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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무엘상 3장 강해 일부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1-03 00:00:00
조회수 : 4,81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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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 강해 일부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사무엘상 31-사무엘상 310

요절 사무엘상 34

 

사무엘이 부르심을 받던 시대는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캄캄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어린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그 시대의 등불로 세우사 어두운 시대를 밝히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 시대에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말씀은 그 시대 배경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무엘은 아이라고 나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12살 정도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오학년 정도의 나이입니다. 12살이면 당시는 성인이 되는 나이였습니다.

당시의 원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그 아들들 흡니와 비누하스가 공식적인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앞서 배운 것처럼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도적질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의 여종과 성전에서 음란한 짓을 하였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의 죄를 방관하였습니다.

이런 시대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하였습니다. 희귀하다는 말은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말입니다. 당시는 모세오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이므로 하나님은 주의 종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시대는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가끔 말씀하셨습니다. 이장 후반부에 보면 이름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엘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입을 다물고 계셨습니다.

우리 사모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화해야 사는 맛이 납니다. 어떤 사모님은 나와 대화한 후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은혜를 끼친 것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을 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서 은혜 많이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모님뿐 아니라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대화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계셨을까요? 말을 해도 듣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엘리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부터 하나님은 입을 다물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실 상대를 간절히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는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은 킹제임스 성경에는 열린 비전이라고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원대한 꿈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히 현실적이 됩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됩니다. 이것이 노아시대의 특징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결국은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합니다. 우리 시대는 말씀이 희귀한 시대가 아니라 풍성한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말씀하면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말씀이 풍성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지금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으로 임한 사람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합니다. 성령은 젊은이에게 환상을 주고 어린이에게 예언을 하게 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말씀이 풍성한 사람은 눈에 빛이 납니다. 걸음걸이가 힘이 있습니다. 세계를 향하여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 되고 길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서 승리의 삶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당시 말씀의 종 엘리의 영적 상태를 말해줍니다. 원로 제사장 엘리는 눈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엘리는 구십팔 세에 죽었다는 것을 볼 때 당시 엘리의 나이는 구십 세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이를 생각할 때 그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인 눈도 어두워졌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시각 장애만큼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시각을 통하여 정보의 구십 프로 이상을 받아들입니다. 시각 장애가 되면 모든 활동이 불편합니다. 식사하고 화장실 가는 기본적인 일도 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소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도 지옥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심판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적인 생활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어디고 가야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죽을 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아들이 죽음에 가까이 있어도 책망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영적인 소경이 될까요? 엘리는 왜 영적 소경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영적으로 가장 밝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영적으로 눈이 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흔히 똥개라고 부르는 개는 똥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 개는 무엇보다 똥을 더 사랑합니다. 뭐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들들을 더 사랑하자 그의 눈에는 아들만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하나님보다 사랑하여 영적인 눈이 멀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들로 인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식품 사고가 많았습니다. 새우깡에서 쥐대가리가 나오고 참치 캔에서 카터가 나오고 라면에서 지렁이가 나왔습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많았습니다. 어린이 성폭력으로 우예슬 양이 죽은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 관련 성범죄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돈에 눈이 멀고 정욕에 눈이 멀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눈이 밝습니까? 우리 크리스찬도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이성을 더 사랑하면 눈이 멀게 됩니다. 그러면 함께 망하게 됩니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여 영적인 눈이 멀었습니다. 엘리는 영적으로 눈이 멀었지만 하나님의 등불이 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성전의 성소에는 일곱 금촛대가 있습니다. 촛대에 하나님의 불을 밝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성전의 불은 항상 밝혀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 되셔서 세상을 밝게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성전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불은 금촛대의 불을 말합니다. 금촛대의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 있으면서 등불의 기름을 항상 채워놓았습니다. 엘리는 영적인 눈이 멀어 있었지만 어린 사무엘은 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있으셨습니다. 사무엘은 영적인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떻게 그 시대의 등불이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사랑했지만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사무엘도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어머니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세상 여자나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무엘을 그 시대의 등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밤에 사무엘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말씀으로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의 음성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가 자신을 부르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사무엘은 마치 오분 대기조와 같았습니다. 사무엘은 깨어 있었습니다.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으니 사무엘에게 다시 누우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말에 순종하여 자리에 와서 다시 누웠습니다.

