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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시편 133편 강해,134편 강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11-04 00:00:00
조회수 : 2,00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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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강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말씀 시편 1331-시편 1333

요절 시편 133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우리는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삼대 명절이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명절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이 연합하는 모습을 봅니다. 제사장은 그들을 보면서 감격하고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워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전래 동화 중에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알 것입니다. 형제가 농사지어서 추수하여 낟가리를 각각 쌓았습니다. 동생은 형이 결혼하여 자녀가 있고 제사도 지내야 하니 돈이 필요할 거야 해서 밤에 일어나 자신의 볏단을 형에게 날랐습니다. 형은 동생이 새 살림을 차렸으니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밤중이 지나서 자신의 볏단을 동생에게 날랐습니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낟가리가 똑같았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이튿날도 형과 동생은 각각 볏단을 날랐으나 이튿날 일어나보니 볏단의 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형이 셋째날 낟가리를 나르기 위해서 좀더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추석날처럼 둥근 달이 밝은 밤에 서로 벼를 지고 나르는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서로 부등켜 안고 울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런 형제를 보고 부모가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1절을 보십시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성전에 가는 순례자들에 대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루살렘에 일찍 가는 사람도 있고 늦게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험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평탄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고 가까이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쁘게 가는 사람도 있고 고통스럽게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갖가지 사연을 갖고 성전에 모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서로 담회를 나눕니다. 제사장이 이들에게 보라고 외칩니다. 제사장의 메시지를 들어보라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다윗이 쓴 이 시를 메시지로 전합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쓴 동기가 있습니다. 부모된 다윗은 자녀들이 화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서로 강간하고 살인하였습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형제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 시가 명절날 성전에서 노래하는 시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형제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확장됩니다. 가족 공동체에서 신앙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형제는 한 부모에게 나와서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핏줄을 통해서 형성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형제는 단순히 핏줄만을 통해서 연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이스마엘이나 에서는 믿음이 없어서 이스라엘 민족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다말이나 라합이나 밧세바는 이스라엘의 민족이 아니어도 이스라엘의 민족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중심으로 연합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는 하나님 나라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성경에는 연합이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합니다. 연합하는 것은 부부가 연합할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도 사용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연합하고 부활과 함께 연합합니다. 그리고 성도와 성도가 연합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사이좋게 연합하여 살지 못했습니다. 힘들게 광야 생활할 때가 가장 사이좋게 하나 되었을 때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풍요롭게 살면서 하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삼대 절기에서 함께 예루살렘에 모일 때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 민족이 연합하여 하나 된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모습을 보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너무나 선하고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영어에는 감탄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요? 연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서 연합하여 형제가 되고 하나가 되어 동거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동거하여 연합하여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고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연합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써서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적인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함께(with)라는 단어입니다. 부모와 함께 하고 연인과 함께 하고 친구와 함께 할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행복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모습입니다. 지옥은 바로 모여서 서로 싸우는 곳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제가 하나 되어 화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도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반복하여 기도한 것이 제자들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혼자 계시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을 말합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이 연합하여 하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아 함께 살도록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교회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각계각층이 모입니다. 남녀노소가 모입니다. 여러 다른 민족이 모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모두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불어 사는 사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잘 사는 사회입니다. 나 하나 잘 살고 나의 교회만 잘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입니다. 축구를 해도 혼자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진 자와 이긴 자가 함께 영광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지옥과 천국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지옥에 가서 어떤 교단이 많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골고루 있다고 합니다. 다시 천국에 가서 물었다고 합니다. 어떤 교단이 많습니까? 아무 교단도 없습니다. 교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힙니다.

 

(하나님은 연합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형제가 동거하면 하나님의 보배로운 기름이 머리에서부터 흐릅니다. 제사장은 위임식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흡족하게 들어붓습니다. 보배로운 기름이 머리를 통하여 제사장의 수염에 흘러내리고 제사장의 옷깃에까지 흘러내립니다.

삼국지에서는 관우의 수염이 아름답습니다. 성경에는 아론의 수염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여기서 보배로운 기름은 성령님을 말합니다.

연합하여 동거할 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기름이 하늘 위에서 흘러내립니다. 차고 넘치고 적십니다. 성령을 줄줄 부어 주십니다. 기름은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제사장으로 구별할 때 기름을 붓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게 해주십니다.

기름을 부으면 보배로운 기름의 향기가 납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기름이 흐를 때 우리는 치료를 받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병든 자가 있으면 장로가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나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상한 심령과 몸을 치료해주십니다. 성령의 기름을 부을 때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십니다.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좋은 성령님이 하나 될 때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 되는 영입니다. 하나 될 때 사단이 물러갑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영생을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도가 연합하여 하나 될 때 헐몬산의 이슬이 내립니다. 헐몬산은 해발 3000미터가 됩니다. 이스라엘북쪽의 높은 산으로 만년설이 있습니다. 여기는 한대지방입니다. 여기서 녹는 물이 이스라엘에 흘러내립니다. 이것이 흘러 갈릴리 호수를 만들고 여기서 요단강을 만들고 사해를 만듭니다.

