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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십자가의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7-06 00:00:00
조회수 : 650
말씀 / 마태복음 27 :1 - 66

독일에 드레스덴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대문호 괴테는 드레스덴 풍경을 보고 반하여 ‘유럽의 발코니’라 칭했던 곳입니다. 프라우 엔킬헤 대성당, 젬퍼오퍼 국립오페라극장, 츠빙거 궁전과 같은 독일의 값진 문화재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연합군이 군수공장 없는 이 문화의 도시 드레스덴은 폭격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난해 왔습니다. 하지만, 영국 공군폭격사령부와 공군장관 아더 해리스는 5차례에 걸쳐 이 도시를 철저히 폭격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독일 국민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심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수치와 모욕을 받으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1. 빌라도에게 넘기움(1,2)

1,2절을 보십시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습니다. 야간에 열린 유대인들의 재판은 불법이었습니다. 불법으로 체포하여 죄를 찾았지만 죄를 찾을 만한 증거가 없어 석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시키기 위해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예수님은 로마법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에서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2. 가룟 유다의 죽음(3-10)

3,4절을 보십시오. 유다는 자신의 배신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판돈이라도 돌려주고 죄책감을 덜어 보려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돈을 돌려받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유다는 돈을 성전, 성소에 던져두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은 이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고향을 떠났다가 객사하는 무연고자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미리 예언된 대로였습니다.

유다는 현실주의자, 인본주의자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눈에 보이는 생활환경 개선과 세상의 정치변화를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죄에서 구원하는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본주의자의 마지막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고통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3.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심(11-31)

11절을 보십시오. 빌라도의 재판정에 끌려 나온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심문에 대답하십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이 대답이 정치적으로 악용당할 수 있음을 아시면서도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유대인의 왕’ 즉 ‘인류의 메시야’로서 맞이하십니다. 그러자 이 대답을 근거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은 반역자라고 맹렬하게 고소했습니다. 이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이들은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고소하는 자들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현실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이익,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사회적 안정을 계속 쥐고 있기를 원하고 사랑하다가 마귀의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거짓고소에 대해서 예수님이 왜 자신을 해명하지 않는지 반문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면서도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인류구원역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고자 이미 결단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길을 영접하시고 순종하셨습니다.

15-19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침에 부인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는 것이 시기심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유월절 특별사면제도로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했지만 그의 의도는 좌절되었습니다. 유대인 무리의 요구가 반란을 일으키고 살인죄를 지은 바라바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총독의 권력을 가졌지만 나약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로마황제의 신임을 잃을까봐 무리들에게 죄 없는 예수님을 사형에 내주고 말았습니다. 진실을 알고도 진실을 지킬 의지가 없는 자, 빌라도는 영원한 약자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예수를 죽이고 그를 피 흘리게 한 대가를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소리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로부터 40년도 지나지 않아 역사상 가장 대규모이며, 가장 참혹하며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학살과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빌라도는 유명한 죄수인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 했습니다.채찍에는 뼈조각과 납조각이 달려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채찍으로 39대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튀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과 마음속의 상처가 치료받게 되어집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형수가 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잔인하고 강포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흉폭한 자들의 멸시와 모욕을 받으십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사형언도를 받고 잡혀와 있는 나약한 자가 무슨 왕이냐? 하는 희롱입니다. 홍포는 왕의 망토 대신이요 갈대는 황제의 홀 대신입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굵은 가시가 박힌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푹 씌웠습니다. 머리곳곳을 파고드는 가시는 붉은 선혈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을 위함이며 지금 나를 위함입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몰라보고 갖은 멸시와 모욕을 다 쏟아 붓고 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희롱과 모욕을 한껏 퍼부은 후 군병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끌고 나갔습니다.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것은 내 죄를 위해서 내가 당해야 할 수치와 모욕이 이처럼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죄 없으시고 존귀하신 분이 나 때문에 이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호령하여 이 수치를 거절하셨다면, 무서운 심판과 고난을 내가 다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날 우리는 무서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를 심판에서 건져주시려고 고난 속에서 참고 또 참으셨습니다.

