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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성령 강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07 00:00:00
조회수 : 2,77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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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성령강림

말씀 사도행전 21-사도행전 215

요절 사도행전 2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예수님은 세 번 이땅에 오십니다. 육신을 입고 마굿간에 첫 번째 오셨습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두 번째 오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신 몸으로 세 번째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두 번째 오신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건은 지구상에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그 후에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성령이 이와 유사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교회가 탄생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성령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곳에 모인 성도들)

 

1절을 보십시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가룟유다를 대신한 새로운 맴버인 맛디아를 포함한 열두 사도와 120명의 성도가 오순절 날을 맞아 다 같이 마가다락방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지 50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오순절은 늦은 초실절이라고 하여 밀이삭을 추수하는 때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우신 지는 열흘쯤 됐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올라가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열흘 째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 날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마음을 합해 기도에 힘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2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약속을 믿고 구하며 기다린 제자들에게 약속대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실제 귀로 들을 수 있는 있는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온 집에 가득하게 들렸습니다. 성령은 전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오시는 것을 귀로 들을 수 있게 실재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 강림 현상을 통해서 성령님이 어떤 분이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홀연히 오시는 성령님)

 

첫째, 성령은 홀연히 일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징조를 보여주시면서 일을 하신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굳이 믿음을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징조가 보이니까 시간이 좀 걸려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갑자기 일하십니다.

우리 편에선 좀 답답한 일이지만 도대체 일을 하실건지 안 하실건지 조용히 계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하십니다.

전혀 성령 충만과는 상관 없던 사울에게도 예수님께서 갑자기 임하셔서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혀 죽임 당할 일만 남았을 때도, 성령은 홀연히 임하셔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여리고 성도 홀연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령도 홀연히 임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홀연히 찾아오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성령님)

 

둘째, 성령님은 하늘로부터 찾아오십니다. 성령은 하늘에게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루는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뒤에도 나오지만 성령의 역사를 그저 술 취한 사람의 주정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 역시 성령께서 하늘에서 언제 어떻게 성령이 역사하실지 예측하지 못합니다.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것처럼 그렇게 성령이 오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지 않을 때 조급해 하고, 불안해하고, 조금 기다려 보다가 인간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대치 못했던 모습으로 위로부터 역사하십니다.

 

(바람 같은 성령님)

 

셋째,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성령의 역사는 자율적입니다. 바람은 신비롭습니다. 성령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율적이고 얽매임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힘 있고 빠르게 일하십니다. 누구처럼 굼뜨거나, 무능해서 일을 놓치시거나 그르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일하십니다. 엘리야에게 성령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일하셨습니다. 정확한 때에 정확한 능력으로 변화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성령님은 바람처럼 힘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꺽이든지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성령께서 일하시면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죄와 율법적 사고를 날려버립니다. 핍박자 사울을 사도 바울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가득히 오시는 성령님)

 

넷째, 성령님은 제자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히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풍성하셔서 우리가 거하는 곳에 가득히 임하십니다.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함께 임하시기도합니다.

사무엘이 있는 선지학교에서 성령께서 그곳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교회에서만 잠깐 누리는 게 아니라 학교나 가정, 회사등 우리가 거하는 어디에서든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불의 혀같이 오신 성령님)

 

3절을 보십시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다섯째,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습니다. 실제 성도들의 눈에 보였다는 것도 성령님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는 불과 같이 뜨겁게 임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뜨거운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뜨거운 감사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뜨거운 기쁨을 주십니다. 불이 더러운 쓰레기를 태우듯이 성령님은 우리의 더러운 죄를 태우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불은 에너지입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피곤함을 어느 정도 극복합니다.

 

(각사람 위에 오신 성령님)

 

여섯째, 성령님은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온 무리에 임하시지만 또 각 개인에게 인격적으로 임하십니다. 우리는 다 성격이 다르고, 사람을 사귀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릅니다. 성령님은 이를 다 아시고, 각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만날만한 모습으로 만나 주시고 교제하십니다.

 

(살아계시고 실재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이 이렇게 소리를 내며 불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실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은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계시지 않습니다. 그저 상징적이거나 감정적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때론 말씀을 들을 때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히 뚫어 주기도 하시고, 미지근한 마음을 뜨거워지게도 하십니다. 때론 찬양을 부를 때, 복잡한 마음에 평화를 주기도 하시고, 슬프고, 고달픈 마음에 기쁨을 주기도 하십니다. 때론 기도할 때 차갑고 이기적인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을 마구 부어주시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실제적인 능력도 행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강림하시고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 삼으셨지만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될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은 능력을 받고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령이 일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성령님)

 

