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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넉넉히 이기느니라메시지(최마태)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1-07-19 14:44:01
조회수 : 327

2021 천안 여름 수양회 제 0 강


넉넉히 이기느니라 

본문: 로마서 8장 1절 - 39절

요절: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제 1 장 성령을 따라 사는 삶 (1절 - 17절)

제 2 장 천국 소망을 붙잡는 삶 (18절-30절)

제 3 장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31절 - 39절)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일랜드 더블린 센터에 있는 최마태 선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이 천국 잔치에 저를 초 청해 주시고 메신저로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령님을 배우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자들로 써 어떻게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후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중간 과정에서 고린도에 머물며 쓴 편지입니다. 그는 로마 에 방문하여 로마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언제 순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사랑 하는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의 핵심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자 하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8 장은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는 1장부터 8장까지의 내용에 대한 결론이자 핵심이 되는 장입니다. 이 메세지 는 총 3개 파트로 구성되며 각각의 파트에서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써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하 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 1 장 성령을 따라 사는 삶 (1절 - 17절)

- 한계

바울은 한계를 발견하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접하기 이 전에 오직 그의 의지로 율법을 지키고자 하 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규하 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와 사망의 법이 너무나도 강 력해서 자신의 의지와 마음 먹은 것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지 못하습니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말하셨

지만 탐심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탐내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율법은 수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힘 만으로는 이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만으로는 육신이 원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어 넘어지는 자신을 보며 한탄하고 정죄하 는 삶이 되풀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렇게 죄와 사망의 법에 갖힌 채 살아야만 할까요? 우리가 죄와 사망으 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일까요? 있습니다. 

- 더 강력한 법의 등장

2절은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음이라.’ 너를 해방하음이라! 우리가 이미 이 강력한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법 이라는 표현을 연속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법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법 아래에서 사회가 통제되어지고 처벌도 이 루어집니다. 강제성이 있습니다. 구속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힘이 우리를 자 유롭지 못하게 통제하습니다. 그 힘이 나의 의지보다도 강력해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죄와 사망의 힘에 굴복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셨습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 이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더 강력한 법이 등장했습니다. 마치 예를 들자면, 고등법원에 서 받은 유죄판결이 더 강력한 힘이 있는 대법원에 가서 반전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힘은 죄와 사망의 힘보 다도 더 강력하여 우리를 자유하게하는 반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누구시기에 우리를 죄와 사망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 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라고 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맞써 싸워 이기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접할 때 이 성령의 힘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녹다운 시킬 힘을 얻 었습니다. 이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 성령을 따르는 삶의 결과

그렇다면 성령의 따르는 삶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육신의 삶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원 수가 되는 길입니다. 곧,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결과로 사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고로 성령을 따라 행동합니다. 이는 생명과 평안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을 따르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것과 같이 이를 믿는 우리에게 죽을 몸도 살리시고 우리의  또한 살리십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써 모든 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이 광을 받기까지 우리에게 고난이 따른다고 말하십니다. 성령으로 힘입어 육신이 원하는 

것을 죽이는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성령이 주 시는 생각을 할 때 내 땅을 산 것처럼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습니까?

-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방법

5절 말을 보십시오. (본문) 육신은 끊임 없이 속삭입니다. ‘말보는 것은 잠시 미루고 유튜브 좀 보며 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매주 드리는 예배 이번주만 쉬자.’, ‘그동안 헌금을 너무 많이 냈어, 십일조를 좀 줄이고 미래를 위해 아껴놔야겠어.’ 참 다양하고 합당해 보이는 이유로 유혹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욕심들을 내 의지만으로는 결 코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육신의 생각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성령꼐서 일하시도록 해야합니다. 무엇이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를 수 있게합니까? 에베소서 6장 17절은 말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을 가지라!’ 우리가 말을 가질 때 성령의 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검으로 육신을 이겨낼 수 있습 니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말을 읽고자 하고, 묵상을 하고, 필사도 하고 암송하고자 투쟁할 때 우리 안에 성령 의 소원을 행하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성령의 힘이 육신이 원하는 것보다도 더 강하게 일하여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주시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제 2 장 천국 소망을 붙잡는 삶 (18절 - 30절) 

