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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일서 1장 강해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1-30 00:00:00
조회수 : 3,99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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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강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
요한일서 1장 1-요한일서 1장 10절
요절말씀 1장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이라”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귐이 있습니다. 축구와 함께 한 사귐은 축구 동호회라고 합니다. 낚시와 함께 한 사귐은 낚시 동호회입니다. 몫돈을 만들고자 하는 사귐은 계모임입니다.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한 사귐은 동문회가 있습니다. 같은 학년끼지 한 모임은 동창회가 있습니다. 직장인들끼리의 사귐도 있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사귐은 향우회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1a절을 보십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태초는 영원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생명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란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의지하기 위해 허구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가졌지만 죽습니다. 병들어 죽을 수도 있고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장정이라도 나아기 들면 노쇠하고 다 죽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생명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불완전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썩어지지 않고 약하지 않는 영원히 살아계시는 생명입니다. 완전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에는 완전한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우리의 마음 속에 오신 성령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일하시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말씀으로 일하시는 생명입니다. 동물도 생명이 있으나 인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은 희로애락을 가진 인격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때론 기뻐서 춤을 추기도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지 않자 이들로 인하여 우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자 성령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한손마른 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고소하자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픔과 피곤함을 느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예수님이 인격적인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사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컵이나 책상과는 사귈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완견과 사귈 수 있으나 우리의 사귐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애완견은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격을 가진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와 인격적인 사귐을 갖는 분이십니다. 태초에 계신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우리가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

1b를 보십십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를 갖고 살면서 삶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체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의 오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음성을 청각으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사도요한은 공동생활하며 예수님을 촉각으로 만져보기도 하였습니다. 후각으로 냄새도 맡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육신을 갖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육체를 갖고 오셨습니다.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육체를 가진 우리의 몸에 성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의 육체에 들어오신 에수님을 삶 속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를 반대함)

2절을 보십시오.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예수님은 태초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제자들에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바 되었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갈릴리 땅에 나타나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자고 함께 목욕을 갔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본 그 예수님을 성도들에게 증거하여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영지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1~2세기 헬레니즘 시대 로마에는 영지주의자(그노시스학파)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령한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육체를 천시하였습니다. 이들은 육체와 영혼을 나누는 이원론을 주장하여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할 때 우리 신앙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면 우리의 신앙이 관념적이고 이상적으로 되어 말씀과 생활의 분리된 신앙생활을 합니다. 영과 육체를 이원적으로 대립시기키 때문에 육적으로 아주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아니면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세속을 등지고 산속에 들어갑니다. 예를 들자면 수도원 운동처럼 속세를 떠나서 산속에서 살기 쉽습니다. 아니면 쾌락주의에 빠져서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세리, 창기,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시고 복음을 전하여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구원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말하지만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심)

둘째로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인간의 고통을 똑같이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에 인도되어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40일 동안 굶주리며 인간의 육체가 가진 고통을 이해하셨습니다. 끊임없는 사단의 시험을 받으시며 사단의 유혹이 주는 괴로움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때로는 질병에 걸려서 질병이 주는 고통을 아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는 심히 놀라고 슬퍼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고통을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가진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간염이나 우울증으로 고통하고 있을 때, 부족한 가정환경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을 때, 여러 번의 실패로 인해 일어설 힘이 없을 때도 예수님은 우리들을 다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마음으로 이해하실 뿐 아니라 그 몸으로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모든 물과 피를 다 흘려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죄문제를 해결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사귐을 가져야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도요한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 성도들 간에 예수님을 통하여 사귐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사귐을 가졌으면 성도들과 예수님 안에서 사귐을 가져야합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를 좋아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껴 호감을 갖고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잘 알지 못해도 예수님 안에서 동질감을 느껴 호감을 갖고 사귐을 갖습니다. 믿는 자들의 사귐은 예수님이 함께한 사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육체로 서로 사귈 수 있습니다.

(사귐의 목적은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둘째, 기쁨이 충만케 하려함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고독하고 슬퍼집니다. 요즘에 인터넷의 발달과 핸드폰의 발달로 가상 세계에서 서로를 만납니다. 인간은 직접적인 만남보다 간접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서로 간에 오프라인에서 사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사귐이 끊어지면서 사람들은 고독하고 소외감을 느낍니다. 우울증 환자가 많아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귈 때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합니까?

