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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9-08-09 00:00:00
조회수 : 315
1. 간략하게 인사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든든하게 식사하시고 은혜로운 인생소감 나누셨죠? 그것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합니다. 이제 곧 메인요리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 보시죠. &#8222하나님나라는 돈으로 안간다가 아닌 못간다“ 얼마나 천만다행입니까!! 이 시간 하나님 나라에 대해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2. 오늘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2019년도 여름 수양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거듭나도록 우리 마음을 이끌어 주신 성령님께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사용하여 이번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말씀 안에서 우리가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를 풍족하게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요한복음 3장5절 요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
1절에서 3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인물 “니고데모”와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들! 바리새인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하나님께 따로 시간을 내어 서서 기도하고, 안식일(주일예배)을 반드시 지키고, 엄격한 십일조와 금식! 등 이렇게 경건하게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 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그들이 인간적으로 존경스럽습니다.마치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같아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8222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 마저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기죽지 마십시요. 그들의 드러나는 행위는 깨끗해 보였지만 마음은 저희처럼 똑같이 더러웠고 죄인에 불가했으니까요. 또한, 그들은 경건한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 은혜가 아닌 자신의 노력, 힘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한 사람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한밤중에 찾아와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들 그림의 니고데모를 한번 봐주세요. 니고데모의 대한 그림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그의 모습은 절대 남루하거나 빈약해 보이도록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민족지도자,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관원은 입법, 사법권을 가진 산헤드린 공회원을 말하며,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을 겸직한 판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비교해 볼 때, 그는 지식인이며, 많은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이었던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기득권을 가진 자로서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은 상황에도 왜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까요?
마태복음 19장 24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 때문에 자신의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였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이 땅의 재물을 쌓아두지 않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고 살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단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하나님 나라로 생각했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 아래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식인, 부와 명예를 지닌 기득권 세력이었지만 그것 또한 로마의 식민지 생활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 병을 치료하는 능력 등, 예수님이 보인 그 표적만을 보고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자로 판단하고, 철저한 민족주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갖고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의 독립이 곧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한 니고데모와 달리 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로마서 14장 7절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누가복음 17장 21절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국 이스라엘의 독립처럼 눈에 보이는 것, 정치적 독립으로 자유롭고 풍요롭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성령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내 마음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거하며 누리시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8절까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방법, 말씀에서 찾으셨나요? 그 방법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이 가르침이 우리 마음에 잘 새겨지길 소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이것이 바로 키워드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고 누리는 방법이 됩니다. 니고데모는 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에 대해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앞서 지식인이요, 민족지도자요, 공회원으로 소개한 니고데모가, 그리고 시간을 굳이 내서 사람들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비아냥 거리기 위해, 그와 농담을 주고 받고자 이와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으로서 니고데모는 성경말씀을 의무적으로 읽어왔었기에 성경의 진실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구약 때 모세가 출애굽 당시 내렸던 10가지 재앙 중 첫 번째 물을 피로 바꾼 사건과 다르게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능력을 먼저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에 대해 예수님께선 사람을 늙어서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방법을 소개하기 앞서 한 가지 대화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팀을 책임지는 감독이 경기승패의 귀로에서 승리를 위해 작전타임을 불렀습니다. 감독은 전체적인 흐름을 경기장 외부에서 관찰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기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본 그림과 대화속에서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듣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나요? (질문)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죄가 무언인가요? 명료하게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아닌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결정과 방향이 “나” 중심이며, 눈에 보이는 이익을 쫓아 사는 삶, 모든 목적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죄 입니다.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은 삶을 죄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 곧 회개와 연결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은 회개의 침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주로 인정하지 않은 삶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 그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를 왜 애굽에서 꺼내어 광야에서 죽게만드냐 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선 이들에게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반석에선 물을 주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셔지만 이들은 점차 불평불만과 함께 심지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까지 하는 등 악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분노하시어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물린자는 죽게되었습니다, 이들이 살기위해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장대 위 놋뱀을 봐야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기 위해선 어려운 미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오직 믿음으로 장대위 걸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후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과 연결됩니다. 바로 본문 말씀처럼 &#8222인자도 들러야 하리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려, 못박혀 피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 사하여 주셨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네 번째, 성령님을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하늘나라 보좌에 계시며 우리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말씀하고 계십니다.