 

(사무엘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하나님은 두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처음에는 달려갔지만 이번에는 그냥 걸어갔습니다. 두 번째 갈 때는 사무엘이 조금 피곤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걸어갔지만 갔다는 점이 훌륭합니다. 사무엘의 몸에는 순종이 베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엘리가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자리에 와서 누웠습니다. 왜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사무엘서 저자는 하나님이 아직 한 번도 사무엘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에게 말씀하시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구분할 줄을 몰랐습니다.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하나님을 세 번째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12살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참고 기다리며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말씀을 전할 주의 종을 간절히 찾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부엘은 이번에도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밤에 일어나 세 번이나 달려가는 순종의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이 자신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세 번씩이나 자신에게 온 것을 보고 비로소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을 해야합니다. 주의 종이 듣겠다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세가 이루어진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상관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방향을 주었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 말씀만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며 예수님께 대기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말씀하시고 친히 일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을 네 번째 부르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네 번째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응답할 때까지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부르심은 일방적입니다)

 

첫째, 부르심은 일방적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하여 부르십니다. 우리 인간은 부르심에 응답해야합니다. 부르심은 내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응답하는 문제입니다.

 

(부르심은 절대적입니다)

 

둘째, 부르심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셨습니다. 어머니 한나가 기도할 때부터 아셨습니다. 이때는 사무엘이 아무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부터 사무엘을 예정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참고 계시다가 사무엘이 알아들을 만한 나이에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부르심을 영접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질서가 생깁니다. 이 교회 저 교회 철새처럼 떠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부르신 하나님을 영접지 않은 사람입니다. 요즘 이혼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는 부부로 부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장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을 영접할 때 우리는 한 직장에 뿌리를 내리고 그 직장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부르심을 영접해야합니다. 우리가 거목으로 성장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시대에도 우리가 서로 대화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답답해 하시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에 친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하여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주의 종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사건이나 사고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응답해야합니다. 말씀을 들은 것을 기초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대통령이나 높은 사람에게 나아가서 먼저 나의 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무슨 말씀하시는 가를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둘째, 우리는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왜 엘리를 부르지 않고 어린 사무엘을 불렀을까요? 왜 당시의 제사장 흡니와 비누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번 반복하여 엘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책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고의로 말을 거부하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다시는 말을 하기 싫습니다. 반복하여 말씀공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시 말씀을 가르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새벽기도에 반복하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다시 깨우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반복하여 듣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봉인하여 보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사무엘은 엘리와 달리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영적으로 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의 종에게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사무엘이 사람의 말에 순종을 배웠다는 점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밤에 세 번이나 자다가 일어나 목자에게 달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는 순종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는 순종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전에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에게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학교에서 교수에게 교회에서 목자에게 먼저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상관에게 순종을 배우고 부하들에게 순종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칭찬하는 큰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새벽에 산보를 나왔다가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순종이 몸에 베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았습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먼저고 순종을 나중에 해야 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사람에게 순종을 하다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쓸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요즘 구직자들은 취업할 곳이 많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는 구직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취업을 원하지만 조금만 힘들면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취업을 원하지만 제대로 말귀를 알아듣고 일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찬기지로 지금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도 많은 양을 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실 때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 시대에 사무엘과 같은 시험을 통하여 면접을 한다면 몇 명이나 뽑힐까요? 면접은 예고없이 행해집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아버지나 학교 선생이 부르게 합니다. 다시 잠을 자게 하고 또 부릅니다. 이렇게 네 번을 반복합니다. 네번이나 불러도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이런 사람을 주의 종으로 부른다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사람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고 쓰십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던 일도 멍석 깔아놓으면 안한다고 하고 싶은 일도 시키면 하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는 예수님이 곗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듯이 기도해야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래도 순종하기 어려우면 세 번 반복하여 기도해야합니다. 통곡하면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도 순종하기 위해서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은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사무엘과 같이 어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야합니다. 성숙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없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절대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직통계시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주의 종을 통하여, 사건이나 사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귀를 알아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사무엘상 3장 강해 일부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사무엘상 31-사무엘상 310

요절 사무엘상 34

사무엘상 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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