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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느헤미야 11장 강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의 복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17 00:00:00
조회수 : 3,25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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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1장 강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의 복

느헤미야 111-느헤미야 1136

요절 느헤미야 11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여기서부터는 예루살렘의 거민 수를 늘리기 위한 조치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74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는 거민이 부족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기주한 지도자와 백성들)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자리잡았습니다. 두목들이 솔선범하여 포로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도착 전에 이미 상류층의 사람들 대다수가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의 언약 갱신을 계기로 타지역으로 가서 살았던 일부 두목들까지 일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두목은 다른 곳에서 방백(10:14), 귀인(6:17), 족장(7:702:68)등으로 번역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들을 지칭합니다. 나머지 백성은 주사위를 던져서,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고, 십분의 구는 저마다 자기의 성읍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16:33)는 믿음에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살던 백성들의 10%를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때 가족 전체가 이주했으므로 이산(離散)가족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거룩한 성은 후기에 기록된 구약 성경 안에서만 발견됩니다.(18,48:252:19:24). 저자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하여 예루살렘이 비록 이방 대적들의 위협이 가장 많았던 곳이긴 하지만 예배의 중심지이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의 거주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거주하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전이 있는 교회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원하여 성에 거주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임)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백성이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자원하는 자는 제비 뽑혀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백성 중 기쁜 마음으로 가는 자들로 봅니다. 여기의 자원하는이라는 단어는 대개 재귀형으로만 사용되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를 기꺼이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부르심을 받은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전에 자주 갈 수 있고 빨리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도 교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졍제적인 것 직장의 문제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거주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영적인 환경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여 교회 근처에 거주지를 정해야합니다. 항상 새벽 기도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거주지를 정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자기 성읍에 거주한 사람들)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3절은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살았던 지도자들을 언급하는 4절 이하 내용의 서론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 곧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성전 막일꾼과 솔로몬을 섬기던 종의 자손은 각자가 물려받은 땅인 유다 여러 성읍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평민 혹은 서민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 살았던 이들은 여전히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그 밖의 사람들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지방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가 그 지방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던 여러 지역 중의 하나였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들 이라는 이 단어는 두령 혹은 족장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한 가문의 지도자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1절의 지도자와 본질적 의미상 동일합니다(1).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 중에 아다야)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4절부터 9절까지는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평민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백성들 중에는 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 이외의 출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즉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출신 및 심지어는 아셀 지파 출신도 있었을 것입니다(대상 9:3). 다만 그 당시 유다 지파와 베냐민지파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성하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점에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처럼 두 지파만이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베레스는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았던 쌍동이 형제 중의 형이었습니다(38:24-30). 그의 후손 중에는 다윗과 그리스도가 나옵니다(1:3,6,16). 이 베레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균열입니다. 그는 세라를 저치고 터치고 나왔습니다.

유다자손 중에 처음으로 아다야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아다야는 대상 9:4에서 우대로 나와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장식하셨다입니다. 그들은 웃시야의 아들이라고 나오는데 아들은 웃시야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대상 9:4에서는 우대가 암미훗의 아들로 묘사된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웃시야의 아들은 후손의 의미입니다. 후손이라는 말은 스가랴의 손자, 아마랴의 증손등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셀라 자손 마아세야)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여기서는 유다 지파 자손 중의 또 한사람의 지도자 마아세야가 언급됩니다. 마아세야는 대상 9:5에서는 아사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일입니다. 그는 바룩의 아들인데 바룩의 자손으로 보아야합니다. 마아세야는 골호세의 손자인데 골호세는 315절에서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자()의 아버지로 묘사되는 골호세와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모든 선견자입니다.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고 하였는데 실로 사람은 유다의 막내 아들이었던 셀라의 후예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베레스의 자손 용사들)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베레스 자손은 다 용사였습니다. 이들은 내용상으로 볼 때 베레스 가문 출신의 지도자에 대해 언급하는 4절과 연결됩니다. 용사에서는 군사적 능력, 재정적 능력 모두를 뜻합니다. 예루살렘 방비를 위한 인구 정책에 대해서 다루는 본문의 문맥에서 볼 때 군사적인 능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4-6)에서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의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밝혔으나, 여기서는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의 시조를 언급지 않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경우 사사 시대에 다른 지파들에 의해서 몰살됐었던 관계로 그 당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잘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 방비의 책임자 요엘과 유다)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느헤미야서는 구백 이십 팔 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여기와의 평행 구절인 역대상 9:9에 구백 오십 육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결코 중요한 문제는 되지 못합니다. 사본상의 오류이거나 혹은 역대기에서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들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숫자는 갑배와 살래처럼 살루(7)의 지휘 아래 있었던 용사들의 합계로 짐작됩니다.