18절을 보십시오. “생각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장차 받을 광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고난 만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거부감이 생깁니다. 피곤이 려옵니다.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받을 광을 생각해야합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지 만 받을 광을 생각해야합니다. 저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마라톤 대회에 종종 참가하습니다. 마라톤을 뛸 때에는 신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느낍니다. 결승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 습니다. 어느 한 지점부터는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포기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승점을 내딛는 그 순 간 얻게 되는 성취감을 떠올리며 발을 옮깁니다. 완주했을 때 얻는 광을 생각할 때 당장 받는 피로감도 이겨내고 포기에 대한 유혹도 능히 떨쳐버리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난을 감당할 때에 고난 만을 생각한다면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최종 결승점에서 받을 우리의 광을 생각하면 지금 고난은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불가합 니다. 우리가 받을 광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렇다면 그 광이 무엇입니까? 하늘 나라의 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는 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자요, 공주요, 주인으로 사는 \\\원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완주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천국을 목격하고 온 요한은 마지막에 이렇게 외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 모///두에게 주실 놀라운 이 광,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이 광을 기억하십시오. 소망하십시오. 광을 기억하며 참고 견뎌냅시다. 이 자리에 참석 한 모두가 마지막 날 함께 만나 이 광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이 고난들을 참음으로 견뎌내는데 있어 우리에게 조력자가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 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피조물들이 우리를 응원합니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육신이라는 한계로부터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때에 모든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피조물 뿐 만 아니라 성령과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 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 령을 따라 사는 자들을 위하여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위하여 탄식함으로 기도하십니다. 때로 ‘무 엇을 위해 기도하지?’, ‘어떻게 기도하지?’ 하며 막막해 하는 우리를 아시고 기도해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하십니 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에 기초하여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에 기초하여 기도 하시기에 성령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마치 능력있는 변호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유 일무이 넘버 원 변호사입니다. 법에 대해 능통하여 법에 따라 재판하는 판사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 냅니다. 성령님 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의 말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 최고의 조력자 성령님이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우십니다. 29 절과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현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 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을 본받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때로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훈련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삶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접하고 목자의 삶을 사는 것도 하나 님의 주권과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화롭게 하십니 다. 내가 나를 광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 다.    


때로 고난을 받는 과정에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며 기대하는 결과를 기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결과를 주실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 니다.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선

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하나라도 쓸모 없이 두지 않으십니다. 나에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 들도 쓰시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도 쓰십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 는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잡혀갔습니다. 당시 많은 성도들에게는 절망적 인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호위병에 의해서 철저히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로마 호위병들은 바 울의 양이 되어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들으러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핍박으로부 터 바울을 지키시고 로마 전지역 복음화에 대한 성령의 불을 지피셨습니다. 스테반 집사의 순교가 당시에는 핍박 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음 역사를 위축시킬 것처럼 보지만 이 순교로 하여금 세계선교가 힘있게 일어났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게 된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슬픈 일로만 보이지만 결국엔 그를 대국의 총리로 세우사 기 근으로부터 가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 루십니다. 결과적으로 큰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 안에서 실패가 없습니다. 모든 것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제 3 장 넉넉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31절에서 34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셨습니다. 이 소중한 외아들, 왜 보내셨습니까?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킬만큼 나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아들도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어떤 것도 하십니다. 한 예를 들자면, 경제 원리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진행한 프로젝트는 함부로 철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과 추가의 예산을 들여 성공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큰 프로잭트의 실패는 기업의 존망에 직접적인 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막대한 값을 들 여 인류 구원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이 값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 희생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하십니다. 예수님 또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편, 하나님도 우리편, 성령님도 우리편입니다. 또한 우리의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의 편이 되 어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나를 도우시기에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사랑이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 안에는 넉넉한 승리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환 난, 곤고, 박해, 기근, 발가벗김 또는 어떠한 위험도 우리에게는 실패가 아닙니다. 넉넉한 승리로 가는 과정일 뿐입 니다. 사단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이간질을 해서 떼어 놓으려합니다. 욥은 한 순간에 건강을 잃고 가족도 잃고 재산도 잃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사랑하시고 신뢰하심으로 사단의 이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단은 이간질을 하려고 했지만 그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욥의 삶은 큰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 서 큰 승리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예 수 그리스도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넉넉히 이기는 큰 승리가 있습니다.


- 적용

하나님께서는 4년 전 저와 에스더 선교사를 아일랜드에 보내주셨습니다. 유일하게 받을 수 있었던 비자는 어학비 자로 2년이 최대고 비자를 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반드시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었습니다. 수 많은 회사에 지원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2020년 6월이 만기라서 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코로나19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 팬더믹이 선언이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또한 3월 이후 전 도시지역에 록다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늘 길이 막힌 상황에서 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코로나 19를 사용하셨고 극적으로 아일랜드의 법을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제 비자는 12월까지 자동 연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동안 9월에 입학하는 대학원 회계과정에 지원하는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하는 과정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하신 섭리가 있었습니다. 어 실력이 요구하는 점수에 부 합하지 못해 시험을 다시 봐야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응시하는 시험은 결과도 늦고 응시자도 많아 원하는 성적이 나와도 제때 성적표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절망적인 상황을 역전시키셨습니 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대면적 시험이 잠정 취소가 되면서 온라인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제 방 안에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횟수만큼 시험을 응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결과도 금방 나오기 때문에 원하는 점수가 나 올 때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도 덜도 말고 커트라인에 딱 맞는 점수를 제게 주셔서 지원할 수 있 게 하셨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모두에게 고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쓰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셨습 니다.