마가복음 16:19,20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제자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나가 말씀을 전파할 때 성령으로 함께 다니시며, 여러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도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친히 증거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 담대하고 확신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을 배우다보면 성령님의 실제적인 능력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함께 하신 것처럼 성령님도 실제로 함께 하십니다. 인격적으로 살아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교제하길 즐거워하는 자들에게 성령님은 구체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그 삶을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 각 사람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삶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말씀을 깨닫게도 하시고, 비전을 덧입게도 하십니다. 고달픈 마음에 쉼을 주시기도 하시고, 실제적인 구원이 되어 주십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각자 모양과 강도는 달라도 이 성령님을 체험한 기쁜 기억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님은 어디에 임하십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신 사람들 모두에게는 성령이 그 안에 살아계십니다. 때로는 성령님은 우리 곁에 거하십니다. 우리 머리 위에 부어주시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습니다. 그곳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외국어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 충만해서 눈빛만 봐도 힘과 패기가 불끈불끈 넘쳐 보입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분명 성령님이 계시긴 한데 왠지 모르게 시들시들하고, 기력이 딸려 보입니다. 이들은 성령이 소멸된 사람들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항상 차의 기름 표시등을 확인해야하듯이, 우리도 우리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확인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기름이 떨어져 막상 신랑이 올 때 맞이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처럼, 간신히 믿음만 지키다 정작 예수님이 오실 때 낙오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이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은 성령을 사모함으로 기도했을 때입니다. 또 이들이 성령을 사모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줄 테니 기다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되뇌이며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먼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진리의 말씀이 있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 우리가 매주 하는 말씀공부와 주일 예배, 양식메모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충만히 덧입는 귀한 통로입니다.

바울은 옥에서 찬양하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함으로 찬양할 때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준비찬송을 통해서도, 주일 특송을 통해서도, 찬양하는 작은 습관을 통해서도 홀연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늘 정한시간에 기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규칙적인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새벽기도는 하루하루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비결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의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거짓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충만히 우십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요 그리스도로 믿어야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우린 우리가 우리 안의 성령님을 소멸시키는데 빠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새롭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자 제자들에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언어라곤 갈릴리 말 밖에 모르는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은 복음을 전하도록 언어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동시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당시 그곳엔 경건한 유대인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천하 각국에서 와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디아스프라들로서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뒤에 말씀을 볼 때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예루살렘에 거하며 오순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외국어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

 

6-8절을 보십시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런데 웬 소리가 있더니 이들 귀엔 귀 익은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이 외국어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외국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것도 한두 나라 언어가 아닌 그 곳에 모인 각 사람이 난 곳 모든 언어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출신 나라는 16개국이나 되었습니다. 갈릴리 촌사람들이 무려 16개국 언어로 복음을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다 놀라 당황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웬 일인가하며 어떻게 갈릴리 촌사람들이 외국어교육도 받지 않고 각기 다른 말을 하는가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

 

9-1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제자들은 16개국의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하였습니다.(11)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을 때 성령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 큰 일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인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크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맨 처음 다른 언어로 복음을 전한 제자들을 볼 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능력을 행하게도 하시고, 주의 자녀에게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시고, 주의 종이 잘 되게도 하십니다. 서로를 사랑하게도 하십니다.

하지만 성령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을 알고 세계 만민에게 그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길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각 나라의 어학 능력을 받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들이 세계에 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언어가 하나로 회복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막혔는데 이제 소통의 문이 열리게 하셨습니다. 세계선교할 때 언어적 소통 문제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세대간에도 소통하게 하십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가 전도하게 하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예수의 증인)

 

우린 무엇을 위해 성령 충만함을 구합니까? 건강이나 부나 성공을 위해 성령 충만함을 구하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사도행전 1:8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의지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처럼 변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말씀을 주시는 분)

 

성령께서는 말씀을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3:11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도 하시고, 전할 말씀이 생각나게도 하십니다. 이것은 아마 1:1로 말씀을 전하거나 새벽 메시지를 전해 보신 분들은 많이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자신 있는 말씀보다도, 오히려 어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직 성령님의 지혜를 구할 때 더 은혜로운 말씀을 전할 수 있음을 자주 봅니다. 그렇기에 매사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제자들은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은 그 복음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역사 앞에 찬물을 끼얹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새 술에 취하였다)

 

13-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 대한 편견과 시기심을 가진 몇 몇 사람들은 제자들이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덧입게 것을 인정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여러 방언으로 말 하는 것을 새 술에 취해 중얼거리는 거라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들이 결코 술 취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증명합니다. 제 삼시는 오전 9시를 말합니다. 이것은 아침 기도시간이며, 오순절 같은 절기에는 10시까지 금식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시간에 제자들이 술 취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습니다. 성령에 취한 것이 술취한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물론 술과 성령의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취하는 것부터 시작해 자의식이 사라지는 것, 속에 있는 말들을 하게 되는 것, 기분이 좋아지는 것, 중독성이 있는 것, 또 깰 때도 있는 것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둘 다 세상이 달리 보이게 하고 , 여럿이 먹어야 맛이 나고, 사람들과 관계성을 좋게 하는 점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과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완전히 다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의식이 사라지는 동시에 도덕성도 사라집니다. 대부분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들입니다. 또 술 취해서 생긴 담대함으로 싸움을 거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함께 있는 여성을 덮치기도 잘합니다.