요엘이 예루살렘 방비의 총책임자가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요엘이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직분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왕하 25:19). 물론 그는 느헤미야의 지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다는 버금이 되어...다스렸느니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개역 성경이나 KJV, RSV등에서 처럼, 유다가 서열상 요엘 다음가는 행정 책임자로서 예루살렘을 다스렸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NIV에서처럼 유다가 예루살렘의 두 번째 구역(the Second District of the city)의 책임자였음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두 번째 구역이란 성전 서쪽 지역으로 확장된 지경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학자들은 B.C. 8세기 후반 무렵에 예루살렘 성이 그 방향으로 확충되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거한 제사장의 여디야와 야긴과 스라야의 가문들)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대상 9:10-13의 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대상의 기록을 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보고, 그것에 준해서 본절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리라 생각합니다. 본문에는 필사자의 오류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제사장 중에 여다야와 야긴을 소개합니다.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은 역대상의 기록에 따라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다 다윗 시대의 24 반열 중 세 반열의 두목들입니다(대상 24:7,17). 따라서 여기서는 제사장 개인의 이름이 아닌 가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명단을 나열하면서 개인 이름이 아닌 가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꽤 혼합니다(10:2).

또한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스라야가 소개됩니다. 스라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입니다(대상 6:14). 바로 이 사람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가문 이름을 스라야 가문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10:2). 힐기야의 아들은 대상 6:13,14에 따르면, 스라야는 힐기야의 손자이지 아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차이는 히브리어 벤의 번역의 차이에서 생긴 것입니다. 술람의 손자도 다만 자손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사독의 증손도 사독의 자손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사독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므라욧의 현손도 다만 자손을 뜻합니다.

 

(제사장을 가르친 아다야)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 손이요 말기야의 육대 손이며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는 대제사장들을 도와서 성전 봉사를 했던 22반차(12:1-7)의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원래는 24반차로 나뉘었으나 느헤미야 당시에는 22반차로 나뉘었습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가문명(家門名)을 갖고 있었습니다(12:1-7). 아다야라는 가문명을 소유했던 제사장의 무리들은 가르치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 언급됐던 스라야 가문은 성전 봉사를 주임무로 했었습니다.

 

(아맛새와 형제인 큰 용사들)

 

“13.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그 형제의 족장된 자는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12) 제사장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두 그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1,3). 다음은 아맛새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아맛새라는 가문명을 갖고 있었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을 경비하는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앞의 아맛새라는 이름을 가진 제사장 가문의 큰 용사들이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기의 큰용사는 하나님의 전에서의 봉사와 관련된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군사적 능력을 소유하고있는 사람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아맛새 가문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방비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 문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13절 주석 참조) 군사적인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합니다. 삽디엘은 하나님의 선물의 뜻입니다.

 

(레위 사람 스마야와 요사밧)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5절부터 18절까지에서는 레위 사람 중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세 가문에 대해 소개합니다. 먼저 스마야 가문입니다. 스마야는 레위의 막내 아들인 므라리의 후손이었습니다(46:11대상 9:14). 하나님께서 들으셨다의 뜻입니다. 삽브대는 에스라를 도와서 개혁 운동을 추진했던 삽브대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8:7,810:15). 그 이름의 의미는 휴식을 주는 입니다. 다음은 요사밧입니다. 요사밧은 추측컨대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해준 요사밧과 동일인 인듯합니다(8:7).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셨다 입니다. 요사밧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의 전형적 직무인 성전 제사와 관계된 일 이외의 것을 하였습니다. 그는 성전세 및 십일조를 거두는 일(10:37-39), 백성을 다스리는 일(대상 26:29), 성전의 유지 보수와 관계된 일 등을 하였습니다.

