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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발달심리학에서 본 나의 삶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20-09-29 00:00:00
조회수 : 386


발달심리학에서 본 나의 삶
나의 발달과정
1)태내기 신생아기 영아기-억압
태내기는 어렸을 때 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의존한다. 나는 오남일녀의 다섯째로 수태되었다. 사실은 내 위로 형이 넷이 있는데 누나가 한 명 죽었다고 하니 여섯 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싶지 않았다고 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떼어내기 위해서 임신한 몸으로 더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복대도 하고 민간요법에 해당하는 풀뿌리를 캐어 먹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만약 임신 중절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의료시설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돈이 없어서 나를 수술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런 덕분으로 나는 태어났다. 이런 면에서 나는 태아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때부터 나를 주목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유아기-무저갱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처음으로 문지방을 넘어 떨어졌을 때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칭찬은 큰 힘이 있는 것 같다! 내 밑에 여동생이 또 태어났다. 항순인데 그를 업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애는 홍역을 하다가 죽었다. 그 후에 내 밑에 지금은 외동딸로 있는 여동생이 태어났다.
집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 와서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잠이 들거나 어렴풋한 꿈속에서 아득한 밑으로 떨어지곤 했다. 나는 밑이 없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로 인하여 잠자는 것이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떨어지던 그 곳이 성경에 나오는 무저갱인 것 같다.
3)아동기(초등학교시절)-병든 병아리
초등학교시절에는 배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설사가 나서 빨리 집으로 달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장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동네 형들과 놀았던 기억이 있다. 깡통차기, 찐돌이, 자치기, 쥐불놀이들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떤 형이 시켜서 조금 음란한 짓을 했던 기억도 있다.
당시의 시골풍경이 나에게 각인이 되었는 듯하다. 앞산과 그 앞에 개울 뒷산, 그리고 앞산 묘지에서 놀이를 하였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인가 친구가 전학을 갔다. 신기하게 그 전날 꿈에 그 아이가 나와서 호미로 땅을 파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영적인 세계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 같다.
초등학교 오륙학 때로 기억이 된다. 윗동네의 한 여학생 선배가 집에 가는 길에 손을 잡기도 하고 매우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녀는 신탄진 강에서 자살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울증을 가진 여학생인 듯하다. 처음으로 죽음을 인식한 것 같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는 처음으로 이성을 느꼈다. 체육시간에 교실에 나와 한 여학생이 남았다. 알 수 없게 가슴이 설&#47132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나는 왜소하였고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담임 선생님께 쪽지를 써서 말씀드렸더니 그 아이를 매우 혼내켜 주어서 학교폭력에서 해방된 적이 있다.
4) 청년전기(중학교시절)-발정난 개
청소년기는 나에게 격동의 시절이었다. 우리 전 세대까지는 중학교를 시험을 보아서 들어갔다. 58년 개띠부터 베이베붐 세대로 많은 아이가 태어나 우리 때부터 무시험으로 중학을 들어갔다. 중학 입시의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변화된 것은 성에 대해서 눈을 뜬 것이다. 형들이 읽는 성인용 소설을 읽으며 잡다한 성적인 행동을 보게 되었다. 중일 때 그 소설을 흉내내는 단 한 번의 죄를 지었다. 그것이 나의 신체에 병을 가져왔다. 이것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1년동안 만성적이 질병이 되어서 나를 괴롭혔다. 일년에 한 두 번씩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그 병은 나를 찾아와서 일이 주를 괴롭히다가 사라졌다. 농이 나오고 따갑고 아팠다. 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자위행위를 알게 되고 그런 것이 청소년기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고 나의 내면을 어둡고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 한번 컨닝을 하다가 들킨 적이 있다. 선생님께 많이 맞았고 나의 좋은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 같아서 고통했던 적이 있다. 그 후에 컨닝을 그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가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중학교 이학년 때는 키가 한 해에 17센티나 커서 작은 키에서 큰 키의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령의 경제 개발 계획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많이 먹자 키가 큰 것 같다. 중학교 삼학년 때는 첫사랑을 느꼈다. 연애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나의 마음 속에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나의 온 내장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한낱 횟집에서 일하는 입이 사나운 여자였다.
