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가 주신 성령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07 00:00:00
조회수 : 3,276

문제지풀이(2)

    iconB_0591A.hwp  (25.00KB)

    icon2.hwp  (31.50KB)

사도행전 2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가 주신 성령님

말씀 사도행전 216-사도행전 236

요절 사도행전 233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저는 금요일 밤에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총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도망 다녔습니다. 그날 밤에 내 차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학원에서 중국 여행 경비로 냈다가 돌려받은 돈 20만원을 차에 두었는데 누가 훔쳐갔습니다. 만일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살인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살인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죽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온 세계의 왕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인자인 것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충만히 빋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이 강림한 후에 베드로는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설교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불의 혀처럼 눈에 보였습니다. 바람과 같은 소리를 내며 귀에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 것은 요엘서와 시편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현실을 해석합니다.

베드로는 더 나아가 성령을 받은 자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말합니다.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도 알려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환상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신 성령)

 

16a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요엘 선지자에 의하면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십니다. 전에는 다윗이나 이사야와 같은 왕이나 선지자에게 성령을 한정적으로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마음 속에 내주하지 않고 임재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주십니다. 성령이 임재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내주하십니다. 말세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재림할 때까지를 말합니다.

말세에는 남자 여자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모든 육체에게 다윗이나 이사야와 같이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더 축복하여 주십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전에는 성령을 주셨지만 이제는 부어주신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18절까지 보면 부어주신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쓰고 있습니다. 이는 노아시대에 하늘에서 창을 열고 물을 부어서 홍수를 일으켰듯이 이제는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홍수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부어주신다는 말은 가랑비처럼 찔끔 찔끔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왕창 주셔서 충만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자신만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님의 강물이 흐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성령이 온 세상에 덮으십니다. 그러면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실 때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17b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첫째, 자녀들은 예언을 합니다. 예언이란 점쟁이처럼 점을 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에 합격할 것이냐 누구랑 결혼할 것이냐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구약의 예언서와 같은 것입니다. 예언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미래에 이뤄질 하나님의 역사를 예언하고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을 받고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하였고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예언을 했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로마 선교를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언은 나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이 예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놀기 좋아하고 먹는 것 좋아하고 현재에 충실합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으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어린이 마가와 요셉이와 용범이가 삼십 살 사십 살 되었을 때를 이야기 합니다. 이들이 장차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예언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체험한 예언은 이 사무엘 선교사님이 1985년 세계선교 보고대회에서 공산권 선교를 예언한 것입니다. 당시 공산권의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이라고 하여 폐쇄적이었습니다. 냉전 시대라 공산권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공산권 선교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교사님은 10년 안에 공산권 선교를 하자고 기도제목을 제시하였고 하나님은 그 기도제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을 수양회를 예언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내일을 얘기하고 한 달 후를 이야기 하고 일 년 후 십년 후를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을 알게 하십니다.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둘째, 젊은이에게 성령을 임하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성령이 임하면 미래를 향한 꿈이 생깁니다. 젊은이는 순수합니다. 하지만 젊기 때문에 악령이 젊은이들에게 임하면 자살하고 방황합니다. 충동적이 되고 낭만적이 되기 쉽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연애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애인 없으면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젊은이들은 잔재미와 겜을 좇아 살아갑니다. 아니면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현실의 먹고사는 취업문제에 평생을 묻혀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으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환상은 영어성경에는 비전으로 나옵니다. 공동번역에는 계시의 영상으로 나옵니다. 이를 볼 때 환상은 두 가지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미래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할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고 다시 돌아오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 환상을 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는 환상을 봅니다. 신약에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가서 안수 기도하는 환상을 보고 바울을 찾아가서 안수기도해줍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가서 복음을 들으라는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초청하여 복음을 듣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환상을 보고 고넬료를 찾아갑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와서 나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낙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환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뭇별을 보며 그와 같이 자녀가 태어날 환상을 보았습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태가 죽게 된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영적인 자녀가 태어날 환상을 보고 믿음으로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 가득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건설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충청권 백 개 지부를 개척하고자 하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천 선교사를 파송하고자 하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단국대 체육관에서 모여 오천 명이 예배를 드리는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선교사들이 흑인 백인을 데리고 와서 선교보고 하는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 66권의 강해서를 완성하고 10만권 이상 팔리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단국대와 상명대와 백석대에는 목자들이 교수와 총장들이 되어 교수실과 총장실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충남도지사 천안 시장이 되어 각 시장들과 동장들을 데리고 예배에 나오는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임하여 주님이 주시는 환상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안 센타 주위의 집들이 모두 유비에프 말씀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어 여기저기서 말씀을 공부하는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늙은이는 꿈을 꾸고)

 

셋째, 늙은이들은 꿈을 꿉니다. 늙은이들은 많은 경륜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죽을 날이 얼마나 남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기력이 쇠해집니다. 눈도 흐릿해지고 귀에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추억에 젖기를 좋아합니다. 과거의 자기 영광을 자랑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늙은이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꿈을 꿉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을 꿉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즐길 꿈을 꿉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 열두 아들의 미래를 예언하고 축복합니다.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믿음을 격려합니다. 그들이 변화될 꿈을 꿉니다. 야곱의 예언을 통하여 열두 아들이 믿음으로 살고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됩니다.

 

(남종과 여종이 예언하고)

 

1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넷째, 남종과 여종이 예언을 합니다. 남종과 여종은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남종과 여종이라는 말을 볼 때 주님의 종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같이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주님께 충성하는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주의 종들은 어린이처럼 공통적으로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물질의 종이나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종이 되어서 주님께 순종하면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피와 불과 연기)

 

19-20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예언은 중첩적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예언합니다. 말세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에수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입니다. 말세는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면서 끝이 납니다. 크고 영화로운 날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대환난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기사와 땅에는 징조가 베풀어집니다. 이는 피와 불과 연기입니다.