(예수님과 교제해야합니다)

첫째, 먼저 나 자신이 예수님과 교제를 나눠야합니다.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오십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목자 소감입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저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시어 사망권세를 박살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저(이목자)는 고등학교 때 지은 정욕 죄의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저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와 생명을 건네 줄 만큼의 끈끈한 사랑의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단은 항상 우리의 생명을 빼앗고자 예수님과 교제를 끊으려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또 연약하기 때문에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을 덧입어야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눠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성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 진실 되게 나의 죄 문제를 들고 나아가고 말씀을 사랑하며 기도하여 성령을 구하는 삶을 통해 예수님과 끝까지 교제를 나눌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누어야합니다)

둘째.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동역자 없이 홀로 믿음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에서 목자도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예배드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다음은 이 목자 소감입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상명대에 홀로 있었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너무나 외로워서 학생회가 풍성한 단국대UBF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단국대에 놀러갈 때마다 많은 동역자들끼리 서로 교제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몹시 부러워서 단국대 서양화과로 편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상명대에도 동역자들이 생겼을 때 얼마나 힘이 되습니다. 또 작은 천안모임에서만 있다가 전국학생수련회에 참석해서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 그들을 통해 살아계셔서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됐을 때 대단한 힘을 느꼈습니다. 여러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 하나가 제 믿음을 견고케 했습니다. 개인 신앙에 있어서 동역자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이를 깨닫고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 갖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허물을 감싸주고, 또 웃자며 하는 말해도 상대방의 인격의 상처가 되는 말은 자제해야합니다. 동역자를 실족케하는 불신의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서로의 믿음에 본이 되어 영향력을 끼치지 위해서 먼저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고 승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동역자를 얻고 좋은 관계성을 맺을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 믿음의 중심을 견고히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더 많은 동역자를 얻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려면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귐이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어둠이나 사망권세가 조금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도 두려움도 불안도 실패의식도 없습니다. 빛의 속성은 어둠을 물리치고, 생명이 자라게 하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듭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의 내면에 어둠이 물러갑니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오로지 빛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사귀려면 우리의 내면에 죄의 어둠을 드러내고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도 빛가운데 행해야합니다)

6, 7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귀기 위해서는 어둠 가운데 거해서는 안 됩니다. 죄 가운데 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거하면 우리는 진리를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거하는 자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어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실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불신과 교만과 탐욕과 음란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며 그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성령 안에서 서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해야합니다.)

8-10절까지를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첫째 빛 가운데 사는 것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죄란 없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날 때부터 모두 다 죄악된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안 그런 척 해 보여도 음란하고 악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고백하면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게 됩니다. 죄는 빛 앞에 공개해야 없어집니다. 다윗이 죄를 숨길 때는 여름 가물에 마른 싹과 같이 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였을 때 그의 내면에 빛이 들어오고 진정 행복해졌습니다.

(우리는 진실해야합니다.)

둘째,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진실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도 죄없다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속이고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과 위선은 사단이 심는 것입니다. 그 예를 들자면 바리새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처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가장 경멸하셨습니다. 가롯 유다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12제자였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척하며하면서도 돈을 더 사랑하는 위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 그의 삶은 회개하지 못하고 비참한 자살로 끝이 났습니다. 거짓과 위선은 사단이 심는 것으로 우리를 고립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조금 부족하고 책망 받을 것이 있더라도 예수님 앞에서 진실해야합니다. 우리가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성도의 사귐)

우리의 사귐이 세상의 사귐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사귐도 서로에게 슬플 때 기쁨을 주고, 힘을 주지만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의 사귐은 예수님과 함께한 사귐으로서 예수님을 소유하여 구원을 얻는 사귐입니다.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사귐입니다. 진실한 사귐입니다. 이목자 소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고등학교 3학년 때 이곳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을 했기 때문에 대인기피증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인간적인 결함으로 인해 저의 신앙은 율법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핑계로 비겁하게 세상 사람들을 피하고 세상 모임을 피해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3학년 2학기 때 우울증으로 저를 심판하셔서 저의 신앙의 부족한 점을 발견케 해주셨습니다. 그 후에 저는 적극적으로 세상 친구들과 관계성을 맺고 세상모임에도 참석하며 내가 가진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4학년 1학기 말쯤 되었을 때, 이번엔 세상으로 치우쳐져서 세상을 사랑하고자하는 마음이 강해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역자님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저는 다시 믿음의 중심을 잡고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복음의 확신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2006년 새 학기 제가 도전하고 싶은 것은 관계성과 영향력입니다. 제게 학생들과 관계성을 맺고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예수님을 전할 수 없고 세상정욕에 질질 끌려갈 뿐입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저는 말씀을 경외해야합니다. 복음에 확신을 갖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 사귐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예수님과 교제를 나눠야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여 죄사함 받고, 예수님을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기도하며 영생의 말씀으로 계시는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그 분과 교제를 가져야합니다. 다음으로 동역자와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동역자와 자주 만나야 합니다. 함께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해야합니다. 다른 동역자들에게 관심 갖고 이해하고 허물을 감당하고 사랑하며 관계성을 맺어야합니다.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어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한 사귐을 갖으며 믿음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 영향력 있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일서 1장 강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
요한일서 1장 1-요한일서 1장 10절
요절말씀 1장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귐이라” 요한일서 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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