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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무엘상 1장 강해 일부 한나의 서원 기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9-14 00:00:00
조회수 : 2,98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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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장 강해 일부 한나의 서원기도

사무엘상 11-사무엘상 118

요절 사무엘상 110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우리는 오늘부터 사무엘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사무엘서 말씀은 꼭 공부하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시작된 믿음의 역사는 야곱의 때에 70명이 되어 이집트로 이민을 갑니다. 그곳에서 430년이 지나고 이스라엘은 이백만의 인구로 번성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오십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족장시대를 이어갑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족장 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전환기는 한나라는 한 여인의 기도를 통해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한나의 서원기도를 배워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한나는 브닌나를 통하여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한나라는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요셉지파의 에브라임 사람이었습니다. 한나가 아기를 낳지 못하자 엘가나는 첩 브닌나를 얻었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브닌나는 자식을 잘도 낳았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슬픈 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첩과 함께 살면서 자존심이 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누가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쓰임받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실로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신앙이 좋았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에브라임 성읍에서 성소가 있는 실로에 가서 만군의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엘가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매년 제사를 드릴 정도로 신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사장은 엘리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이들은 패역한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의 헌금을 강도같이 빼앗았습니다. 회막에서 섬기는 여인들과 간음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엘리는 이런 아들들의 죄를 보면서도 따끔하게 책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 인본주의자였습니다. 이 시대는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영적지도자는 타락했습니다. 믿음 사람 한나는 자녀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도 소망을 두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사랑하여 임신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엘가나는 첩 브닌나를 얻었지만 한나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제물의 분깃을 나눌 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 엘가나는 비록 첩을 얻었지만 본처인 한나의 슬픔을 깊이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에게 임신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한나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사 문제를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25년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리브가가 20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나이가 늙도록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아기를 낳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더욱 사랑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다. 오랫동안 한 양을 주시지 않습니다. 질병을 주시고 괴롬을 주십니다. 직장에서 일이 터지게도 하시고 가정에 우환이 있게도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원하십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격분시켰습니다)

 

6,7 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브닌나는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는 갑절의 분깃을 주고 자신보다 한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브닌나는 한나와 비교의식과 시기심에 불탔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며 괴롭혔습니다. 이는 엘가나가 알지 못하는 여자의 세계입니다. “애도 못나는 주제에 치마는 입어” “애도 못나는 주제에 누워 쉴 줄은 알어” “애도 못나면서 화장은 뭐하러 하냐? 파마는 왜 하냐?” “애도 못나는 주제에 밥은 목구명에 넘어가한나는 이런 브닌나의 조롱을 받을 때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의 괴로움은 꼭 애가 없는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브닌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한나도 애기를 낳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존재 의미가 없었습니다. 삶의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죽고 싶은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그는 울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한나를 위로하지 못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엘가나는 이런 한나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자신이 열 아들보다 한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한나의 고통을 위로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람이 위로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두 가지 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두운 시대에 새역사를 창조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이 두 가지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브닌나를 통해서 한나를 괴롭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는 자에게 브닌나와 같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바로를 보내서 괴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사울 왕을 보내서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는 보디발의 처를 보내서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고 기도할 수 있고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사자는 지상의 왕입니다. 사자는 어떤 동물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자에게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파리입니다. 아프리카의 파리는 한국의 파리에 비하여 두배는 큽니다. 파리 때문에 사자는 온 몸을 흔듭니다. 머리를 계속 내젓고 몸을 흔들어 댑니다. 우리가 이런 사자를 보면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동물학자들에게 의하면 사자는 파리가 있기 때문에 3-4년은 더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꾸라지와 메기 이야기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미꾸라지를 잡아 먹는 것은 메기입니다. 만약에 먼 나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오면 대부분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 몇 마리를 넣으면 미꾸라지는 죽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칩니다. 이렇게 발버둥치다 보면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넘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미꾸라지를 사랑하셔서 메기를 주십니다. 사자를 사랑하여 파리를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나를 사랑하셔서 브닌나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브난나와 같은 존재를 주십니다. 질병의 브닌나, 아내와 남편의 브닌나, 직장 사람의 브닌나를 주십니다. 우리는 브닌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합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나가서 통곡기도를 하였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다른 사람들은 다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기도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에 앉았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가지고 남편에게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한나처럼 첩 하갈에게 무시를 받았습니다. 이때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나가서 남편 아브라함의 힘을 의지하여 첩 하갈을 내어 쫓았습니다. 한나도 남편 엘가나가 자신의 편인 것을 이용하여 이용하여 브닌나를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은 목자 엘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목자에게 신앙 상담을 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곳에 앉아 있는 엘리 목자에게 나가서 하소연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면 절망하여 집을 뛰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다 하나님께 쏟아 놓았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위대한 점입니다. 한나는 사람과의 갈등을 하나님과의 갈등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사회와의 갈등도 있고 자연과의 갈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하나님과의 갈등으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야곱은 이때 하나님께 나가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모든 어둠은 물러가고 해가 돋고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것을 보고 칼을 빼어 들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과 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나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받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자신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근본적인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서 모든 슬픔을 쏟아놓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키울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자신을 기억하여 주시기를 원하였습니다. 자신을 잊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그를 평생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고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볼 때 한나의 관심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확신을 얻기를 원하였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서원기도입니다.

