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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베드로후서 1장 강해 이부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3-04-27 00:00:00
조회수 : 3,15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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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 강해 이부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베드로후서 1장 12-베드로후서 1장 21
요절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치 앞도 불 수 없게 어둡습니다. 어느 대학을 가야할지 모르고 어떤 사람과 언제 결혼해야 할지 모르고 어떤 직장을 잡아야할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이런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등불을 주의하면 우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고 밝은 대낮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환하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말씀을 주의하여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샛별이 떠오르고 해가 떠올라서 밝게 미래를 보며 결정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진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이것을 알고 진리에 섰다고 할 때 이것은 11절에 나오는 말을 받는 대명사입입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 라는 말씀을 보면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고 이미 진리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알고 이미 있는 복음 진리에 견고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 진리에 견고히 서야합니다. 베드로는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를 항상 생각나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복음 진리를 한 번 안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항상 기억하고 생각해야합니다. 생각은 묵상이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전하기보다 복음진리를 반복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진리를 반복하여 확신있게 전해야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전하고자 하지말아야합니다. 진리를 알면 지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 진리에 항상 기억하고 죄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진리에 서 있다가 좌우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심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저도 요즘에 세 번째 반복하여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우리를 흔드는 것이 있습니다. 뭐라고 하였죠? 예, 영지주의입니다. 현대판 영지주의는 무엇이 있나요? 기복신앙, 성공신학, 번영 신학 표적신앙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것은 복도 받고 표적도 나타나지만 복음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십계명의 말씀에 순종이 없는 신앙입니다. 오른쪽으로 우리를 흔드는 것이 있습니다. 뭐라고하였죠? 예, 율법주의입니다. 현대판 율법주의는 무엇이 있나요? 상대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이런 것은 무엇을 믿든 똑바로 살면 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삶은 변했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복음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복음은 구원을 주지 못하는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갈1:8,9)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표적과 기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진리를 다시 성도들에게 알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다)

13,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는 죽음이 임박해 있어서 복음 진리를 다시 알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그가 죽을 것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장막과 같습니다. 텐트를 때가 되면 접듯이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접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텐트를 접으면 그 후에는 더 좋은 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부활의 몸입니다. 우리가 육신 장막을 벗는 날에 영원한 부활의 몸을 덧입을 소망을 갖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떠나서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죽음을 알려주시고 죽음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앞두고 유언으로 딱 한기지만 자녀나 후배들에게 말한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유서에는 무슨 내용을 쓰고 싶습니까?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딱한 가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주제요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입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를 다시 한번 분명히 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사십일 동안 계시면서 두 가지를 증거하셨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하였습니다. 다음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행전 1장 3절) 무디는 죽기 전에 “땅은 물러가고 하늘이 나에게 열리는도다.”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보며 죽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생각나게 하려고)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언제든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 복음진리를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죽지만 남아있는 성도들이 바른 신앙을 갖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선한 목자입니다. 그는 죽는다고 자기 연민에 사로집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아 있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견고하게 세우고자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죽기 전까지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양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를 아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베드로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는 먼저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있었던 일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말리는 그를 사단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후에 베드로는 많이 힘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9:1)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위엄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인간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하나님 나라의 위엄을 직접 증거합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 들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존귀와 큰 영광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변화되어 얼굴이 해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 옷이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희게 되었습니다.(누가복음17:2) 이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때 지극히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이 말을 들을 때에 베드로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귀로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그 소리를 직접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님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알았습니다. 그 예수님이 동일한 모습으로 재림하셔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신비로운 체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신비로운 체험을 주십니다. 대전에서 시사영어학원을 하고 있는 마이클조 목사는 수술을 받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맞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 명이 예수님에게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에 때리는 자 속에 자신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는 꿈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나와서 영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배제대 출신으로 토익 이백점 대를 맞던 데서 만점을 맞았습니다. 내가 천안 종로학원에 다니 때 옆자리에 앉았던 생물 선생이 있습니다. 이분은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곧바로 그는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기도하는데 예수님이 천장에 못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에게 목사님들을 위해서 수양관을 지으라고 칠순잔치를 하지 않고 그 이억원을 가져왔습니다. 그분의 간증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꿈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무시하고 절에 가서 기도하니 부처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회개하고 독실한 크리스찬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신비한 체험에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복음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나의 것으로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옆집에 살던 맹복호씨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느날 이층건물을 올리는 도장을 찍어주면서 우리 ubf 건물의 위에서 성령의 불기둥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며칠 전에 어느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예언을 해준다고 녹음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녹음할 줄을 몰라서 녹음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세가지를 예언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고난이 있지만 그것은 보리를 밟아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공부하는데 앞으로는 그 말씀이 레마로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높여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체험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을 너무 자랑해도 좋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셋째 하늘에 갔다 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신비로운 말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오래 그 일을 간직하고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들이 자신의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자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비한 체험을 말하면서도 양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생각할까봐 두려워하여 그것에 대해서 온전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깨달은 신비한 체험을 너무 일반화하지 말아야합니다. 저는 맹복호씨의 말이나 예언자의 그 말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체험보다 성경을 더 중시해야합니다. 체험은 개인적이고 직접적입니다. 그러나 가변적입니다. 주관적입니다. 체험은 잘못 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단이 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전도단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배우자를 듣고 기도하였는데 다 믿음이 좋은 사람보다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라는 응답이 왔다는 것입니다. 체험도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옳은 것인지 살펴보아야합니다. 체험은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다시 한번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도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바른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신 이 말씀은 시편 이편 말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그 환상이 거짓된 것이 아님을 확인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저는 맹복호씨나 예언의 말씀을 들으며 성경 말씀을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예언의 말씀을 들으며 예전에 경주의 박다니엘 목자님이 오셔서 천안 ubf에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사야 오십오장 오절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저와 천안 ubf를 영화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안 ubf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천안 ubf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견고하게 서야 합니다. 성경 66권강해서가 2014년에 일차로 완성되었습니다. 제가 평신도를 그만두고 전임 사역자가 되고자 결단한 것도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학원에 돌아가는 일이나 교회의 일이나 주위 동역자를 통하여 내가 전임사역자가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므로 사단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결단을 잘 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더 확실한 말씀이 있습니다.)

