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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2015 여름수양회 새벽메시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작성자 : onoingod
작성일 : 2015-07-24 00:00:00
조회수 : 648
로마서 12장 9-13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 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9 Let love be without hypocrisy. Abhor what is evil-Cling to what is good. 10 Be kindly affectionate to one another with brotherly love, in honor giving preference to one another. 11 Not lagging in diligence, fervent in spirit, serving the Lord 12 Rejoicing in hope, patient in tribulation, continuing steadfastly in prayer 13 Distributing to the needs of the saints, given to hospitality.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매우 작고, 가정집 같은 건물을 쓰고 있습니다. 큰 교회에 가면 공짜로 영어회화도 가르쳐 주고 악기도 가르쳐 주지만 우리 교회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사랑만 우리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이 최고로 여기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좋은 교회란 이런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씀대로만 하면, 정말 우리 교회가 최고의 교회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이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보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 이 길을 가면 외로울 수도 있으니 오늘 이 말씀을 나누고, 다 같이 순종을 결단하면 더더욱 좋겠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사실 우리는 별로 자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옆에 같이 앉아 있는 분들은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시편 말씀에서 다윗은, 자신의 모든 즐거움이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가 왜 서로에게 이렇게 존귀하고, 또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존재입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섬기는 분은 하나님 한분입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같은 말씀에 순종하고, 같은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헤어지더라도 결국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볼 친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곁에 있는 분들은 존귀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진리에 기초하여,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제 1장 거짓이 없는 사랑

9절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이 무엇입니까?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요. 사랑일까요?”
“머리가 빙빙 돌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사랑 때문일까요?”
“일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몽합니다. 사랑 때문 맞을까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담 글입니다. 맞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위의 증상들은 사랑하는 이성을 만났을 때 생기는 증상들입니다. 하지만 위의 것은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 중의 한 가지 인데, 이성을 향한 감정적인 사랑, 에로스에 해당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으로 인해 나오는 도파민은 그 유효기간이 3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인데, 이 사랑은 감정에 의존하는 사랑은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거짓이 없는 것, 선한 것, 옳은 것입니다.

9절을 전반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다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중에는 진실된 사랑도 있고 거짓된 사랑도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실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감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내 감정은 원수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말씀에서 사랑하라고 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은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간음입니다. 이삭 목자님은 6월 6일자로 품절이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삭목자님을 남편으로 사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센터에 이삭목자님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 같은 젊고 아름다운 자매님이 나타나서 이삭목자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면, 그 사랑은 거짓입니다. 그 사랑은 말씀으로 대적해야 하며 그런 마음이 혹시라도 들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사랑은 내 마음가는대로 하는 편안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간에도 분명히 말씀대로라면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정말 맘에 안드는 어떤 부분이 내 옆의 성도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 좋은데 꼭 센타에서 물을 마시고 컵을 안 닦아 놓습니다. 어떤 분은 나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줘서 정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기초한 사랑을 순종해서 해야 합니다. 자아를 죽이는 고통, 십자가 위에 죽는 것 같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9절 후반부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합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엘리는 아들들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다 훔쳐 먹고,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간음 하는 등, 천하의 나쁜 놈들이었습니다. 엘리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당장 아들들에게 달려가 죄를 책망하고, 이들이 죄를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회개하도록 도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런 엄격한 모습 대신, 죄 앞에서도 아주 인자한 모습으로 “아들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잖아. 그러지 마. 소문이 안좋아~ ” 라고 부드럽게 타일렀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서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 평가하십니다. 엘리의 사랑은 비극적인 사랑입니다. 악을 미워하지 않으니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불렀습니다. 엘리와 아들들은 전쟁통에서 같은 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비느하스는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싯딤에 머무를 때 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분위기 파악이 안된 한 이스라엘 청년이 미디안 여인을 껴안고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비느하스는 그를 보고 손에 창을 들고 그들을 따라 막사에 들어가 창으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 한 번에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즉시 이스라엘 가운데 퍼지고 있던 염병을 그치게 하시고 비느하스에 대하여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다” 평가하십니다.

