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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시편 107편 강해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8-06 00:00:00
조회수 : 3,89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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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7편 강해 일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찬양

시편 1071-시편 1079

요절 시편 107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편 5권의 첫 말씀입니다. 오 권에는 환희와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부르는 찬송시입니다.

시편 104편이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합니다.

105편은 창세기에서 여호수아까지 정리합니다. 106편 출애굽에서 사사까지 다룹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07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것을 찬양합니다. 모으시고 회복시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막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예전에 기이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첫 구원도 놀랍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세우신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찬양)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감사하며 나가야합니다. 시인은 속량 받은 자 곧 구원 받은 자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여호와께 감사해야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인자하시다는 것은 언약에 기초하여 오래참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 속에 내가 있습니다.

포로로부터 귀환한 자들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33:11)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문에 나오는 접속사이자 강조사인 그는 앞에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으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송영할 때 사회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를 읽으면 회중은 왜냐하면 이하를 읽습니다. 하나님은 대적의 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속량을 찬송함)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속량받은 자는 감사해야합니다. 대적이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나 추상적 영향력인 죄에서의 자유도 포함됩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대적이란 뜻 외에 슬픔, 곤경등의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을 모으십니다. 슬픔과 곤경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속량하십니다. 하나님이 대가를 치루시고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동안 대가를 치렀다고 합니다.(이사야40:2)

한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아내가 대가를 치르고, 자녀가 대가를 치르고, 자신이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력한 백성을 친히 바벨론에서 구출하셨습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이사야 433절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로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남쪽은 바다로부터입니다. 남쪽과 바다의 개념을 연결시킨다면 남쪽 지방에 있는 아라비아 해 정도가 연상됩니다.

바벨론은 세를 규합하지 못하도록 동서남북에 이스라엘의 포로를 흩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다 돌아오게 하신 것도 기이하고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칙령을 쓰셔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앗수르에 끌려간 사람들까지 돌아와서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제사장 나라로의 지위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풍부하십니다.

한 사람이 정혼 중에 낙태를 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이혼까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15년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보면 동서남북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각종 죄인들이 다 돌아오게 됩니다. 각곳에 흩어져 고생하는 사람들이 돌아오게 합니다. 동서남북에 흩어진 사람들이 교회 근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막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

 

4-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편 저자는 인간에게 닥치는 위험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인간을 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애 사막 광야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사막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올 때 거주할 성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거주하는 성은 광야와 대비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그 어떤 도시입니다.(7, 36). 그들은 사막에서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피곤하였습니다. 그들은 피곤하여 재앙, 고통, 슬픔 따위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음식과 음료의 고갈로 인해서도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고난을 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를 경험한 모든 자들이 그것을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광야 사막 길에서 길을 잃고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궁핍 상태를 절실하게 느낄 때일수록 인간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살아계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의인의 힘일 뿐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자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당면한 모든 종류의 환난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돌아올 때도 광야 생활 중에서 건지시고 바위에서 샘물나게 하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도 그들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로 행하게 하십니다. 그들을 바른 길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고 의뢰하는 백성에게 그들이 거하게 될 땅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지름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여호와는 사막에서 고통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이 다시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돌아올 때 사십년 동안 하늘에서 이백만의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바위에서 샘물나게 하셨습니다. 시인은 그 큰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거할 성에 이르게 된 자들(7)은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의 모든 필요를 완벽하게 공급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십니다.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만족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나 세리나 거라사광인도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은혜가 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기적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늘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을 감사할 때 현실의 문제로 업앤다운이 사라집니다. 신해철은 마왕으로 46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암에 걸린 아내와 결혼하여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서강대 철학과를 나와서 노래에 인생의 고뇌를 담았습니다. 논객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런 그도 결국은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우리 고난의 삶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를 여러 교통사고에서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기적같은 일을 찾아서 감사해야합니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시편 107편 강해 일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찬양

시편 1071-시편 1079

요절 시편 107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편 107편 강해 일부 끝입니다.

