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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누가복음 15장 강해 이부 아버지의 크신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20-01-08 00:00:00
조회수 : 44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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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강해 이부 아버지의 크신 사랑

누가복음 1511-누가복음 1530

요절 누가복음 15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오늘 말씀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죄악된 인간과 그 죄를 극복하는 인간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를 떠난 막내에게도 나타나고 아버지 옆에 있는 맏아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교회를 떠나 있는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버지는 유산을 나눠주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두 아들이 있었고 품꾼들도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습니다.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자녀들을 대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거룩하시므로 자녀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 열심히 일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말씀공부를 돕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였습니다. 매주 주일을 지키고 아버지를 공경하며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정욕을 멀리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하였습니다. 남의 물건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천대까지 은혜를 받는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첫째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안에서 자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들은 나이트도 가고 연애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머리에 물들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주일날 마음껏 바캉스를 가고 해외 여행다니는 모습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재산 관리도 자신이 한다면 더 잘 할 것 같았습니다. 형의 그늘에 가려서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성실하고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고지식하게 보였습니다. 둘째는 불만을 겉으로 표출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습니다. 차자는 삼분의 일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산은 말 그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자식들에게 물려 주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는 것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무례한 짓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지 않고 내 맘대로 살겠다는 표시입니다. 둘째는 사실상 마음 속에서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아버지는 그가 아버지 곁을 떠날 때 고생할 것을 뻔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패륜아라고 뺨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인격을 존중했고 신뢰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아들이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들을 믿어주었습니다. 나누어주고 잔소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재산을 나누어주고 기다렸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믿어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는 아직 요구하지 않은 첫째 아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려죽게 되었습니다)

 

13-16절을 보십시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자신의 요구대로 유산을 받은 아들은 며칠은 아버지 옆에서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못되어 재산을 처분하여 돈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가 먼 나라로 가서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 나라로 간 그는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창녀와 함께 놀아나고 돈을 물 쓰듯이 썼습니다.

그의 돈이 바닥 날 무렵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돈이 있을 때 찾아오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났습니다. 그는 비로소 궁핍해졌습니다. 그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직장을 찾다가 결국은 3D 업종의 하나인 돼지치기로 취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였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자신 하나도 먹고 살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돼지가 먹는 돼지 사료인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어도 돼지가 빼앗아먹어 굶주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도록 감시하였습니다. 그는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풍성한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였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재수 없게 흉년이 찾아온 환경 탓을 하거나 자신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자학하지 않았습니다. 자살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잡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마음대로 산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아버지를 떠난 것이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서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은 죄악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발견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나같은 놈은 구제불능아라고 생각하고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인격적인 사랑의 아버지였습니다. 자신을 보낼 때 아버지가 안타까워하시던 얼굴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조차도 풍족하게 지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들려오던 아버지 집의 분위기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굶어죽느니 아버지 집에서 종으로라도 취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비록 염치가 없지만 아버지를 무시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죄와 회개에 대해서 배우는 점)

 

우리는 탕자를 통해서 죄가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떠하고 회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행복했습니다. 에덴동산의 풍요와 자유를 누렸습니다. 영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인간은 더 자유롭고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은 떠난 인간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자 자의식과 두려움과 원망이 찾아왔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민족은 가난과 질병과 사망권세에 시달립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나라도 있기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영생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음란한 문화를 즐깁니다. 정욕적으로 문란하고 동성애까지 발전합니다. 살인과 시기와 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습니다. 죄의 결과 불과 유황으로 타는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저주 아래 있는 인간에게 해결책은 회개에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는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무시한 데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안기는 것입니다. 회개한 자는 하나님을 나의 마음에 왕으로 모셔드립니다. 하나님을 나의 마음 속에서 경외하고 존중히 여겨드립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회개는 한 번 예배 빠지고 헌금 드리지 않은 것을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모욕하고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들을 기다리다 달려나가 입을 맞춘 아버지)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후에 그런 궁핍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 놓일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습니다. 그 날부터 아버지는 문도 잠그지 않고 주무셨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항상 동구 밖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여 변함없이 기다렸습니다.

그 날도 아버지를 동구 밖을 보다가 멀리서 희미하게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걸음걸이만 보고도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거리가 먼데도 맨발로 뛰어 나갔습니다. 아들이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리니 아버지가 먼저 돌아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아들을 영접해주셨습니다. 그의 과거 죄를 다 용서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여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살아온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은 아버지)

 

21-24절을 보십시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둘째아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죄악된 자신은 이제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 채용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품꾼으로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서 아들로서 권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고 악단과 덴서까지 동원해서 잔치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로 인하여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아들이 금의환향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존재자체로 기뻐하였습니다. 죽었다가 살아온 그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통해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아버지는 얘, 돈 얼마나 썼니? 얼마나 남았니? 몇 명의 여자와 만났니?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자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다만 현재와 미래에 관심을 갖고 새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보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네가 떠났다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떠난 것도 내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희생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아들을 사랑해서 송아지를 죽였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때 싫어하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첫째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송아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잡으심으로 우리에게 십자가의 살과 피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는 우리들의 참된 음료요. 참된 양식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십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그러나 내가 먹여주고 학비주는데 공부 못하느냐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고 책망하며 자식을 죄인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고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 삼으십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반지를 끼워주셔서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들로 명예를 주십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대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돼지 똥이 묻은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옷을 벗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혀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히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속에 두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원망하는 맏아들)

 

25-30절을 보십시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은 지금까지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좇아서 열심히 밭에 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열심히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집에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동생이 돌아와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맏이들은 화가 났습니다. 비교의식도 생겼습니다. 자신은 열심히 일을 했는데 아버지는 염소새끼 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맏이들의 원망하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맏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 것이 다 네것이다)

 

31,3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가 맏아들과 항상 함께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맏아들에게도 재산을 상속하여주셨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다 맏아들의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첫째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은 송아지뿐 아니라 암소도 잡아먹어도 됩니다. 한 마리뿐 아니라 여러 마리를 잡아먹어도 됩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은혜를 즐길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풍요롭게 살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인 줄 몰랐습니다. 둘째가 그렇게 죄를 짓고 고통하고 있을 때 자신은 아버지 집에서 풍요롭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행복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복음을 몰랐습니다. 그는 율법적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이 일만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사랑을 몰랐습니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을 열심히 하고 불평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십자가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말씀공부하고 소감 쓰고 예배에 참석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를 사랑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양을 치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자격이 없는 자를 양치는 목자로 삼으신 것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다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사는데 생명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가장 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사로 가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이곳에 기도하고 말씀 공부하는 분위기가 그립다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매일 새벽과 저녁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예수님 안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여야합니다.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을 가장 잘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집을 떠난 탕자도 사랑하십니다. 그를 사랑하여 기다리고 돌아오면 송아지를 잡고 잔치하며 아들로 대우하십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자에게는 아버지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아멘

 

누가복음 15장 강해 이부 아버지의 크신 사랑

누가복음 1511-누가복음 1530

요절 누가복음 15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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