하지만 성령에 취한 사람들은 오히려 분별력이 더 좋아지고, 도덕성도 높아집니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주 작은 죄까지도 생각나서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공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거룩한 성령님을 모신 그들은 실오라기 같은 죄 하나라도 고백하고 시정하지 않고는 찔려서 견디지 못하는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깨끗하고, 바르게 하십니다.

또 술 취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아지는데 대부분이 불평하는 말, 불만 섞인 말, 비판하는 말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신세 한탄하는 말을 많이해서, 술 취한 사람들과 대화하면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들고, 불공평한 일들 투성이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취한 사람의 말엔 감사가 있고, 사랑과 이해가 있습니다. 이들의 말은 살리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과 대화를 하면 보이지 않던 소망도 생기고, 영혼이 소생함을 느끼게 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폼이 안 나는 것입니다. 넘어지기도 잘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주저앉거나 누워있기도 잘합니다. 아무리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도 술에 취하면 추하고, 차마 보기 안타까워집니다. 하지만 성령에 취한 사람은 걸음걸이가 반듯하고 담대합니다. 아무리 매력 없고, 부실해 보였던 사람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멋있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집니다. 우리가 무엇에 취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령의 술에 취하자)

 

에베소서 5:18절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람들은 술 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힘들어서 술 취하고, 슬퍼서 술 취하고, 기분 좋아서 술 취하고, 심심해도 술 취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고, 방탕함은 성령님을 소멸 시키는 것이고, 성령이 소멸하면 범죄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술 취하고 싶을 때 오히려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더 기도에 힘쓰고, 찬양을 부르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옵션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위해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받지 말고, 항상 성령 충만함 속에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 변화)

 

가수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 주인공은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를 잊지 못한 괴로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건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웃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사람도 성령의 충만함만 받으면 남자친구가 떠나도, 더 크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오히려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 자매도 과거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것이 오히려 자유를 찾은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매였던 것에서 자유로워지니 예수님께 마음을 마음껏 드리고, 예수님과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소망으로 행복해졌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처럼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양들을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그 양들을 우리에게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일이 아닙니다. 양들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양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생겨서 먹이고 싶다고 해도 양들이 잘 받아 먹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 역시 성령이 임하자 제자다운 제자가 되어 양무리를 먹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우리가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소망)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싶으시지요? 그럼 언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지 잘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중심에 두고, 성령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역사하십니다.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사경회라는 말씀 공부하는 모임 가운데 성령께서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힘으로 도저히 바랄 수 없던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선교사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조선을 향한 소망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 사도행전 말씀을 주신 것도 우리 모임 가운데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임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시고자, 성령의 능력으로 깨끗케 하시고, 능력 있게 사용하시고자 작정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때, 성령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한 말씀, 한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이 작아 보이지만 우린 열두 사도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면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단대 의대가 개척되고, 이 교회가 말씀을 들으러 오는 양들로 빈 틈 없이 차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의 사도들처럼 능력 있게 하나님의 큰 일, 복음을 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드림선교사)

 

성드림 선교사는 말씀을 공부하면서 언제 성령의 임재를 느끼냐는 질문에 당황했습니다. 별로 성령의 임재를 못 느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공부하면서 제게도 분명히 임하신 성령님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역사를 맨 처음 확실하게 느낀 것은 십자가를 깨달았을 때입니다. 그는 다 아시다시피 정말 오래 신앙생활을 했지만, 핵심인 십자가 예수님 앞에선 아무런 감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었지만 도대체 그가 왜 그렇게 죄인인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십자가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격하고,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기도 시간에 성령님이 그에게도 홀연히 임하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십자가 예수님을 알고자 이사야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그녀 때문에 외아들을 십자가에 달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갑자기 뜨겁게 다가왔습니다. 이로 그는 그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이 발견되고,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그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제 마음에 충만해 졌습니다. 그 후에도 성령님은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아 포기하고자 하는 말씀을 깨닫게도 해 주시고, 양에게 전한 말씀이 바로 내게 하시는 말씀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는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저와 함께 하심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로 삶 속에 말씀의 살아있는 능력을 체험하고, 생명이 소생한다는 말이 뭔지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기대)

 

결론적으로 성령님은 실재하십니다. 제자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고백한 그 때부터 성령님은 우리 속에 집을 짓고 사십니다. 우리가 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성령님은 더욱 신이 나서 우리 삶에 당신을 마구 드러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고, 잊고 산다면 점점 슬퍼하시며 소멸해 버리십니다.

우리 모임이 홀연히 역사하실 성령님을 기대하며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길 기도합니다. 술에 취하거나, 잠에 취하거나, 자아도취에 취하거나, 자기 연민에 취하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시고, 온전한 구원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 취해 하나님 앞에서 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삶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이루실 성령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기대합시다~.

 

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성령강림

말씀 사도행전 21-사도행전 215

요절 사도행전 2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마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 [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가 주신 성령님 오요한 2005-03-07
3 [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강해 일부 성령 강림 오요한 2005-03-07
2 [사도행전] 사도행전 1장 강해 이부 성령 받을 준비 오요한 2005-03-07
1 [사도행전] 사도행전 1장 강해 일부 성령으로 건설되는 하나님 나라 오요한 200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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