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데살로니가전서 3장 강해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1-07-09 10:50:25
조회수 : 412
데살로니가전서 3장 강해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 
데살로니가전서 3장 1-데살로니가 3장 13
요절 데살로니가전서 3장 6절

게리 주커브의 《영혼의 의자》 중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남편이나 아내와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사랑과 믿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워야한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믿음 없이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 관계에서 믿음에 기초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여러 시험 중에도 예수님과 바울에 대해서 믿음과 사랑을 견고히 지켰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기쁜 소식 곧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믿음과 사랑이 있었을 때 그들이 있는 곳이 천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다 받으신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우리의 삶과 관계없이 추상적으로 생각합니다. 복음은 실제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서로 믿고 사랑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불신하고 미운 사람이 있고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복음을 잘 모르는 분입니다. 이들은 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적인 믿음과 사랑의 복음을 배워 우리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고난을 위해서 세움을 입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이차 전도 여행 때 빌립보를 개척한 후에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삼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의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행17장)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하여 시장의 깡패를 데리고 와서 바울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가이사 외에 다른 왕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반역자라고 정치적인 이유로 고소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피하여 밤에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도망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들에게 앞으로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과연 그들에게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고난당하는 것을 참다못해 자신들은 아덴에 남아 있기로 하고 바울의 형제이며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일꾼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세워주고 그들을 격려해서 그와 같은 곤경 속에서도 동요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환난이 찾아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것은 환난을 말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환난을 받도록 되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도 환난을 받으셨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환난을 받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는 자에게 환난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치고 환난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왜 환난을 주실까요? 사람들은 환난을 통하여 순수 신앙을 갖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용광로 속에 들어가야 순금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환난의 용광로에 들어가야 순수 신앙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예수님을 믿지만 순수하지 못한 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지만 세상도 사랑합니다. 예수님도 기쁘게 하지만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합니다. 환난은 이런 불순물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환난을 식물을 자라게 하는 태양에 비유하였습니다. 태양 빛이 있어야 식물이 자라듯이 환난이 있어야 우리 신앙이 성장합니다. 햇빛이 식물에 탄소 동화작용을 통하여 에너지를 공급하듯이 환난도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환난은 조각가가 조각을 하기 위해서 돌을 떼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돌의 편에서 보면 돌을 떼어내는 것은 아픈 과정입니다. 하지만 돌을 떼어내야 조각가가 만들고자 하는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조각하기 위해서 환난의 망치로 우리를 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쪼아내시고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만드십니다. 신자에게 환난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자들)

5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그런데 이런 환난을 받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환난의 때에 시험하는 자가 찾아옵니다. 이를 이용하여 어떤 자는 바울과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시기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시험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양을 버리고 도망한 삯군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의 때에 시험하는 자가 와서 이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참다 못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서 믿음을 심고자 하였습니다. 시험하는 자는 환난의 때에 어떻게 일을 할까요? 그는 우리를 천사처럼 매우 사랑하는 사람처럼 찾아옵니다. 우리를 다 이해해주는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너 예수 믿으니까 힘들지. 그래 힘들거야. 바울이 너를 이해할 것 같냐? 바울도 힘들으니까 너희를 버리고 도망갔잖아. 바울도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니?”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다 맞는 말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서 의심하고 불평불만하게 합니다. 결국은 시험하는 자는 자신의 말을 듣게 하고 목자와의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 다음은 성도들 간에 불신을 심습니다. “이 교회에서 너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예수님은 좋지만 이 교회는 좋지 않아, 이 교회를 떠나!” 그래서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교회는 떠나도 예수님은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음에 시험하는 자는 말씀을 받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불신을 심습니다. 스스로 떠나고 나서 나는 혼자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라고 말하여 자연히 말라 죽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이렇게 서로 불신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지옥의 분점이 됩니다. 바울은 이런 시험하는 자의 시험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빠질까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하여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신을 극복해야합니다. 