 

(찬양을 맡았던 맛다냐와 압다)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본 절에는 레위 사람의 또 다른 가문이 언급됩니다. 아삽 자손의 레위 사람으로 분류된 것은 다소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본서와 에스라서의 다른 곳에서는 항상 성전 제사에 관여하는 레위인들을 레위 사람으로 표현하고, 아삽의 자손들은 노래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7:442:41). 그러나 노래하는 자들, 즉 아삽 자손도 레위 지파에 속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분류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레위 자손 중에 맛다냐를 소개합니다. 맛다냐는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한 사람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선물입니다. 맛다냐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말씀은 당연히 찬송 혹은 찬양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15:1110:2122:3). ‘인도하는은 인정하다 혹은 감사하다 그리고 찬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사역형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찬송하게 하다의 의미가 됩니다. 맛다냐는 기도할 때에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하는 지도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맛다냐라는 아삽 자손이 오늘날로 치면 성가대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맡았음을 말해줍니다.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는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박부갸가 맛다냐에 이어 두 번째의 지도자였다는 뜻입니다. 박부갸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던지는 자의 의미로 추정됩니다. 다음은 압다를 소개합니다. 압다는 여두둔의 증손인데 이는 여두둔의 자손으로 번역해야 합니다(15). 여두둔은 다윗 왕 때에 성막에서 찬양과 연주를 맡아하던 인물입니다(대상 16:41,42대하 35:15). 압다의 의미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 팔십 사 명같은 레위 사람들의 숫자는 다른 지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적게 살았던 것은 그들의 봉사 직무가 힘에 겨웠던 때문일 것입니다.

 

(성전 문지기 악굽과 달몬)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다음은 성문지기 악굽과 달몬을 소개합니다.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에서 성문지기는 문자적으로 다만 문지기일 뿐입니다. 악굽과 달몬 모두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레위 사람들의 일파인 성전 문지기 가문들의 명단에서 발견됩니다(2:42). 따라서 여기의 성 문지기는 오히려 성전 문지기 혹은 그냥 문지기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 형제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문지기 가문들의 대부분이 포함될 것입니다(2:42). 본절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칭송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삽입 구절입니다. 즉 여기서 느헤미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신의 평안을 위해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각 지방에 정착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본 전후 문맥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 거주자들의 헌신적 자세를 높이 사고 있는 것입니다.

 

(느디님 사람 책임자 시하와 기스바)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느디님 사람은 원래 이방 혈통의 소유자들이었으나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온 후 개종하여 이스라엘 총회에 가입되었습니다(2:43). 그들은 오벨에 거주하였는데 오벨은 성전이 세워져 있던 구릉 지대가 뻗쳐져 있는 예루살렘의 동남부였습니다(3:26). 시하와 기스바가 느디님 사람들의 위에 있었습니다. 시하라는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느디님 사람들의 가문명 중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기스바라는 이름은 거기서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본 절의 두 이름을 가문명으로 보다는 개인의 이름으로 봄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노래하는 자 웃사)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17절에서는 아삽 자손의 가문명만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그 가문의 우두머리가 느헤미야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진술합니다. 아삽 자손 중에 웃사가 나옵니다. 웃시는 힘센의 의미입니다. 웃사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을 감독하였는데 느디님 사람들에 대한 감독권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전(殿) 일을 맡아 다스렸습니다. 그는 문맥상 찬양을 인도하는 직무를 하였을 것입니다.

