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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스더 1장 와스디 왕후의 폐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21 00:00:00
조회수 : 4,99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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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1장 강해 와스디 왕후의 폐위

말씀 에스더 1

요절 에스더 1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bc 586 년에 유다는 망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끌려갑니다. 유망한 사람은 바벨론에 끌려갑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하면서 슬퍼합니다.(시편137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를 버드나무에 걸어놓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여흥의 노래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70년 후에 그들은 해방됩니다. 시편 126편이 해방의 감격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이킬 때에 꿈꾸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 중에 대사를 행하셨으니 백성들은 기뻐합니다.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45장 일절은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받은 고레스(다리우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지도자를 사용합니다. 그 후에 폐르시아가 헬라의 도시국가를 공격합니다. 다리우스는 대군인데 그리스군대는 숫자가 적습니다. 그리스 군대가 마라톤에서 승리를 합니다. 병사가 우리가 이겼다는 말을 하려고 42킬로를 달립니다. 그는 우리가 이겼다고 알리고 죽습니다. 여기서 마라톤이 유래되었습니다.

폐르시아 다리우스 왕은 귀국하여 46년간 통치하고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에게 물려줍니다. 그가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서 15만명을 거느리고 480년에 그리스를 공격합니다. 이차 폐르시아 전투입니다. 그러자 그리스의 작은 도시는 항복합니다. 스파르타에서는 항복하자고 하는 사람과 싸우자는 의견이 분열됩니다. 300명의 결사대를 뽑아서 협곡에서 15만명을 3일간 막고 전원 전사합니다. 그때 장군은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은 저승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역사에 남는 유명한 비가 있습니다. 스파르타 사람에게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 누워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삼백명이 전사한 후에 15만 명을 막아서 2만명을 전사시킵니다. 아테네에서는 우리가 아테네에서 붙으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데네 사람을 섬으로 이주시킵니다. 아데테는 3백척이고 페르시아는 1300척입니다. 크세르크세스(Xerxes)는 해군을 몰아쳐 들어가는데 아테네의 함정에 걸립니다. 살라미스 해역으로 폐루시아 군대를 끌어들입니다. 좁은데서 폐르시아 군대를 격파합니다.

크라스크세스 왕은 이길 줄 알았는데 졌습니다. 크라라크세수 아들이 탔던 배는 구원했습니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옵니다. 크라스크세스 왕이 낙심하여 본국에 들어가서 낙심할 때 좋은 왕후를 뽑으라고 뽑힌 왕후가 에스더입니다.

 

(아수에수에로 왕의 영광)

 

“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은 일입니다. 그가 전쟁에 나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크라르크세스 왕입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그리고의 의미인 접속사 가 있습니다. 종종 한 책의시작을 표하는 단순한 도입구로서 나타냅니다(1:1 1:1 1:1 삼상1:1 삼하 1:1 1:1 1:1). 여기서도 단순한 도입구로 이해함이 타당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라 4:6에서도 언급되는 B.C. 485-464년까지 통치했던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그는 다리오와 고레스의 딸 아토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 다리오가 왕이 된 후 낳은 아들중에서는 맏이었습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와 동일 인물이며, 다니엘 9: 1의 아하수에로와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린 왕입니다. 여기의 인도는 인더스 강 서쪽 지역, 즉 오늘의 파키스탄 지역을 가리키며 인도 반도 지역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지역은 아하수에로왕의 부친 다리오에 의해서 정복되었으나 아하수에로 당대에도 그곳 거민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 지역 곧 나일 강 상류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캄비세스 왕에 의해서 정복되어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대에 이르러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로 정식 편입되었습니다. 아무튼 인도는 페르시아 영토의 가장 동쪽, 구스는 가장 서쪽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본적으로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소위 왕의 대신들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3 :12) 보다 세부적으로는 127도로 구분되어 각 도의 방백들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127개 도로 세분화시킨 데에는 세금 징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될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고자 장군을 위한 잔치)

 

“2.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아하수에로 왕은 도성 수산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수산은 고대 엘람 지역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이 수산에서는 봄과 가을에만 통치를 하였을 뿐이고, 겨을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무(政務)를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은 왕이 일년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으며, 행정부 대부분의 기관들이 위치했었으며, 왕의 보호를 목적으로 철저히 요새화되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린 지 삼 년째 되던 해에, 모든 총독들과 신하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는 B.C. 4581223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 즉위 년도는 즉위 후 최초로 맞이한 정월이 속한 그 해로 간주됩니다. 즉위 삼년은 B.C. 482년입니다.

