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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넉넉히 이기느니라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4-07-25 00:00:00
조회수 : 792
하천에서 사금을 캐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모래 속에 덮여있는 사금을 1차, 2차, 3차로 나누어 사금을 채취합니다. 사금을 채취할 때에는 사금이 숨어있을 법한 곳의 모래를 떠서 채로 걸러냅니다. 옛날 방식으로는 계속해서 흔들며 채질을 하여 모래들을 걸러내어 마지막 남은 아주 작은 사금을 발견해 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금이 되려면 모래를 빼내야 합니다. 모래가 덮여있는 사금은 사금이 아닙니다. 그냥 모래일 뿐입니다. 모래를 걸래내는 흔들고 채질하는 과정은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안에 모래를 걸러내는 과정 또한 힘이 듭니다. 괴롭습니다. 아픕니다. 이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지금 현재는 너무나 괴롭지만 후에 아름다운 사금으로 결과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고난 없이 영광이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며 크고 작은 많은 고난과 고통으로 넘어지고 쓰러지곤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 등을 통해 그 상황을 도피하며 극복하려 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들은 모든 상황 가운데 극복하는 방법이 그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복이와요.’, ‘교회다니면 부자되요.’ 라는 말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더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고 취업은 더 안 되고 학점은 더 안 나올 때도 있고 더러는 세상 속에서 사는 이들로부터 배척받고 버림받으며 오히려 세상사는 것이 더 더욱 힘들어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말씀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은 지금 우리가 고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 받으며 고통 받는 이들이 지금 너무나 힘들고 지치고 괴로워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때로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기도 합니다. 기도를 하지만 낫지 않습니다. 바울도 질병에 걸려 힘들어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들인 우리가 가진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망입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라는 소망이 있기에 지금의 고난과 질병과 아픔과 모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내고 참아내고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 땅 위에서의 소망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될 구원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지금 겪고 있는 또는 앞으로 겪게 될 모든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뎌낼 수 있게 하십니다.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살면서 수많은 고통과 고난이 따릅니다. 때로는 가족이 아프다거나 하는 일들이 잘 안된다거나 학점이 안 나와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등 많은 고통이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들로 우리에게 주시지만 그렇게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험에 당할 때, 우리가 죄로 인해 넘어질 때,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두렵고 힘들어할 때 등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도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전달하기도 하지만 성령님의 임재 없이 한다면 나의 욕심이 반영이 되어지고 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느낍니다.
27절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를 본받아야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곧 말씀을 기초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 나의 원대로 기도하고 있을 때, 같은 말만 반복하며 중언부언 기도하고 있을 때, 이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가 잘 안된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막연하고 답답했습니다. 기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내 마음대로 구하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새벽기도 때 들은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속에 죄가 조금씩 떠오르게 되고 그 것을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령님의 마음을 같이하며 기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넘쳐났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저는 요 근래 삶의 생기가 없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삶의 의미를 잃었구나...
저는 실습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바빠졌습니다. 하는 일은 그다지 없지만 집에서 차로 약 30분정도 거리가 되는 곳에 왔다갔다 하면서 새벽기도도 조금 소홀해 졌습니다. 말씀 읽는 시간도 드물어 졌습니다. 어느날 잠자리에 눕기 전 일기를 쓰면서 느꼈습니다. 나의 삶의 생기가 없다는 것을, 나의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점점 나의 영적인 눈에 사단의 눈꺼풀이 점점 덮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 아.. 말씀이 없으면 안된다.’ 소갈비를 먹어본 사람은 소갈비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알기에 그 때 그 한번의 소갈비 맛을 또 보지 못하면 갈급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소갈비보다 더 맛있고 달콤한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찾지 않기 때문에 허무함. 회의감. 삶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됨을 느꼈습니다. 말씀은 우리 삶의 이유가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떠나면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믿는 우리는 말씀이 없으면 안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매일같이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해놓고 일용할 양식을 찾지 않는 모순을 행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찾아야합니다. 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용할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구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구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하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또 우리 서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세상 속에서 직장 속에서 학업 속에서 가정 속에서 수 많은 고난과 고통, 환난과 핍박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이 수양회를 참가하고 있는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수양회가 마치고 직장이나 학업, 가정에서 겪게 될 고난을 미리 인지하여 걱정하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하나만 봐서는 우리에게 고난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합하여 져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십자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자수 하나하나를 놓으면 뒷부분은 지저분하지만 완성된 앞부분은 매우 아름답습니다.우리가 지금 있는 이 세상 속에는 엄청난 고난과 고통 속에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순간 힘이 들지 모르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엔 선을 이루기 위해 후에 나를 쓰시기 위한 훈련의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가있는 동안 여동생이 집을 나갔습니다. 아주 조용히 짐 싸서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가서 1년 넘게 연락이 없었습니다.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항상 눈물로 밤을 지내시고 아버지는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군대에 있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동생이 나가있는 동안 저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님의 신앙마저도 무너져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 속에서 저를 만나주셨고 저를 통해서 다시금 가족의 신앙을 살리심으로 믿음으로 동생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는 집사님이라는 직분을 감당하시며 매주 주일예배를 항상 사모하시며 참석하시고 어머니께서도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도 나가십니다. 가정은 서로의 소중함을 더 잘 느끼고 가족 카톡방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 고통과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가정의 이 끈끈한 사랑의 관계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과 고통, 시험, 환난,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요셉이 팔려서 형들로부터 버림받고,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감옥에 갇혔지만 결국엔 총리가 되어 가족을 만나 그들에게 닥칠 더 큰 환난을 극복하도록 돕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악한 행동으로 인해 붙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로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도록 하시는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황청심원을 원샷하고 수능을 본 저에게 터무니없는 시험점수로 저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아무것도 아닌 저를 단국대로 인도하셔서 UBF로 인도하시고 말씀을 배우며 학생 시절 캠퍼스를 위해 이렇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이 모든 상황, 고난들은 쓸모없는 것 하나 없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모든 것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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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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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그런즉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더 이상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엄청난 무기는 ‘엄마한테 일를꺼야.’