19절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체험한 것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은 더 확실한 예언입니다. 시편 12편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은 안전지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이름보다 위에 두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편 138편 2절)”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자신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의 기록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의 기록된 말씀을 얼마나 중시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데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의 어둔 마음이 밝아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등과 같습니다.

(다 이루어진 성경 말씀)

구약 성경 말씀이 확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구약 말씀은 예수님을 통하여 다 성취됨으로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분명히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사역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시편 22편이나 이사야 53장에서 보면 십자가를 보고 있는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묘사합니다. 시편 16편이나 에스겔 37장은 부활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47장은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는다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르다는 말씀을 순종하려고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때 구약에 메시야에 대해서 기록된 말씀이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죽은 후에도 배에 창이 찔릴 것이라는 말씀 성취되었고 다리를 꺾지 않는다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부자의 무덤에 묻힐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성경 말씀을 주의하라)

19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우리는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성경 말씀을 주의해야합니다. 주의하라는 말씀은 묵상하고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소가 새김질을 하듯이 말씀을 새김질하며 묵상하는 것입니다. 샛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입니다. 샛별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내 마음에 확실해질 때까지 성경 공부에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샛별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오릅니다. 말씀의 문이 열리면 생명의 빛이 비추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떠오르면 우리의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빛이 납니다. 우리가 결단할 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시험을 볼 때나 직장을 잡을 때 힘을 줍니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인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고린도전서 말씀에서 평신도 사도 바울을 배우고 평신도 목자로 결단하였습니다. 빌립보서 이장 팔절 말씀으로 순종을 배우며 학원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삼장십육절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결혼하였습니다. 이사야 선교사는 여호수아 말씀으로 선교사로 나갔고 오은혜 목자는 요한일서 말씀을 잡고 임고를 보았고 은영자매는 룻기 말씀으로 서울에서 천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 중심의 성경 해석)

20절을 보십시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우리가 성경 공부 전에 먼저 알아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시각으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중심을 해석해야합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 신약은 오신 예수님은 사도행전 이후는 영으로 오신 에수님 곧 성령님을 기록하고 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로 성경을 해석하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과 성령의 지도를 받을 것)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두 분이 계십니다. 우리는 두 분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성경말씀으로 풀어야 합니다. 성경은 가장 좋은 성경 선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즘에 일용할 양식으로 사무엘서가 나옵니다. 사무엘서를 이해할 수 없으면 시편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가드왕 아기스에게 잡혔을 때 아둘람 굴에 있을 때 다윗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에 보면 그 때 쓴 다윗의 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 레위기 공부할 때 네 가지 제사를 배우면서 성경 말씀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공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단대 씨씨씨 이 모 지도 교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어느날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삼위칠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세한 중앙교회에 다니는데 그곳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는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체험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성경 연구방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

21절을 보십시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받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1500년에 걸쳐서 40명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한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 성경의 저자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을 가장 잘 가르치는 두 번째 성경 선생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성경이 잘 이해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성령님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장 13절)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 공부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해셕해야합니다. 성령께서 친히 성경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령님이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르칠 성경 말씀이 불방망이처럼 다가옵니다. 좌우에 날선검과 같이 다가옵니다 로그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 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캄캄한 세상에서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유월에 미국 졸업식에 가려고하는 것을 이년 연기를 하다가 이번에 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제가 이번에도 재정부에 돈도 없는데 가야하나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재정부 실무자인 임경미 목자가 돈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만 생각하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안에서 좋은 길 얻기를 바란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결단한 후에 재정부를 더 크게 축복하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임고를 치르는 목동에게 하나님은 잠언 말씀을 주었는데 아직도 외우지 못하여서 책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잡고 방향을 잡아야합니다. 소가 새김질을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묵상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다가 오고 그러면 나의 앞길은 환하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아멘!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음 -
베드로후서 1장 강해 이부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베드로후서 1장 12-베드로후서 1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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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 강해 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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