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일서 3장 강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2-13 00:00:00
조회수 : 4,335

문제지풀이(2)

    iconB_23330A.hwp  (15.50KB)

    iconB_23330B.hwp  (28.50KB)

요한일서 3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
말씀 요한일서 3장 1-요한일서 3장 10
요절 요한일서 3장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당시에 영지주의자는 생활이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욕주의로 흘러서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였습니다. 결혼 음식 편안한 생활을 금하였습니다. 때로는 방탕에 흘렀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었으므로 육체는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아버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신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된 죄인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사랑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어떠한 사랑은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진실된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우리를 마음뿐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로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외아들 되신 독생자 예수님을 육신의 몸으로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고 말로만 사랑한다 늘어놓지 않으셨습니다. 실제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죄악된 죄인의 자녀에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장군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습니다. 일단 장군이 되면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직접 진급 신고를 하며 진검을 수여 받게 됩니다. 그 전과 달리 40여가지 특권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전용차가 지급되고, 예전에는 2,000명을 지휘하였지만, 이제 일개 사단 1만 정도를 지휘할수 있는 권력을 가질 뿐 아니라 명예까지 얻게 됩니다. 그야말로 작은 왕국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장군이 되기 위해서 각종 죽을 위험과 고통 그리고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값없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별을 단 장군에게 주어지는 특권보다 더 큰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자녀로써 누리는 특권은 가장 큰 특권은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값없이 하늘나라 소망 보험에 자동으로 가입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옥에 가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누리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장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내려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시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새롭게 부활하여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얻긴 하였지만, 장래가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소망만 확실히 우리 마음 중심에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큰 비전과 꿈을 가지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 나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나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능력과 대단한 실력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확실한 VIP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소망 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장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생복락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한분 한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끝없는 특권을 누리며 강성하고 왕성하게 실제적인 삶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같이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당시의 영지주의자는 쾌락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니면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겉은 깨끗했지만 속은 더러웠습니다. 그러나 성육신을 믿는 우리는 겉과 속이 깨끗해야합니다. 우리가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졌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합니다. 우리가 깨끗해야 서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혼의 구원을 받았지만 지금 우리의 인격의 구원을 이루어가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는 그날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선악 간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깨끗하게 산 자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더럽게 산 자는 지옥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볼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우리가 깨끗게 살려면 죄문제를 극복해야합니다. 예수님께는 죄가 없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나신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삼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우리를 대신하여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을 받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덮어주시고 죄에 소욕을 극복하게 도우십니다.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합니다. 죄는 불법입니다. 죄는 무법자가 되어 내가 마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십계명을 어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범죄하지 않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범죄치 않고, 예수님 주시는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는 어둠에 거하여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님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범죄치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게 해야합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육신을 죽여야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거하는 자는 형제 자매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죄를 멀리 하고 의를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관계성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하나님 자녀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범죄케 하여 마귀의 자녀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를 없이 하시고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셨고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이 마귀 사단을 멸하여 오심을 기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씨가 거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우리가 어떻게 다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하나님께서 주신 씨 곧 말씀과 성령을 마음 속에 심었습니다. 씨는 생명의 근본입니다. 씨를 잘 키워,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항상 겸손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만 내 안의 생명의 씨를 잘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피와 살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의 자녀로 삼고자 하는 죄짓는 유혹에서 벗어나 의를 행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씨를 받고도 키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없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씨 곧 말씀을 귀히 여겨,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의를 행하지 않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는 사단에게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속한 자인가 아닌가를 의를 행하느냐 않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도덕성이 없고 형제 사랑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요한일서 3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
말씀 요한일서 3장 1-요한일서 3장 10
요절 요한일서 3장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요한일서 3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요한일서 3장 강해 이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말씀 요한일서 3장 11절-요한일서 3장 24절
요절 요한일서 3장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오늘 말씀은 실제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 마지막 장면을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연인 케이트 윈슬렛을 살리고자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실제적인 행함과 진실함에서 그 사랑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예수님도 죄인 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랑함으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실제적이고 진실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며 서로 사랑할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하나님의 자녀가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는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한복음 13:34은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아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가인같이 하지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사도 요한은 가인과 아벨의 예를 들어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의 예를 말씀하십니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자신은 악하고 아우는 의로우므로 시기하여 아우를 죽였습니다. 시기심과 미움이 불타오를 때 양심은 매말라 버리고 살인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 시기심과 미움을 극복해야함을 가르칩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소유할 때 시기와 질투는 없어지고, 화평함이 찾아옵니다. 마치 탁한 공기를 마시다가 아주 신선한 공기를 마신 것 같이 마음의 곳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하여져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마음을 소유한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기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13-14절 “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그러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 우리와 같이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미워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사단에게 속하였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같은 기독교인이 더 핍박하고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미워서 한 대 때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을 미워하여 때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계속 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핍박하는 자를 미워 할 수 없는 이유는 미워하는 자는 사망권세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세상 사람들은 사망에 이미 거하여 심판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여야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갑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해야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사랑치 아니할 때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자는 살인한 자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사람의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면 자신도 사망에 거하고 다른 사람도 죽입니다. 사도요한은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은 살인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움이 마음속에 임할 때 형제에 대한 사랑은 없어지고, 허물과 연약함만 보입니다. 이러한 허물과 연약함을 덮어주기보다는 들어내어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것은 인격 모독으로 영적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 살인은 육신의 살인보다 더 무서운 것이며 악한 것입니다. 영적 살인을 하는 자는 이미 영생이 사라지고, 사망에 떨어져 버립니다. 미움은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의 빚진 자는 사랑해야합니다.)