그때는 애굽에서 반란이 일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이스 정복을 위해 즉위한 이후부터 2년 동안 철저한 계획에 따라 무력을 증강해갔다고 합니다. 이 잔치는 아마도 전쟁에 돌입하기 앞서 최후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듯합니다. 고대 사가인 크테시아스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들은 보통 15,000명 정도가 참석할 수 있는 정도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잔치는 다량의 술이 제공되는 큰 연회를 가리킵니다.

이 잔치는 그리스로 출격하기 위한 잔치입니다. 페르시아와 메대의 장수들과 귀족들과 각 지방 총독들을 왕궁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바사와 메대라는 독특한 표현은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가리키는 술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사와 메대는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던 가장 중요한 두 민족 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메대는 바사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민족은 동일하게 인구어족(印歐語族)에 속하여 언어나 관습 및 종교 등이 서로 거의 같았습니다. 바사는 메대의 정치역사적 전통을 계승하였습니다. 그 두 민족은 거의 하나라고 할 만했습니다.

장수와 귀족 그리고 방백은 앞의 방백과 신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 중 장수는 2천 명의 창을 가진 병사, 2천의 기병(騎丙). 그리고 1만의 보병 등 총 14천의 병력을 거느렸던 지휘관을 뜻합니다. 귀족은 문자적으로는 으뜸되는 사람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어원의 단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왕의 곁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는 모사 등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들에게는 실제로 조언을 해주던 모사들이 있었다는 성경의 언급이 있습니다.(7:14) 이것을 뒷받침이나 하려는 듯 왕의 정무실 계단에 모사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양각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됩니다. 방백은 127개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행정관입니다.

 

“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자기 왕국이 지닌 영화로운 부요와 찬란한 위엄을 과시하였습니다. 잔치는 여러 날 동안, 무려 백팔십 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장수나 귀족 그리고 방백이 이 기간 동안 줄곧 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제국의 각처를 다스리던 방백이나 장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임지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제국정부에 대한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방백 등이 번갈아 가면서 그 잔치에 참여했었다고 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경제적 강성은 여러 고대 저술가들에 의하여 언급된 바있습니다. 그중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왕이 매년금 14,560달란트를 공물로 받아서 그것으로 커다란 금궤를 만들어 창고에 보관하였다고 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금과 은으로 씌워진 장막, 금으로 된 긴 의자, 금으로 된 주발과 잔, 그리고 금주전자 등을 스파르타로부터 약탈하여 갖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스퀼루스도 페르시아 왕궁의 방들이 금으로 씌워졌다고 말하였습니다.

 

(백성을 위한 잔치)

 

“5.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이 기간이 끝난 뒤에, 왕은 도성 수산에 있는 백성을,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왕궁 정원 안뜰로 불러들여서, 이레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이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베풀었던 180일간의 잔치(3,4)가 끝난 뒤에 백성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칠일간의 잔치는 180일간의 잔치와는 그 성격상 매우 다릅니다. 180일간의 잔치는 중요한 신료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 회의적 성격까지 내포한 것이었으나, 여기의 이 잔치는 서민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았던 순수한 유흥적성격이었던 것입니다. 대소 인민은 신분 고하를 막론한 모든 남자들을 가리킵니다(9).

페르시아 왕궁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뜰에 해당되는 공간의 넓이는 약66백평방 미터 정도였었습니다. 따라서 이 정도 넓이의 후원 뜰은 대단히 많은 시민들을 위한 잔치를 갖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정원에는, 흰 실과 붉은 빛 털실로 짠 휘장을 쳤는데, 그 휘장은, 대리석 기둥의 은고리에 흰 실과 보랏빛 실로 꼰 끈으로 매달았습니다. 이러한 휘장은 잔치 장소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에 설치되었을 것입니다.