이렇게 들어간 대학원 과정은 제게 더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과 같이 보습니다. 첫 수업에서 저는 이 곳에 잘못 왔다고 느꼈습니다. 첫 수업 30분 동안 홀로 한달동안 예습한 내용을 다 커버해버렸습니다. 아이리쉬들도 듣기 힘 들정도로 속도가 너무 빠르고 양이 방대했습니다. 모르는 표현들, 전문 용어들이 날아와 원투 펀치를 계속 날렸습 니다. 학생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교수와 티키타카를 하듯 질문을 주고 받고 있었고 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수업시간 내내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잘못왔다. 그만두어야겠다. 전액 환불은 받을 수 있을까? 비행기를 예약해야겠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한국행 최저 가격을 검색하고 있었 습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제게 동역자인 에스더 선교사가 말을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 예수께서 이 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느냐 하시니.’ 저는 말을 붙잡고 실패하더라 도 일단 해보자 하고 도전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힘들어하는 제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대학교 의 수업 진행 방법을 전부 바꾸셨습니다. 다른 과들은 대면수업을 병행하여 진행하기도 했지만 회계학과는 온라인 수업으로만 진행했습니다. 학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만들 었고 매 시간 퀄리티 높은 상을 올려 학생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돌려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놓 친 부분이 있으면 녹화 상을 돌려보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물질문제는 큰 문제중 하나습니다. 저와 동역자는 제 대로된 직장 없이 청소부일, 맥도널드, 커피숖, 수입품 창고 관리일 등을 하며 매달 월세를 내기에도 버거웠습니 다. 게다가 저는 한 해에 2000만원이 넘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런 수업료를 저만 감당해야했던 것이 아니라 대학교 4년 과정을 다시 하고있는 동역자 또한 감당해야했습니다. 이 막대한 물질 문제 앞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 앞에서 천안과 춘천센터와 몇몇의 선교사님들에게 기도요청을 했습 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세계본부, 본국, 익명의 목자님들, 전세계에 계신 선교사님들 등 많은 분들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해 주시고 노트북, 마스크, 생활 용품, 건강 식품 등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받게 해 주셨습니다. 미쳐 결제하지 못한 등록금과 생활비, 월세 등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방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의 뒤에서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리 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 하며 동역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적인 현 주소를 돌아보게 하시고 전 코스를 승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빡빡한 일정에 치여 적인 생활을 갖는 것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매일 밤을 새며 과제를 해야했고 복습은 커녕 수업 따라가는 것 도 벅차 많은 시간을 학업에 쏟았습니다. 삶의 패턴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보는 시간은 형식적으 로 변질되었고 공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줄습니다. 매일 새벽을 깨우던 오랜 습관이 한순간에 바뀌어버렸습 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나의 적인 상태에 큰 향을 미쳤습니다. 근본적인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지 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 식이 들려올 때면 나 자신에 대한 신세 한탄에 빠지기도 하습니다. 저는 자주 시험 공부를 하다가 방구석 좁은 틈에 쪼그려 앉아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반복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천국 소망을 품게 하시고 일으켜 주셨 습니다. 제가 적으로 휘청거릴 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었던 것은 내게 주신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의 종들을 쓰셔서 제게 말을 떠먹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에 순종하여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저의 상황 또한 아브라함과 비슷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제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수많은 시험지와 무엇을 물어보는 지 도통 알수가 없는 서술형 문제에 압도가 되었고 결국 40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습니다. 첫 기말고사에 서는 두 과목이나 떨어져 재시험을 봐야했습니다. 보이는 결과는 절망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붙 잡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그 상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하시는 것이 들렸습니 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광을 보지 아니하겠느냐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또한 저는 찬양을 불습니다. ‘할 수 있다 하신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나를 바라보시고 능력준다 하시네.’ 에스더 선교사가 이 찬양을 알려줘서 절망이 다가올 때마다 불습니다. 저는 5월 2주 동안 진행된 마지막 시험들과 재시험을 마치고 전 과목 패스라는 놀라운 성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많은 과목들이 턱걸이로 합격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점수를 끌어 올려주셨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체 인원 40명 중에서 11명이 떨어졌고 하나님께서는 29명 중에서 유일한 비 어권 비 전공자로써 모든 과목을 패스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홍해를 가르는 역사를 체험하습니 다. 나의 인생 가운데 적인 승리 뿐 아니라 실제적인 승리 또한 이루신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결론

육체는 우리에게 끊임 없이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굴복시키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접한 자에게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붙잡아야합니다. 그 선물이 성령이십니다. 이 성령의 소원을 따라 살아야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말과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성령의 생각을 하고 성령의 소원을 따라 행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을 따라 고난을 받으며 우리의 눈은 장차 받을 천국의 광에 고정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넉넉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 사랑의 큰 승리로 인도하십니다. 이 곳에 참석하신 모든 이들이 천국 소망을 굳게 붙들고 성령을 따라 사는 가운데 넉넉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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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감사제/부활절] 발달심리학에서 본 나의 삶 john444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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