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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주제1강

작성자 : 임마가
작성일 : 2017-05-04 00:00:00
조회수 : 381
2017년 spring bible camp

죄 사함의 권세자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2 : 1 - 12
요절:마가복음 2 : 10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오늘 말씀에는 죄 사함의 권세자 예수님이 나옵니다. 이 죄 사함의 권세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모두 죄 사함의 권세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변화된 새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예수님께 대한 절실한 소원이 믿음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문둥병자를 고치신후 며칠이 지나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증거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좀 보세요, 예수님이 내 병, 글쎄 불치병인 내 병을 고쳐주셨어요’ 그러자 병자들이 많이 나아 왔습니다. 그때 병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도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구원이고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다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겉으로는 성적, 장래, 결혼, 취업 등 때문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셨고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오신다 해도 같은 주제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중풍 병은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등으로 뇌혈관이 파손 되어 일어나는 전신이나 반신 혹은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는 병입니다. 침상에 떠 매여 진 채 나온 중풍병자는 전신 마비환자로 보입니다. 서너 시간쯤은 연이어 춤을 춰도 거뜬한 ‘아이돌 청년’이 갑자기 쓰러져 드러누워 지내야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정신은 말짱한데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함으로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중풍병자에게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날 친구들은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셨다는 문둥병자의 눈물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분 예수님이 이곳에 오셨다는 소식에 네 친구는 즉시 중풍 병 들린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예수님 앞에 이 친구를 데려만 가면 그 분이시라면 중풍 병 친구를 낫게 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중풍 병 친구를 침대에 누이고 네 귀퉁이를 끈으로 묶고 어깨에 들쳐 매었습니다. 병자를 매단 채로 예수님 계신 곳으로 내달렸습니다. 땀이 주룩주룩 쏟아지고 숨이 턱 밑에까지 차올랐습니다. 좀만 더 힘내. 다 왔어. 서로를 겪려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계신 집 앞까지 데려 왔습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기는커녕 곧 밟혀 넘어질 것 같은 넘쳐나는 인파를 보았습니다. 어느 한 구석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중풍 병 친구를 빨리 고침 받게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친구들은 어찌하든지 빨리 중풍병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낫게 해주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잠시 낙심적인 상황에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주여 들어갈 길을 열어 주십시오. 열어 주십~~시오. 열어 열어. 그들이 기도를 끝내고 고개를 들 때 눈에 지붕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뜯었습니다. 구멍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중풍병자의 침대를 달아 내렸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비난받을지라도 아파서 기다리는 다른 병자들에게 미안하더라도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중풍 병 친구가 온전히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가운데 그냥 지붕을 뚫고 침대를 내렸습니다.

5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지붕을 뚫고 중풍 병 친구를 달아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친구를 사랑하는 믿음,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믿음,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도전하는 믿음. 그들의 믿음에 크게 감동 받으셨습니다. 어찌하든지 친구를 예수님 앞에 데려가고자 하는 소원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을 믿음으로 인정하십니다. 우리도 네 명의 친구와 같은 목자의 심정과 믿음 있는 목자가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 마음에 캠퍼스의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불타는 소원을 덧 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우리 마음과 가정과 단국대와 의치약대, 백석대, 상대, 호서대, 천안 캠퍼스와 세계캠퍼스에 우리를 쓰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II. 죄 사함의 권세자 예수님

5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친구들에게 떼 매여 내려온 중풍병자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작은 자’라는 것은 아들처럼 소중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애정이 깃든 호칭입니다. ‘작은 자’란 한마디로 아들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온 자들을 아들로 따뜻하게 영접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사람들은 그를 부담스럽게 여겼을지라도 예수님은 그를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그 아들에게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사실 중풍병자는 병고쳐달라고 나왔는데 왜 죄를 사하여 주었을까요?

병 치료도 중요한지만 죄 사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풍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만 죄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이문제가 왜 이리도 심각한 것일까요?

첫째 우리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나라에 관심 갖고 하나님나라를 체험하고 들어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갑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죽음과 영원한 심판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구원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나라,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고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선물로 ’죄 사함을 받았다‘ 과거시제로 딱 부러지게 선포하셨습니다.

둘째 이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결코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불행합니다. 반면 죄 문제에서 죄 사함을 받을 때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학점이 안 좋고 돈이 좀 부족해도 행복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그 어떤 것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행복합니다. 죄 사함 받으면 아무리 없어도 행복하고 죄 사함 못 받으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불행합니다. 우리 인생들을 못 쓰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고, 추하고 더럽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죄 문제입니다.