 

 

 

 

시편 107편 강해 이부 감옥에서 건지신 하나님

말씀 시편 1079-시편 10722

요절 시편 10720절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계속하여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앞서 사막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감옥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건지신 좋으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었습니다. 부모에게 섭섭한 일도 있지만 다 잊고 좋았던 일만 생각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생긱하면 참좋으신 분이었고 참 사랑스런 분이었다고 깨닫는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겸손케 하신 하나님)

 

10-12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흑암 가운데 있습니다. 흑암은 일차적으로 감옥에 갇힌 자의 침울하고 암담한 상태를 가리킵니다.(42:7 49:9) 절망, 비참, 혹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5:30 8:22 9:2 ).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가 있기까지 흑암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24:12 15:34 참조).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담은 지존자의 말씀을 거역하며 멸시하였습니다. 아담은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은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랑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모든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경험이나 자원들을 의존하며 스스로 만족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헛됨을 보이시기 위해 그들을 비참케 만드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감옥생활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훈련을 통하여 겸손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이 없으면 그들의 내면이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겸손한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겸손히 그들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소망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 후에 타락한 인간은 다 죽어야합니다. 사망 권세에 시달립니다. 죄와 율법의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들이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망과 어둠의 그늘에 두신 데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의 고통 가운데 두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통은, 실망, 패배, 슬픔 따위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41:51 26:7 3:1016:2). 그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잠잠히 사랑하시며 겸손하도록 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가 소망이 생깁니다.

 

(사망에서 건지신 하나님 찬양)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이스라엘은 사망의 그늘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환난 중에 여호와를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부르짖으매...구원하시되 - 세 부분에 한 차례씩 반복되고 있습니다(6, 28). 시인은 이러한 유사 구절의 적지 않은 반복을 통해 우리는 인간들의 탄원 및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옥수의 해방을 그리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돋는 해가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에수님은 그들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밝은 생명의 빛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얽어맨 죄의 쇠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

 

15,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았던 자가 구원 받은 후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그처럼 부정적인 상황에 있었다가 그 상황으로부터 회복된 사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 보다 강조되고 있는 바는 그가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환난과 곤고로부터 새로이 구출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일은 너무도 마땅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바벨론 성벽에는 실제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문이 무려 100개 가량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놋문을 깨뜨리시며 죄의 쇠빗장을 꺾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과 율법에서 참자유를 주십니다. 성경에서 놋은 강함과 견고함(1:18 15:20), 목이 곧고 패역함(48:4), 로마 제국(2:32, 39), 바벨론 제국(15:12) 등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놋문이 깨뜨려졌다는 말은 바벨론이 멸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철문을 깨시고 바벨론의 감옥에서 건지셨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했으므로 그 나라에 포로되었던 민족이 해방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에게 본문과 유사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바벨론 멸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 바 있습니다 :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45:2). 하나님은 고레스를 사용하여 바벨론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는 놋문을 깨뜨리고 쇠빗장을 깨뜨리신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미련한 자를 건지신 하나님 찬양)

 

17-20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미련했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는 육신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는 경고에 귀가 멀고 훈계를 멸시하는 세상적이고, 육욕적이며, 이기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입니다(1:7 12:15).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합니다.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습니다. 죄악의 길은 어떤 악한 행실의 과정, 어그러진 생활 습관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이들은 고난을 받아 음식물을 싫어하고 사망의 문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밥맛을 잃었습니다. 바벨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미련하여 스스로 그들에게 고난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가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입맛을 잃고 먹지 못하여 점점 사망의 문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죽음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감옥에서 그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하여 그들의 미련한 죄를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어떤 분이 불신자와 결혼합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외아들이 죽습니다. 그녀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께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아들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탕자가 성공하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망해야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도 효도하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가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십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치료의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위험한 지경에서 그들을 건지십니다.

