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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예레미야 1장 강해 여러 민족의 선지자 예레미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12-30 00:00:00
조회수 : 3,74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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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장 강해 여러 나라의 선지자

예레미야 11-예레미야 119

예레미야 15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는 유다 왕 요시야 13년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는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되던 BC 586년까지 약 40년에 걸친 격동기 동안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신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듣고 주신 사명을 새로운 자세로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레미야 소개)

 

1절을 보십시오.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는 예레미아서의 주인공으로, 베냐민 지방 아나돗의 사제(司祭)인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나돗은 쫓겨난 제사장이 살던 곳입니다. 예레미야는 젊어서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활발한 예언자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율법을 무시해 온 이스라엘인들을 향하여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노여움으로 채찍이 가해질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나라가 패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얼마 후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를 후대하여 유대에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유대 고관을 살해한 동포들의 강요로 그는 이집트로 갔고, 얼마 후 그곳에서 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예레미야)

 

2절을 보십시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아는 남유다의 16대 왕으로 bc640- 609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요시야가 즉위하기 전에는 포악한 므낫세와 아몬이 통치하면서 앗스르의 간섭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으니 예레미야가 활동할 당시는 21살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요시야는 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부르고 20세에 죄로 더럽혀진 예루살렘과 유다를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상을 철저히 제거하였습니다. 26세 때는 성전 보수공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성전 수리를 하다가 헌금 통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들으며 전국적으로 회개운동을 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는 앗수르를 치러 오는 애굽왕 느고를 맞아 싸우다가 전사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를 슬퍼하는 애가를 불러 노래하였습니다. 요시야가 다스린지 13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시대배경)

 

3절을 보십시오.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여호와김왕은 요시야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에 앞서 여호와아스는 삼개월 왕위에 있다가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여호와김은 이복동생 여호와아스를 대신하여 25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을 다스렸습니다. 애굽왕 바로느고는 공물을 많이 요구하였으므로 여호와김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겼습니다. 그는 부정한 짓을 하고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여호와김이 왕으로 있는 동안 애굽 세력이 쇠퇴하고 바벨론 세력이 강하여졌습니다. 여호와김은 삼년 동안 바벨론을 섬겼으나 나중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을 받은 예루살렘은 결국 함락되었고 그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는 친바벨론 정책을 펴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긴은 여호와김의 아들입니다. 그는 bc 597년부터 삼개월 십일 동안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개인 이름은 고니야 혹은 여고냐로 불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죽은 후에는 다른 왕보다 높이 대우 받고 왕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았습니다. 시드기야는 여호와김의 아들 여호와긴이 사로 잡혀간 후에 유다의 꼭두삭시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긴 왕의 삼촌이고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21살에 왕이 되어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까지 11년간 왕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에게 친 바벨론 정책을 쓰라고 하였으나 그는 예레미야 말을 듣지 않고 친 애굽 정책 반 바벨론 정책을 썼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굴 속에 갇혔다가 시위대 뜰에서 떡 한덩이를 먹고 살다가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다시 시위대뜰에서 살았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이미 바벨론에 항복한 유대인에게 조롱당할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11년때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당하니 도망가다가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혔습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는 눈이 빠져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아셨습니다. 배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구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그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선지자로 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이고 절대적입니다. 일벙적인 은총입니다. 그는 유다왕 요시야 13년인 BC 627, 20세의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되던 BC 586년 까지 격동의 40년 동안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앗수르, 애굽과 같은 기존의 강대국들이 기울어가고 바벨론이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때였습니다. 이 시기에 유다의 영적 타락은 최악이었습니다. 므낫세 55년 통치 기간 내내 행해진 각종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유다를 향하여 타오르는 하나님의 진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젊고 의욕에 넘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으로 유다는 일시적으로 부흥하는 듯 했지만 그 뒤를 이는 여호와아스, 여호야김, 여호와긴, 시드기야 왕의 불신앙과 이미 깊이 뿌리 내린 백성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은 점점 더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아 활동했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의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때였습니다.