(믿음을 굳게 하는 디모데)

1-3a을 다시보십시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를 거쳐서 아덴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여러 상황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갈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참다못해서 아덴에서 베뢰아에 남아 있게 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습니다. 바울은 1절과 5절에 ‘참다못해서’ 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1,5)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불신에 빠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3주뿐이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 가장 단기간에 세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너무나 어렸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홍역이 찾아온 것과 같아 보였습니다. 어린아이는 홍역을 앓다가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지금까지 노력은 다 허사로 돌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이 흔들릴까봐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직접 만나 돕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그럴 수 없어서 바울은 참다못해서 가장 신뢰하는 아들과 같은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그들의 환난을 위로 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아무도 불신과 미움에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예수님 안에서 바울의 형제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과 마음이 딱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디모데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목자가 해야 할 일은 양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로해 주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도 흔들리고, 사업에 성공해도 흔들리고, 성적이 떨어져도 흔들리고, 성적이 올라가도 흔들리고, 성도간에 싸워도 흔들리고, 인간적인 사랑을 해도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때 목자는 그들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도와야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디모데)

6절을 보십시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바울은 아덴을 떠나 지금 고린도에 있습니다.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에 갔던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돌아왔습니다. 디모데가 와서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행18장4절)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변함없이 믿고 사랑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왔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서 믿음이 더 순수하고 성장하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되었다고 전하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울이 그들을 간절히 보고자 하는 것처럼 그들도 목자인 바울을 간절히 보고자 한다고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시험에도 불구하고도 바울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난을 받으며 그들과 같이 환난을 받은 목자 바울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항상 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씀이 바울에게 항상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고 나옵니다.(you always have pleasant memories.) 그들은 바울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우리는 목자에 대해서 동역자에 대해서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해야합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좋은 기억으로 가득해야합니다. 바울은 좋은 기억으로 가득 있다는 이 소식이 좋은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소식을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복음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고 하면 불평불만을 좋아 놓는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사단에 속지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신뢰할 뿐 아니라 간절히 보고자 해야합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간절히 보고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가정에 가면 부모가 싫고 교회에 가면 성도들이 부담스러우면 그 사람은 지옥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양을 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양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양들을 신뢰하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들이 목자를 신뢰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를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도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를 신뢰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아들 요한이에게 열심히 돈을 벌어다주고 사랑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 요한은 내가 싫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내와 싸웠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보다 내가 아내와 사랑하며 사는 것을 더 원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위로를 얻은 바울)

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현재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며 궁핍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핍박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욕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모욕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환난을 각오했지만 환난이 계속되니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디모데가 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중에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변치 않는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로 인해서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말씀에 사로잡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써 전하였습니다. 

(믿음에 선 양들로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그들의 소식을 들으니 죽어가던 마음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을 도우신 하나님께 어떤 감사로 감사를 드려야할지 몰라 했습니다. 바울은 이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혀서 힘써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18:5) 고난을 각오하고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목자는 양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목자를 신뢰할 때 기뻐합니다.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때 기뻐합니다. 목자를 신뢰하고 간절히 보고자 하면 목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제자양성을 참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고기 잡으러간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다! 라고 하였을 때 베드로는 물에 풍덩 뛰어들어가 예수님께로 나갔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 싶어 예수님께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복음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심룻 목자님이 이주 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옷도 돈도 없이 추운 겨울에 집을 나가서 5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애가 탔습니다. 저도 심룻목자님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부탁하면 기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전화하여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극적으로 5일만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잠간 정신이 들어서 새벽 두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7만오천원의 택시비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이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단은 심룻목자에게 자신을 위해서 섬기고 사랑하는 가족에 불신을 심습니다. 가족들이 해주는 밥도 의심이 생겨서 먹지 않습니다. 정신이 나갔을 때 내가 가면 이 사단 새끼야 가라고 말합니다. 사단은 그에게 가족들에 대한 불신을 심어서 집을 나가게 한 것입니다. 불신으로 가족들과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잠간 하나님이 제 정신을 주어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들어 돌아온 것입니다. 잠간이라도 믿음과 사랑이 생겨 돌아왔을 때 가족과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불신과 미움은 큰 고통을 주고 믿음과 사랑은 큰 기쁨을 줍니다. 불신과 미움은 지옥을 만들고 믿음과 사랑은 천국을 만듭니다. 저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매번 기도할 때마다 심룻목자를 위해서 기도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나의 기도에 동참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에 갈 수 있는 길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야로 심히 간구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고자 하였습니다. 목자는 자신의 몸이 내 것이 아닙니다. 눈도 입도 시간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심방 갈 수도 없습니다. 양도 나의 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역사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해서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야 합니다. 바울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달라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기도를 먼저해야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같이 너희도 사랑이 많아져서)