병중에 있던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기쁨의 소식, 즉 완쾌된다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말씀이 히스기야를 고치십니다.(왕하 20:438:4)

예레미야 말씀을 통하여 70년이면 포로생활이 끝난다는 말씀을 받고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적 치유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고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시인은 말씀을 그리스도 곧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지경에서는 NIV에 무덤으로부터(from the grave)로 죽음에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KJVRSV 등은 파멸로부터(from destruction) 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가 빠져 있는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송함)

 

21,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인생에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거의 죽음의 경계에까지 갔던 자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목의 글이므로 감정을 넣어 오! 그분을 찬송하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번역은 생명을 위협하던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뒤 부른 히스기야의 찬양의 일부를 연상시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38:20).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망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인간은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메시야를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감사제는 교제 혹은 나눔의 제사를 뜻합니다. 본 제사의 특징은 제물의 일부분, 예를 들면 기름 덩어리만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린 몫을 제외 하고는 예배에 참석한 대중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희생 제물은 암수 관계 없이 소, 양 혹은 염소 등에서 취했습니다. 문맥상 본 제사가 기록된 핵심은 나눔에 있습니다.

죽음의 지경에까지 갔었으나 회복된 자는 개인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와 함께 고기를 나누며 자신이 경험한 바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강해 이부 감옥에서 건지신 하나님

말씀 시편 1079-시편 10722

요절 시편 10720절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107편 강해 이부 끝입니다.

 

시편 107편 강해 삼부 광풍에서 건지신 하나님

말씀 시편 10723-시편 10743

요절 시편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계속하여 예배하는 찬송시입니다. 지금까지 바벨론 포로 생활을 사막과 감옥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이제는 광풍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풍을 만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광풍을 만난 이스라엘)

 

23-25절을 보십시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배들을 바다에서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들입니다.

사막에서 방황하는 자의 모습에서 감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깊고 큰 바다를 오가며 장사하는 해상 무역인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저자는 본절에서부터 32절까지에서 해상 무역상들의 경험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구약 당시에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서 바닷가와 접하고 있었던 땅은 서쪽이었는데, 이 해안 지대의 상당 부분은 블레셋 및 가나안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정착했던 곳은 산간 지대나 트랜스 요르단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히브리인들 중에 해상 무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해상 무역에 종사했던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방인인 페니키아인, 블레셋인 등이었습니다.

23-32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대목이 나오므로 이방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28). 여기서 나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고생하는 것을 비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자입니다.

23-32절은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의 위험 및 구원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하신 일들을 깊은 바다로 봅니다.

여호와는 파도로 하여금 하늘에 닿을 듯 뛰어오르게 하는 강풍과 그 파도를 봄날의 부드러운 공기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미풍을 주관하시는, 자연계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니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즉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묘사하고 있는 창 1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시편 10531, 34에서도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다 물결은 그곳으로부터 온 파도들을입니다. 본절의 대명사적 접미사는 24절에 있는 명사 깊음(개역 성경에는 바다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깊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풍 속의 고통에서 건지신 하나님 찬양)

 

26-2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집니다. 이때는 속수무책입니다. 위험으로 그들의 영혼이 녹습니다. 그들은 휘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리는 배에 탄 선원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깊은 곳은 바다 혹은 대양은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간이 마치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닷 속으로 가라앉듯 그 끝을 알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의 무저갱 속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 녹는다는 녹아 내리다, 부드러워지다 등을 뜻하며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에 그 용기와 활력을 잃은 마음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15:15 2:9, 24 1:5).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가팅 비틀거립니다. 이리저리 구르며 - 문자적인 뜻은 빙빙 돌며로서 하나의 원 주위를 계혹 맴돌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됩니다.

지각이 혼돈하도다는 모든 그들의 지혜는 바닥이 났다입니다. 항해사들의 배를 조종하는 모든 기술이 무익한 상태에 처했습니다. 항해사들은 지식적으로 배운 항해술과 바다를 항해해 본 경험을 가지고 능숙하게 배를 조종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 능력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파도 앞에 항새사들의 보잘것 없는 지식 및 경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각이 없어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파도를 명령하는 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뿐입니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위경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호소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집니다. 그들은 파도로 인하여 속수무책입니다.