 

(열방의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에 예레미야 한 사람을 부르사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열방의 선지자란 유다뿐 아니라 애굽과 바벨론, 모압과 암몬, 더 나아가 세상 모든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스케일이 큰 말씀의 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열방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만민 구속 역사를 섬기는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가 감당할 사역의 범위 면에서 참으로 스케일이 크고 세계적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겨우 유대 땅만 바라보고 사역을 감당하는 유대의 선지자가 아니라, 세계 열방을 바라보고 말씀을 전하는 열방의 선지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횡적인 면에서 유대라는 자기 울타리를 넘어 광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적인 면, 부르심의 깊이 면에서 볼 때 심원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부르시기까지 그 준비가 얼마나 깊고 심원한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어머니의 복중에 짓기 전에 이미 그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가 형성 되기도 전에 벌써 그의 성격과 기질, 장단점, 쓰임새 등 인격적으로 그의 모든 것을 아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그를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용도로 쓰기 위해 그를 따로 떼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그를 특별하게 쓰시고자 따로 찜! 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이미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워버렸습니다. 세웠다는 말은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어머니 뱃속에서 이 사실을 알리 만무합니다. 아마도 그는 청년의 때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이를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의 부르심이 하나님의 오랜 계획과 준비 가운데 이루어진 심원한 것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의 부르심이 하나님의 오랜 준비와 작정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가리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1:15)"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 사람을 한국과 세계 캠퍼스의 목자로 부르신 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사람이나 조직이나 내 자신의 의지와 결단 이전에 근본적으로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복중에 짓기 전 부터 그 용도를 아셨고 태에서 나오기 전 부터 특별하게 쓰시고자 구별하셨고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 시대의 목자들로 임명하여 세우셨습니다. 우리를 목자로 부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을 내 자신이나 사람이나 조직에서 발견하고자 할 때 반드시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게 됩니다. 부르심 문제로 갈등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다 허비합니다. 우리가 이번 말씀을 통해 나를 목자로 부르심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말미암았음을 깊이 영접해야겠습니다. 이 부르심의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역사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같은 예레미야)

 

6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예레미야는 슬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는 말을 잘해야 하는데 그는 아이와 같이 젊어서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에레미야 나이는 십오세 정도였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을 16세로 잡습니다. 그는 아직 선지자의 경험이 없고 능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스케일이 크고, 심원한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부르심 받은 자신의 현재 형편을 바라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이에 불과함을 알았습니다. 현재 그는 15세의 청소년으로 열방의 선지자가 아니라 시골 제사장이 되려 해도 15년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만큼 인생 경륜도 부족하고 권위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어리고 부족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깊이, 세상의 시대정신과 문화에 대한 이해, 인생을 보는 시야에 있어서 좁고 부족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 시대의 거대한 이방 문화와 도도한 죄의 세력 앞에서 그는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대제국들인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을 포함한 주변 열방들을 상대로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편과 부족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기 어려워 주저하며 슬퍼했습니다.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아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에게 할 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대답을 듣고 그 부르심을 포기하거나 변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변명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에 능치 못한 자라고 변명하자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4:10,11).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고자 오래 전에 작정하시고 부르실 때에는 그의 부족한 인간 조건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예레미야의 어떤 인간 조건을 보고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가 어머니 태에서 잉태되기도 전에 그를 알았고 또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를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간조건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그를 택하신 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예레미야는 자신이 어리고 말할 줄을 모르는 것으로 절망하고 있지만 반대로 그가 나이 많고 말 잘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의 절대 주권이요,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현재 나의 부족한 인간 조건과 상황을 핑게로 부르심을 거부하거나 변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이 누구에게 보내든지 순종해서 가야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든지 예레미야는 가서 말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에 대해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나름대로 변명을 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인생 경험이 풍부하지 못해서, 충분히 훈련되지 못해서, 말재주가 없어서, 심정이 부족해서, 심령이 담대하지 못해서, 믿음이 어려서, 심지어 나는 키가 작고 풍채가 없어서...라고 구구절절 핑계를 댑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신앙적이고 겸손하게 나는 죄악되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겸손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자기의 부족한 점을 주장하고 고집하는 불의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여태껏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이렇구 저렇구 변명이 많았던 점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면 누구에게나 가고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순종의 종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실제적인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8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예레미야는 그가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할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두려움은 경배의 대상으로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 생명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스포츠 경기에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면 경기에서 집니다. 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욥기에 두려워하면 그것이 내게 임합니다. 나의 생명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여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까지 죽지 않게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부족한 자신으로 인해 슬퍼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반발을 사고, 조롱당하고, 핍박당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축복과 위로의 메시지는 좋아하지만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 부담스러워하고 심령이 뒤틀려 성난 소처럼 달려듭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그의 심판 메시지로 인하여 여러 왕들, 제사장들, 거짓 선지자들, 일반 백성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사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고향 사람들로부터는 암살 위협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보편적인 시대정신은 상대주의입니다. 이는 세상에 절대 진리는 없다는 사상입니다. 이 시대는 마치 왕이 없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와 같습니다.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가치 기준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권위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캠퍼스 젊은이들은 복음진리를 역설하면 마치 중세 시대 사람이라도 대하듯 쳐다봅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도 회개와 순종,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가르치면 반발합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해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가르치면 혈기를 내고 대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분명히 회개를 촉구하고 십자가 지는 삶을 가르치기보다 적당히 가르치기 쉽습니다. 분명히 책망하고 도와야 할 죄문제를 보고도 눈치를 보며 위로와 격려의 말만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보호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종은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모든 두려운 상황에서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의 사명이 다할 때 까지 결코 굶어 죽거나 맞아 죽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모든 족속을 제자삼으라고 명령하신 주님께서도 그 사명이 다하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8:20).

