다. 이에 하나님 최후의 수단으로 활활 타오르는 태양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셔서 아무도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태양을 보고 천국의 길을 걸어오면부자이던지가난한자이던지 병든자이던지 죄가 많은 사람이던지모두가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 약속의 증표로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선포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을 죽음에서 완전히 구원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던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은 세상의 어떠한 기쁜 소식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만족감보다 더 큰 만족을 찾을 수 는 없을 것입니다. 진시황제도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끝내 영생을 얻지 못해 영원히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생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경쟁할 필요도 없습니다. 구원을 얻기위해 적금을 부을 필요도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할 필요도 없고 몸짱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얻기 위해 땀흘려 수고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고, 세상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좀전에 말씀드린것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길을 걸어가야 할 일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길이라는 것이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 길도 있습니다. 고불고불한 길도 있고 늪을 지나가야는 길도 있습니다. 중간 중간 야수의 울음소리에 무섭기도하고, 다리에 상처가나서 잠시 쉬고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곳은 너무 평평해서 공어한 마음이 듭니다. 구원은 얻었지만, 그길을 가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짐으로 느껴지고, 처음 구원받았을 때의 기쁨을 잊어버립니다. 그럼 이러한 기쁨을 잊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항상 기뻐 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기 의를 내려놓고 매일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기쁨을 빼앗깁니다. 우리는 살면서 고난을 받을 때도 있고 서러운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애매하게 핍박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이해하시며 따뜻한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구원하실 것을 믿음으로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메시지를 감당하면 저는 예수님의 탄생이 왜 저에게 기쁜 소식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행복하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당연히 행복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올해 3째 아이를 얻었고, 학위를 받았으며, 대기업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로 인해 기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3째를 얻으며 기쁨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수고도 더해졌고,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당시에 취업이 되지 않았으니, 학위를 받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습니다. 학위를 받고 3개월안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미국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기뻣지만,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이 많이 있고, 틀에 박힌 생활을 해야 하는데 대한 답답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기쁨은 잠시 저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어떻게 보면 곧 또다른 걱정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이러한 기쁨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3째는 하나님이 주신 우리가족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첫째와 둘째가 반겨주는 것도 기쁘지만 막내가 주섬주섬 문밖으로 기어나와 저를 맞아 줄 때 아기예수님을 보는 것 같은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학위를 마치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졸업 시기를 자꾸 미루는 것 같아서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시작도 믿음으로 했으니 끝까지 믿음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자격없는 저를 미국에서 학위를 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겸손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저런 인생을 살다가 죽을 저를 구원하시고 학위를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만난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과도안 업무로 인한 스트래스로 몸이 고단했지만, 거제대학을 섬기며 개척을 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어서 기쁨이 있었습니다. 죄인으로 살다가 영원히 죽을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이 예수님의 선물을 나누어 주는 자로 사용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 벅찬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지속적이고 완전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절대적인 만족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유에 오신 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희생의 모습으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신의 물과 피를 모두 십자가에서 쏟으시고 죽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증거이고 표적이 됩니다.

13-14 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기쁨만 주시지 않습니다. 평화도 함께 주십니다.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마음에서 시끄러움이 사라지게됩니다. 졸업을 할수 있을까? 취업을 할수 있을까? 자격증을 몇개를 따야하는가? 직장을 옮겨야하나? 결혼은 언제해야 하는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등의 문제에 자유함이 생깁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기쁨’을 찾았습니까? 혹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회복되었나요?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며, 우리의 인생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 예수님은 다시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쁜 성탄, 마음속에 시끄러운 것을 모두 예수님의 말구유 밑에 내려 놓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 탄생의 큰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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