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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일서 5장 강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2-19 00:00:00
조회수 : 4,05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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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장 강해 일부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요한일서 5장 1-요한일서 5장 12
요한일서 5장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우리는 언제 두려움을 느낍니까? 무서운 영화를 볼 때, 밤에 혼자 집을 지킬 때, 밤길 혼자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 올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혹은 리포트 마감이 내일인데, 할 일은 산더미이고, 아이디어는 안 나와 리포트를 못 낼 것 같을 때, 나를 괴롭힐 조교나 교수님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시험이 내일이여서, 시험 공부한다고 커피까지 사발로 마셨지만, 책상에 엎드린 채로 날이 밝았을 때 앞으로 나의 학점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걸 보실 부모님의 반응이 어떨지 생각하면 또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능력도 부족한데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할 때, 과연, 내가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굶어 죽거나, 빈대생활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며 두려움이 생깁니다. 나만 보면 괴롭히는 갈굼의 상징 백선배를 발견 했을 때, 성적이 펑크 날 것 같은 두려움, 교수님한테 혼날 것 같은 두려움, 이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에 우리는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두려움의 원인은 사랑이 없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할 때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에수님을 믿을 때 미움을 이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단과 미움을 이기고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난 자를 사랑한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서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께서로 난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거듭난 자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하나님께서로 난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로 들어와 새 생명 되어 주십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그 가지에 거하는 자마다 영생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장군의 아들이나 대통령의 딸도 뭐 대충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에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함을 예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들은 자신을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녀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자녀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옆에 앉은 형제 자매,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계명을 지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형제자매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보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고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 옆 사람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 많이 사랑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당췌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에, 단점 많은 서로를 볼 때에 도저히 다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몇까지는 커버가 가능한데 모든 사랑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우리가 형제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 힘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쉬운 것이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4, 5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움을 심는 마귀를 이기고 쉽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세상을 이긴 이김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돕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죄와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으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신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랑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동역자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승리하는 것입니까?

(고난에서 승리합니다)

첫째 고난에서 승리합니다. 이겨도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게 넉넉히 이깁니다. 아무리 환난, 곤고, 핍박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우리가 의롭게 살려면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고 성실하게 살고, 올바로 살려면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부패함을 보고 타협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야구선수가 공을 때릴 때 포수가 던지는 공을 때려야 홈런이 됩니다. 잘못된 공은 홈런이 나오지 않습니다. 남들하는 것처럼 죄와 타협하고, 세상에 적응한다며 도망가거나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정면 돌파할 때 그 사람에게 승리가 나타납니다.

(죄와 사망에서 승리합니다)

둘째로 죄와 사망에서 승리합니다. 사망과 죄는 우리를 괴롭힙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로써 큰 슬픔과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에 더 이상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에서 승리합니다)

셋째, 사단으로부터 승리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생각에 불신을 심고, 환경을 통해 유혹하고, 거짓 선지자들로 이단을 퍼트려 우리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이때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닌,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피곤을 느끼고 체력의 한계를 가진 육신, 눈에 보는것 먹는 것에 약해 유혹 당하기 쉬운, 3차원에 갇혀 사는 우리가 영(Spirit)인 사단을 어찌 이길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단을 꼼짝 못하게 할, 원자력 핵 폭탄보다 더 강력한 무기, 말씀과 기도의 무기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을 탓하며 좌절하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장군의 아들보다, 대통령 딸보다 더 뭔가 있는 것 같은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같이 5절에 ‘믿는 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 )이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가 죄와 사망과 사단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쉽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증거 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우선 우리가 매주하는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과 말씀을 전하시는 목자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사단과 미움을 이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거짓말이면 어떻게 합니까? 성경공부가 거짓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법정에 선 증인들의 증언을 신뢰합니다. 사람의 말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선언은 더욱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하나님도 성경을 통해 몇 번 증거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변화산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랑 오르셨을 때, 홀연히 빛난 구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할 때도 증거하여주셨습니다.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하십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하게 예수나오며 세례를 받습니다. 물은 회개의 세례를 말합니다.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야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물에 들어갔다 나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십자가에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우리 인간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받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의 음성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셋 성령과 물과 피를 합하여 하나되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십니다. 회개와 죄사함과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성령이 도우셔야 회개할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성령을 받습니다. 이 세분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도우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영생이 증거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또한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죽어가는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 곧 성령님께서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