웃사는 왕의 명대로....양식을 정하여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던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아닥사스다왕이 레위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양식 곧 봉급을 주게 했던 것은, 성전 제사가 원활히 드려져야만 왕 자신과 왕자들을 위한 기도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질 것으로 생각한 때문입니다(6:10). 이러한 배려는 레위 사람들이 생계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연의 직무에 힘쓸 수 있게끔 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되었을 것입니다(10:39).

 

(아닥사스다 왕의 대변인 브다히야)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본절은 23절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레위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원인을 설명해주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본절은, 헌신적 자세로써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마당에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두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었습니다(38:11-30). 세라의 자손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모든 일과 관련해서 왕 곁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브다히야는 마치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서서 아닥사스다 왕에 대한 조언자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NIV는 본 문구를 브다히야는 백성들과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의 중개자였습니다.(...was the king’s agent in all affairsrelating to the peopl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처럼 페르시아 황실에 브다히야와 같은 대변인이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 또한 레위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라는 명령을 할 수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예루살렘 밖에 거주하는 유다자손]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본서의 저자는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여러 계층 사람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마치고, 여기서 부터는 당시 백성들이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우선은 향리와 들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을 말합니다. 향리와 들은 엄밀히 말하여 들이 딸린 향리로 번역됩니다. 여기서 향리는 울로 둘러싸인 구내(區內)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작지를 뜻합니다(2:524:638:24).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유다자손들은 팔레스틴 땅의 남부 지역을 기업으로 할당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30절까지 언급되는 이 유다 자손의 거주지도 모두 남부에 위치한 성읍들입니다. 기럇 아바는 히브리 원문대로 한다면 기럇 아르바로서 헤브론(14:15)과 동일한 지명입니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남방으로 30Km 지점에 위치하였고 아브라함을 위시한 여러 족장들이 묻힌 유서 깊은 곳입니다. 그 촌은 중심되는 성읍의 주변에 위치한 독립 마을을 가리킵니다(3:12). 디본은 수 15:22의 디모나입니다. 여갑스엘은 수 15:21의 갑스엘입니다. 그 동네는 본절 초두의 향리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앞의 촌보다는 휠씬 작은 정착촌을 뜻합니다. 예수아는 수 15:26의 세마로 추정됩니다. 몰라다는 수 15:26에 언급되고 있는 유다의 남부 성읍입니다. 브엘세바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며 하살수알은 여호수아에서도 브엘세바와 함께 언급되는(15:28) 것으로 보아, 브엘세바와 인근한 성읍이었을 것입니다.

시글락은 원래는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으나(19:1,5), 그들이 탈환치 못함으로써 사울 시대까지 블레셋 족속의 차지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망명을 했던 다윗이 그 왕으로부터 빌리면서 계속 이스라엘의 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삼상 27:6). 그 위치는 헤브론 즉, 기럇 아바(25)에서 남동쪽으로 약 45Km 지점입니다.

므고나는 수 15:31의 맛만나와 동일한 듯합니다. 에느림몬은 림몬의 샘의 뜻입니다. 바로 이 같은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성읍은 수 15:32의 아인과 림몬을 합한 것인 듯합니다. 소라는 원래 유다 지파에게 분배됐었으나 한 때는 단 지파가 거주했었습니다(19:40,41). 단 지파였던 삼손의 출생지도 이곳입니다. 야르뭇은 가나안 족의 한 왕인 비람 왕의 성읍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곳에서 전투를 벌여 비람 왕을 죽였습니다(10:3-27). 야르믓은 높은 곳의 뜻입니다. 사노아는 수 15:34에서 언급됩니다.

아둘람은 한 때 자체내에 왕이 있을 정도로 큰 성읍이었습니다(12:15). 그 후에 르호보암 왕은 이곳을 요새화하여 유다 땅의 방비를 강화하기도 하였습니다(대하 11:5,7).

라기스는 여호수아가 야비아라는 가나안 족속의 한 왕과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그 야비아 왕의 성읍이 바로 이 라기스였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르호보암 왕에 의하여 요새화됐던 곳이었던 관계로 후대의 앗수왕 산헤립은 자신의 전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곳을 공격 목표로 삼았었습니다(대하 32:9). 아세가도 르호보암 왕에 의해서 요새화된 적이 있었습니다(대하 11:9).