180일간의 잔치(4)가 초봄에 시작됐다고 가정할 경우, 시민들을 위한 7일간의 잔치가 열린 때는 늦여름으로서 여전히 햇살이 따가왔을 것입니다. 백색과 청색은 페르시아의 왕들이 특별히 선호하던 제왕색이었습니다. 또한 휘장은 무명천을 가리킵니다. 상당히 긴 휘장을 땅에까지 늘어뜨려 고정시키기 위해 흰실과 보랏빛 실로 꼰 끈을 메달았습니다.

뜰 중간에 위치했던 궁전의 옆에 별도로 세워진 대리석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대리석은 석회석과 그것의 변성암(變成岩)인 대리석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수산의 폐허를 탐사했던 고고학자들은 페르시아 왕궁의 기둥들이 검푸른 석회석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여기의 대리석은 차라리 석회석으로 번역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기둥은 그 꼭대기에 한 사람이 족히 누울 수있을 만큼 굵었다고 합니다. 화반석과 백석과 운모석과 흑석으로 덮인 바닥에는, 금과 은으로 입힌 의자들이 놓여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은 편안히 기대어 앉을수 있었던 긴 의자입니다. 이 의자의 골조는 그리이스 등에서 가져온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면은 금과 은으로 덮혀졌던 것 같습니다.

화반석은 칠십인역에서 가짜 에머랄드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에머랄드처럼 생긴 녹색 돌, 즉 공작석 혹은 사문암을 가리키는듯합니다. 그리고 백석은 앞에서 대리석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운모석은 칠십인역에서 진주같은 돌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진주조개의 껍질 혹은 진주 비슷한 광택과 불규칙한 균열이 있는 진주암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흑석은 방패같은 무늬가 있는 검은 돌을 뜻할 것입니다.

 

“7.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술잔은 모두 금잔이었는데, 모양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금잔은 유대 랍비들의 구약 성경 주석인 미드라쉬는 이 금잔을 금처럼 비싼 수정으로 된 잔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확정지을 만한 단서는 희박합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 잔들은 결국 그리이스 군대에게 약탈되었다고 합니다. 잔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디자인되어 만들어졌으며, 이에 따라 무늬나 모양 등에서 서로 달랐습니다. 아무튼 이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재력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문구입니다.

왕이 내리는 술은 풍성하였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왕의 손처럼 풍부한의 뜻으로서 왕의 능력과 풍부를 과시하기에 합당한 만큼의 많은 양을 가리킵니다. 어주는 문자적으로는 나라의 포도주의 뜻입니다. 추측컨대 이는 왕 자신이 마시기 위해 저장해 놓은 칼리본 산()의 귀한 술이었을 것입니다.

그 날은 어전 음주법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많이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많이, 적게 마시고 싶은 사람은 적게 마셨습니다. 그것은, 왕이 모든 술 심부름꾼에게, 마실 이들이 원하는 만큼 따라 주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법도는 어떤 엄격한 법령으로서가 아니라 바사 왕의 일시적인 명령으로 이해합니다. 그 명령의 내용이 바로 각자의 자유 재량에 맡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잔치석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많이 마시도록 강요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은 대단히 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단숨에 들이키는 음주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술 손님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으며, 그 손님은 술 잔에 술을 다시 가득 채운 뒤, 다시 단숨에 마시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왕후의 잔치)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 와스디 왕후도 부인들을 초대하여, 아하수에로 왕의 그 궁궐 안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후 와스디는 아하수에로 왕의 여러아내 중 세속사에서 밝혀진 사람은 일곱 모사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타네스의 딸 아메스트리스입니다. 대개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의 이 와스디가 바로 그 아메스트리스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와스디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주기 위해 사용했던 별칭이었을 것입니다.