몇 주 전에 17살 한 여고생이 다른 한 사람과 살인 죽음 등을 서로 문자로 보내다가 10살 초등학교 여학생을 유인해 옥상에서 죽여 살인하고 시신을 훼손하고 시신 일부는 문자를 주고받은 다른 이에게 선물로 주는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저리고 아픔니까? 가해한 두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이는 죄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파급력이 큰가, 사람들을 괴롭히나 반증합니다.

그러면 죄는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십계명을 범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라 가르치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한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믿지 못하고 불신 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불신하는 죄악으로 십계명을 어기는 갖은 죄악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던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사 사랑을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은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허락해주십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선포하였을 때 서기관들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구도 감히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죄 사함 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하나님만이 가진 고유 권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로 이제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것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죄 사함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서 제사장으로부터 죄 사함을 선언 받을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제사드리는 일은 번거롭고 불편하며 큰 물질과 시간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짐승을 죽여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공을 쌓고 고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죄 값을 치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죄 사함의 권세자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금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신 예수님의 죄 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나라에 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9남매의 마지이셨던 아버지와 어머님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타계하시고 홀로되신 어머님은 저 한 사람을 잘 키우고자 몇 번의 재혼 기회와 도시 삶을 포기 하시고 시골에서 농사하며 지금껏 제게 헌신적인 삶을 살고 계십니다. 사람인 어머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어머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고등학교시절 삶의 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나름 책이나 선배들의 말을 청취하며 “살기 위해 산다‘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인생‘ 등 개똥 철학을 외치며 인생의 도를 찾는 삶을 살았고 청년기 정욕에 넘어지고 또 공부나 어떤 일을 악착같이 이뤄내지 못하는 자신에 절망하였습니다. 입시 실패와 재수 후에도 자신의 유약함으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방대에 온 것으로 실패의식으로 좌절 했습니다. 인생의 중심을 어디다 두고 살아야 할지 나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방황하였습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와 삶의 중심과 방향 삶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성경을 배우며 무엇이 사람을 괴롭게 하고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나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결코 환경이나 조건개선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못합니다. 창조주요 삶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그 하나님께 돌이키고 그 하나님만 의지하고 경외하는 삶이 행복의 길임을 배웠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때 사람을 우상으로 여기고 그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매여 살았습니다. 또한 청년기 정욕의 죄와 인생에서 깊은 실패의식 열등감 가운데 운명적이고 허무하며 무의미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말씀 앞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아들로 영접해 주시는 감동적인 사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로 정죄치 않으시고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죄를 사해주시는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게 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캠퍼스 목자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명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고 중심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3년 반 정도 아이가 없다가 동역자들의 중보기도의 은혜로 주신 세 자녀도 기도의 열매입니다. 큰 충성과 헌신을 드리지 못했지만 그 어떤 다른 삶보다 귀한 생명을 돌보고 복을 나누는 행복한 목자의 삶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전형적인 중풍병자인 저에게 죄 사함을 주셔서 새 삶을 살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먼저 찾아가고 중풍이 같은 양들을 찾아 예수님께 메고 가는 삶을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준비하며 두 가지 점에서 회개합니다.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 앞에 해서는 해서 안 되는 일을 하거나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을 죄로 규정합니다,
첫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자의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지 못한 점입니다. 아직도 십자가 지는데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부족해도 나의 호불호나 상황에 변함없이 양들을 돌볼 때 생명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는, 먼저 신앙과 절대적인 자세로 하나님 앞에 물질생활의 열매를 맺지 못합입니다. 제가 마음 첫 자리에 오르는 우상을 항상 회개하고 사람 눈치가 아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복을 감당할 그릇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시고 죄 사함을 덧입혀 주시고 긍휼로 함께 하여주십시오. 빛과 소금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며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삶을 살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0절에서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하고자 중풍병자에게 병을 고치기 전 먼저 죄 사함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시자 이제껏 누워있던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자 그의 심령에 가득하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 의존심과 운명주의가 떠나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무기력해 힘쓸 수 없던 팔다리에도 청년의 힘과 정열이 샘솟게 되었습니다. 중풍이 완전히 치료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이 진실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죄 사함 받는다고 다 병이 고쳐진다고 단언 할 수 없지만 죄 사함 받으면 실제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사람이 열정적인 사람으로, 매사에 어둡고 부정적이던 사람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운명에서 섭리의 인생으로, 패배감으로 드러눕던 사람이 일어나 개척하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죄 사함의 권세자이십니다. 인간의 육신의 몸을 덧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죄일지라도 사하시는 사죄의 권세자이십니다. 이 땅에서 죄에 얽매여 일생을 죄의 종노릇하다 죽을 우리 인생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어떤 모양의 죄인들도 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들을 죄 사함을 통해 치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은혜의 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참 소망은 ‘죄 사함의 권세자 예수님’뿐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죄 사함의 복음을 천안과 세계캠퍼스에 힘써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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