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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여름수양회 3강] 겸손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20-08-12 00:00:00
조회수 : 413
제목: 겸손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장 19-34절
요절: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서론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맛있는 음식도 사고, 예쁜 옷도 구매하고, 으리으리한 집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를 많이 축적하면 대부분,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존 뿐만 아니라 명예와 윤택한 삶을 위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 다수의 청년들은 재물이 풍족한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흔히 ‘헬조선’ 이라고 불리는 한국은 다른 OECD 국가 들과 비교했을 때, 높은 청년실업률을 보입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동결된 국내 경제상황은 청년들의 취업에 부정적입니다. 따라서 다수의 청년들은 취직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두려움 앞에서 우리 청년들의 자세에 대해 3가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론
1. 보물에 대한 가치판단
19절과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은 무엇입니까? 보물은 귀한 가치가 있고 보배로운 물건이라 정의됩니다. 과거부터 보물은 보석이나 황금, 혹은 귀한 재물들이 보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에는 보석과 황금뿐만 아니라 돈이 곧 보물이 되었습니다. 돈이 많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한 교수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는 것도 자신의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자녀나 애인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돈과 명예로운 직업, 가족이나 애인은 중요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요소들 이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보물을 땅 위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은 세상의돈이나 명예, 인간관계 등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 쌓아 두지 말하야 하는 이유는 좀과 동록, 즉, 녹이 쓸며 더불어 도둑질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모으고 명예로운 직장을 얻는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썩어서 사라질 것들입니다. 자신들의 자녀는 나의 뜻대로 크지 않으며, 애인 또한 나와 수시로 부딪칩니다. 즉, 이들의 공통점은 불확실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보물을 둔다면 안전하고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좀과 동록, 도둑질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보물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보물이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하늘 보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금이나, 명예, 행복 등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보물들은 하늘에서 지극히 평범한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나라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으며, 그것들이 가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창세기 15장 1절 후반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큰 상급이 되십니다. 주님 자체가 우리의 하늘 보물인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떠한 곤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도 큰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보물을 쌓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성을 형성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는 십일조나 감사헌금, 혹은 곤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재물을 쓰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을 나를 위해서만 쓰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드릴 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차적으로는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좋은 직업과 명예, 능력, 시간 등을 주님을 위해 먼저 드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무엇을 드리는 것 보다, 먼저 내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진정으로 자신의 직업과 능력, 시간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 또한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21절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는 우리의 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면, 하늘에 보물 쌓는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남들을 돕고, 전도하며, 선한 일에 힘쓸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보물을 쫓는다면 결국 세상의 가치가 나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22절과 23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22절과 23절을 ~목자님께서 읽어 주시겠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눈이 몸의 등불이라 말씀하십니다. 눈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주며, 보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현대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이용해 광고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시각의 영향을 필수적으로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눈의 영향력을 예수님께서도 아시고, 눈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눈은 육체적인 눈만 일컫는 것이 아닌 마음의 눈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옛부터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우리의 눈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눈이 땅의 보물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명예, 돈, 인간관계 등에만 집착할 것입니다. 이는 영화 반지에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과 비슷합니다. 골룸은 절대반지를 위해 인간성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그 시선을 고정한다면, 우리는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동해 주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결국 우리는 마음에 어떤 가치를 두고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가치관이 결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을 ~께서 읽어 주시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말씀하십니다. 이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지 못하며, 어느 한 곳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땅의 보물은 곧 사라지며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험, 취업, 돈, 결혼, 양육 등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면, 그 보물은 영원하며 안전합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청년들이 고민해야할 부분은 보물대한 가치 판단입니다. 하늘 보물과 땅의 보물 중 어떤 보물에 그 가치를 두는지, 그리고 자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가치를 두고 그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2. 염려극복: 하나님을 의지하기
25절을 ~께서 읽어 주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절부터 주님께서는 염려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실로 우리 목숨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컨대,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은 모든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의식주를 가지고 고민합니다.
주님께서는 이것들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26절부터 31절까지를 보면 공중의 새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나, 그 새들은 먹을 것을 심지도 않고 거두지 않고 창고에 저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우리 위를 날아 다닙니다. 게다가 들의 백합화는 수고하지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때가 되면 아름답게 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 아버지께서 길으시고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연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나약합니다. 우리는 해일과 지진, 태풍에서 조차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연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그 어떤 대통령이나 회장보다 높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된다면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재용 부회장의 자녀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으로 심각한 고민했을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이와 같습니다.
