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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1-2] 처음과 같이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4-02-11 17:27:45
조회수 : 9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1-2] 처음과 같이

이사야 12부 강해

요절: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26)

 

kbs 수목 드라마 황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연이 주인공 황진이역을 맡았는데 kbs 연기 대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회에서 황진이는 마지막 춤을 추며 이런 말을 합니다. “언제나 처음처럼 그렇게 살겠습니다. 처음처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녀는 기녀가 아니라 춤꾼이요. 춤꾼이 아니라 철학가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처음과 같이입니다. 하나님도 처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처음과 같이 회복시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시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1. 신실하던 유다의 타락

 

21절을 보면 예루살렘의 본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곳은 신실하고 공평이 있었고 의리가 있었습니다. 본래 예루살렘에는 신실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사람,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은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며 입술에 낸 말은 그대로 지키는 사람입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이 한 말은 신뢰할 만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전에 신실했으나 지금은 신실함이 사라지고 창녀가 되었습니다. 처음 남편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현실의 유익을 따라 강대국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신실함이 없이 이익만 따르는 대표적인 사람이 창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 쾌락을 섬기며 창녀와 같이 되었습니다.

과거 예루살렘은 공평이 있었습니다. 공평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법에 따라서 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요 말씀 중심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은 십계명의 말씀대로 순종하던 공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공평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 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후손을 평생 보살피는 공의로운 왕이었습니다. 왜냐면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운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공평치 못한 사람은 나의 것을 사용할 때는 큰 것을 사용하고 남의 것을 사용할 때는 작은 것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자를 판단할 때는 법적용을 헐렁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판단할 때는 법을 엄격하게 하면 이는 공평치 못한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인격을 모독하였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였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는 돈을 좋아하고 사례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주는 사람 편을 들어서 재판을 하였습니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였습니다. 돈이 없는 과부나 고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본래 예루살렘에는 의리가 있었습니다. 의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간의 관계를 깨지 않는 것입니다. 룻은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가 죽고 시아주버니가 죽고 그리고 동서가 집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평생 왕과 함께 밥을 먹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육신이나 춘향이도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와 같이 신실하고 공평하고 의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창녀같이 의리를 져버렸습니다.

 

2. 혼합주의가 된 유다 사람들

 

22-25절을 보면 예루살렘은 순결성을 상실했습니다. 은과 찌끼가 섞였습니다. 은에 찌끼가 섞이면 가치가 없습니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습니다. 포도주에 물이 섞이면 맛이 없습니다.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도 섬겼지만 가나안 땅에 살면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를 함께 섬겼습니다. 그들은 농경의 신인 바알을 섬겼고 풍요의 신인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당시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돈도 함께 섬겼습니다. 그들은 혼합주의가 되었습니다.

요즘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종교 혼합주의가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내용은 부처님이나 칠성당에서 기도하는 내용과 똑같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복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생각하는 것은 불교신자와 같이 운명적이고 인과응보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지도자인데 생각하는 것은 유교적인 권위주의에 물들어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에는 돈을 숭배하고 명예를 숭배하고 쾌락을 숭배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것을 생각하니 슬프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하고 혼합주의가 된 이스라엘을 대적이요 원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에게 복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대적이 되어서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들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심판을 통하여 이들을 청결하게 하며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을 어떻게 순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이는 은을 용광로 속에 넣어서 높은 온도를 올려야 합니다. 불시련이 있어야 합니다. 더러워진 옷감은 펄펄 꿇는 물에 양잿물로 삶아야 합니다. 그래야 혼잡물과 불순물은 다 녹아서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북이스라엘, 아람, 블레셋, 에돔의 군대를 보내사 유대인을 많이 죽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들을 순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3. 처음같이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26)

 

하나님은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유다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 공평의 성읍이 되게 하십니다. 여기서 처음같이’, ‘본래와 같이가 중요한 말입니다. 이는 처음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열정적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만드십니다.

재수하는 학생들에게 처음 학원에 온 날과 같이 끝까지 하면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학생이나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6,7월이 되면 점점 지각합니다. 9, 10월이 되면 결석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일년을 처음과 같이 유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처음 자세를 유지해야 재수 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개혁이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말 대신에 갱신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처음 사도행전의 역사도 뜨거웠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고향 산천 버리고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매일 성전에 모여서 기도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쫓겨가더라도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시록 이장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첫사랑을 하면 그 사랑으로 모든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온 세상이 행복하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삼 년만 지나면 이런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부부의 사랑에 자녀가 들어오고 돈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온통 못마땅한 것투성이요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첫사랑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얼마나 비참한 자였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4. 공평하고 의로운 시온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27-31절을 보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공평과 의로 돌아가기 위해서 구속하십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노예시장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유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처음처럼 회복하시기 위해서 값을 치르십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침략을 받게 하십니다.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가게 하여 용광로 훈련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값을 치러 주시며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훈련하지는 중에 패역한 자, 죄인, 여호와를 버린 자는 망하게 됩니다. 이들은 회개치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훈련 중에도 택한 동산에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이 숭배하던 우상으로 인하여 그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받게 됩니다. 생명력을 상실한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아지고 물 없는 동산 같아집니다. 그들은 삼의 끈이나 불티와 같이 타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용광로 훈련을 통하여 처음처럼 순수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용광로를 통하여 불순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처음으로 돌아가 신실함과 공의와 신의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66권 유튜브 강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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