5)청년 중기(고등학교시절)- 내가 神인 시대
편의상 고등학교 때를 청년 중기로 구분하였다. 고등학교는 시험을 보고 대전의 충남고에 진학하였다. 형이 충남고에 다니고 있었고 그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대전에서 두 번째로 입학 성적이 높은 학교였다. 시험을 그렇게 잘 보지 못하여서 떨어질까 조바심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였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는 집에서 통학하였다. 신탄진까지 걸어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가고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도마동을 가야했다. 통학하는데 하루 다섯 시간이 걸린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농사일을 돌봐주었다. 초중학교 때는 전교 오 등 안에 들던 나의 성적이 고일 때는 우리 반 63 명 중에 62 등으로 떨어져 곤두박질 하였다. 그때 형이 사다준 단카스터 신부가 쓴 정신력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대로 했을 때 고이 때는 문과 4반에서 전교 4등을 하는 하였다. 그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생각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는 왜 사는가하는 고민을 하였다. 성적도 떨어지고 그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대전에 와서 옥상애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중에 죽을 것인데 왜 저렇게 바삐 사는가 생각을 했다. 그들은 육이오 동란 때 끊어진 한강교를 향하여 죽을지도 모르며 피난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왜 사는가?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질문이었다. 병으로 인하여 앞으로 살 자신이 없어 그때부터 자살을 생각했다. 고일 때 담임 선생님은 나의 생활기록부에 인생에 소극적이고 권태를 느낀다고 써놓으셨다. 그때부터 나의 허리도 굽었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삶의 무&#48092미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달력도 내가 태어난 날을 원년으로 하여 다시 만들었다. 요일도 임, 나, 참, 힘, 집, 너, 때, 라고 하여서 새로 만들었다. 임이라고 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 당시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임이 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자기중심적인 내면이 형성된 것 같다. 나를 신으로 삼은 것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무척 자기중심적인 내면이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지 않아 고통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정신력의 기적이라는 책이 나를 많이 지배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세뇌하면서 대입시에는 충남대 수석을 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충남대 수석은 하지 못했지만 떨어지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여튼 신부가 쓴 그 책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고 나의 한계를 극복하게 도우준 좋은 책이다.
그런 가운데도 정욕은 지속적으로 나를 지배하였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윗동네에 사는 여자 친구를 밤에 바래다 준 적이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만 나오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창인 그 여자애를 그 집에 데려다 주는데 헤어질 때 처음으로 그녀가 나의 입술을 덮쳤다. 이런 것은 나를 더욱 정욕적이 되게 하였다.
6)청년 후기(대학교시절)-영적인 부흥기
대학에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다. 친구 유지윤의 인도로 ubf에 오게 된 것이다. 술친구였는데 탁구치러 가자고 하여 대전 ubf에 왔다. 한안드레 선교사가 사랑으로 나를 돌봐주었다. 대학 일학년 말에 창세기 공부를 한 것이 결정적이 변화의 게기가 되었다. 창세기를 가르쳐준 구기욱 선배님이 고맙다.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라는 사실, 나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되었다. 나는 창조주를 위해서 살도록 지음 받은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목자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여서 목자님은 눈물을 흘리며 나의 발을 닦아준 기억이 있다.
그후에 스텝목자님이신 서베드로 목자님은 나를 위해서 당신의 신사복을 주시며 사랑을 하여주셨다. 그분도 스텝수양회에서 나로 인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성장하였다.
그 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교회에서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사는 것이 행복하였다. 대학교 삼 학년 때는 교회에서 목자로 살면서, 학과공부하는 것으로 부담이 되었다. 집이 넉넉하지 못하여 쪼들리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삶에 한계를 느꼈다. 대학 삼학년 때 요한복음에 나오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에수님을 여름수양회에서 전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동주 선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가르쳐 주어서 오직 의인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에수님을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되뇌이며 이런 한계를 극복하였다. 하나님이 제자양성과 학과공부에 주시는 은혜를 체험했다.