서원기도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는 것입니다. 서원기도는 전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도를 이루어 주시면 내가 할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서원기도는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자신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는 결국 무남독녀인 딸이 처음으로 자신을 영접하여 딸을 번제로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날 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랐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면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서원을 받으시고 에서의 위험과 라반의 위험에서 건저 주셨습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서원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전에 학생회가 아무도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 목자님이 군대에 갔다가 돌아와서 혼자서 중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양도 없이 말만 많다고 브닌나와 같이 이목자님을 괴롭혔습니다. 이 목자님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학교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이 목자님은 하나님께 눈물로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양을 주시면 한 해를 플타임으로 남아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받으시고 하진 목자를 양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학생회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엘리는 한나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엘리는 그 시대의 사사였습니다. 그 시대의 지도자였습니다. 그 시대의 목자였습니다. 그는 양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나가 통곡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나는 너무 괴로워서 속으로 말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입술만 움직였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슬프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슬픔이 극에 달하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속으로만 고통스럽게 기도합니다. 이것은 온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심정을 통하는 기도입니다.

엘리는 이런 한나의 마음을 알고 위로해 주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술을 먹고 성전에 와서 술주정을 하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엘리의 말을 들을 때 한나는 목자에 대해서 불신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너나 잘하세요.” 톡 쏘아붙이며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엘리와 상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엘리를 공경하였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한나는 자신을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이 원통하고 격동됨이 많아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나는 하나님 안에서 목자인 엘리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여 이해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주의 종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는 한나를 축복기도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엘리는 한나의 말을 듣고 비로소 양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를 허락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기도 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엘리의 축복기도를 듣고 한나의 마음 속에 근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평안이 온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엘리의 기도를 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자가 연약하고 죄가 있을지라도 그를 쓰셔서 계승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는 우리가 뒷부분을 볼 때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은 후에 사무엘을 엘리에게 맡깁니다.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엘리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엘리를 쓰셔서 사무엘을 키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이 부족하더라고 그를 쓰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의 종이 허물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 잘못하면 하나님을 곧바로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참고 기다리십니다. 회개할 충분한 기회를 주시고 믿어주십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에 친히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은 주의 종이 허물이 있을지라도 주의 종을 하나님 안에서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실 때 하나님은 종의 종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의 믿음을 보시고 양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매우 불합리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인 질서가 서기 때문입니다. 계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삼국지를 읽으면 유비를 통해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는 사실 싸움도 잘 하지 못합니다.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싸움하면 관우나 장비나 조자룡이 잘합니다. 지혜에는 제갈공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비가 위대한 점은 그가 앞에 세운 왕조에 대해서 경외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점도 하나님이 세우신 종 사울을 경외한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고 악령이 내렸어도 그는 끝까지 사울을 경외하고 사울을 세우신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왕권을 견고히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남편을 세우신 하나님, 요회목자를 세우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사용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 배웁니다. 첫째는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안에서 주의 종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대하고 그를 통해서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무엘상 1장 강해 일부 한나의 서원기도

사무엘상 11-사무엘상 118

요절 사무엘상 110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사무엘상 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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