분명치는 않지만, 와스디는 달콤하다 혹은 사랑을 받는 이란 뜻입니다. 아하수에로 왕궁은 수산 궁의 남쪽에 있던 왕후의 처소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의 관습으로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잔치석상에 참여하는 것이 반드시 금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가 왕 및 하만 등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는 점은 이 사실을 넉넉히 증명해줄 만합니다(5:2-8 7:1-4). 와스디가 이처럼 남자들과 별도로 잔치를 배설한 까닭은 남자들의 잔치 분위기는 여성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의 잔치 장소인 후원 뜰(5)은 여자들까지 참석하기엔 장소가 협소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후를 자랑하고자 하는 왕)

 

“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이레가 되는 날에, 왕은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자, 자기를 받드는 일곱 궁전 내시, 곧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에게 말하였습니다. 제 칠 일은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5). 주흥이 일어나서는 문자적으로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는 뜻입니다. 곧 이것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상실한 상태, 혹은 황홀한 상태에 돌입했었음을 시사합니다(16:25 삼상 25 :36 왕상 8 :66 15: 15). 내시는 반드시 거세된 환관만을 의미치 않습니다. 때로는 이 단어가 정부의 고위 관리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입니다(37:36). 그러나 여기서의 내시는 왕후의 처소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때, 거세된 환관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고레스 왕 시절이래 결코 적잖은 영향력을 소유했었습니다. 위대한 훔에게 속하는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 이름 메훔반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비스다는 거세한의 뜻이 있는 페르시아 이름 비스타의 히브리어 음역인듯 합니다. 하르보나는 화려 혹은 광채를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우바르바우나의 음역일 것입니다. 빅다는 신의 선물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바가다타의 음역입니다. 아박다는 선생의 의미인 페르시아 이름 아바기타의 음역입니다. 세달은 승리자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사타르의 음역입니다. 가르가스는 욕심장이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카르카사의 음역입니다.

일곱사람은 이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일곱 사람을 와스디 왕비에게 보낸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중근동 세계에서 완전한 수 혹은 신성한 수로 인식되었다는 점에 근거하여, 자신의 와스디에 대한 명령(11)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취지를 와스디에게 암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와스디 왕후가 왕후의 관을 쓰고, 왕 앞으로 나오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후의 면류관은 큼직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끝이 뾰족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왕후가 미인이므로,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대신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든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명령은 백성들에게 훌륭한 도덕적 귀감이 되어야만 했던 왕의 신분에는 걸맞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루디아 왕 칸타울레스는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과시하려는 분별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마침내 왕좌와 생명까지도 상실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었습니다. 어떤 유대 문헌은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를 면류관만 쓰고 전라(全裸)로 나오게 했다고 해석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왕후의 위엄을 생각하고 거절)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 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하여 듣고도, 왕 앞에 나오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와스디의 싫어한 것은 와스디가 술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화가 몹시 났습니다. 마음 속에서 분노가 불같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왕은 많은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직접 하달한 명령이 먹혀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되자 화가 났습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 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중심이 불붙는 듯하였습니다. 문자적으로는 그의 속에서 불이 탔다의 뜻으로서, 그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적 문구입니다.

 

(왕이 자문을 구함)

 

“13.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본절의 내용은 일단 잔치가 끝난 뒤의 상황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의 (11,12)로 진노를 한 것은 그 잔치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습니다(10). 그는 잔치가 끝난 다음 날 온전한 정신 가운데서 자신의 명령에 불복한 와스디의 징계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왕은 곧 법에 밝은 측근 전문가들과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던 일은 아하수에로왕의 습관이기도 했지만, 그는 이같이 함으로써 자신이 와스디에게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보복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례를 아는 은 문자적으로는 시대를 아는 의 뜻이며 구체적로는 규례와 법률을 아는이라는 말로 연이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사들은 문자적으로 지혜로운 자들의 뜻입니다. 왕이 법과 재판에 관하여 잘 아는 이들과 의논하는 것은 그 나라의 관례였습니다.