대학 이삼학년 때 창세기 공부는 꿈을 심어주었다. 창세기 15장 5절 말씀을 보며 뭇별처럼 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제자양성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천안 단대가 생겨서 천안 개척의 꿈을 꾸었다.
고린도전서를 양식으로 공부하며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고 범사에 참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고자 함이라는 말씀을 공부하며 평신도 목자의 구체적인 방향을 잡았다. 나는 교회가 사업적이라는 생각에 목회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며 일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을 만난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평신도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4학년 때는 단대 개척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학생들과 단대에 다녀간 적도 있다. 이런 것이 내가 22년 동안 평신도 목자로 천안을 개척하게 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나는 자살도 아직까지 생각하는 병든 삶을 살았다. 그때까지도 죄를 은폐하고 병을 치료받지 못하였다. 그 병은 만성이 되어 나를 해마다 괴롭혔다. 나는 성불구자로 자녀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결혼을 할 수 없다면 나는 결혼하기 전에 자살하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였다.
사실 대학 이학년때 쯤에 자살하고자 신탄진 강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차마 자살은 하지 못하고 하룻밤 신탄진 기차역에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병원도 가보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 못한 것이 계속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죄를 스스로 키워가며 스스로 고통하였다. 그 당시의 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부할 때 오는 졸음과 같은 것이었다. 자지 않고자 하지만 잘 수밖에 없는 삶이다. 잠시의 죄가 주는 만족을 추구하지만 그 깊은 잠 속에는 절망의 신음을 내고 있었다.
대학때 한 번 예배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친구 종화를 더 인정해준다는 생각에서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사람들의 인정을 사모했는가 보여준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존재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다.
7)성인 일기(결혼까지)-죄사함 그리고 반역, 결혼의 은혜
대학교 졸업한 후에 결혼 전까지를 성인 일기로 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위를 근무했다. 대학 이학년 때 신체검사를 했을 때는 현역 입영 대상자였는데 대학 졸업할 때 방위로 바뀐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출생한 인구수가 많이 늘어서 현역 입영 대상자를 축소한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였다. 내가 현역으로 당시에 군대갔다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군생활을 잘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내가 제대로 군생활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감당해주신 것이다.
부모님 주소지가 청원에 있어서 현도에서 청주 모충동으로 출퇴근하며 방위근무를 하였다. 내가 시골에서 첫 자를 타고 청주에 갔지만 나는 늦게 온다고 나이도 세 살 어린 선배에게 구타를 당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나를 깨셨다. 나는 외골수요, 독선적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자아중심적이라는 말이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나의 방위근무지를 대전으로 옮길 수 있었고 계속 대전 ubf에서 목자 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것도 나에게는 큰 은혜였다.
방위근무를 할 때 김정희 라는 한 선배 자매가 나의 어둔 내면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여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용기 목사의 ‘이것이 믿음이다’라는 책을 선물하였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을 통하여 나를 위해서 저주받은 예수님, 나의 죄값을 다 갚으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중일 때 지은 죄를 서베드로선교사와 소감발표를 통해 고백하며 많이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은 은혜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충만히 내려주셨다. 병도 치료하여주었다. 그때가 아무 비밀이 없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였다. 나는 그 자매가 일생의 은인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그 감사를 하나님께 온전히 돌리기보다 그 자매에게 표현하였고 그 자매는 나를 위해서 평생을 기도해주며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이 정욕문제로 비화되었다.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었다. 유다서 말씀처럼 경건하지 아니하여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 자였다.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을 박았다.
하나님은 이런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죄를 짓지 않게 막아주셨다. 나를 쓸모없다고 버리지 않으시고 군 전역한 후에 나를 다시 서울 종로와 경희대 ubf역사에 인턴 목자로 섬기도록 인도하셨다. 죄악된 자를 다시 사용하시는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곳에서 주님께 헌신하는 사모님들을 보게 되었다.
