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메시지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3-07-15 00:00:00
조회수 : 91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7-38


요절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는 3년간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실 때 하나님께 함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로 떡을 먹이실 때 떡도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열광했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이 나옵니다.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만약 여러분께서 제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들으면 어떠한 생각이 날 것 같습니까?

우리도 살아가면서 가끔씩 인격적인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아빠 그거 뭐지 노란색에 반짝 반짝 하는 거 뭐지?’연인들은 다툴 때 질문합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진짜 몰라?’ ‘뭐가 미안한데?’ 이는 모두 관심이 없으면 대답하기 아주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배워야,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알고 확신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께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벳세다로 부터 헬몬산 밑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는 곳 마다 병들고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과 무리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길을 가시던 중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것은 제자들에게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고, 그들 또한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 했습니다. “들었어? 들었어? 예수라는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분의 말씀이 제사장들의 말씀과 같이 않아.. 이는 마치 날선 검과 같아서 그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는데... 아휴.. 그분은 아마 세례요한과 같은 분인가 봐.” “에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분을 바로 옆에서 따라다닌 사람이야. 그분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분이야. 그분은 엘리야야 같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분명해!” “어허! 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네. 쉿!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지 못하는가? 이는 모세가 나일강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한 것과 같은 이치라네.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능력 있는 선지자로 우리를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시킬 것이라네.”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께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권세를 통해서만 예수님을 알았지,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가에 대한 분명한 초점은 없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것에 관심이 있을까요? 아마도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학점, 일자리, 물질 , 외모 등등일 것입니다. “야! 이 부분 꼭 봐라! 교수님이 시험에 꼭 나온다고 했단다.” “헐~ 오바마라는 토익강사에게 배운 사람은 모두 토익 800점 이상이라더라!” “천안 안서동에 원룸을 지으면 대박난다더라” “스킨 프레시어로 피부를 신선하게 할 수 있고, 아스트린진트 로션을 바르면 모공이 확 줄어들어 피부가 탄력 있게 된다더라!” 어떻습니까? 귀가 솔깃한가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좋은 학점, 토익 점수, 물질, 외모를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사람들이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셨을 나오열(나사렛 오병이어 열두제자)에 조건이 되는 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모시고 따르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훌륭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우리에게 세상의 왕이 아닌 영적인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어떤 분이되실까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사람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지 관심이 있었습니다.