 

(뽑고 건설하는 예레미야)

 

9,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넣어두십니다.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예레미야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치 않는 나라들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릴 것입니다. 죄의 세력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심판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듣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는 건설하고 심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회복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완력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방의 운명을 예언하고 선포하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여 넘어뜨리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뽑고 파멸시키고자 하시는 것은 유다와 열방을 지배하고 있는 죄와 사단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도 헛된 우상을 섬겼습니다(2:11,3:2). 그들은 이땅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 이방 문화가 판을 치고 사회는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더럽히는 우상과 이방문화, 그리고 유대의 불신앙을 뿌리째 뽑아내고자 하셨습니다. 열방들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였습니다(48:26). 하나님보다도 물질을 더 의지하고 자랑했습니다(48:7,49:4). 육신의 쾌락과 안일을 구했습니다(49:31).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교만을 넘어뜨리며,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세운 모든 이론과 사상을 파괴하고 파멸하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심판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심고 건설하는 회복의 역사도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 마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유일신을 섬기게 하십니다. 성령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십니다. 이는 장차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새 역사에 대한 비젼입니다(31:31-34).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 시대 백성들의 심령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고, 장차 오신 예수님을 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의 종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한국과 세계 열방 캠퍼스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열방의 목자들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과 세계 열방 캠퍼스의 운명을 손에 쥔 열방의 말씀의 종들입니다. 말씀을 맡은 우리는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그 말씀이 실제적인 열매를 맺을 때 까지 뽑고 파괴하고 심고 건설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날 지성인들 심령 깊이 뿌리 박힌 죄의 뿌리는 교만과 정욕과 세상욕심입니다. 힘찬 사명인의 인생을 살기보다 영적 힘을 잃고 비실비실 하는 사람들의 내면 문제를 들여다 보면, 교만과 세상 욕심과 정욕이 그 심령에 강하게 뿌리를 내려 영적 소원을 앗아가고 심령을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죄를 말씀의 곡괭이로 파내어 뿌리 뽑고, 그 심령에 거룩한 소원과 열정을 심어야 합니다. 또한 젊은이들 심령 깊이 넓다란 바위처럼 떡 버티고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IMF 이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워 먹고 살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명인의 인생을 살다가도 굶어 죽을 것 같은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영력을 상실하고 얼굴이 시컴해집니다.

