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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이부 음행의 죄를 이기는 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2-14 00:00:00
조회수 : 2,68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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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이부 음행의 죄를 이기는 자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2-요한계시록 2장 25절
요절 요한계시록 2장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지금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 전쟁도 치열하고 군사나 문화전쟁도 치열합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불화살을 날립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함정을 파고 덫을 놓고 올무를 설치합니다. 이런 사단의 올무에 빠지면 죽음입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음란의 불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일곱 교회의 편지 중에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두 교회의 공통점은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음란을 통해서 두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교회에 들어온 이런 음란의 독화살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음란을 이기고 순결한 자가 되어 재림의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날선 검을 가지신 이)

12절을 보십시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옵니다. 그 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이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을 판단하십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말하는 것처럼 말(언어)은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무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다 아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낱낱이 드러내고 심판하십니다. 버가모 교회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지 예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단의 권좌가 있는 버가모)

13절을 보십시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먼저 버가모 교회를 칭찬합니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입니다. 사단이 사는 곳입니다. 우상 숭배의 본거지입니다. 버가모에 사단이 사는 본거지가 있습니다. 버가모 사람들은 제우스신 등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곳이 있습니다. 경주는 천년 불교역사가 자리잡은 곳으로 사단이 사는 본거지입니다. 천안도 좌불상 성불사가 있는 사단의 본거지입니다. 통일교가 세운 선문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버가모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취업이나 상거래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버가모 교회는 훌륭합니다. 우리 천안 ubf 목자님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갑니다. 그러나 복음과 캠퍼스 개척을 위해서 천안에 남은 목자님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저는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멀리서도 예배에 나온 한 분 한 분을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버가모 교회의 발람의 교훈을 책망함)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를 칭찬한 후에 두어 가지 책망하십니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발람에 대해서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복을 앞둔 때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의해서 자신이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백성으로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물질에 미혹되어 계속 기도하며 모압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모압에 가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자 발람은 꾀를 내었습니다. 모압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먼저 미스 모압을 뽑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미스 모압들이 이스라엘 남자들 앞에서 야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접촉하게 하여서 유혹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청년들은 사십 년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광야 훈련에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자들 앞에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행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노하사 삼만이천 명이나 죽게 하였습니다. 발람도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여기서 고난보다 무서운 것이 음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음행의 교훈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삼십육 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극심한 가난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어려움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극복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난 가운데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교회는 부흥하고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가 지금 음행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가 돕던 한 양은 교회를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니는 형제입니다. 부모는 장로요 권사입니다. 그러나 학생이 동거하여 한번은 부모가 낙태를 시켰습니다. 지금은 다시 동거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한 여자와 동거하고 그 여자가 결혼을 시켜달라고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동거하던 여자입니다. 왜 아들과 결혼하려고 하냐고 물으니 전에 남자보다 더 이해심이 있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한 자매는 한 형제와 동거했는데 지금 그 형제는 이단에 빠진 형제입니다. 그 형제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학교 다니는 형제와 결혼하여 사모가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음란의 죄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버가모 교회에게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십니다. 니골라당은 무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율법의 시대는 지나갔으므로 무엇을 해도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영만 선하고 육은 악하므로 무슨 악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 받기 때문에 무슨 악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니골라당은 음란의 죄를 합리화하는 철학입니다. 이들의 말은 맞는 말 같으나 맞지 않습니다. 율법의 시대는 지났으나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율법을 지켜야합니다.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완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영과 육이 분리되어 이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육과 영은 하나인 것입니다. 영이 육에 영향을 미치고 육이 영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영으로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지만 죄를 회개하고 고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요즘도 여러 심리학과 의학적인 이론으로 음란의 죄를 합리화합니다. 구성애씨는 자위행위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고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심리학의 이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음란한 생각과 상상을 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음란사이트에 들어가고 바람을 피우는 것은 자연스런 남자의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런 음란한 본능도 있지만 거룩하게 살고자하는 성령의 본능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니골라당의 교훈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음란을 회개하라)

16절으로 보십시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서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에게 책망하십니다.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은혜 속에서 율법을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그들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며 뉘우쳐야합니다. 그리고 의지적인 결단을 하고 죄를 끊어야합니다. 회개하면 용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죄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의 본성이 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죄를 범했다고 곧바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귀히 쓰십니다.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잠을 잔 패륜아입니다 넷째 유다는 예수님의 조상이지만 그는 며느리와 잠을 잔 패륜 시아버지입니다. 다윗은 충신의 아내와 잠을 잔 패륜 왕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눈물로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듣고도 회개치 않으면 예수님이 심판하십니다. 재림 예수님은 오셔서 입에서 나오는 불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를 주심)

17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회개하라는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우선은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요셉처럼 죄를 보고 도망가는 자입니다. 죄악된 환경을 피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다음으로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사단은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를 합리화시킵니다. 죄에는 끊임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죄의 쾌락으로 붙잡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꼼수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그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십니다. 생명의 말씀을 주십니다. 또한 흰 돌을 주십니다. 흰 돌에는 새로운 이름을 기록한 것을 주십니다.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여 주십니다.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자가 없이 은밀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휴거의 영광, 첫째 부활의 영광을 주십니다. 우리가 죄가 있다면 오늘이 가기 전에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 지 모릅니다.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때가 늦은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심)

18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예수님은 이제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합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 같습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죄를 꿰뚫어보십니다. 그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빛난 주석으로 죄악을 회개치 않는 자들을 발로 밟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음)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예수님은 먼저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업에 열심이었습니다. 복음 전파 사업도 하고 구제 사업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여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자들을 섬겼습니다. 나그네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참고 견뎠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나중에 행위가 처음의 행위보다 나았습니다. 그들은 갈수록 신앙이 좋아졌습니다.