빌립보서 2장 8절 말씀으로 경외심과 순종을 배우게 되었다. 그 후에 다시 대전으로 와서 인턴 목자를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자매 문제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주님은 그 때 남는 열매를 주지 않으셨다. 내가 성령을 근심케 한 것이다.
대전에서 인턴목자를 할 때 한 자매의 사랑 고백을 듣고 혼자서 마음으로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연애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중매로 지금의 아내 유경순을 인도하여주셨다. 나는 아내에게 결혼 전에 내가 아기를 낳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나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아내는 하겠다고 하였다. 아내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나와 같은 사람을 감당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8)성인이기(결혼 후 평신도 목자로)-자기 사랑 그리고 혈기
결혼 후에 얼마간 대전의 인턴 목자로 살았다. 당시도 나는 목자인 홍보나 목자님을 많이 힘들게 했던 했던 것 같다. 그분은 적극적으로 나를 훈련시켰다. 하나님은 천안에 평신도 목자로 나를 인도하여주셨다. 그러나 직장이 없고 만성 설사를 하고 사역에도 열매가 없었다. 김용관 형제가 아브람으로 성장했으나 내가 잘 감당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이때 아내가 먼저 천안시보건소에 공무원으로 합격하게 하심으로 자립하게 하셨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소고기를 사가지고 가서 취업시켜주었다고 하니 이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그때 나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처음으로 종로 인턴할 때 배운 빌립보서 2장 8절을 잡고 주님과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순종은 나를 깨뜨리는 좋은 수단이다. 순종을 배우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나에게 열매가 있었다. 몸이 건강해졌다. 교회에서 믿음의 조상이 세워졌다. 직장도 얻었다.
그때도 한 학생 자매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나는 뛰쳐 나왔지만 내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훈련하셨다. 학생이 떠나고 한 목자는 귀신이 들었다. 그때 로마서 11장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영접하였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릇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 후 하나님은 직장을 축복하여 주셨고 하나님은 천안과 청주에서 언어 논술 선생으로 나를 높여주었다. 한번은 네 명의 학생을 돌보았는데 세명이 서울의대에 한명이 서울대 전기과에 들어가고 본고사반이 다 합격하는 은혜를 입었다. 많은 물질도 주셨다. 내가 버는 물질로도 풍성하고 자녀와 교회를 돌볼 수 있었으므로 아내는 직장을 그만 두고 아내는 자녀와 교회 일을 섬겼다.
그때 교회도 사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두 자녀도 공부를 시킬 수 있었다. 일층으로 산 교회를 이층으로 증축하였다. 그러나 그때 아내와의 갈등이 있었다. 성격의 차이도 있었다. 우리 부부의 성격 체질이 여러모로 다른 면이 있었다. 아내가 세 살 연상이라는 것도 있어서 내 말을 좀 무시하는 것도 있었고 내가 권위적인 면도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에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좀더 이해심이 없고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데서 생긴 것이다. 나는 자매팀과 말씀공부를 인도하다가 내가 말씀을 잘못 가르친다고 하는 아내의 말에 혈기를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모세처럼 믿지 못하여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하시고 그분이 중학교 때부터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한 것을 알게 되고 다니엘서 6장 10절 말씀을 잡고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하고자 결단하였다. 그때가 40세이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여름수양회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던 중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면서 갈등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아내를 고통스럽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한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그를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하였다.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성격은 보완이 될 수 있었다.
나의 그때까지 꿈은 좋은 제자양성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은혜로 제자들이 성장하고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다. 그러나 나를 도와 전임으로 역사를 동역하던 한 자매목자가 정신분열증이 걸렸다. 나는 정신 병원에 그녀가 팔다리가 묶여 있는 모습을 보고 오면서 모든 것을 회의하며 다시 생학하였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군가? 내가 목자로 사는 것은 잘하는 것인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것은 내 인생에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그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스텝수양회에서 발표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주시고자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성경 66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성경의 주제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하여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자 결심하였다. 주일 메시지를 전하면서 누가복음 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창세기 출애굽기 여호수아서 강해서를 썼다.