입니다. 그 엄마가 옆에 있으면 어느누구도 그 아이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 옆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린 누가 건들면 하나님한테 일르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우릴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학점을 주시는 교수님이 무서웠습니다. 4학년 1학기 어느 수업에서 기말고사로 강의를 시연하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것을 보시고 교수님은 평가하셨습니다. 제 앞에 많은 똑똑한 학우들의 시연을 보며 더 떨렸고 앞으로 나가는 순간 머리가 많이 하얘졌습니다. 끝나고 나서 교수님께서 피드백을 해주실 때에 어떠한 비난과 화살이 나에게 올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보지 않게 해달라고. 교수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즐기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내가 왜 떨렸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제 뒤에 있는 크신 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제 빽이 버젓이 저를 돕고 계시는데 기억하지 못했기에 떨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보다, 총장보다, 대통령보다 더 크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사단보다도 더 크신 분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떨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까요? 우리의 빽은 하나님이십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후에 육신이 죽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많은 죄악에 노출되어 심판 받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쳐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든든한 빽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맏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이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인 죄 문제를 도우시기 위해, 도우셔서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릴 위해 피를 흘리셨고 우리가 치러야 할 죄의 댓가를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의 댓가를 다 치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기 때문에 반드시 천국에 가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아들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그 모든 것들을 챙겨주십니다. 세상 어떤 아버지도 떡을 달라하는 아들에게 돌을 주시거나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주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 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만을 위해서 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호박 덩쿨을 잡아당기면 호박이 덤으로 굴러들어오듯 우리가 성령님을 구하여 우리안에 모실 때에 그 모든 것들은 덤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학점도, 장학금도, 취직도, 진학도, 그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실 것입니다.
33, 34절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어느 누구도 우리를 고발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재판장 되시기에 하나님만이 정죄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한 여인에게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정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님 뿐만아니라 우릴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릴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단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깨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는 놈입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관계를 깨기 위해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을 심습니다. 국가고시에 떨어짐으로, 취업에 실패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주어서 아프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집에 돈이 없어지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받는 조롱과 핍박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 ‘하나님은 계신거야? 믿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거지? 계신다면 날 정말 사랑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바로 사금을 채취하기 위한 모래를 걸러내는 채질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이렇게 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주를 위하여 사는 우리가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냥 이기는 것도 아니고 넉넉히! 이깁니다. 이기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이겼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방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매일 동기들,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천안에 있는 것인지 술을 먹기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학교를 빠지는 일 수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저는 군대를 다녀오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런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조금씩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에겐 꿈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성적은 좋지 않지만 공부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도 나가고, 친구들에 의해 술자리에 가게 되면 그 곳에서 나는 크리스챤이며 술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기 때문에 술을 먹지 않는다며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삶을 살길 권유아닌 강요를 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후배들에게 교회에 같이 나가기를 권유하기도 하고 믿지 않는 친구들과 생활했던 자취방에서도 그들에게 항상 권유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해온 저에게 어느날 엄청 큰 외로움과 우울함이 찾아왔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나를 떠나가고 있었고, 나를 크리스찬이라며 무시하는 후배들, 나를 조롱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저에게는 외로움과 우울함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제 안에 평안을 찾기 위해서 센터 1층 방을 자주 찾아갔습니다. 가서 기타치며 찬양을 하기도 하고 혼자서 기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었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때로는 나의 장막 친구 다윗이를 데리고 함께 찬양 집회도 하고 기도회도 하였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참 힘이되기도 하고 기쁨이 넘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날 저는 전도를 목적으로 한 독서모임을 하고있었습니다. 한 후배를 전도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었는데 그 친구와 만나는 날이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짜고짜 저에게 책 이야기를 하기보다 존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 후배에게 존중의 의미를 아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일었고 센터로 뛰어가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가는 중에도 기도하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과거에 상관없이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존귀하게 느껴지는 순간 저는 너무나 큰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후에 저는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저 또한 존귀한 자녀라는 것, 하나님께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저를 지금 이 곳에 보내셨다는 것을 생각하는 순간 기쁨의 눈물이 넘쳐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것들, 사람들 다 변해도 나의 하늘 아버지 한분만은 절대 변하지 않으시며 변함없이 날 사랑하시고 나의 어떠한 행동도 상관없이 과거의 잘못했던 것들 모두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지금은 비록 약해보이고 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넉넉히 이김을 확신합니다. 내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내가 육체적, 정신적 모든 병에 걸린다고 해도, 나를 조롱하고 멸시하고 핍박하고 위협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이 너무나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확신합니다.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어느 누구든지, 또 지금 내가 무엇을 하든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든지 간에 또는 어떠한 능력이 있든지 다른 어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어느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저의 가족이 한 때 다 흩어져 네명 모두 신앙을 잃으며 고난을 겪었어도,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돌변하여 나를 핍박하고 조롱하여도 내가 그로인해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다른 어떠한 것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안에 있는 그 엄청난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미 넉넉히 이겼습니다. 우리의 능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인해 우리가 넉넉히 이겼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수양회가 마치고 나서 세상속에 나가서도 우리 모두가 우리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넉넉히 이겼음을 가슴속에 외치며 고난과 모든 상황을 대면하며 이겨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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