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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시편 130,131편 강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11-04 00:00:00
조회수 : 2,64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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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0편 강해 죄의 수렁에 빠졌을 때 간절히 기다려야 할 것

말씀 시편 1301-시편 1308

요절 시편 1306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오늘 말씀도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시편 150편에는 참회의 시가 7편이 있습니다.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기도입니다. 51편이 대표적인 참회의 시입니다. 시편의 뒤쪽에는 대부분 찬양하는 시가 많습니다. 오늘 시편은 5권 중에 있는 2개의 참회의 시 중에 하나입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 속죄하는 시입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올라갑니다.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인은 깊은 구렁 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허물과 죄를 깊은 구렁으로 표현합니다.

시인은 죄로 인해 깊은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죄로 인해 떨어진 깊은 곳은 어둡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태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상태입니다.

이처럼 죄는 사람을 깊은 곳에 떨어뜨립니다. 깊은 영적 침체로 떨어뜨립니다. 어둡고 답답하고 무력한 상태에 빠뜨립니다. 벗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불평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합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고 심판을 받고 나중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시인의 죄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누더기 옷과 찢어진 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뉘우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죄악 가운데 주님께 자신이 개인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께 부르짖듯이 기도합니다.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시인의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큰 고통은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상 칠언을 말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물질적인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고통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깨어지는 영적인 고통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이런 영적인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영적인 고통을 느낍니다.

 

(사유하심이 주께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초리로 우리의 중심을 지켜보십니다. 죄악된 인간은 아무도 주님 앞에서 설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십니다.

시인은 죄를 발견한 후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우리가 기도 많이 하고 애걸복걸하고 금식한다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를 다 포기하고 긍휼을 구하며 나가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주의 밝은 눈으로 우리를 살피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완전히 자기 의를 부정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더 정직하다고 자기의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상대적인 의로 자신의 의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긍휼을 구해야합니다.

은혜로운 것은 주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탕자가 돌아와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버지는 용서하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 앞에 고통도, 실패도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는 죄 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악된 아벨이 드리는 제사를 받아주셨습니다. 십계명을 만들 때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속죄소를 두어서 죄를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연약함을 아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자신의 아들의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감찰하셨다면 아무도 성전에 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성전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용서 가운데 있고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회개함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우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진실한 회개입니다.

이미 용서하신 것에 대한 신앙적인 간증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나 자신도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밝은 빛앞에 누가 설 수 있습니까?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어서 스스로 알아서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역사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용서하셨고 지금도 용서하십니다. 저주가 무서워서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믿고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 영혼이 주를 기다립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인은 여호와를 기다립니다. 주님이 죄사함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주님의 용서를 바랍니다.

죄사함을 받기 전에 그는 밤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습니다. 파수꾼은 춥고 배고프고 피곤하고 졸립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주의 손이 누르고 진액히 변하여 여름 가물에 마른 풀과같았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아침이 오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파수꾼은 휴식을 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파수꾼은 아침을 기다립니다. 파수꾼의 기다림은 간절합니다. 파수꾼이 졸면 목을 잘라갑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진영이 다 죽습니다. 파수꾼이 졸릴 때 아침이 빨리 밝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사죄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를 용서하여 주시고 위로해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장로님이 운명을 앞두고 참회의 기도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죄를 생각하며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데 참회의 기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참회의 기도를 할 때마다 그때도 주님이 사랑했다고 용서했다는 말씀이 들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지만 회개한다고 하여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용서하셨고 우리는 그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용서한다는 말씀, 사랑한다는 말씀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7,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인은 여호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이스라엘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여호와를 바랄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여호와를 바라도록 권면합니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풍성한 구원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여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풍성히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어떤 죄악이라도 용서하십니다. 주님은 잔치를 준비하여 놓은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며느리와 잠을 잔 유다, 살인과 간음을 한 다윗, 아내를 팔아먹은 아브라함, 주님을 맹세하며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모든 사망과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사죄의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합니다. 사죄의 확신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시편 130편 강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말씀 시편 1301-시편 1308

요절 시편 1306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편 130편 강해 끝입니다.