9)성인삼기 (전임사역자에서 성경 66권강해를 쓰기까지)
나이가 오십이 되면서 이제 다시 결단의 시기가 왔다. 결단의 시기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직장을 그만두라고 강권하였다. 오스트리아 한제임스 선교사 가정이 나에게 삼년간 매달 백만원의 물질을 지원하여 주었다. 학생회의 성장이 미흡하고 직장의 상황 변화로 파트타임으로 직장을 바뀌었다. 그 때부터 척스미스 목사의 강해설교로 유명한 갈보리 신학을 하였다. 다음 해에는 하나님이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도록 강권하였다. 직장을 그만주고 전임목회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그런데 그때도 나는 자신의 야망의 깊은 계획을 숨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가증한 자였다.
성장총회(ubf)에서도 신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신도 목회자에서 전임사역자가 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데리고 있는 인턴목자(간사)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나는 다시 과민성 대장병이 재발하고 건강도 안 좋았다. 겨울 산에 갔다가 넘어져서 뇌진탕도 당했다. 내가 기도하고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예비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면 예수님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이 없었다. 예수님을 주셔서 내가 이루고자하는 것은 다시 제자양성을 많이 하여 성공한 자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양성 역사가 실패하자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를 주셔서 나에게 주시고자 한 것이 바로 역사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영생)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다.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이루어진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달은 2010년부터는 매일 새벽기도회에서 오년 동안 강해 설교를 했다. 2014년에 성경 66권 강해를 마쳤다.
성경 66권 강해를 마치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하였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이 강력히 임해야 함을 깨달았다. 성령이 임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배워야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성령이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요 그리스도로 믿고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친히 일하신다. 믿음과 순종과 감사와 사랑과 회개의 제사를 드려야 함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 성령님이 임재하여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때 성육신의 복음, 은혜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때 딸 은혜가 교사가 되게 하였다.
10) 성인 사기(성경 66권 강해를 마치고 2019년까지)
성경강해를 끝내고 62세까지가 성인 사기이고 그 후가 노인의 삶이다. 성경 강해를 오년에 걸쳐서 썼는데 다시 오년은 하나님이 삶으로 내가 쓴 성경 강해를 배우게 하셨다. 나는 성경 강해를 마치면 세계만민이 성경을 배우고자 천안에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2015년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의 죄를 철저히 다루셨다. 사실 성경 강해를 썼지만 나에게는 인간적인 것이 많이 있었다. 나는 내가 쓴 성경 강해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결혼문제로 아내와 다시 한번 크게 다투었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결혼 전에 마음으로 사랑했던 그 자매가 한 교사의 아내가 되어 우리 교회에 나타난 것이다. 그 자매는 성경 공부에 열심이었고 캠퍼스 제자양성에도 열심이었다. 두 아들도 휴학을 시키면서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달라고 맡겼다. 그 자매는 나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끼면서도 역사를 섬겨야한다는 명목 아래 그녀가 연애감정을 끊도록 분명하게 대하지 못했다. 항상 입으로는 노우라고 말하고 그 자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나는 마음에 죄에 대한 분노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음으로 연애감정을 갖는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그 죄의 뿌리는 역사를 일으켜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 영광에서 나온 것이다. 나의 모든 죄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를 자랑하는 악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러면서 아내와의 갈등도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에게 경건함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하나님의 종인 내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든든한 요회목자들이 천안을 떠나 이사가게 하셨다. 천안의 아브라함으로 있던 목자는 나를 비방하며 다녔다. 한 결혼한 자매는 나에게 큰 소리로 이단이라며 나를 죽여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마치 다윗이 범죄하고 시므이가 저주하고 압살롬이 반역하고 아들들이 살인하고 간음하는 모습과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나의 죄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나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무서워하는 것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전에 죄가 무섭고 하나님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 한번 뼈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죄에 대해서 타협지 않고 단호하게 분노하는 것을 가르치셨다.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빚어주셨다. 이를 통하여 거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평생을 거룩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거룩의 복음을 알게 하셨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을 배우게 하셨다.