16절-17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빚을 진 자 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간에 물질적, 환경적, 인간적으로 빚을 지었지만,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기에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단번에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신 크신 예수님의 사랑에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알게 하셨고, 사랑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이 사랑의 빚을 갚고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갚고자 할 때 우리는 형제 자매 양들의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어도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세상 어떤 것의 사랑보다 진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채워주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못 본 채 하지 말고 채워주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18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할 때 비로소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할 뿐 행함과 진실함 없다면 이것으로 사랑은 끝인(The end) 것입니다. 사랑은 실제적인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진실한 사랑을 해야합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고 진실한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이해해 주는 넓은 마음의 관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구체적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형제가 밥을 굶거나, 몸이 아플 때 식사를 대접하고, 약을 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영적으로 힘들어 할 때 먼저 다가가 대화를 해주고, 문자나 , 전화를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구체적이고 진실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을 채워주고 덮어주셨듯이 우리도 형제의 부족함과 허물을 채워주어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18절 마지막 단어에 “하자” 말씀 하셨습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새 계명을 받은 우리 모두 다 행함과 진실로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한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부담스럽거나 거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 사랑을 행하는 것에 대해 많은 시간과 물질 그리고 자기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진실한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고 반갑게 인사하는데 10초 , 커피 한잔을 대접해 주는데 2분, 라면을 끊여 주는데 20분, 한 말씀을 전해 주는 데 5분여 정도 그리고 동역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된 것은,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과 물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조금의 관심과 배려가 있다면 누구나 다 행함과 진실로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 많은 것을 투자하지 않아도 남는 사랑의 장사를 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행할뿐 아니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에 진실이 중요합니다. 진실은 유익보다 우선합니다. 진실은 어떤 손해가 있어도 해야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된 사랑입니다. 장발장에 보면 그는 진실하기 위해서 시장직과 사장직을 버립니다. 그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진실하게 자신을 밝힙니다. 우리는 진실함으로 사랑해야합니다. 진실함이란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입니다. 유부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진실이 아닙니다. 사단이 심는 거짓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사랑해야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영광에 기초한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은 결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얻는 것이 많습니다. 기쁨을 얻고, 화평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굳세게 서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행함과 진실됨으로 사랑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죄인된 우리를 먼저 찾아와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비교하며 사랑을 합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사랑을 합니다. 진실된 사랑은 우선순위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하는 사랑은 없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사랑하는 동역자를 위해 아침을 차려주는 진실된 행함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동역자들과 미술, 컴퓨터, 운전, 요리, 어학 등을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팀끼리 서로의 장점만을 말할 수 있어야하며, 때로는 책망할 것이 있다면 조용히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행함과 진실한 사랑은 말씀에 기초하여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이 정말 예수님의 행함과 진실된 사랑에 뿌리와 바탕을 두어, 진실되게 행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길 기도드립니다. 우리 모임은 수적으로는 작으나, 진실된 사랑만큼은 세계 최고의 모임이 되어 예수님의 안에서 사랑으로 똘똘 뭉친 모임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사랑함으로서 마음을 굳세게 합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우리가 사랑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진리이신 사랑의 예수님께 속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마음을 주 앞에 굳세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떳떳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양심적으로 볼 때 혹 우리를 책망할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담대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는 양심에 따라서 보아도 책망할 것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가면 책망할 것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마음에 그런 책망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의 허물을 다 덮어주십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 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기도 응답의 비밀은 서로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23절-24절을 보십시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말과 혀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되게 행해야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을 주시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님과 사랑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알았다면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령님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임하였을 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나 나나 할 것이 없이 자신의 물건을 나누어 쓰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사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사랑을 실천하며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토록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축구를 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고난을 받는 것도 혼자서 하기보다는 둘이 할 때, 둘이 하기보다는 여럿이할 때 덜 심심하고, 재미 있고, 덜 힘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을 지셨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서로 간에 사랑의 십자가를 감당하며 같은 길을 가는 사랑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예수님 안에서 의지하고 사랑하며, 모임 안과 밖에서 사랑의 꽃이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모임을 이룰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히 특권을 누리며 , 실제적이고 진실된 예수님의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이 움직여 행하는 사랑을 하여 예수님께 값없이 받은 희생적인 사랑을 전하길 기도드립니다.
요한일서 3장 강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말씀 요한일서 3장11절-요한일서 3장 24절
요절 요한일서 3장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 [요한일서] 요한일서 5장 강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오요한 2006-02-19
4 [요한일서] 요한일서 4장 강해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 오요한 2006-02-19
3 [요한일서] 요한일서 3장 강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오요한 2006-02-13
2 [요한일서] 요한일서 2장 강해 사랑의 새계명 오요한 2006-02-06
1 [요한일서] 요한일서 1장 강해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 오요한 200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