그들은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내십니다. 근심 중에서...부르짖으매 -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할 때 인간은 믿는 자건, 믿지 않는 자건 하나님께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의존 대상은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위기로부터의 탈출한 후에 하나님을 순탄할 때에도 의존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위기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좀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 그와의 동행에서 오는 기쁨과 평안을 주요한 제로 삼고 있습니다 (73편 등).

광풍을 평정히 하는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일을 행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8:26).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거칠게 뛰놀던 폭풍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물결 -문자적인 의미는 그들의 파도들입니다. 그들을 바다로 본다면 그 바다란 23절의 큰 물을 말하며, 선원들로 본다면 파도들 이란 선원들을 그 위에 올려 놓고 이리저리 내던지며 위협하던 그 파도들을 말합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신 하나님 찬양)

 

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들이 파도가 잔잔해지자 평온함을 받아 기뻐합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하나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니다.

평온함은 폭풍 후의 바다의 고요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지만(1:11, 12) 다툼의 종식을 뜻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26:20).

소원의 항구 에서 소원으로 번역된 헤프참이 소망하는 대상, 바라던 그 목적지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라던 목적지로는 기업, 태어난 고향, 선조의 무덤이 있는 곳, 처자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배운 인생들을 그들의 바라던 곳,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있는 목적지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큰 파도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가려고 하던 그 목적지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인도한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파도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배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고 안전한 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원하는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옥에 인도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신 인자하심을 찬송합니다.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을 찬송합니다.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 찬양)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합니다. 기이한 일은 바다의 위험 가운데서 인도하신 일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예수님은 그들을 광풍에서 건지셨습니다.

백성의 회에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개인적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공개해야합니다. 그가 경험한 일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모든 자들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그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장로들은 수염이 난 모든 성인들, 좀더 명확하게는 가정의 가장들을 의미하기도 하며(20:2 26:17) 한 종족이나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킵니다. 백성의 회가 나오므로, 일반 백성들과 구분하여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반전의 하나님 찬양)

 

33-3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십니다.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십니다.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 강은 일반적으로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긴 하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한 하수를 물 한방울 없는 바짝 마른 광야로 바꾸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자연계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암시해 줍니다. 우리는 이런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습니다.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십니다. 거민의 악을 인하여 - 뒤에 이어질 불행한 결과의 원인이 제시되고 있는데, 불행한 결과를 묘사하는 대목에 염밭이란 용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도성을 녹여버렸던 징벌 사건을 회상할 수 있습니다(19장 신 29:23 1:9). 옥토- 문자적인 뜻은 열매의 땅입니다. 말하자면 수확거리를 풍성히 내는 땅을 가리킵니다. 수확거리란 특정 품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땅이 낼 수 있는 모든 품종을 말합니다. 염밭은 소금기가 많은 습지를 뜻합니다. 아마도 열매의 땅과 대비를 이루는, 산성이 많아 쓸모가 없는 땅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것입니다. 사해 부근에는 이런 종류의 땅이 많다고 합니다. 그 땅 거민의 악행을 두고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선을 행하면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십니다.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십니다.

본절을 형성하고 있는 용어들은 사 41:18, 19 내용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어떤 학자들은 본절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33, 34절은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로 황량해진 본토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귀환으로 변경된 본토의 상황에 대한 묘사라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광야를 못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크신 은총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반전을 이루십니다.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거주하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이 되게 하십니다.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바벨론에서 굶주린 자들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여 번영을 누리며 도시를 건설케 됩니다. 고대에는 특히 팔레스틴과 같은 곳에서는 식수나 용수가 잘 조달되고 토지가 비옥한 지역에 인구가 번성하기 마련이며 도시가 번창하기 마련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의 밭에 파종하여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십니다. 소산을 취케 하시며 - 정직하게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자는 과거의 굶주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인 땅의 산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49:19 54:1 36:30,33-36).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십니다.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않게 하십니다.

당시 자식의 수가 느는 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총의 증거로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자주 족장들에게 하셨습니다(13:1622:17 26:4 32:12).