(이세벨을 용납함)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에 이어서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을 용납하였습니다. 그가 주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두로왕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를 우상숭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야 시대 하나님의 종들을 다 죽였습니다. 엘리야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딸 아달랴를 유다에 시집보내사 다윗의 후손을 다 죽이고 여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세벨은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과 같이 영향력 있는 여자였습니다. 미실에게는 사다함, 화살의 전설 칠숙, 미실이 사랑하고 믿었던 설원, 미실의 믿음직한 남편 설원공, 미실의 동생 미생공, 미실의 남편 세종들이 있습니다. 이세벨은 이런 미실처럼 여러 남자와 관계하였습니다. 더구나 이세벨은 여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신령하여 예언을 하고 미래를 알아맞히는 족집게 선지자였습니다. 음행의 죄를 지으면서도 신령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런 이세벨이 죄악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쫓아내지 않고 용납하였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세벨이 두아디라의 큰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남자들과 두터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쫓아내면 그와 함께 여러 남자들이 따라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여 미치는 영향도 클 것입니다. 이런 피해로 인하여 이세벨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손해를 볼 각오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 진리를 수호하는데 방해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손해를 각오하는 마음이 없어서 진리를 행하지 못합니다. 장로나 집사가 바람 피우면 책망해야 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를 책망하고 그가 반발하여 나가면 교회 재정이 휘청거립니다. 교회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그런 자를 용납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용납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죄도 용납합니다. 이런 죄는 누룩처럼 교회에 번져서 교회를 썩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이 있어도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합니다. 더구나 이세벨은 선지자요. 신령하였습니다. 족집게처럼 사람들의 과거를 알아맞췄습니다. 그는 예언하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보다도 이런 사람들의 예언에 더 관심을 갖다 보면 죄와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예언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점쟁이나 무당들도 예언을 합니다.

(음행을 회개하지 않음)

21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의 쾌락을 더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교만하게 말씀을 대적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는 자는 용납하지 말고 교회에서 쫓아내야합니다. 예전에 상명대에 한 자매가 한기대의 한 형제와 음행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목자는 그를 밧다를 쳐서 쫓아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학생회 타격이 있었으나 아주 잘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환난에 던짐)

22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은 이세벨을 그녀가 음행한 침상에 던집니다. 그녀는 돌침대에서 죄를 지었는데 그 돌침대가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또한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도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집니다. 음행으로 태어난 그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던집니다. 그들은 지옥 불에서 고통합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십니다.

(복음을 굳게 잡아야함)

24,25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어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자에게 격려하십니다.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고 거룩하게 사는 자들에게 한 가지를 더 권면하십니다. 사단은 깊은 세계가 있습니다. 불교는 심오한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합리화시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거룩함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부활의 복음이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죄사함의 복음이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굳게 잡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굳게 잡아야합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지키는 자)

26-28절을 보십시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예수님은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죄를 이기는 자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를 쫓아내는 자입니다. 어떤 희생과 아픔이 있어도 죄와 타협지 않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는 끝까지 복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려 질그룻을 깨뜨리듯이 만국을 깨뜨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받은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새벽 별을 주십니다. 새벽 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

29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음란의 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음란의 화살을 물리치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성령님은 이기는 자가 되는 길을 세 가지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대적해야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둘째는 음행하는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가 지는 자요. 회개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셋째는 회개치 않는 자는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파렴치한 자를 두는 자가 지는 자요. 쫓아내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교회는 죄인을 용납하나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죄를 용납하면 교회는 물이 새는 방주와 같습니다. 다 함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해야합니다. 우리 죄를 회개하고 회개치 않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므로 이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음란의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음란의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합니다. 어떤 희생이 있어도 음란의 죄와 싸워야합니다. 음란문화 뒤에 있는 이해 관계를 경계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떤 이익이 있어도 음란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손해가 있어도 음란을 물리쳐야합니다. 음란 뒤에서 음란을 합리화하는 사상을 경계해야합니다. 깊은 철학이나 심리학을 경계해야합니다. 문화를 경계해야합니다. 음란 뒤에 있는 신령한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음란을 합리화하는 종교를 경계해야합니다. 우리가 음란의 죄와 싸우고 이겨서 거룩하게 살면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책에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시고 새벽별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음란을 이기는 자가 되는 은혜를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이부 음행의 죄를 이기는 자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2-요한계시록 2장 25절
요절 요한계시록 2장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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