예루살렘 산 위에는 온대입니다. 갈릴리는 열대입니다. 수분이 헐몬산에 막혀서 이스라엘 온 지역에 내립니다. 지중해의 습기를 많이 먹은 공기가 헬몬산에 부딪혀 이슬이 내립니다. 연간 1300미리의 비와 이슬이 내립니다. 연간 평균 강우량이 800mm로 비가 적은 이스라엘이 헐몬산의 이슬이 내려서 생명이 자랍니다. 이슬이 성전이 있는 시온 산들에 내립니다. 이슬을 풀이나 나무가 먹고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이슬이 없다면 생명이 없습니다. 여기서 이슬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형제가 동거하는데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화목해야 물질적인 복도 받습니다. 화목해야 건강도 낫습니다. 누가 병이 날 때 불평하고 원망하면 병이 낫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때 병이 낫습니다.

형제가 하나 되는 곳에 영원히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은 성령님이십니다. 지치고 낙심했다가도 성령을 공급받아 회복되어 싱싱해지게 하시고 생명과 소망이 넘쳐나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형제가 아름답게 동거하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 되면 복을 명하시고 깨어지면 축복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 되면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복음이 전파됩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죄사함을 통하여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

 

이렇게 하나되는 것이 좋은 데 하나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만의 죄로 인하여 서로 분열이 되고 원망이 오고 싸움이 왔습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죄문제를 해결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죄문제를 해결하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도행전 이장에 보면 모두가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고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지금과 같이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때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됨이 깨어지자 고독합니다. 질병보다 배고픔보다 고독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질병은 외로움입니다. 나를 돌볼 사람도 내가 돌봐줄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독한 이유는 교만의 죄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내가 정상 이상으로 부푸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부풀어지면 섭섭이가 들어옵니다. 섭섭한 것이 많으면 교만해진 것입니다. 아내나 자식에게 섭섭하면 교만해진 것입니다. 자신은 논리적인 이유를 말하지만 교만한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외롭습니다.

아이들은 한 둘만 낳아서 외롭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떠나면 부모는 외로워집니다. 내게 주신 관계를 교만으로 내가 깨뜨리지 않고 가꾸어야합니다. 날마다 외롭고 천지에 나뿐이 없다고 하는 것은 교만의 죄입니다. 내가 관계를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모는 없어도 부모같은 사람은 많고 자식은 없어도 자식 같은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이들을 섬겨야합니다.

이 시대의 과제는 소유가 아니라 화목한 관계입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장수가 저주입니다. 원수와 어떻게 평생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개인의 시대가 아니라 연합의 시대이고 소통의 시대입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 될 수 있나요?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해야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임하고 서로가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이 충만해야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의 피가 함께 흐르는 가족이 됩니다. 그래서 한 형제가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동질의 신앙과 사상을 가져야합니다.

다음에는 상식과 합리성이 통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서로 합의를 해서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서로 간에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가 되어야합니다. 차별의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른들도 아이와 친구가 되어야합니다. 어린 것이 감히 어른에게 그럴 수 있냐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의 주인공은 젊은이입니다. 이들과 서열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젊은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강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합니다. 아주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엘리트만 모이면 공동체가 깨어집니다. 공동체 속에는 훌륭한 리더가 필요하지만 연약한 자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속에는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돌봄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참고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 조금 이상한 사람이 있어야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연약한 사람은 솎아 내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다양성이 있어야합니다. 획일화가 아닙니다. 같은 직장인들끼리만 모여서는 안 됩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합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화해해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고 자식에게 가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사과를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용돈을 많이 받는 비결은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의 행복)

 

이스라엘은 이런 형제애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의 인구는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까지 합쳐야 서울 인구보다 좀더 많은 1800만뿐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계를 움직입니다. 명문대의 mba를 하는 삼십 프로가 유대인입니다. 노벨상의 삼십 프로가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 그를 대줍니다. 내 자식만 내 자식이 아니라 그 형제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돌보아 줍니다. 아멘!

 

시편 133편 강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말씀 시편 1331-시편 1333

요절 시편 133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편 강해 끝입니다.

 

 

시편 134편 강해 밤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의 복

시편 1341-시편 1343

요절 시편 1342절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지금까지 15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시를 보았습니다. 오늘 시편은 그 시편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이런 시의 배열이나 편집이 잘 된 적절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와를 찬양하고 성전에 가는 과정을 찬양하고 성전에서 찬양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찬양합니다.

성전에 와서 보니 성전에 문지기가 있습니다. 파수꾼이 밖에서 수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수고는 예배가 끝나고도 밤에도 계속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문지기에 복을 빌어 줍니다.

