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일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2-10 00:00:00
조회수 : 4,451

문제지풀이(2)

    iconB_27732A.hwp  (22.00KB)

    iconB_27732B.hwp  (27.50KB)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일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요한계시록 2장 11
요절 요한계시록 2장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입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한번 소리내어 읽어보겠습니다. 계시록 2, 3장에 보면 예수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일곱 교회를 대표적으로 선택하여 앞으로 생겨날 일곱 유형의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에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하였습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기독교인을 극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전도하다 붙잡혀 밧모섬에서 유배 가서 일곱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중에 에베소 교회와 서마나 교회에 편지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두 교회에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에베소 교회)

1-7절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는 내용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삼차 전도여행 때 삼년에 걸쳐 개척한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지방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는 큰 아데미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의 형상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술이 성행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였을 때 마술책 은 오만어치나 불살랐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에는 디모데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후에는 이 편지를 쓰는 사도 요한도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에베소에는 사도 요한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양들을 생각하며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이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1절을 보십시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자에게 편지하여 그 편지를 에베소 교회 전체가 돌려가며 보기를 원하십니다. 이 편지는 에베소 교회에 있는 전교인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십니다. 일곱별은 일곱 사자 곧 일곱 목자를 의미합니다. 목자는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한 자는 일등별처럼 빛나고 자신 혼자만 구원 받은 목자는 은하수처럼 희미하게 빛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자들을 책임지고 계십니다. 목자들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를 붙잡고 보호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예베소 교회의 목자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 안 듣는 목자들은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아 버리십니다. 그럼 목자는 별똥별처럼 떨어져 똥덩어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십니다.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말합니다. 촛불이 주위를 밝히듯이 교회는 그 시대와 지역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합니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다니시며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떠나시면 교회는 교회로서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교회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찾아 옮기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아시는 예수님)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먼저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책망하기 전에 먼저 칭찬하는 것이 성서적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책망할 것이 있으면 일단 자녀를 칭찬부터 하고 다음에 책망해야 합니다. 요즘에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배에도 잘 참석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십계명 말씀도 잘 가르쳤습니다. 요즘에 고난을 받으면 신앙을 잃어버리는 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고난을 인내하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교인들이 아데미 신을 섬기지 못하게 한다고 하여 에베소 교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이런 핍박을 받으면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또한 요즘에 세상의 음행 죄와 타협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6절에 보면 당시 니골라당이 있었습니다. 니골라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그들은 육적인 방종에 흘러서 음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음행의 죄와 타협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와 절대적인 자세로 싸웠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요즘에도 신천지나 다락방과 같은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자칭 사도라 하지만 사도가 아닌 이단을 물리쳤습니다.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이 있어서 영만 깨끗하면 되지 육신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쾌락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니면 음식이나 혼인을 폐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이런 자들을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이런 고통을 참고 견뎠습니다. 그들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했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깊이 이해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참 좋은 교회같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한 가지 죄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심)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첫사랑은 어떠했을까요? 