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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2022년 추수감사제 메시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와라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2-11-17 16:07:06
조회수 : 415

2022년 추수감사제 메시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와라

누가복음 17장 강해 삼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와라

말씀 누가복음 1711-누가복음 1719

요절 누가복음 17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사해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합니다. 감사할 때 유익이 많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건강이 좋고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니까 반복하여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열에 아홉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 아홉은 원망 불평하는 마으이 있고 하나만이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은 아홉을 찾아 회개하고 열로서 온전히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관계 회복을 위한 긍휼을 구하는 기도)

 

11-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촌으로 지나가시고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의 갈등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 나병환자가 유대인 나병환자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 끼리는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차별이 없었습니다.

나병은 무서운 병입니다. 물론 연골조직이 떨어져 나가고 피부가 떨어져 가가니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나병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와 자녀와 가족과 이웃과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단절되어 고독합니다. 더구나 나병은 구약 성경에서 부정한 병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부정한 나병환자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관계성이 단절되고 하나님과 관계성이 단절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것은 나에게만 살아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관계성이 끊어져서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 죽은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성이 단절되어 영적으로, 인간적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전에 에수님이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염병 환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들은 합심하여 소리를 높여 기도하였습니다.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소리 높여 기도하였습니다. 나병은 성대결절로 성대가 나간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대가 나갔어도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병이 낫는 데는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르짖어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료해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박하게 기도하였습니다. 10명이 합심하여 병을 치료하여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육간에 죽은 비참한 자신을 발견할 때 정말 자신들이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들은 불쌍한 자신을 발견하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불쌍한 것을 발견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하는 이 기도는 참으로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기도하며 딸을 고쳐달라고 나갔습니다. 두 명의 소경도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기도하였습니다. 세리도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병을 치료하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성이 회복되게 도우십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한 인간 관계 회복)

 

14절을 보십시오.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은 불쌍한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와 질병으로 고통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전에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제사장에게 그들의 모임을 보이고 건강진단서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셨습니다. 고치시지도 않고 먼저 건강진다서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믿음과 순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병자들에게 병이 나았다는 건강 진단서를 끊으러 가라니 이는 참으로 어려운 명령이십니다. 병자들이 제사장에게 가서 건강진단서를 끊어 달라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먼저 나은 것을 믿고 행동할 때 후에 낫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건강 진단서를 받으라는 말씀에 나은 것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병나은 것을 믿고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10명 중에 한 사람도 불신에 빠지지 않고 다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는 도중에도 얼마 동안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병이 나아가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지속적으로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현재 상황이 어떠하든지 믿고 계속하여 나갔습니다. 위대한 순종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에게 나가는 도중에 그들의 나병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부모에게 갈 수 있고 성전에도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이미 고쳐주신 것을 믿고 행동하면 후에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능력을 베푸십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님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하나님은 무화과나무를 바짝 마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라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기도하고 그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전에도 간증했지만 나에게 큰 은혜가 된 말씀입니다. 저는 아들이 늦은 나이에 취업이 되지 않을 때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미 합격하였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였습니다. 적어도 백만원은 감사헌금을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헌금 드렸습니다. 현주 목동 시험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합격하면 오십만원 감사헌금 할 것 같아서 오십만원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도 있었겠지만 나의 믿음도 받으시고 이들의 합격을 도우셨습니다. 지금은 요한이가 결혼할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손자가 태어나면 예하, 손녀가 예라나 수하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치료 받은 후에 하는 것과 치료 받는 것의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루어진 후에 감사하지 말고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한나목동은 자신이 이미 건강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고 중국어를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 감사하는 한 명의 사마리아인)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열 명은 모두 나병이 나았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지금까지 열 명의 나병환자는 똑같이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은 후에 한 명과 아홉 명이 나뉘었습니다. 나병환자 중에 아홉은 제사장에게 나은 몸을 보이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의 하고 싶은 일을 이제 마음껏 하러 갔습니다. 이제는 일도 할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인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시 받던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그 스피릿으로 큰 소리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찬양을 하며 예수님께 돌아와서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했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열 명 중에 아홉은 감사하지 않고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감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아홉은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있고 원망 불평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만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만이 감사하였을까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취급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유대인이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것 같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 하나님을 잘 믿어서, 지금 열심히 기도하여서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병을 고치러 온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받아야할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로 자신을 인식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 없이 죄악된 삶을 살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문둥병자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할 자입니다. 그는 도저히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하였습니다.

우리가 병낫기 전에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이 나은 후에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 자격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비참한 자신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걸어다니고 먹고 마시고 숨을 쉬는 것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있고 말씀을 주는 교회가 있고 직장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찾으시는 예수님)

 

17-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안타깝게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열 명 중 감사하지 못하는 아홉 명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들이 병은 나았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과 관계성이 형성되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왜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유대인들은 감사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 나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나았다고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감사를 잃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병이 나은 후에 또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나은 후에 여러 가지 욕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직장도 잡아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건강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의식이 생겼습니다. 병이 나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볼 때 그들은 너무 부족하였습니다. 그들은 대학도 못나왔고 토익 점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쳤다고 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감사보다는 불평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생각하기보다 현재의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의 사람들은 대체로 은혜 망각증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열에 아홉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한 후에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넌 후에 목이 쉬어라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자 또 다시 불평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사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이타닉호에 탄 23명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도 와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흔히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은 물에 새기고 감사는 바위에 새겨야 합니다. 은혜를 바위에 새기고 원한을 물에 새긴 사람이 바로 다윗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 자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동인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무엇이기에 이런 은혜를 베푸셨느냐고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사울이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든 재산을 주고 그를 다윗의 식탁에서 먹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바울이 매맞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간수와 그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스펄전은 촛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더 큰 은혜는 바로 구원입니다.

 

(감사가 구원을 이루심)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감사한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감사한 사람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었습니다. 그는 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 받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희생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엄청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시편 50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감사하는 자가 행위를 옳게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구원하여주십니다.

구약에 드리는 소제는 감사와 기쁨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모든 제사에 겻들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순종도 감사함으로 하고 사랑도 감사함으로 하고 회개도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결론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찾으십니다. 열 명 중에 그 아홉 명은 병을 고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병을 고칠 뿐 아니라 병을 고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홉 명은 병을 고치는데 끝났지만 한 명을 병의 치료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을 그리스도로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병도 치료해야 하지만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감사치 않은 아홉 명은 병은 치료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는 쉽게 잊어버리고 상처받은 것은 오래 기억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열에 아홉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감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으면 더 악한 7귀신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도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감사치 않는 아홉을 찾아 회개하고 열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은혜라도 기억하고 감사해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죄사함을 받은 것, 한 해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신 것, 나를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하여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면 우리는 더욱더 은혜의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프라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감사일기를 쓰면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정수아목동에게서 감사일기를 배웠습니다. 저는 올해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며 매주 매달 감사제목을 찾으며 믿음이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나를 깨어있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으로 감사제목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가운데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2022년 한 해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다 셀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를 다 찾아서 감사하고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편지나 선물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22년 추수감사제 메시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와라

누가복음 17장 강해 삼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데려와라

말씀 누가복음 1711-누가복음 1719

요절 누가복음 17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022년 추수감사제 메시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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