반대로 악을 행하는 자는 다시 압박과 재난가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게 하십니다. 다시...저희로 감소하여- 문자적인 뜻은 저희들은 그 수가 줄어짐을 당하여입니다. 수동적 의미가 강한 용어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지시하십니다. 번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요, 그 상황이 역전되었다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손아래서 된 일입니다.

인간은 항상 번영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인생 여정에는 변화와 불행과 실망과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계의 목적으로, 때로는 연단의 목적으로 환난을 허용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류에게 항상 번영만을 주실 경우, 인간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을 잊고 결국엔 하나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험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교만해집니다. 그의 간섭과 통치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인생들로 하나님만 전적 의지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번영을 주기도 하시고 역경을 허락하기도하십니다.

 

(정직한 자는 기뻐합니다)

 

40-4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고관들은 큰소리치기도 합니다. 부귀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삼천궁녀를 거느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악을 행하는 고관들에게 능욕을 쏟아 부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게 하십니다. 왕이 거지가 되고 자녀가 노예로 팔려가기도 합니다. 권세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집니다.

정직한 자는 이를 보고 깨달음이 있습니다. 길이 없는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십니다.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방백은 귀인 곧 지도층 인사로 보면 무난합니다. 문맥상으로는 특히 유다의 마지막 두 왕 곧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를 연상하게 만듭니다(왕하 24:8-20).

하나님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방백들에게도 차별없이 동일한 대우를 하시며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를 동시에 그의 통치권 아래 두시고 있습니다. 길 없는 황야 - 여기서 토후는 창조 전 혼돈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던 용어입니다(1:2 4:23). 그렇다면 본 구절은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비유할 수 있는 인생 여정의 일부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는 궁핍한 자를 그의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궁핍한 자는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 높이 드시고는 예사게브로 높게 되다(20:1 69:29)를 뜻합니다. 보호하다, 지키다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들을 계속되는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방백으로 멸시를 당케 하고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난관에 넣으셨던 하나님은 대조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계속되는 빈곤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적 섭리가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을 양떼 같이 지켜주십니다. 정직한 자는 이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합니다.

정직은 모든 거품을 걷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합니다. 포장하지 말고 감추지 말아야합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으로 기뻐합니다. 정직한 자는...기뻐하며 모든 악인은...입을 봉하리로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와 다르게 악인은 입을 봉합니다.

사람들은 타이나닉이라는 배를 만들고 이 배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이 배는 깨뜨리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빠른 배로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빨리 가려다가 빙산을 만나서 두동강이 납니다. 그때서 그들은 배가 가라앉을 때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크신 일을 할 때 악한 자는 입을 봉합니다. 기상대의 사람은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인간의 교만입니다. 그렇게 잘난척할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꼼짝 못합니다.

일본의 고베 지진이 나기 전에 바다를 메워 도시를 만들고 높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내진성을 연구하여 만들었으므로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진이 나니 그들은 꼼짝 못합니다. 내진성이 있다고 한 사람의 입을 봉합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므로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잘 하셨다고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항상 이렇듯 두 부류의 대조적인 반응을 낳기 마련입니다.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 역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에 두어져야 함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게 하심)

 

43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닫습니다. 직역하면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 여호와의 인애를 이해할 지혜자가 누구이겠는가?

이 같은 결구적 의문문은 호세아 선지가 그의 선지서를 마감하면서 던진 말을 상기케 합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14:9).

온 인류의 삶을 통치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는 일에 전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하여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사건을 통해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깊이 이해합니다. 모든 것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이 가장 부자입니다. 남의 것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주의하고 자세히 살피고 여호와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보고 인간의 구조를 보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구하니 목젖에서 홀몬이 나와서 입에 나오는 균을 죽인다고 합니다. 목젖에서 침이 나오고 침에는 중요한 항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과 밭과 고관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시편 107편 강해 삼부 광풍에서 건지신 하나님

말씀 시편 10723-시편 10743

요절 시편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107편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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