저는 지난 한 해 이런 문제에 빠진 여러 사람들을 도우면서 이 문제는 취직 문제라기 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문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신앙의 돌을 약속의 말씀의 정을 들고 회개의 망치로 깨고, 성령의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믿음의 반석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회개의 불도저로 밀어버려야 할 것은 인본주의와 교만의 장벽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의 철학은 모든 절대 가치를 부정하고 나의 생각과 감정대로 사는 나대로 것이 인생 철학입니다. 갈수록 지성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는데 더딥니다. 이런 교만과 인본주의의 장벽이 베를린 장벽과 같이 견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물러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함으로 이들의 심령이 회개하여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 되도록 까지 도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고한 대로 오늘날 사람들의 심령은 이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딤후3:1-5). 우리는 오늘날 지성인들의 심령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이런 죄의 세력을 회피하기보다 도전하고 싸우는 파이팅 스피릿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 뿌리 박힌 죄의 세력뿐 아니라 각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는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거룩한 소원을 심고, 절대 복음신앙을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양성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의 죄악과 싸워 복음적인 제자들을 세워 나갈 때 캠퍼스에 하나님 나라가 건설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막연하지 않고 결실을 위해 수고하는 농부와 아름다운 집을 완성하기 위해 수고하는 건축자의 경우와 같이 아주 실제적인 고난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시대 맡겨주신 지성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에 대해 철저히 도전하여 싸우기보다 적당히 덮어두고 타협함으로 조금은 편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결코 제자양성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구나무 가지 환상)

 

11,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살구나무는 봄의 전령입니다. 제일 먼저 사인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정확히 보았다고 인정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살구나무를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보다 보호하다 지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적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여 바벨론에 간 자들도 끓는 불 속에서 사자 속에서 보호하여주십니다.

 

(끓는 가마 환상)

 

13-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다시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보느냐는 질무에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가마는 용광로입니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마가 끓고 있음은 하나님의 분노가 끓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꿇는 가마가 북에서 기울어진 것은 바벨론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질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부르십니다. 바벨론을 부르십니다.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가기 자리를 정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실 것입니다. 여호와가 하신 말씀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마가 아직은 기울어졌고 완전히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끓는 가마를 막는 길은 바로 유다의 회개입니다

 

(우상숭배를 징계하심)

 

16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분향하였습니다. 자신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였습니다. 그들은 경배의 대상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경배합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은 먹고 사는 것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우상이 들어온 것을 알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렸는지 버리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재사장은 법조인과 의료인이 하는 것을 합니다. 그들은 분별력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계열에서 뽑아쓰십니다. 하나냐도 제사장 출신입니다. 아나돗은 비정통계열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냐는 정통계열의 선지자입니다. 그도 토라를 알았습니다.

 

(두려워말라)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하나님은 그러므로 에레미야가 허리를 동이고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유다사람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바를 다 그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받을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해서 은근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도우십니다.

 

(예레미야를 놋성벽이 되게 하심)

 

18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오늘 예레미야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지도자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이 되게 하십니다. 견고한 성읍에서 보호하십니다. 쇠기둥과 놋성벽이 되어 적이 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쇠기둥은 위엄과 힘이 있습니다. 놋성벽은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여 그를 구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일반 백성들 까지 그를 치며 대적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마치 쇠기둥으로 요새화되고 놋성벽을 두른 듯한 난공불락의 성과 같이 강하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치나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두렵게 하여 낙담시키거나 사명에서 떠나게 하거나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그의 생명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같이 강렬한 약속을 주심으로 그가 확신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일생동안 예레미야와 함께 하셔서 모든 어려움으로 부터 그를 구원하셨습니다(39:11-14).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가 감히 상하게 하며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강력한 약속을 믿고 부르심과 사명을 순종하여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죄악을 뽑고 파괴하며, 복음을 심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꾼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목자의 삶, 제자양성가의 삶을 살도록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국과 세계 233개국 캠퍼스에서 이 일을 하도록 열방의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대해 나는 아이라고 하는 핑게와 불신과 교만을 회개해야겠습니다. 또한 느슨한 마음으로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고자 했던 안일과 적당주의를 회개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11 말씀 역사에 주력해야겠습니다.

예레미야 1장 강해 여러나라의 선지자

예레미야 11-예레미야 119

예레미야 15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 1장 강해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 [예레미야] 예레미야 2장 강해 생수의 근원 하나님을 버린 죄 오요한 2013-04-15
1 [예레미야] 예레미야 1장 강해 여러 민족의 선지자 예레미야 오요한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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