2. 주는 그리스도

요절 2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제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이는 신랑신부가 결혼을 하기 전에 서로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묻는 것과 같이 인격적이고 책임이 따르는 질문 이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머뭇머뭇하고 있을 때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 대답에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 16:17)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저의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도와 주셔야 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주는 그리스도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라는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 왕이라는 뜻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는 그리스도’ 라는 뜻은 저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저의의 왕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로마 식민지에서는 사람들이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이외에 다른 사람을 왕으로 두면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왕이 되어 로마 황제를 반역하려 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왕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 칭함을 받던 강성한 로마제국도 시간이 지나자 게르만족에 의해 망해버렸습니다. 세상의 그리스도로 군림하던 황제가 하루아침에 파리 목숨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그리스도는 영원하지 못하고 그 대상이 자주 변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무엇을 믿든지 하나만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가 되실까? 어떻게 예수님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예수님만이 우리를 부활 시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 사도 베드로는 확신함으로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죽어 무덤에 계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는 현재 살아계신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왕, 미래의 왕 뿐만 아니라 현재 살아서 우리의 인생의 간섭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무일푼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예수님의 이름이 있었을 때, 그의 삶 가운데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였습니다(행 3:6).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 나의 고질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는 분도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뿐입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3에서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야 영생을 얻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얻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1:30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셋째로, 우리가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됩니다. 골로세서 2:3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넷째로, 우리가 부요해 집니다. 고린도 후서 8:9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다섯째로, 우리가 건강해 집니다. 마태복음 8:17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 안에는 이와 같이 차고 넘치는 선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금맥(유전)이며 복덩어리 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축복을 받아도 축복인지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이 축복이 언제 끝날까 항상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알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힘써 알아야 합니다(호 6:3).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힘써 알 수 있을 까요? 한 가지 제 경험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과거에 제가 햄스터를 몇 년간 키웠는데 이놈은 도대체 주인을 못 알아봅니다. 햄스터 입장에서 물은 물통에서 나오고 밥은 밥그릇에 있으니 제가 만지려고 손을 대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피가 나도록 깨물어 댑니다. 밥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힘써 안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먹는 거 입는 것, 눈을 깜박이는 것까지도 주님께서 하시도록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밥도 주시고 물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입으로 고백하며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왕으로 믿고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예수님 알고 따라야 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예수님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께서 이제부터는 영광의 길 편안한 길을 가실 것으로 생각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가야할 길이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베드로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대통령이 되시고 제가 부대통령 하는 거 아니였나요?” 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은 ‘베드로 잘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를 볼 때 십자가가 없는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사단의 종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인본주의 기독교입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만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로 완성되십니까? 인간의 모든 불행에 근본적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잘 대해 주려고 해도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먼저 납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육신이 굶을까 두렵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수록 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우리는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고 언젠가는 모두 죽음이라는 절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죽음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로 죄 문제로 부터입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고생만하다가 죽게 하려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다가 영생을 얻게 하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모든 불행의 문제는 죄에 있고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즉, 내가 죽거나 혹은 누군가 나의 죄를 위하여 죽어야 나의 죄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때, 지금과 같이 전기의자에 순간적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을 한발 한발 오르시며 우리 대신 멸시를 당하시고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물과 피를 우리를 위해 쏟아 내셨습니다. 창세부터 예언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두 값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부활하셔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이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34-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의 영광을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자신의 소개할 때 자신의 예수님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머슴 하녀라는 뜻입니다. 머슴은 대감님이 ‘오늘 앞마당을 쓸어라’ 하면 ‘네’ 하고 뒷마당을 쓸지 않습니다. 머슴은 주인이 하라는 데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고난과 희생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길에는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일직이 예수님께서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넓은문이 아닌 좁은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3-14). 사도바울 또한 예수님을 믿으며 ‘(내가) 매일 죽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고전 15:31). 예수님이 살면 내가 죽고 내가 살면 예수님이 죽으셔야 합니다. 한마디로 안 죽으려고 하면 결국에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육신의 죄악된 소원을 죽이고 영생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적인 감정,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길,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을 가야합니다. 자기의 목숨을 구하고자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구원을 받기 힘이 듭니다. 세상에서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 예수님도 우리를 부끄러워하실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잘 몰랐습니다. 양을 돌보시는 예수님의 그림을 보면‘예수님은 좋은 분이시구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십자가를 지시는 그림을 보면‘예수님은 무서운 분이시다.’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았지만, 책이나 그림에서나 나오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면 알수록(캐면 캘수록),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내 인생에 깊이 관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무의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의 인생은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이러한 생각에 빠지게 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대입입시 실패였고, 이를 통해서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사회에 대한 혐오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경쟁에서 뒤떨어진 나의 인생 또한 낙오자의 인생, 해변의 모래알 같이 의미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죽은 청년과 같이 누워있는 자를 말씀을 통해서 일으켜 주시고, 예수님의 산 소망을 저에게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저의 그리스도가 되어주셨습니다. 저는 대학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 감격을 했고,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낙오자에게, 실패가 없는 인생, 승승장구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성공과 제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이후로도 토목기사 시험을 5번 넘게 떨어지기도 했고, 군 장교 시험 신체검사에서 탈락하였으며, 믿음의 결혼을 하려 했을 때 대부분 거절당했고, 미국에 가서 본 토플시험 점수가 너무 낮아서 박사과정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할 것을 권고 받았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인생보다는 다양한 실패를 맞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저를 절망에 빠지게도 하였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이를 감당했을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배울 수 있는 좋은 신앙의 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따랐지만, 그 심중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출세를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께서도 많은 능력을 행하시자 자신 또한 예수님같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는 순수 신앙으로 출발했지만 곧 세상 욕심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그의 모든 꿈은 깨어졌고 다시 순수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예수님을 처음 알고 따를 때는 순수 신앙으로 출발했지만, 조금 일이 잘되면 곧 세상욕심이 들어왔습니다. 일이 잘 될 때는 예수님이 날 축복해 주신다고 생각했고, 일일 잘 풀리지 않으면 곧 모든 것이 불행하다 하며, 기복 신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맞보며 세상에 대한 욕심을 회개하게 되었고, 예수님이 저에게 진정으로 주시고자 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 없이 불행하게 살다가 썩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 안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승승장구하는 넓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예수님을 만난 수 있는 길을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며, 예수님을 내 안에 그리스도로 모실 때 우리는 진정한 승리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고난을 받을 때 절망과 죄에 빠졌을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기위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현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롬10:10).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을 하고 구원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지 못하는 캠퍼스 지성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92 [여름수양회] 개회 메시지 하나님의 사랑 john444 2015-07-17
91 [여름수양회] 2014 여름수양회 보고 오요한 2014-07-28
90 [여름수양회] 넉넉히 이기느니라 john444 2014-07-25
89 [여름수양회]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john444 2014-07-25
88 [여름수양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john444 2014-07-24
87 [여름수양회] 태양아 머무르라 이용호[YES] 2014-07-17
86 [여름수양회]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오요한 2014-07-17
85 [여름수양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john444 2014-07-17
84 [여름수양회] 아버지의 크신 사랑 john444 2014-07-17
83 [여름수양회] 여름수양회 폐회메시지 john444 2013-08-18
<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