12절을 보십시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환난이 사라지도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돈을 잘 벌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최종적인 열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첫째 열매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형제를 사랑해야합니다. 사단은 서로 미워하게 합니다. 서로 싸우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낙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종교적인 의무는 행하며 사랑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고 봉사를 하더라도 다 헛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서로 싸우고 죽인 것은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의만 있지 십자가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내가 희생하므로 정의를 세웁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안다면 내가 희생하므로 정의를 세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희생하므로 공의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죄악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죄인을 벌주셔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정의도 세우고 사랑도 하셨습니다. 왜 사랑을 외치는 많은 사람이 싸웁니까? 결국은 자신이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희생하고 죽음으로 정의를 세워야합니다. 남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아내, 남편, 자식을 사랑하게 해달고 기도해야합니다. 뜨거운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풍성한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면 원수라도 녹아집니다. 사랑할 때 악한 사람이 변화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같이 사랑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먼저 성도들을  자신이 먼저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의 본을 보이면서 서로 사랑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가정과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그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사랑을 영접하고 스데반은 돌로 치는 자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바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여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를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받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직적 사랑이 먼저입니다. 목자는 미운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미운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 받는 사람도 변화됩니다. 변화된 후에는 그 사람이 가장 목자를 사랑하고 목자를 자랑하며 다닙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부산의 수영로 교회의 정필도 목사님은 미운 사람이 생기면 특별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분은 체험이 있습니다. 한 비방하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위해서 특별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그를 보면 막 끌어안고 싶어졌습니다. 그 집사가 변화되어 돈도 안 받고 정필도 목사를 자랑합니다. 사랑하면 변합니다. 사랑하면 달라집니다. 목자가 사랑이 있어야 그 교회에 사랑으로 기도를 합니다. 성프란시스가 밤에 있는데 문둥병자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가 방에 들어왔는데 문둥병자가 춥다고 안아 달라고 합니다. 그를 안아주었는데 집안이 정리되고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문둥병자의 모습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누구를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길문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길문제를 해결하며 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길을 막은 조씨에 대한 미움입니다. 시청과 동사무소를 찾아가며  일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다보니 그들은 이 일에 끼어들고 싶어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공무원들까지 미워지고 정부도 미워졌습니다. 저는 미움으로 인간적인 싸움을 싸우고자 한 것을 지난 가을 수양회 때 회개하고 기도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길을 담을 헐어서 내주셨습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대 의치약대에 바로 갈 수 있고 주차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강림하실 때까지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지식과 체험을 통해서 굳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죄에 빠지지 않게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을 굳게 하여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휴거한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흠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다 같이 들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세상 떠날 때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관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양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그러나 목자는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흠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가 죽을 때 믿음으로 죽어야합니다. 미움과 불신이 없이 믿음과 사랑으로 죽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은 믿음으로 살다가 주일날 계돈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계돈을 주지 않자 열이 받아서 싸우다 뇌혈관이 터져서 죽었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은 술을 먹고 친구들과 싸웠습니다. 친구가 밀었는데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나이트클럽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트 클럽에 불이 나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불륜을 하다가 들켜서 도망가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죽음입니까? 어떤 분은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새벽기도하고 목욕재계하고 잠깐 잠을 들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 죽었습니다. 어떤 분은 새벽기도 기다가 교통사고 나서 죽었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죽는 것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입니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준비된 상태로 살아야합니다. 목자는 성도가 믿음으로 죽어야 안심합니다. 불신과 미움을 회개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 때 천국에 가야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딱 들어가는 것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단은 여러 환난 날에 우리에게 불신과 미움을 심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미움과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 보고 싶은 사람이 될 때 우리의 가정이 천국이될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천국 분점을 을 가정과 교회에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데살로니가전서 3장 강해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 
데살로니가전서 3장 1-데살로니가 3장 13
요절 데살로니가전서 3장 6절
데살로니가전서 3장 강해 끝입니다. 
찬송가 38장 
찬송가 220장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639 [골로새서] 골로새서 1장 삼부 복음의 일꾼 바울 천안UBF 2021-07-09
638 [골로새서] 골로새서 1장 강해 이부 교회 머리되신 예수님 천안UBF 2021-07-09
637 [골로새서] 골로새서 1장 강해 일부 복음의 열매 천안UBF 2021-07-09
636 [데살로니가후] 데살로니가후서 3장 강해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천안UBF 2021-07-09
635 [데살로니가후] 데살로니가후서 2장 강해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자세 천안UBF 2021-07-09
634 [데살로니가후] 데살로니가후서 1장 강해 핍박과 환난의 의미 천안UBF 2021-07-09
633 [데살로니가전] 2019감사제 메시지 천안UBF 2021-07-09
632 [데살로니가전] 데살로니가전서 5장 강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 천안UBF 2021-07-09
631 [데살로니가전] 데살로니가전서 4장 강해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라 천안UBF 2021-07-09
630 [데살로니가전] 데살로니가전서 3장 강해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 천안UBF 2021-07-09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