우리가 예배드리지만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분이 많습니다. 불을 키고 마이크를 보고 청소를 하고 정성껏 봉사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기계를 돌보는 분이 있습니다. 전기를 위해서 수고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정성을 다하여 수고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고 은혜를 빌어야합니다.

결혼식 하는데 수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청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혼식 끝난 뒤에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사례금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같이 기뻐하게 해야 합니다. 어둔 데서 수고하는 사람을 돌보아야 합니다. 경비를 서고 차량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릴 때 예배에 은혜 주시고 밖에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복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도록 봉사하는 분들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

성전에 들어서면서 성전에서 수고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들은 레위족속이요 성전에서 섬기는 것이 이들의 본업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도록 하는 자들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 불의한 사람들, 동물들이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성전 안에 귀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값비싼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지기들은 그것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군사들이 무장하여 지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합니다. 항상 청소하고 관리합니다. 성전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합니다. 여호와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창문도 없는 건물입니다. 밤낮이 없이 불을 켜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 때 전기가 꺼지면 발전기를 돌립니다. 전기 기사는 지하에 발전기를 한 번씩 돌려봅니다. 우리는 거져 앉아서 예배드리지만 정성껏 수고하는 분들이 있어서 예배라는 작품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낮에 성전에 모여 축복하고 밤에도 모여 여호와를 송축해야합니다.

첫째로 밤은 암울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암울한 상황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전 안에 들어가면 밤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밤에 더욱 하나님을 잘 볼 수 있고 밤에 복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성전에서 밤의 의미를 깨달을 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밤을 맞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롯을 구하기 위해서 그돌라오멜 동맹군과 싸우고 원수가 생겼습니다. 많은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습니다.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밤이 왔습니다. 그에게 두려움이 오고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뭇별을 보면서 뭇별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그는 마음에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믿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죄없다’ ‘사랑스럽다’ ‘자랑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세웠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를 개척할 때 귀신들린 여자의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주인은 여종을 통해서 점을 치다가 유익이 끊어진 것을 알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실라를 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여서 밤을 맞았습니다. 그 밤에 바울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은 지진을 통해서 바울과 실라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때 간수와 그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였습니다.

둘째로 밤은 시간적으로 밤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밤에도 성전에 서서 수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게 감사해야합니다. 이들이 주님을 찬양하게 해야 합니다. 이들을 자기집 파출부나 머슴 부리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을 위해서 점심을 대접하는 분이 있습니다.

섬기는 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찬양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주일날 운전기사를 교회에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가는 데까지 기사를 데리고 옵니다. 기사는 주일날 가정에 가지 못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그를 주일날은 쉬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운전하고 그들을 쉬게 해야 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야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종들은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여기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주를 찬양합시다.” 하면 아멘 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예배 때 할 일은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모든 것으로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을 높이 들고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성소를 향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절을 보십시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성도들이 해야할 일은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는 일입니다. 송축하는 것은 하나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bless the Lord 라고 나옵니다. 순례 길을 걸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송축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축복해야합니다. 하나님도 축복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송축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이스라엘은 시온에 모여서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송축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분들에게 복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교회를 사찰하고 전기를 봉사하고 시설을 관리하는 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내 일처럼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을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분들로 인하여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그들을 감시하고 무엇을 팔아먹었나 하면 안 됩니다. 그늘진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축복할 대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마음껏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복을 주고 받습니다.

여호와를 송축합니다하면 봉사하는 자들이 아멘 해야 합니다. 그들이 너나 총축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성소를 향하여 송축해야합니다. 예배하는 자는 이런 마음으로 예배 드려야합니다. ‘당신들이 예배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일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이들을 축복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향하여 내 대신 수고한다고 겸손히 인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느 장로는 콧대 높고 어느 장로는 겸손하다고 평가합니다. 이들의 평가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들이 누구는 틀렸어. 누구는 좋은 분이야평가합니다. 이들의 평가를 말릴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비는 마음이 있고 복비는 행위가 있어야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시편 1341-시편 1343

요절 시편 1342절 밤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의 복

시편 134편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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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시편] 시편 140편 강해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승리하는 법 오요한 2011-12-09
146 [시편] 시편 139편 강해 하나님이여 나를 시험하소서 오요한 2011-12-08
145 [시편] 시편 138편 강해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오요한 2011-12-07
144 [시편] 시편 137편 강해 예배가 그렇게 소중한 이유 오요한 2011-12-07
143 [시편] 시편 136편 강해 감사 감사 또 감사 오요한 2011-11-04
142 [시편] 시편 135편 강해 특별한 소유로 택하신 하나님 찬양 오요한 2011-11-04
141 [시편] 시편 133편 강해,134편 강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오요한 2011-11-04
140 [시편] 시편 132편 강해 하나님이 어린아이처럼 기뻐 복을 주실 때 오요한 2011-11-04
139 [시편] 시편 130,131편 강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오요한 2011-11-04
138 [시편] 시편 129편 강해 등에 고랑을 파는 자들 오요한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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