 시편 131편 강해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음같이

말씀 시편 1311-시편 1313

요절 시편 1312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다윗의 시이고 성전에 올라가는 시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세를 말하는 시입니다. 3절의 간단한 시이지만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다윗은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는 성전을 지을 수 없습니다. 전쟁은 공평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도 잘못 사람을 죽인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다윗이 800번 이상 나옵니다.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다윗, 정직한 다윗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직하고 겸손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큰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은 마음이나 눈이 교만하지 않고자 힘씁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행위적으로 깨끗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칩니다. 세리는 자타가 아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고 진실하게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합니다.

집에서 평생을 충성한 맏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내가 친구들과 한 번도 파티하도록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기쁨도 겸손도 없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재산을 잃고 온 탕자가 겸손하게 돌아오니 아버지는 그를 기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자 약속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은 남을 허무는 것입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상대적인 의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보다 조금 낫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며 겸손한 것이 의를 행하며 교만한 자보다 낫습니다. 어거스틴은 의로움보다 겸손이 낫다고 합니다. 물론 의로우면서 겸손한 것이 최고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전화는 반갑지 않습니다. 잘나 보았자 그렇고,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낫지 않은 것입니다.

대부분 회사에서 85프로가 쫓겨난다고 합니다. 교만하여 쫓겨납니다. 우리 주위에 여러 경제적인 문제, 병이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몇푼 있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업적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높은 곳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높이를 낮추었습니다. 그는 높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이나 놀라운 일을 하고자 힘쓰지 않습니다.

큰일 한다고 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습니다. 삼일절 사건에 안창호 선생의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사람 하나 죽이면 한국 사람이 백 명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입니까? 나라는 잃어버렸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거짓이 많습니다. 공부를 안 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해서 나라가 독립되는 것보다 거짓말하지 않고 식민지로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다가 죽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어린애에게 선물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가다가 죽었습니다.

애국이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큰 일을 하면 작은 거짓말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작은 정직이 먼저입니다. 큰 일을 한다고 하면서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철학입니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고 합니다. 결과와 목적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큰 일을 힘쓰는 자는 작은 일도 선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감당치 못할 일을 힘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거리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그런 일도 모르고 뭐하시냐고 합니다. 자기가 공부는 안 하고 합격만 시켜달라고 합니다. 거짓말하면서 사업만 잘하게 해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연대 100주년 기념관이 있습니다. 대기하는 곳이 지하실입니다. 그곳에 물이 흐릅니다. 축축합니다. 겉에는 건사하지만 속은 썩었습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 가서 만든 것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돼지머리 갔다 놓고 굽신거린다고 다리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고 진실해야합니다. 이 모습 그대로 좋습니다. 주신 일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능력도 없으면서 큰 일을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을 해야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야합니다.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젖뗀 아이같이 평온하다)

 

2절을 보십시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다윗은 자신을 어린 아이에 비유합니다. 그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서 평안하듯이 그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욕정과 미움을 버리고 나옵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이런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그는 젖뗀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신뢰하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탁하였습니다. 젖을 먹을 때는 아이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맨처음 배우는 것이 젖떼는 것입니다. 젖을 떼면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오십이 되도록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것이 교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젖을 떼는 시간이 네 살입니다. 네 살까지 젖을 먹습니다. 네 살 전에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우리는 젖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젖을 뗄 때에 젖꼭지에 쓴 약을 바릅니다. 며칠 바릅니다. 아이는 젖을 뗍니다. 이제는 아이가 젖 때문에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품이 그냥 좋습니다. 다윗은 이런 마음과 같이 평안합니다. 내 소원대로 내 욕심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때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합니다.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듯이 하나님을 바라야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야합니다. 항상 하나님 한 분만을 소망하며 의지해야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실 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죄사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시편 131편 강해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음같이

말씀 시편 1311-시편 1313

요절 시편 1312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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