모사로부터 자문을 얻는 것이 반드시 아하수에로 왕만의 습관은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페르시아의 모든 왕들은 모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들의 정책을 현실 정치로 펼쳐나갔던 것입니다. 왕이 측근에 의하여 암살당하는 일이 빈번했던 고대국가들의 모습을 감안해 본다면, 왕이 가까이 하는 사람은 왕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은 것입니다. 왕으로부터 특별한 지위나 권한을 부여받은 것 등을 의미합니다. 이같은 점을 입증이나 해주듯이 왕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은 자는 왕궁 출입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침실 출입까지도 허용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왕의 기색을 살피며는 문자적으로 얼굴을 보며의 뜻으로서 앞의 가까이 하여 처럼 모사들이 왕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삼하 14: 24 18:10) 문구입니다.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모사 곧 박사의 신분적 위치가 페르시아의 신하들 중 최고였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는 세 사람씩은 왕의 양편에, 그리고 한 사람은 왕의 앞에 서는 등 실제로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왕 옆에는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 등 페르시아와 메대의 일곱 대신이 있어서, 늘 왕과 직접 대면하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바사와 메대의 일곱방백은 높은 직위의 소유자들에게 두루 적용될 수있는 꽤 일반적 의미의 단어(3,11)이어서 그문맥에 맞게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단어를 장관의 의미로 이해하면 보다 적절할 것입니다(대상 27:3 대하 26:11 51:57). 그들은 나라 안에서 벼슬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 안에서 벼슬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르스나는 검은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케레스나나 호리호리한 사람의 뜻인 카라스나의 히브리어 음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달은 별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시타르 혹은 주()를 뜻하는 크샤드라의 음역일 것입니다. 10절의 세달과 본절의 세달은 전혀 다릅니다. 아드마다 는 정복되지 않은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아드마타의 음역입니다. 다시스는 탐욕스런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타르슈쉬의 음역입니다. 메레스는 시련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마르사의 음역입니다.

마르스나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마리드나의 음역입니다. 므무간은 구출된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비무크나 혹은 구름을 뜻하는 무무카나의 음역입니다. 본절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이처럼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지칭함으로써, 와스디에 대한 법적용을 이 보다 엄격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는 문자적으로는 규례대로라면...에게 무슨 일이 있을꼬 의 뜻입니다.

 

(왕의 권위를 세우자는 조언)

 

“16.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므무간이 왕과 대신들 앞에서 대답하였습니다. 왕이 와스디 처리와 관련한 자문을 구하자, 일곱 모사들은 서로 협의를 한 후 그 대변인격인 므무간이 그 협의 사항을 왕에게 품의(稟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와스디의 왕에 대한 잘못은 왕의 엄명을 거역함으로써 왕의 위신을 여지없이 실추시켰다는 데 있었습니다(12). 왕후가 한 이 일은 이제 곧 모든 여인에게 알려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인들은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 왕후에게 어전에 나오라고 하였는데도, 왕후가 나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남편들을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와스디의 왕명 거역이 어떻게해서 방백들이나 일반 백성에게도 그 여파를 미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멸시한다는 것은 업신여기다 혹은 비웃다란 뜻의 동사의 사역형 부정사(不定詞)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중요시해야 할 가치를 비천히 여기는 것입니다.(25:34 22:8),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15:31 삼하 12: 9)

페르시아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가 한 일을 알게 되면, 오늘 당장 임금님의 모든 대신에게도 같은 식으로 대할 것입니다. 오늘 당장 이라고 하여 와스디의 왕명 거역 사실이 신속히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와스디에 대한 징계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등을 말합니다. 그러면 멸시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멸시와 분노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의 뜻입니다. 방백의 명령에 대한 귀부인들이 불복종하여 멸시할 것입니다. 방백들은 귀부인들의 불복종에 대해 분노할 것입니다. 본절의 분노는, 와스디의 명령 불복종에 대한 왕의 반응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단어 진노하여 와 동족어입니다(12).

 

(왕후를 폐위 시키자는 조언)

 

“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그러니 임금님만 좋으시다면, 다음과 같이 하자고 합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어떤 공식적인 제안을 하기에 앞서 사용하는 상투적인 술어입니다. 와스디 왕후가 다시는 아하수에로 임금님의 어전에 나오지 못하도록 어명을 내리시아도 라고 합니다. 왕후의 위()를 폐하여 일개 서민으로 만들자고 합니다. 특히 여기서 모사들의 협의 사항(16절 주석 참조)을 왕에게 고하면서 와스디 앞에 지금까지 게속 사용하였던 왕후라는 직위명을 고의로 빠뜨림으로써, 그녀에 대한 폐서인(廢庶人)조치가 필연적임을 암시합니다.