4.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밖으로 끌려 나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나가다가 구레네 시몬이란 사람에게 예수님이 지시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문 받으시고 채찍질 당하셨기 때문에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억지로 십자가 지는 일을 떠안게 되었지만 이 일로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초대교회 복음역사에 그 집안이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시는 장소는 골고다 언덕입니다.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가 고통을 덜 느끼게 하기위한 마취제로 쓰이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었지만 거절하셨습니다. 인류대속의 십자가 고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으시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35,36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예수님께서 드디어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십자가의 처형 방법은 가혹하고 치욕적이기 때문에 로마 시민에게는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고난과 죽으심을 예수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대신 속죄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죽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에서 건지시기위해 이루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제비뽑아 가졌습니다. 십자가 죄수의 옷을 가지고 있으면 재수가 좋다는 미신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류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무지하게도 자기유익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돈에 집착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관심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논리, 자기주장, 자기흥미에 빠져서 곁에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모습입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은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씌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야’이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이시기에, ‘메시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형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인류를 대속하는 메시야의 죽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배려나 특별대우가 조금도 없습니다. 죄인중의 하나요, 죄인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중죄인들과 함께 정죄받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무엇 때문에 이런 수치와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해야 하는 죄인들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인 죽음을 당해야 하는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죄의 대가는 예수님께서 치르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나에게는 생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구원의 십자가요,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감사의 십자가입니다. 살인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인 마귀는 이 십자가야 말로 꼭 저지해서 막아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39절에서 44절까지 보십시오. 마귀는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방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욕하고 예수님을 조롱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했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림으로 혈기를 부려 십자가에서 중도에 내려오도록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까지 인용해가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거론하며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온 땅은 어두움에 잠겼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인류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죄가 끝내 그 대가인 사망을 치르게 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순간만큼 완전히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시고 고통과 아픔을 조금도 덜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저주 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픔과 고난의 사람, 가장 큰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47-49절을 보십시오. 마지막 순간까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에 대한 불신의 일을 했습니다.

5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려고, 중간에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끝까지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의 방해를 이기고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에서 숨이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주시기 위해 이렇게 무서운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보배롭고 고귀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는 우리를 위한 생명의 피, 구원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51절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51절을 보십시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신 순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불화관계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인간을 징벌하셔야 했고,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담대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관심 속에서 자라서 어른들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고비가 온 것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재혼을 말하셨을 때부터였습니다. 절 보면 잘 웃으시던 친척어른들이 어머니의 재혼이야기로 험악해졌습니다. 저희 집에 땅이 있는데 땅 문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고모, 삼촌들 모두 어머니를 욕하였습니다. 저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모두 걱정하며 따뜻하게 감싸 주셨던 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오늘의 적이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의지했던 것들이 무너지자 저의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삶의 무의미함도 느꼈습니다. 그나마 동생과 어머니를 보고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아무 꿈도 소망도 없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만 있는 삶이었습니다.

대학교1학년 때 샘물목동님과 만나게 되었고 샘물목동님이 아브라함 목자님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목자님을 만나고 나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미국 가기 전에 공동생활을 하면서 목자님과 성경공부를 꾸준히 하였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고 있던 저를 목자님께서 불러주셔서 미국에 가는 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고 믿음의 생활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미국생활을 하며 십자가를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람이나 돈을 의지하는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절대 변하지 않으시고 항상 저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믿고 맡기자 해결이 안 된 일들이 해결되고 그전에는 자신이 없어 시도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놀라운 은혜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꿈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님들을 도와드리며 선교사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것입니다. 꿈이 생기자 마음도 변하고 행동도 변하였습니다. 이런 제가 근래에 받은 은혜는 저는 인문사회계열의 대학생인데 컴퓨터계열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보다 빨리 취업해서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하고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면서도 돈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오히려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제가 소통하고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죄로 인한 고통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채찍질 당하고 희롱당하고 수치를 당해야 하는 것은 저였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것도 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죄의 삯을 치루신 것입니다. 죄의 늪에 빠져 있었어야 하는 저를 인도하셔서 하나님께 크게 쓰일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저는 조건 없이 순수하게 사랑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죄 없이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대신 속죄하셨으므로 이제 나에게는 어떤 정죄함도 없습니다. 누구도 나를 죄인이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는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용서의 십자가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일생토록 우리의 심령에 구원의 확신과 담대함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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