삼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피 흘리며 죽어갑니다. 이 곳 저 곳에서 폭탄이 터져서 불이 나며 그곳에서 연기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갈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워집니다. 달이 피처럼 붉어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천체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집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대환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우리 가운데 페푸사 우리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부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늘로 들림 받아 하늘에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대환난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왕을 죽인 자들)

 

22, 2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베드로는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들은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그들에게 증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그들 가운데서 이 기이한 일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을 고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예수님을 세상만민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로 보내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친히 이 땅에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기대하는 정치적인 경제적인 메시야가 아니라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율법이 없는 로마인들의 손에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살리사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사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요 왕이심을 다시 한번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다시 오셔서 영원히 왕노릇할 것입니다. 다윗은 bc1000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언하였습니다.

 

(항상 내 앞에 계신 하나님)

 

25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5절에서 그는 다윗이 아니라 앞으로 오실 예수님이십니다. 나라고 말하는 주체는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앞에 계신 하나님을 항상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항상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 항상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요동하지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흔들립니다. 상한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정욕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상황과 조건에 흔들립니다. 이리 저리 비틀거립니다. 이단의 말에 흔들립니다.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여 져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됩니다.

 

(육체도 희망에 거하심)

 

26,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예수님은 살았을 때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혀도 즐거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도 부활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에 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기뻐하고 희망에 거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줍니다. 특히 요즘에 우울증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이 되어 낙엽만 떨어져도 슬퍼합니다. 비만 내려도 쓸쓸해합니다. 찬바람이 으스스 불면 마음도 으스스해집니다.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들만 타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들도 가을을 탑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을 때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신을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그 육체로 썩을 당치 않게 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신도 부활하여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를 믿을 때 그는 26절에 있는 것처럼 희망에 거했습니다.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 무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통령을 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청소부를 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늙은이도 흙으로 가고 젊은이도 흙으로 갑니다. 부처님은 이를 생자필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로 인하여 허무해집니다. 우리는 이로 인하여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희망에 거합니다.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을 육체를 가질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에 거합니다. 부활의 희망에 거합니다.

 

(기쁨이 충만케 하심)

 

2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부활할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확신했을 때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슬퍼하는 그녀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가 아님)

 

29-3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사도 바울은 시편 말씀을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죽어서 장사되어 다윗의 묘가 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맹세하여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왕 위에 앉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음부에 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 거룩한 자는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어성경에는 거룩한 자를 대문자로 표시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다윗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음부에 버림 받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증인 사도들)

 

32,33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의 예언은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생한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워주시는 고기도 먹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예수님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증언해야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여야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부활의 주님이 보내신 성령님)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른 손으로 높이셔서 하늘로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그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그들이 보고 듣는 그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실재하시는 분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로 임하시고 눈에 보이는 불의 혀같이 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들이 아무리 요셉이 살았다고 말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야곱에게 타고 오라고 보낸 수레를 보고 그제야 요셉이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수레를 통해서 요셉이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산에 가서 나무뿌리를 뽑는다고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을 때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34,3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다윗은 부활하지도 않았고 하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승천하실 예수님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원수로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예수님에게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모든 사단의 권세를 발로 밟으십니다. 우리가 사단과 싸움에서 이기게 도우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사망권세를 발로 밟으실 것입니다. 그날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성령을 통하여 하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름을 타시고 천군 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죽인 예수님)

 

3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16개국에서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참여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인 대제사장이 이 설교를 듣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 이는 엄청난 비약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결국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까지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냐고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비약입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와서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양들과 염소들을 나누십니다. 양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고 염소들은 지옥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헐벗고 굶주리고 나그네 되고 감옥에 갇혔을 때 도와주었느냐 아니면 박대했느냐에 따라서 갈라진 것입니다. 그들은 물어봅니다. 내가 언제 예수님을 대접하고 박대했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아내와 남편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들과 목자와 동역자들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를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동역자를 무시한 악한 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인 우리들)

 

둘째,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놀라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바로 주요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일차세계대전이 왜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왜 이천만의 인구가 죽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을 죽이더라도 누구를 죽였느냐에 따라서 죄가 달라집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아프리카 사람을 죽였느냐 아니면 미국인을 죽였느냐에 따라서 죄가 달라집니다. 예전에 총선 전에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를 칼로 찌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중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판사를 석궁으로 쏘아서 테러한 교수가 있습니다. 그도 중벌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케네디들 죽인 사람들이 모두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만큼 왕을 죽인 죄는 큰 죄입니다.

또 한 아버지를 죽인 자도 큰 벌을 받습니다. 이는 패륜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주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계신 만왕의 왕을 죽였습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아나니아를 삽비라를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인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마음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애통하며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행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을 충만히 받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내가 예수님을 죽인 것을 알고 회개해야합니다. 나의 교만과 음란이 예수님을 죽인 것을 알고 회개해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 그리스도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가 주신 성령님

 

말씀 사도행전 216-사도행전 236

요절 사도행전 233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아멘!

사도행전 2장 강해 2부 마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 [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가 주신 성령님 오요한 2005-03-07
3 [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성령 강림 오요한 2005-03-07
2 [사도행전] 사도행전 1장 강해 이부 성령 받을 준비 오요한 2005-03-07
1 [사도행전] 사도행전 1장 강해 일부 성령으로 건설되는 하나님 나라 오요한 2005-03-07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