조서를 내리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왕국의 명령의 뜻입니다. 조서는 왕 자신의 사사로운 명령과 대조됩니다. 공개석상에서 왕명을 거역한 와스디를 공개적으로 징계하자고 합니다. 그렇게함으로써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편에 대한 불복종을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자고 합니다. 그 명령을 페르시아와 메대의 법으로 정하여, 고치지 못하도록 하셔야 할 줄 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통 중 하나는 일단 왕의 도장이 찍혀 법률화된 사항은 절대 그 효력이 취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6:8,9).

이처럼 왕실 내부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결코 변역 될 수 없는 법률을 만들기까지 한 것은, 와스디로 하여금 아하수에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을 기회를 다시는 갖지 못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녀가 권세를 회복하여 자신을 폐서인 시킨 데 일조를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왕후의 자리는 그 여인보다 더 훌륭한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은은 더 아름다 혹은 더 덕스러운 이란 뜻이며. 사람은 원래 동료 혹은 친구의 의미로서 거의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어떤 사람을 광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입니다,(삼상 15:28) 따라서 나은 사람은 반드시 대궐 안에 이미 살고 있는 어떤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왕의 칙령이 이 큰 나라 방방곡곡에 선포되면, 낮은 사람이고 높은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여인이 저마다 자기 남편에게 정중하게 대할 것이라고 합니다. 조서는 19절의 조서와는 다른 단어지만, 동일한 내용임이 분명합니다. 전국 앞에 광대한 이라는 형용사를 삽입시킨 까닭은 왕의 허영심을 부추겨서 그의 비위릍 맞추려는 것입니다 조서로 내려서 단순한 구두명령이 아닌 반드시 널리 고지되어져야 하는 문서화된 조서로 말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기강을 잡으려는 목적에 따라 반포되는 왕의 명령은 제국민 누구에게나 고지되어야 합니다. 귀천을 무론하고는 문자적으로 큰 자로부터 작은 자까지의 뜻으로 5절의 대소인민과 동일한 문구입니다.

 

(왕후의 폐위)

 

“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왕과 대신들은 그의 말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선히 여긴지라 라는 동사는 3인칭 단수이고, 주어 왕과 방백들은 3인칭 복수이므로 문법적 모순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주어가 이같이 복수일 경우라도 동사의 적극적 주체자가 한 사람일 때는 3인칭 단수의 동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왕이 므무간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주체자로서 선히여긴지라라는 동사의 주어인 셈입니다. 방백들은 므무간의 그 같은 제안의 입안(立案)과정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입니다. 왕은 즉시 므무간이 말한 대로 시행하였습니다. 왕은 그가 다스리는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지방마다 그 지방에서 쓰는 글로, 백성마다 그 백성이 쓰는 말로 조서를 내렸습니다.

문자와 방언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 내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주로 고페르시아어(Old Persian)나 아람어를 사용했고 바빌로니아 지역에서는 아람어와 앗시리아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를 위시한 여러 동족어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는 주로 아람어가 통용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이 당시 매우 조직적인 우편제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우편 업무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자기 집을 주관하여야 하며, 남편이 쓰는 말이 그 가정에서 쓰는 일상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조서의 주요한 내용 자체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조서의 목적 혹은 그 결과에 해당될 것입니다. 백성들은 왕명을 거역한 왕비를 폐서인(廢庶人)시켰다는 조서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한 가정내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명령 불복종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 결과로 한 가정 내에서 남편의 위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는 것은 한 가정 내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명령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남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경우, 아내를 포함하여 그 가정 전체는 남편의 언어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명령입니다. 이렇게 할 경우, 그 가정 내에서의 남편의 위치는 보다 확고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페르시아는 수많은 민족들로 구성되었고, 또한 민족간의 교류도 활발하였기 때문에 부부간에 언어가 달랐던 경우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13:23, 24).

에스더 1장 강해 와스디 왕후의 폐위

말씀 에스더 1

요절 에스더 1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에스더 1장 강해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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