이 두 가지 성경 속 예화를 볼 때, 사랑은 핑크빛이 아닙니다. 사랑은 때론 아픔을 각오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분명히 잘라내고 하나님 편에 서야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 킹제임스 버전을 보면 더 강하게 말합니다. “Abhor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악을 혐오 해라! 선에 매달려라!” 사랑이란 하나님이 질색하시는 것을 나도 질색하고, 하나님이 매달리시는 것에 나도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하게 하여,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진리에 기초한 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제 2장 거짓이 없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10-13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10절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형이고 오빠이며, 언니이고 누나입니다. 여동생이고 남동생입니다. 우리는 친가족처럼 사랑하며 우애가 두터워야 합니다. 저와 요한 주니어 목자님은 주변에서 인정할 정도로 우애가 좋습니다. 오빠는 저를 사랑해서 제 결혼식 때 친구들을 모아서 세상에서 제일 멋진 축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저는 요한이 오빠를 매우 사랑해서 신혼여행을 갔는데도 오빠 생각이 나서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사서 선물 보따리를 챙겨주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 대해서 내 동생처럼, 내 오빠나 누나처럼 이 같은 마음을 품어 사랑한다면 아주 훈훈하고 따뜻한 모임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합니다. 존경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날마다 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가 내 허물 때문이지 저 사람의 허물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너무 악하고 교만하고 불순종 하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사도중의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자”, “죄인중의 괴수”로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자기 발견은 자연스럽게 내가 스스로를 높일 수 없게 합니다. 반면, 상대방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존경하게 합니다. 우리가 서로 존경할 때,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낮추어 보고 무시하는 것은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되 존경하기를 ‘먼저’하라고 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이 나를 존경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나를 존경하면 그 때에야 나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존경이 나에게서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하는 것을 봐서 나도 하겠다는 마음이 아닌,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먼저 존경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1절입니다.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말씀에서의 열심은 성령 안에서의 열정입니다. 보통 부지런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가 쉽습니다. “나는 이만큼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모드의 부지런함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부지런함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의 부지런함은 100% 은혜에 기초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리는 부지런함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만큼 해주셨는데, 내가 무언가 드릴 것이 없는지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합니다.

12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기 때문에 어떤 환난도 견딜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크게 쓰시려고 이렇게 연단하시나 하는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환난 때에 절망하고 자책하고 불평 하는 데에 힘을 쏟기보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그것을 견디며 그 와중에도 소망을 갖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금방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임의 경미 목자님이 세 달이 가까이 되도록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방에서 기침 소리가 너무 고통스럽게 들렸습니다. 나영 목동님은 그 기침 소리를 듣고 경미 목자님의 장기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아무나 견딜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미 목자님이 환난을 견디심으로 고통 받는 자들의 좋은 목자가 되실 소망이 있습니다. 그 고통 중에도 경미 목자님은 매주 헌금 기도를 하셨습니다. 환난 중에도 항상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분명 귀 기울여 들으실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이 환난이 언젠가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소망의 빛이 구름 속에 가리워졌던 햇빛이 드러나듯 드러날 것을 믿습니다.

13절입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 성도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칭찬하고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성도들의 사랑하는 모습, 서로 나누며 대접하는 모습은 세상의 계산적인 사랑에 지친 사람들에게 큰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됩니다. 이모세 목자님은 수요 모임때에 사모님들이 섬겨주시는 사랑의 밥에 힘을 얻어 고난을 이겨내셨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승식 목자님은 모니카 목자님이 싸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연구실에서 쥐들을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저는 22살 때 West L.A 센터를 방문하였을 때 선교사님들이 우리를 푸짐하게 먹여주고 좋은 것을 구경시켜주고 영어를 가르쳐주고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사랑에 크게 감동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꼭 저런 목자가 되어서 학생들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사랑과 섬김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양식 말씀을 통해 오늘 요절 말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말씀을 묵상했을 때, 저의 마음에 확실히 와 닿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많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안생기는 상대방에 대해서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은 한 가지는 ‘사랑은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관한 것이다’ 라는 깨달음입니다.

저는 감수성이 그렇게 많이 풍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조금 무뚝뚝하기도 하고, 남 신경 안쓰고 자기 앞가림만 열심히 할 때가 많습니다. 감정적으로 풍부한 사랑을 하기에 적합한 유전자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진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목자님들과 형제, 자매들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성경대로 예수님이 사흘만에 살아나게 하심으로 성경대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내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의 눈치나 보며, 사람의 종노릇 하고, 칭찬에 목말라 놀지도 못하고 명예를 좇아 일만 죽도록 하다 비참하게 죽을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결혼 예배를 드리면서 또 하나님이 진리대로 나를 사랑하셨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에 대해서 “내게 줄로 재어준 그 구역이 실로 아름답고 즐겁다”라는 시편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김다윗 목자님의 주례사와, 너무나 아름다웠던 목자님들과 학생들의 축가, 1시간이 넘었던 긴 결혼 예배에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눈빛으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을 통해, 무엇보다도 우리의 결혼 예배에 분명히 임재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저의 결혼이 말씀대로 정말 아름다고 즐거운 선물이며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고 감격하여 눈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삭목자님이 아침 식사를 준비할 뿐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설거지를 할 때도 사랑의 말씀을 성취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초합니다.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내 안의 감정을 무분별하게 쫓아가는 사랑은 부부클리닉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보여지는 것 같은 비극을 낳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사랑은 내가 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안전합니다. 말씀에 기초한 사랑은 흠이 없이 완전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양들을 대하고, 교회의 성도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에 기초한 완전한 사랑을 하는 최고의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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