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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일서 2장 강해 사랑의 새계명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2-06 00:00:00
조회수 : 4,01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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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장 강해 일부 사랑의 새 계명
요한일서 2장 1절~요한일서 2장 17
요한일서 2장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저(김목자)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어떤 의사는 암 치료에 가장 효과 있는 약이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송학사님 댁에 있는 강아지 몽실이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엔돌핀이 나와서 암세포를 억제하고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의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순종해야하는 계명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새계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십니다)

2장 1~2절을 보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자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죄입니다. 죄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죄의 대가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고 나면 두렵고 떨리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리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어 주십니다. 대언자라는 단어에는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시고 우리 편에 서서 사단의 공격과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주십니다. 사단은 율법과 행위에 기초해 우리를 고소하고 정죄합니다. 잠에 빠져 새벽기도도 못하고 자기 일 하느라 양도 하나 못치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랑하지 않는 너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대신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흠 없이 깨끗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신 죄 값을 치러 주신 것입니다. 사단이 공격할 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할 뿐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막아주십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유대인들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든지 죄를 숨기고 감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백하고 죄사함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면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말씀대로 따라서 행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평생 죄와 사망권세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 할 우리의 인생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진리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사함을 받지 않은 것이요 성령이 우리 속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아는 우리는 서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주시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집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찌니라.” 첫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해 집니다. 온전해 진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할 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열매를 맺습니다. 과실 나무가 과일이 맺혀야 온전해지고 볼펜은 사용을 해야 온전해집니다. 그와 같이 사랑의 계명은 실천해야 온전해집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드러납니다.)

둘째,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사랑의 과실을 많이 맺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포도나무되신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시들고 메말라 죽어버리게 됩니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 붙어 있지 않으면 버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강력본드처럼 딱 붙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킬 힘을 주시고 사랑의 열매도 맺게 하여 주십니다. 또한 서로 사랑하는 자 안에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와 성령으로 함께 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새게명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옛 계명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제 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를 시작해 제 십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로 끝나는 이 십계명은 결국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옛 계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명령하신 것입니다. 은혜에 기초하여 하나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눈 먼 자,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뺨 때리며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병정을 위하여 하나님께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영접할 때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옛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불완전한 것이었고 새계명은 예수님이 서로 사랑할 힘을 더욱 완전하게 주시고 사랑하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새로운 빛이 비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빛 가운데 있습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 이니라.” 예수님의 빛 가운데 사는 자는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빛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소원을 주시고 사랑할 힘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면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더욱 충만해져서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세계를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마음이 밝고 진실하며 거리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습니다.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자신을 미워하면 어두움이 눈앞을 가려 소경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이 우리의 교제를 단절시키고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고통 속에 몰아넣습니다. 눈먼 독사와 같이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80여 건이 넘는 강도와 성폭행을 저지른 일명 발바리가 잡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택시 운전을 하면서 술 취한 여자 승객이 자신을 무시한 것에 앙심을 품고 여자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어두움이 눈을 가려 더 큰 죄를 짓고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손양원 목사님은 미움대신 용서와 사랑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동인이와 동신이라는 총명한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동이 일어나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한 젊은 청년이 두 아들을 살해 했습니다. 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에 선처를 호소하여 석방한 뒤, 양자로 삼았습니다. 손 목사에게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청년을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임하고 예수님의 빛이 임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미움 대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감싸 안았을 때 그 마음에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김목자)저는 과거 사랑도 없고 용서 할 줄도 모르는 자였습니다. 특히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술의 노예가 되어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셨습니다. 6학년 때는 술을 마시고 갑자기 학교에 찾아오셔서 “김성희 아빠 왔다” 하며 교실문을 딱 열고 들어오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지만 그 때에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부끄럽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보고 싶어 찾아 왔다는 아버지께 차라리 이런 아버지 없는 게 낫다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 난 후 오히려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나를 용서하셨는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를 용서할 때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랍니다. 다른 사람이 미울 때마다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먼저 용서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자녀, 아비, 청년, 아이들의 믿음)