바울이 삼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인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자 열두 명 정도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중심으로 제자양성을 하였습니다. 이들을 눈물로 말씀을 가르치며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서로 간에도 사랑이 깊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 강력으로 일하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앞치마만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소아시아 전역에 전하였습니다. 이들은 여러 시험을 이기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여러 이단과 싸우다가 그들은 점점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진리를 지키다가 사랑을 상실하였습니다. 진리는 사랑 속에 있어야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합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사람을 질리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고 일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의무감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첫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첫사랑은 어떤가요? 첫사랑은 순수합니다. 첫사랑은 뜨겁습니다. 첫사랑을 할 때는 연애편지를 읽고 또 읽어 다 헤어지기까지 읽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속에 있는 내장이 다 흘러내릴 것 같습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것이 첫사랑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죄사함을 받을 때 온 세상이 행복하게 보입니다. 마치 천국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기도시간이 달콤한 연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은 일 년 반밖에 못갑니다. 너 없이 못산다는 것은 일 년 반밖에 못갑니다. ‘결혼’을 어떤 사람은 ‘결국은 혼자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있으나마나 잘 산다고 합니다. 부부도 결혼하기 전에 서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하다 보면 자연히 아내는 남편보다는 남편에 벌어오는 돈에 관심을 갖습니다. 남편은 아내보다는 아내가 해주는 반찬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녀에 관심을 더 갖습니다. 서로는 첫사랑을 잃고 일 중심이 되어 형식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결혼생활에 불평이 생기고 짜증이 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허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수고와 인내를 하지만 사랑 없으면 불평을 합니다. 평생 수고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 없이 헌신한 것은 울리는 꽹과리같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 없는 교육은 상처만 줍니다. 사랑 없는 충고는 힘만 들게 합니다. 참고 부지런해도 사랑이 없으면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도 사랑이 없으면 이렇게 됩니다. 분명히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도 드립니다. 때로는 새벽기도도 나옵니다. 살인하거나 간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에 은혜가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감격이 사라집니다. 말씀을 들을 때 애틋함이 없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새로운 양들이 와도 너 왔냐? 소닭 보듯이 합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행함도 있고 열심도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5a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므로 바울은 이들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언제부터 첫 사랑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돈 때문입니까? 명예 때문입니까? 직장 때문입니까? 인간관계 때문입니까? 양을 치는 것 때문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 타락합니다. 우리가 일중심이 될 때 타락합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언제부터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해야합니다. 마음으로 애통해하며 방향을 바꾸어야합니다. 부부의 사랑이 식어졌을 때 추억여행을 해보라고 합니다. 처음 여행하던 곳으로 돌아 가보라고 합니다. 그곳에 돌아가 보면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변질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첫 사랑을 했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려면 상대방과 대화를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말씀공부를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처음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눈물로 서로 권면하던 때로 기억하고 그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우리는 첫사랑의 감격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첫사랑의 불을 지펴야합니다. 칸트는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도 행복하지만 사랑을 할 때도 행복합니다. 야곱은 칠년을 수일같이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첫사랑을 회복하였습니다. 처음 사랑에서 처음은 헬라어로 프로토스로 절대 우선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우선적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첫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욘 사마에게도 미치지 못합니다. 일본인 여성들이 배용준을 사모하여 남이성을 많이 방문합니다. 이들을 욘사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사마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주일 말씀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감격적인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랑입니다. 그는 사랑을 경험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에베소 교인도 바울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난나고 할 때 그들은 목을 안고 서로 울었습니다. 누가 전도합니까? 첫사랑을 회복한 사람이 전도합니다. 사랑에서 생명은 태어납니다. 사랑하면 새로운 양들이 자랍니다.

