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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시편 73편 강해 1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4-22 00:00:00
조회수 : 2,69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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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편 강해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말씀 시편 73편 1-시편 73편 28
요절 시편 73편 25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우리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을 사모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서로를 사모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삽도 이런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현실에 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갈등 끝에 주밖에 우리가 사모할 이가 없다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삽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부터 10편의 시는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악장이요 성가대 지취자입니다. 원래는 다윗의 시이고 아삽이 편집한 시라고 합니다. 이 시는 찬송가를 부르듯이 곡조를 넣어서 부르는 시입니다. 이 시는 신앙고백이 되고 찬양이 되는 시입니다. 아멘!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투하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 참으로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이 정결하지 않은 자는 망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에서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삽은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오만한 자가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왜 악인과 오만한 자를 번성하게 하시는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오만한 자가 잘 되는 것을 질투하였습니다. 오만한 자의 형통에 대해서 마음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아삽은 마음을 청결하게 하며 사는 것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인이 부럽게 여겨지고 자신도 악인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에 대해서 불신이 들고 믿음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 하였다고 말합니다.

(악인은 고난이 없어 보입니다)

4-9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아삽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고 불신에 빠지게 된 상황을 계속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은 죽을 때까지도 힘이 강건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욱더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없고, 재앙이나 쓰라림도 없습니다. 그들은 근심, 걱정도 없이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악인이 고난이 없고 잘되자 악인은 기고만장합니다. 교만을 그들의 목걸이로 삼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하고 지혜를 자랑합니다. 그들의 재테크 능력을 자랑하고 섹시한 외모를 자랑합니다.
그들은 강포를 그들의 옷으로 삼아 그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강자는 힘으로 약자를 착취합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가진 자는 가난한 자를 착취합니다. 그들은 살이 피둥피둥 쪄서 눈이 솟아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악하여 의인을 능욕하며 악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거만하게 의인을 협박하며 약자를 억누릅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도 욕설을 퍼붓고 땅에 두루 다닙니다. 그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제 멋대로 행하였습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살아갑니다.
성경에도 이런 예가 많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삭은 사십 세 늦은 나이에 결혼합니다. 결혼한 후에 이십년 동안 아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자녀 이스마엘은 일찍 결혼하여 자녀를 열두 명이나 나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 쌍둥이 야곱과 에서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에서는 가나안 여자들과 연애 결혼하여 아내를 얻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왕정국가가 빨리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7년을 일해주고 나서야 늦게 아내를 얻습니다. 그리고 후에 다시 칠년을 일해 주어야 했습니다. 국가는 430년이 지난 다음에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다 말하면 끝이 없습니다. 욥을 정죄하는 친구들은 고난이 없었지만 의로운 욥은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까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고난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니까 채찍으로 훈계하시지 남의 자식을 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내 자식이니까 때리고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내면을 형성하게 하십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의 연단을 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키우십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님처럼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사랑하는 열두 제자는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순교하지 않은 요한도 귀양살이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난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키우시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고난 없이 살아왔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들은 참으로 걱정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자원하여 고난을 감당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잘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합니까?

(악인의 형통함에 대한 변명)

주인이 돼지나 소를 키울 때 먹을 것을 줍니다. 우리에 갇힌 소에게 따마다 먹을 것을 풍족히 주십니다. 우리 밖에 뛰어다니는 들소에게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소나 돼지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소나 돼지를 팔거나 잡아 먹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릿간에 돼지가 행복한 것입니까? 산에서 뛰어다니는 멧돼지가 행복한 것입니까?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속한 자에게 고난 없이 돈과 쾌락과 명예를 줍니다. 그들을 나중에 데려다가 지옥 불에 넣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고난도 없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믿음이 생겨서 믿음의 내면이 형성되면 다른 축복도 주십니다. 마침내는 믿음을 연단시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의인이 악인들에게 물듭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악인들이 번성하자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영향을 받고 그들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들이 항상 평안하게 살고 재물이 더욱 불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인들이 건강하고 점점 부자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대기업 총수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이대 기업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나 현대의 정몽구회장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인들이 있는 곳에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마시듯이 불신자들에게 물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떠나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며 불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과 함께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일은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악인은 더욱 많아지며 의인은 적어지게 되었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불신자들과 결혼하여 점점 타락했습니다. 온 세상에는 믿는 자는 소수가 다수가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반기독교의 세력이 많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사이비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아삽은 이런 상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고민하였습니다.