12~1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자녀들과 아비들, 청년들, 아이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신앙의 성장 순서를 보여줍니다. 먼저 자녀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게 됩니다. 새생명을 얻습니다. 둘째로 아이들은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점점 성장합니다. 다음은 청년들은 악한 자를 이겼습니다. 요한은 반복하여 청년들이 말씀이 그 안에 거하시며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청년기가 되면 우리는 사단과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됩니다. 청년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십니다. 청년들은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하여 사단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미움을 싸워서 이기고 사랑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성숙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들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신앙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훈련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더욱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야합니다. 특별히 청년된 우리들이 믿음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합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힘입어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면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15~16절을 보십시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세상을 불쌍히 여겨야지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사랑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정욕은 무엇입니까? 육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온갖 탐욕스러운 욕망들, 즉 안일욕, 식욕, 물질에 대한 탐욕, 수면욕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나치면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소망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서 비롯되는 것으로 몰래 음란물을 본다든가 쇼핑중독이 되어 눈으로 보이는 것은 다 사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은 세상의 생활에 대한 집착, 즉, 명예와 학벌, 재물에 대한 자랑을 말합니다. (김목자)제가 회사 다닐 때 쇼핑 중독인 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넷, tv홈쇼핑을 비롯해 주일에는 시간 날 때마다 서울에 가서 쇼핑을 하고 왔습니다. 특히 신발에 많은 집착을 해서 자꾸만 사다보니 탈의실 신발장을 비롯해 집안에 있는 신발장까지 가득가득 신발이 찼습니다. 스스로 안 사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보면 사고 싶어서 참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절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 예수님은 함께 하시지 않고 다시 옛날과 같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영원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금방 사라질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첫 자리를 하나님 지정석으로 두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 드려야합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사랑해야합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의 빛이 비치었습니다)

요절 8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참빛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마음 중심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 모임이 사랑 안에서 더욱 강성하여 질 것을 믿습니다. (김목자)저는 2년간 대학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들어간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 많은 저에게 좋은 동생들과 왕언니들이 먼저 다가와 주어 대학 생활 하는 내내 외롭지 않고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등록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학 다니는 내내 장학금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부모님께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미쳐있다고 생각하셨는데 할 일은 하면서 다녀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라고 하시며 교회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때마다 해야 하는 실습도 하나님께서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셔서 원장님들의 인정을 받으며 마칠 수 있었고 이번에 취업도 실습 나갔던 곳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과제와 사단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은 항상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의 주관자요,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도, 우리 동역자님들께도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이 은혜와 사랑을 항상 기억하고 저도 먼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동역자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고 뜨겁게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사랑을 잘 실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2장 강해 일부 사랑의 새 계명
요한일서 2장 1절~요한일서 2장 17
요한일서 2장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한일서 2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요한일서 2장 강해 이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요한일서 2장 18-요한일서 2장 29
요절 요한일서 2장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안다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야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을 가르치다가 다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도록 돕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말세에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말세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때부터 재림할 때까지를 말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적, 원수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많은 표적과 이적을 행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거룩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 그리스도인 것처럼 위장하지만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속이고 죽이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에 속하면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과 어떻게 다릅니까?

(적그리스도는 공교회를 부인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말씀에서와 같이 적그리스도는 믿는 자들과 함께 속하지 못하고 교회 공동체를 떠나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파괴시키려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공교회를 부정합니다. 이단의 특징은 공교회의 공동체를 떠나고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만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들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특히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을 타켓으로 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이들은 영혼을 잡아 먹는 늑대와 같은 자들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합니다)

20-2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합니다. 그리스도로 시인한 자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진리되신 예수님을 알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십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영은 악령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사단의 노예가 되어 죄를 지어도 죄를 죄로 알지 못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교묘하게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숨깁니다.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단은 자신을 감추려고 여러 가지 이름을 갖습니다. 신천*는 거짓말 신학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십니다. 진리를 아는 우리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하고 자신이 온전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진정한 죄사함과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단의 자식이 되어 평생 종노릇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단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이 없습니다. 이들의 끝은 결국 사망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거하게 해야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후 성령님이 지속적으로 내 안에 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처음부터 들은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예수님이 부부처럼 일체가 됩니다. 깊은 사랑의 관계셩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 생명은 곧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여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사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흠없고 깨끗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화목재물이 되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좋은 성경 선생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실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기름부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성령을 기름부어주시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담대함을 얻고 부끄럽지 않게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삶에서 우리의 그리스도로 고백해야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날마다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성령을 받고 서로 사랑하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일서 2장 강해 이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요한일서 2장 18-요한일서 2장
요절 요한일서 2장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한일서 2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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