12절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이 있다는 말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영생은 미래에 주어질 뿐 아니라 현재에 바로 믿는 이 순간에도 주어집니다. 사도요한은 에베소에서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영과 육체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 나머지 그리스도가 실제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을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려고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들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은 천국만이 아닙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삽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영원성만 가지고는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 계신 곳이 천국이요, 하나님 없고 사단이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슬픔도 없고, 병도 없고, 어둠과 고통도 없는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이 게시지 않으므로 영원히 고통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에게는 죽음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도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인간의 죽음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나무에서 잘린 꽃이 서서히 시들고 떨어져 가듯이 육체적 생명은 영적 생명으로부터 멀어진 순간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에는 빈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을 하나님으로 채우기까지 인간에겐 안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공대식으로 표현하자면 타락한 순간 인간은 가장 중요한 핵심 칩(chip)이 빠진 ‘얼빠진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의 칩이 육신을 가진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 생명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요한일서 5장 일부 강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요한일서 5장 1-요한일서 5장 12
요한일서 5장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5장 일부 강해 끝입니다.

요한일서 5장 강해 이부 우리가 가진 담대한 것
요한일서 5장 13-요한일서 5장 21
요한일서 5장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손을 펴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보지 않으시고 많이 기도해도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다시 한번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려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갈 뿐 아니라 이미 육신을 가진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있다면 이미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면 이미 우리는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삶을 기뻐하고 감격해야합니다. 인간은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다 인간은 아닙니다. 의미없이 살아간다면, 목적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닙니다. 성경이 더 중요시하는 것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영생을 얻은 자는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닙니다. 비록 육체적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입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듯이 눈을 뜨면 우리는 천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위대함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영생의 기쁨과 감격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가끔은 영생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거나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 무력해집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 앞에서나, 물질이나 권력 앞에 서면 비굴해집니다. 우리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을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은 시체와 같습니다. 아무것 없이 살더라도 예수님 한 분 소유했다면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만약 영생을 1조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선물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의 재산, 돈, 명예, 건강을 모두를 합한 것의 가치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영원이라는 가치와 비교할 수 없지만 많이 쳐줘 한 백만원 정도라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1조원을 가진 사람이 백만원이 더 있다고 해서 교만해지거나, 백만원이 없다고 해서 비굴해져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위대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힘입어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확신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가 영생도 선물로 받았는데 우리가 구하면 무엇을 못 받겠습니까!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들어주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구해야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끝에 쫓기고 도망다니며 자신의 생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고백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 사울까지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능히 자신을 적의 손에 죽이지 않으시고 살리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담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담대히 기도하여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위하여 구하라)

16~1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만일 어떤 형제가 죄를 지었거든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의 죄가 지나친 게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의 죄사함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부를 만큼 큰 죄를 지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음을 부를 만큼 큰 죄, 회개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그 죄는 무엇일까요? 바로 복음을 이해하고, 하늘에서 내리신 기쁨을 맛보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마음에 딱딱해져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죄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다시는 주님께 돌아설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난 자는 범죄치 않습니다.)

18절 보십시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거듭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듭났는데 죄를 안 짓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경에 범죄치 아니할 줄을 안다고 장담한 이유는 18절 후반절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 사단이 손을 뻗칠 여유가 없고, 이렇게 만지지도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보다 더 크신 그리스도의 지키심을 믿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한에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도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사단을 이기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움을 이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상에서 멀리해야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상에서 우리 자신을 멀리해야합니다. 돈의 우상, 쾌락의 우상, 자기의 우상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면 쉽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멘!
요한일서 5장 강해 이부 우리가 가진 담대한 것
요한일서 5장 13-요한일서 5장 21
요한일서 5장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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