회개와 세례를 통해 다음 단계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으로서 더러운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더럽다면, 깨끗해져야 들어오실 수 있고, 주인이 나라면, 그 자리를 내어드려야 오실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지속적인 A/S가 필요합니다. 8절에 보면 성령님을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임의적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임의적이라는 것은 자유로움을 의미하며, 자유로움은 유연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령님이 항상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지, 성령님의 자리는 내 마음 속 어디에 계신지, 그 크기와 무게감, 그리고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인식하고자 점검해야 합니다. 형체는 없지만 존재하는 성령님이 우리의 죄와 무감각으로 인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앞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미래의 예수님의 보혈까지는 아니었어도,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며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모르고 거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그의 배경을 설명 드린 것처럼 성경과 율법을 연구하던, 목숨을 걸고 깨끗한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예수님이 오신 신약에서 새로 나타난 개념입니까? 아닙니다. 구약 때 야곱은 이스라엘로,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거듭났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이 일을 니고데모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모를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결국 회개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려놓아야 하며 이는, 가진 전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에서 그 자리를 잃게 되며, 축적한 재물과 명예 등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니고데모는 눈에 보이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과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였고, 그로 인해 삶의 방향성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었던 삶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하시므로 나의 죄를 대신하여 갚아주신 그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나의 계획과 욕심을 비우니 성령님께서 거하실 자리가 생겼습니다. 자연히 저의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본문말씀과 연결하여 소개드리려 합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8222내 죄를 깨달아야지, 회개해야지“ 목적을 갖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에 갈증이 있었고, 꼭 들어야 겠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그 분이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때는 사실 독일 유학시절로서 많은 어려운 상황에 둘러쌓여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이구나, 저의 무력감을 뼈저리게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받아들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결국 이때는 자연스럽게 기도와 말씀을 1순위로 삼으면서 저의 죄를 자연스럽게 고백하고 인정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죄를 알고 회개한 들, 그것이 있던 죄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는게 참 힘듭니다. 계획하는 일들은 보기좋게 틀어지고, 관계에선 내 마음과 다르게 오해가 생기고, 가족들의 기대와 그 속에서의 역할 등 사람의 계획은 정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이런 복잡한 삶에서 짓는 죄를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댓가를 치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자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믿음은 성령님을 선물받아 영과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때 학업의 압박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두번이나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하였었는데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은 마음의 평안함을 주었습니다. 이 좋은 상태를 유지, 발전시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정기적인 A/S를 받으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조금씩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한지 이제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직장을 어렵지 않게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과 하나님 말씀 또한 교제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 속에서 감사 함보다는 익숙함에 물들어 반복적인 출퇴근과 기타 프로젝트 업무, 출장 등이 어느 순간 은혜가 아닌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곧 피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먼저 이 문제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장인들 다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데 뭘, 참고 견디면 언젠간 이 또한 흘러가겠지 생각하며, 하나님과는 별개의 일로 단정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머리와 마음 속 부담감으로 다가온 업무와 계획들은 결국 성령님을 밀어내고 다시 1순위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진이 빠져 버렸습니다. 충분히 잠을 자는데도 피곤하고, 쉬는 데도 머릿속에는 업무와 계획으로 공회전이 돌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을 잃어감은 생활의 불편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 졌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표출하지 않았어도 이미 마음에 먼저 떠오르고 이것을 누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활의 활기가 없다는것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업무와 계획에 매진하는 저는 어떤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것일까요? 잘나지는 않지만 남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입과 안정된 생활환경, 경력, 명예,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지식습득과 인격형성 등 내가 주인이 되는 나라였습니다. 나에게 이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에 빠진 원인이었습니다. 바로 “나에게 이로운 것”이 기준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독일 유학의 실패는 한 동안 저를 압박하는 요인이었습니다. 노력과 비용, 시간이 결과물을 어찌됐건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하나님께선 국내 한 지방에서 지난 독일에서 하던 연구를 이어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준비하는 과정과 면접을 위해 오고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의 연구 상황을 알고 계신 의대 교수님과 음악치료 교수님이 계신 이 곳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셨었구나!. 연구방향과 환경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해 오던 곳이었습니다.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란 분이 이런 분이시구나.
이제 저는 다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단계를 밟으려 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서 저의 눈을 십자가에 향하려 합니다. 말씀을 정기적으로 묵상하고, 한 양을 칠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려 합니다. 몸이 지칠 때일수록 말씀과 기도에 힘을 쏟아 육신을 입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키려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령님께서 도와주신다면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가졌던, 성령님을 영접했던 그 때를 각자 떠올려 봅시다. 그때의 기쁨과 감사를 기억해 봅시다. 세상에 지치고, 사람들에 상처받았던 마음을 누가 위로해 주셨습니까? 하나님나라의 주인, 우리가 그 안에 거할 때 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신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나라를 누리는 방법은 오직 회개와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어가 “나” 라면 죄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주어라면 죄를 알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아는 것이 인간적인 잠깐의 고통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와 함께하면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 죄가 씻겨졌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를 믿을 때에 성령님을 선물 받고 하나님 나라 입장권을 가진 우리가 되었음을 잊지 맙시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잃어갔던 하나님 나라를 찾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모두!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깃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꽂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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