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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UBF6월 셋째주 메시지 이런 기쁨을 갖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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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주 메시지 이런 기쁨을 갖고 싶습니까?
요한복음 3장 6부 문제 이런 기쁨을 갖고 싶습니까?
말씀 요한복음 3장 29
요절 요한복음 3장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어떤 마을에 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가 산책을 나갔다가 보석을 발견합니다. 이 정도면 한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잘 보관했습니다. 어느 날 남루한 거지 하나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현자는 그에게 저녁상을 해다 바쳤습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거지는 인사하고 휘휘 돌아보더니 상위에 보석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저 보석을 나 줄 수 없습니까? 그러면 이제 다시 거지 노릇을 하지 않으면서 살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현자는 보석을 기쁨으로 선뜻 내어 주었습니다. 거지는 보석을 가지고 나가더니 하루 후에 보석을 가지고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배는 고프지만 잠은 잘 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보석을 갖다 놓으니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그래서 도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거지가 뜻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이 보석을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주십시오.” 보석이 없어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런 기쁨이 가득한 세례요한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자신을 떠나서 예수님께 가자 예수님은 새로운 제자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떠나는데 슬퍼하지 않고 예수님이 기뻐하는 그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세례요한의 기쁨을 갖고 싶지요? 우리에게 이런 세례요한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신랑의 결혼식 날 신랑은 신부를 취하여 기뻐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주인공이고 자신은 들러리인 것을 알기 때문에 신랑이 기뻐하는 것으로 자신도 기뻐합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이고 들러리 친구는 요한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신랑이신 예수님에게 갔을 때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신랑 예수님의 친구로서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신랑 예수님이 기뻐하듯이 아주 크게 기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로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고 우리는 들러리라고 알야야 합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제자가 떠나도 예수님이 존경받고 기뻐할 때 예수님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영광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립니다. 내가 높아져야 하고 우리 교회가 높아져야 기뻐합니다. 이들은 제자가 떠나면 슬퍼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많은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뻐하면 우리는 더 많은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시기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보다 복음을 더 잘 한다는 것을 알려서 사도 바울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화가 나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화가 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예수님이 이름이 높아지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중심이었지, 자기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으로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빌립보서 1:18,20,21) 우리 중심에 예수님이 있다면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질병이 걸려도 그로 인하여 예수님이 이름이 높아진다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죽어도 예수님 이름이 높아진다면 우리는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채찍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몸이 아팠습니다. 사도들은 몸이 아파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음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모욕을 받아도 예수님 이름이 드러나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보다 나의 이름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에 민감하다면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왕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름이 낮아질 때 번민하고 고통하였습니다. 그에게 악신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사울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고,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하나님이 유다를 사랑하시는 본심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보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2)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신랑과 친구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안 될 때 함께 슬퍼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가 잘 될 때 기뻐하고 스승이 사랑하는 제자가 잘 될 때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주니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는데 우리 가족도 기뻐하였지만 교회 식구가 다 기뻐하였습니다. 다 요한이를 사랑하고, 요한이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가목자는 눈물로 중보기도하였습니다. 최예담 백한나 송용준 진실 사모가 아플 때 교회 식구가 다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백한나 용준이 진실 사모가 좋아질 때 다 같이 기뻐하였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이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기뻐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올라갔을 때 온 나라가 기뻐하였습니다. 나도 단대에 가서 응원했는데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월호가 잠길 때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였습니다. 젊은 고등학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넓혀서 여러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나라와 인류를 위해서 기뻐할 때 더 많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기를 낳지 못한다던 정수아 목동이 아기를 낳은 것이 기쁨입니다. 유산의 아픔이 있는 수경자매가 둘째 용태를 임신한 것도 기쁨입니다. 임이사야 선교사가 이스턴 일로노이즈 대학의 교수가 되고 한인 젊은 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우리의 큰 기쁨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기뻐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잘 될 때 그것이 다 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되찾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이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오랜 동안 기도하면 그 일이 이루어질 때 나의 기도가 응답되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민감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아름답게 떠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점점 흥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야곱의 집에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점점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마친 후에 떠나야 합니다. 그는 헤롯에 의해서 죽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가 망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나를 흥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망하고자 한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높여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늙고 죽어갑니다. 바람처럼,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꽃처럼 우리의 영광은 떨어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꽃이 아름답게 떨어지듯이 아름답게 떨어질 줄을 알아야합니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꽃이 피는 것도 기쁘지만 떨어지는 것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마치고 물러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름답게 떠나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아름답게 떠났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정을 버리고 홀로 느보산에 올라가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사명을 떠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답게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랜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죽는 것도 천국에 랜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뷰티플랜딩을 넘어서 원더플 랜딩 조이플 랜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슬프지 않고 기쁘게 떠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지만 더 좋은 하나님 나라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마치고 죽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임으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떠나면서 사명을 마치고 우리의 계승자를 세우고 그가 잘 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모세는 떠나면서 여호수아가 잘 되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후배들이 잘 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나는 주니어 오요한목자와 최요한 목자가 잘 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결론) 우리는 잃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노먼 커즌이라는 사람이 ‘병의 분석’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호탕하게 웃으라고 합니다. 위장병은 웃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암 말기 환자는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마음껏 웃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나옵니다. 엔돌핀이 나오면 마약보다 더 큰 기쁨이 생깁니다. 나도 전임사역자가 되었을 때 장통이 있었습니다. 나는 장통이 있을 때 단대 기서 웃음치료사 강의를 한 한기 들었습니다. 웃음치료사 강의는 한 마디로 하면 그냥 웃으라는 것입니다. 많이 웃었더니 장통이 나았습니다.
우리가 왜 기뻐하지 못합니까? 예수님 중심보다 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다면 보석을 기쁨으로 선뜻 내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요즘 아픈 사람들로 슬픈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아십니다. 우리를 소망두시고 쓰시는 하나님 본심을 압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을 생각할 때 아픈 사람들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담이와 같은 나이의 믿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당당하게 믿음으로 천국에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천국에 갔으니 기쁨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곳에서 가족들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가운데 고난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3장 6부 문제 이런 기쁨을 갖고 싶습니까?
말씀 요한복음 3장 29,30
요절 요한복음 3장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한복음 3장 강해 6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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