느헤미야 당시 유다 자손들이 거주했던 지역적 범위가 브엘세바에서부터 흰놈의 골짜기까지입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역사상 그 영토의 최남단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었습니다(삼상 3:20). 그리고 힌놈의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와디 엘라바비로 간주되며,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 밑을 남북으로 가로 질러가다가 예루살렘 남동쪽의 기드론 시내 쪽으로 구부러져 만납니다(2:13). 이 골짜기는 베냐민 지파의 땅과 유다 지파의 땅을 나누는 경계로서 인식되었습니다(15:818:16). 바로 이 같은 경계에 따라 힌놈의 골짜기 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 분류된 바 있습니다(18:28).

장막을 쳤으며는 군대가 상대편을 공격할 거점으로 삼기 위하여 어느 지역에 일시 머무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군사적 용어입니다. 그러나 포로 후기에 가서는 다만 일시 머무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의미가 변한 듯 합니다(8:15). 그럴지라도 여기서 느헤미야가 바로 이 갈은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당시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의 일부도 그 두목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했던 상황을 암시합니다(1).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주가 빈번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밖에 거주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베냐민 자손들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팔레스틴에 들어온 후에 유다 지파가 분배 받았던 기업의 바로 북부 지역을 그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즉 예루살렘부터 그 북쪽이 그들의 기업이었습니다(30절 주석 참조). 게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25.5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유다의 아사왕이 북국 이스라엘이 라마에 요새를 세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료를 빼앗아서 요새를 세운 곳이기도 하였습니다(왕상 15:22). 게바는 반석의 의미입니다.

믹마스는 게바 동북쪽 약 2.4km 지점입니다. 사울의 군대와 불레셋 군대 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믹마스는 감추어진의 뜻입니다. 아야는 이사야 10:28,29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앞의 믹마스와 인근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벧엘은 믹마스 서북쪽 약 6.7km 지점이며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아나돗은 게바와 예루살렘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 합니다(1:1). 대답들이란 뜻의 지명입니다. 놉은 예루살렘과 아나돗의 거의 중간 지점이며, 그곳에서 예루살렘이 보일 정도로 예루살렘과 가까이 위치했었습니다(10:32). 실로가 블레셋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됨으로써, 이곳은 한때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었습니다(삼상 21:1). 열매의 의미입니다. 아나냐는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함께 언급되고 있는 성읍들과 인접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호와께서 덮으셨다의 의미입니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무엘의 고향으로서 그가 사사 및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곳입니다(삼상 7:15, 17). 높은 곳의 의미입니다. 깃다임은 베냐민 지파의 브에롯 사람들이 도망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곳입니다(삼하4:3). 그 지명의 의미는 이증 포도즙 틀입니다. 하딧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41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2:33). 날카로운의 의미입니다. 스보임은 믹마스 동편의 저지대에 위치했었던 것 같습니다(삼상 13:18). 무늬있는 새들의 뜻입니다. 느발랏은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리석은의 의미입니다.

로드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덧으로부터는 남서 서쪽로 6km 정도 떨어졌었습니다(2:33). 오노와 공장 골짜기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52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땅 중 가장 외딴 곳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그곳으로 유인하여 거기서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었습니다(6:2). 강한의 의미입니다. 공장 골짜기는 개역성경을 따를 경우 마치 오노와 별개의 지명인듯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앞의 오노와 공장 골짜기 사이에 그리고 혹은...와의 뜻을 갖는 접속사 와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오노와 공장 골짜기는 동격인 셈입니다(KJV). 36절은 레위 사람들의 일부가 느헤미야 시대에 유다 땅에서 베냐민 땅으로 이주했었음을 말해줍니다. 레위 사람들의 이 같은 이주는 십일조의 원활한 수납을 위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10:39)

느헤미야 11장 강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의 복

느헤미야 111-느헤미야 1136

요절 느헤미야 11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느헤미야 1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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