이때 참사랑교회의 정길조 목사를 만나게 하시고 경건한 삶이라는 책을 보고 신학적으로도 거룩의 복음을 분명히 하게 하셨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거룩임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사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우리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고 계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거룩을 은혜로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나를 천안 ubf의 목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내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쓴 성경 강해가 쓸모 없다고 버리지 않으신 것이다. 나에게 오히려 다윗의 경험을 하게 하셔서 더욱 성경을 풍성히 이해하게 하신 것이다.
2017년에는 나의 회개를 받으신 표시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드레스덴과 체코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게 도우셨다. 드레스덴의 새싹처럼 피어나는 역사에 로마서 말씀으로 거듭나는 역사를 이루어주셨다. 그리고 천안에 몇 가정을 새롭게 이루어주시고 자녀들을 허락하여 주셨다.
2018년 일월 하나님은 회갑을 맞게 하여 회갑 기념으로 로마서 강해집을 내게 하셨다. 다음으로 거룩을 실천하는 성령과 사랑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은 천안아산제자교회의 심영춘 목사님을 통하여 가정교회를 알게 하시고 최영기 목사님을 만나게 도우셨다. 나는 성경 강해를 쓰고 성경을 가르치지만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아들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로 인하여 회개하고 있었다. 내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나에게 가정 교회를 통하여 성령님이 누구이고 사랑이 무엇이고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사랑의 가정, 사랑의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소원을 주셨다.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하여 성령을 가르쳐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하시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2019년 봄에는 크리스천투데이에 욥기 강해를 마치게 하고 시편 강해를 나가게 되었다. 욥기 강해를 내면서 겸손과 은혜와 고난의 신비를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알게 하셨다. 욥기 강해서를 내게 하셨다. 녹내장이 진행되고 의대 한 명으로 기도하던 제자가 떠나면서 더욱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셨다. 딸이 강이삭 목자와 결혼하고 손자 강하람이를 낳고 아들이 소방공무원으로 합격하게 도우셨다.
용준이가 교통사고를 나서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이때 김동호목사의 날마다 기막힌 새벽 메시지를 듣게 하셨다. 이를 통하여 주는 생활, 복을 나누어주는 생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인으로 모시는 생활을 배우게 하셨다.
11) 노년 일기(2020(62세)년부터 70세 까지)
2020년 이월에 코로나 19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때 두 가지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오월부터 유튜브 강해를 시작하게 하셨다. 요한계시록에서 창세기 강해 로마서 강해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리고 7월부터는 3시간 기도를 결단하고 하지 못하는 것을 실행하게 도우셨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오전 9시까지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기도의 말씀을 암송하고 찬양하는 기도 회개하는 기도를 배웠다. 하나님이 여러 사인을 통하여 기도를 기뻐하시는 것을 배웠다.
3월에는 큰형(오한영) 담도암을 앓다가 소천하였다. 고통하지 않고 가도록 기도하였는데 은혜로 가셨다. 이전에 장인도 고통없이 가도록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때도 기도를 들어주셨다. 형의 장례를 치르면서 형제들과 함께 나의 무덤을 만들고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죽기전까지 세시간 기도를 하다가 기도시간이나 말씀을 전하는 중에 하나님 나라에 가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듯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소리를 들었던 그런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천안의 후계자를 세우기를 기도한다. 이 시기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목자 가정에게 천안 ubf를 물려주고 나는 또 다른 삶으로 여행을 떠나야한다.
12) 노년 이기
이제 70세가 되어 완전히 은퇴하고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의 삶이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죽는날까지 새벽기도하고 일대일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나를 부르는 곳에서 나의 복음과 나에게 주신 말씀을 전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기쁘게 예! 대답하고 반갑게 천국으로 가기를 소망한다.
한마디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내신 자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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