(아삽은 성소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13-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아삽도 악인이 번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악인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손을 씻어 무죄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삽은 그렇게 깨끗하게 사는 것이 다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삽은 악인과 달리 선하게 살았을지라도 축복은 고사하고 종일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습니다. 아침마다 고통하는 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삽도 악인들처럼 하나님이 어찌 알랴고 하나님이 지식이 있으랴고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떠나 악을 지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유혹이 들었습니다. 만약 아삽이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를 배신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사람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아삽은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번성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혼자 풀어보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은 심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아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철학책을 읽고 부처를 찾거나 공자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예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아삽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나님은 성소에서 예배드리는 그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예배드릴 때에 말씀을 통하여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았습니다. 성소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습니다. 악인들의 운명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성공하는 것 같은데 실패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 세상의 일만 가지고 선한 자가 복받는다는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세를 보아야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삽에게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아삽은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말합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어느날 악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황폐합니다. 하나님은 갑작스럽게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풍요롭게 지내도 심판의 날에 갑자기 파멸합니다. 그들은 놀랄 정도로 갑자기 전멸하였습니다. 잘 나가는 것 같으나 어느날 꽝! 넘어집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에게 고난은 시련입니다. 교과과정입니다. 이것을 거쳐야 형통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악인은 한번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못합니다. 악한 사람은 잘되고 성공하는 것 같은데 황페하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히 타는 유황 불못에서 고통합니다. 아삽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 그들의 종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들이 받을 심판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꿈을 꾸고 나서 꿈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서 그들을 꿈처럼 무시합니다. 그들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집니다. 악몽을 꾸고 깨어나면 다시 기억지 않습니다. 자취와 흔적도 없습니다. 악한 사람은 꿈처럼 곧 없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아삽이 성소에서 깨달은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파멸하기 전에 부자로 살 때에 행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을 얻어도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영생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들은 돈 때문에 기뻐하고 돈 때문에 슬퍼합니다. 요즘 주식 값이 떨어질 때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을 자식에게 많이 물려주고 죽으면 자녀들은 유산 때문에 싸웁니다. 사람이 꼭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악인의 멸망을 보고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1,22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악인이 망하고 의인이 잘 되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쓰라리고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에 양심이 찔려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과 같은 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악인의 삶을 시기하고 동경하는 것이 짐승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짐승은 무매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는 짐승처럼 무지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짐승과 같이 무지하였음을 회개합니다.
그러나 아삽은 무지함 가운데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면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고통 중에 성전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삽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할 때 예배하고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면 하나님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였는지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손해를 채워주십니다.

(주밖에 사모할 자 없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하나님은 주의 교훈으로 악인이 번성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러 사건을 보고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5,60이 되어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늦게라도 깨닫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십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오늘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나타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 주십니다. 그 후에는 하늘나라에서 영광으로 영접하여 주십니다. 악인은 심판 받을 때 의인은 천국에서 부활의 새 몸으로 영접해주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아삽은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이제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생각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죽은 후에 자신을 영접해줄 분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땅에서는 주 외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를 영접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주밖에 사모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그는 과거 잘되는 악인을 부러워하고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종말을 알고 나니 악인도 사모할 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인을 영접하는 자는 사단입니다. 사단을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영접해주는 것입니다.
죽은 후를 생각하면 이 땅에서도 우리가 사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현재도 말씀과 성령으로 평안을 주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우리가 진정 사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모하면 사람에게 실망합니다. 내가 사모하는 사람이 결국은 고솜도치와 같이 가시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구나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부모라도 다 거짓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안개와 같이 일시적인 존재입니다. 결국은 사모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집니다.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적인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 하나님 안에서 사람도 사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위 사람들이 전정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모하자 모든 형제 자매들이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사모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면 주안에서 서로를 사모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만을 사모하는 것이 서로 간에도 사모하는 길입니다.

(주를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26-28절을 보십시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아삽은 하나님을 사모하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아삽은 육체와 마음이 연약하였습니다. 그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모하는 하나님은 그의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는 반석입니다. 연약한 그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분깃입니다. 분깃은 배당금 상속받은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전부라고 번역하는 곳도 있습니다.
아삽에게 하나님이 영원한 재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재산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한분으로 든든하였습니다. 그가 사모하는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할 때 하나님이 그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삽의 상급이었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반석이요. 상급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 사모할 분이십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모하지 않고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다 멸하셨습니다. 변절자는 다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배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주 가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사단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준 시계를 차고 있으면 사람들이 높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를 멸할 자가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깔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70장로는 멀리 있고 백성들은 산에도 올라가지 못하였습니다. 모세는 사십일 동안이나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모세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큰 일을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죄악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육신을 입고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죄를 지으면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를 떠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먼저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항상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사람들에게 긍휼을 가져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아삽은 세상을 사모하다가 나중에는 주님을 사모하였습니다. 주를 피난처로 삼고자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이 사모하는 하나님을 전파하겠다고 합니다. 아삽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모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서로를 사모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시편 73편 강해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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