게다가 30절과 같이 내일 당장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까지도 하나님이 입히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존재일 지라도 주님께서 친히 돌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또한 27절과 같이 우리는 아무리 염려한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31절과 32절을 ~께서 읽어 주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을 참고한다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세상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 염려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저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을 다스리시고 어떠한 회장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은 마치 아비지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헤아려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굶고 헐벗는데 가만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은 마음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기를 그치는 것입니다.

3. 겸손의 자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33절을 다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에서는 염려대신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일러줍니다.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좁은 의미로 복음전파를,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 나라 완성, 하나님의 영광을 뜻합니다. 또한 그의 의는 주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를 구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망과 저주, 수고, 고통 등 부정적인 것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소망을 꿈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회복한다면 우리는 저주와 고통, 사망 등에서 자연스럽게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억지로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실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결국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당장, 시험과 취업, 승진 보다 주님의 일을 먼저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억지로 주님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드려야 합니다. 먼저 주님께 나의 마음을 드릴 때, 주님께서는 그제야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쓰실 만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마음을 먼저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내 생각을 고집한다는 뜻이고 이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먼저 드러낸다면 비록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주님께 합당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겸손의 자세입니다. 모든 죄악은 교만으로부터 비롯되듯이,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라 정의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만약에 자신의 뜻과 고집을 내세운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보단 자신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분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힘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하기에 항상 내일, 모래, 미래에 대한 염려를 그칠 수가 없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 말씀에서는 우리가 앞으로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아직 미래에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염려한 다는 것은 큰 불행일 것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대게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현재에 집중하여 주님의 일해 힘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저는 어떠합니까? 제가 이번 말씀을 접했을 때, 유독 현실에 집중했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10대 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겸손하게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군 전역이후 저는 현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약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지만, 취업에 있어서 준비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학 후, 열심히 공부했지만, 제 전공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제 전공은 중동학입니다. 중동학에서는 아랍어가 커리큘럼의 50%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랍어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저의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시는 몇몇 목자님들은 아랍어를 해보라고 하시거나 중동선교사로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진짜 숨이 막혔습니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하게 2020년 중동 수양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학 때, 진로 고민으로 학업에 집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중동 수양회는 제게 사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간곡한 부모님의 권유로 반 강제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제 예상대로 젊은 층의 일손이 부족했기에 저는 매번 바뼜고 심지어 메세지에서도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육적으로는 바쁘고, 영적으로 은혜를 받지 못했기에, 그리고 이 시간이 진로를 준비할 시간 대신 사용되기에,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주님께서 제가 겸손히 주님께 나오길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님의 삶을 통해 그분들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 고귀한 사명에 대해 감동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매 선교지에서 주시는 성경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게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만큼 미래에 대한 염려와 죄로 인한 자책으로 가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낮추시고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3학년 1학기를 영적인 투쟁을 하며 보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제가 포기하고 있던 과목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평가 기준이 절대평가로 바뀌어 4.5의 점수를 받게 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노력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점수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주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사인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제 모습을 돌아볼 때, 하나님 나라를 구하기 보다는, 제 힘을 더 의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때문에 염려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염려의 근본을 찾아가자면,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발생한 불안감이 원인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저 역시도, 전공, 시험, 진로, 물질,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제 생각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힘으로 할 때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의지하고 제 마음을 드렸을 때, 그 결과는 기묘했습니다. 왜냐하면 딱! 필요할 만큼만 주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단국대 합격했을 때도 그랬고, 한국사 1급을 취득했을 때도 그랬으며, 운전면허 실기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성적’이라고 불리는 4.5의 성적도 유사합니다. 그것은 제가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학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때마다 교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셔서 저를 낮추셨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정신을 차리고 ‘아! 하나님께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회개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때마다 낮추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늘 보물에 대한 가치판단이 우선되야 하며, 둘째, 염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몇몇 신도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보다는 복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현명하셔서 우리가 그 복을 잘 감당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복을 나눌 때,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나라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주님께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세상은 다양한 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세상보다 높으시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4.5의 학점도 받을 수 있고, 혹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일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드리는 자들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한마디: 겸손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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