(사랑이 없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5b를 보십시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인들이 회개하여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교회의 촛대를 옮기십니다. 교회의 문을 닫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에베소 교회는 회개하지 않아 이 편지를 보낸 후에 백 년쯤 지나서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약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처음 교회들은 뜨거웠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며 성도 간에 뜨거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유비에프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 사랑하였습니까? 밤이 &#47583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저녁이면 일대일하는 사람들로 교회는 가득 찼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여 집에 먹을 것이 없어도 초대하기를 힘썼습니다. 그 처음 행위를 가져야합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시는 예수님)

6,7절을 보십시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였습니다. 니골라당은 음행하는 자들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음행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면 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낙원에 들어가게 하시고 생명 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십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그 생명나무를 주어 먹게 하십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인도하시고 영생복락하게 도우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갑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는 큰 축복이 임하지만 회개하지 않을 때는 무서운 심판이 임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8절을 보십시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마나 교회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로 로마 인도 폐르시아로 가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상업이 발달하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 곳입니다. 이곳은 태양신을 섬기는 제우스 신전이 있고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터어키의 첫번째 도시는 이스탐불입니다. 두번째 도시가 수도인 앙카라입니다. 세번째가 서마나입니다. 이 도시는 돈이 많아서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서마나 교회에 편지를 쓰시는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처음이십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여 세상의 마지막을 끝내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고난 받는 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십니다. 사망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궁핍하나 실상은 부요한 자)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서머나 교회는 많은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습니다. 서머나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난뱅이가 되어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굶주림과 벌거벗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아시고 이해해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편에서 그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볼 때 부유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으나 예수님을 소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상이 하늘에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영적인 부요함을 가진 교회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대부분의 교회는 예수님에게 질책을 받습니다. 그러나 서마나 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와 함께 책망을 받지 않는 두 교회 중의 한 교회입니다. 요즘은 서마나 교회와 달리 모든 것을 가졌으나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은 여러 집과 여러 여자를 소유했고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년에 정신병이 걸려 중얼거리며 다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그녀가 중얼거린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했으나 모든 것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서마나 교회는 모든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서마나 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습니다. 서마나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선민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선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도 황제 숭배를 하지 않아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환난을 피하고자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을 이단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유일신을 모독한다고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디서나 복음 전도자를 핍박하였습니다. 서마나 성도들은 유대인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는 유대인들의 비방이 아니라 그 뒤에서 사탄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사탄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핍박을 받으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서마나 교회는 핍박 받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10절을 보십시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마나 교인들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마귀가 장차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습니다. 십 일은 제한된 시간입니다.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환난은 사라집니다. 그들은 환난을 참고 견디어야합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죽기까지 믿음 중심을 지켜야합니다. 당시에 서마나 교회의 감독은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캅이었습니다. 156년 2월 2일입니다. 폴리캅은 그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총독은 폴리캅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폴리캅이 거부하자 폴리캅과 열한 명의 제자가 잡혔다고 합니다. 총독은 단 한번만 형식적으로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하면 살려주겠다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86년간 한번도 나를 부인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주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총독은 두 번째로 당신을 맹수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폴리캅은 “맹수를 부르셔서 빨리 천국에 보내주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에 태워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불보다 더 뜨거운 지옥의 불을 두려워하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불을 질렀는데 잘 타지 않자 칼로 그를 찔러 죽입니다. 지금도 서마나에는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이 벽에는 폴리캅이 순교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벽화에는 순교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순교 신앙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핍박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합니다. 충성은 대상을 목적으로 삼고 대상을 즐기는 것입니다. 골프를 하면 골프 자체를 즐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골프에 돈을 걸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여 죽어도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그 자체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양들을 위하여 관제로 드려져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관제는 피를 뿌려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양들을 사랑하여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바울의 행복이었습니다. 바울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위해서 죽어도 행복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모습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 있습니다. 뮤지컬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믿느냐? 이삭은 아멘! 이라고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느냐고 합니다. 아멘 합니다. 그 다음에 두 손을 묶고 칼을 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약속을 믿을 때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충만히 깨달았다면 죽음의 제단에 올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동에서 충성합니다. 고난도 자랑스럽게 면류관으로 받아들여야 충성합니다. 고난을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다 얻어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없다면 실패입니다.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여기서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로 왕관이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경기에서 인내하고 싸워서 이겼을 때 주는 면류관입니다. 불신을 이기고 불평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이긴 자에게 금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을 주심)

11절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를 이기는 자라고 합니다. 환난 중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이들은 핍박을 이기고 승리한 자입니다. 그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이는 영벌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부활하여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서마나 교회가 죽도록 충성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들 교회가 지금까지 남아 있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사랑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행복할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기까지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일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요한계시록 2장 11
요절 요한계시록 2장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시록 2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3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이부 음행의 죄를 이기는 자 오요한 2008-12-14
2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장 강해 일부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오요한 2008-12-10
1 [요한계시록] 요한게시록 1장 강해 구름타고 오시리라 오요한 2008-12-10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