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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마가복음 15장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3-07-12 00:00:00
조회수 : 911
마가복음 15장 요절 34절
제목: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들은 사람들과 늘 관계성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가족, 친척, 친구, 친목 모임, 학교, 직장, 그리고 교회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타인과의 소통은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존재 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성이 깨어지거나 만족함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 마가복음 15장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넘겨지시고 못 박히시어 홀로 쓸쓸히 죽임당하는 십자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부터 죽으실 때까지 얼마나 심한 핍박과 고통과 외로움 속에 계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임종하시기 전 외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믿었던 제자들, 종교지도자는 물론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까지 철저히 버림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느낀 외로움은 세상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내가 받아야 할 외로움을 대신 지십니다.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고, 영원하신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을 내 안에 모셔드릴 때,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제 1장. 예수님은 대제사장에 의해 십자가에 넘겨지셨습니다.
1-2절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예수님은 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맹인을 눈뜨게 하시고, 그리고 바다 위를 걸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8절 말씀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이 최우선으로 걱정하는 것은 로마가 유대 민족을 빼앗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에게 자신들의 지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들은 모두 종교 지도자들임에도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계명에 일,이,삼 계명을 어겼다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로마 총독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심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시인하면 ‘유대인의 왕’ 즉 반역자라는 죄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형 받을 것을 아시면서도 이 질문에 시인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왕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반역자입니다. 왜냐하면 헤롯이 그들의 왕이었기 때문에 헤롯왕 외에 다른 이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반역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질문에 부인하실 수 없으셨고 시인하셨습니다. 결국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이 두 가지인 것을 이용하여 교묘한 술책으로 예수님에게 죄를 물었습니다.

3절-5절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외의 고발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변명도 하지 않으시는 수동적인 태도로 재판에 임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6절-10절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우리나라는 8.15 광복 특사로 이 날을 기념하여 죄수를 특별히 사면 시켜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에게도 유월절의 관례에 따라 명절 특사가 있었습니다. 명절 특사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과는 다르게 죄가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을 알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였습니다. 본래 백성의 지도자라면 메시야를 기다리고, 오신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얻은 인기와 인정 그리고 명예를 사랑했습니다.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단연 백성들에게서 얻은 그들의 명예와 인기를 빼앗을 위험인물 1순위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인기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처치하기 위해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제 2장.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외면 당하셨습니다.
11절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떡을 얻어먹고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는 표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명절 특사로 어느 죄인을 풀어줄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신성모독으로 고발된 예수님과 악명 높은 살인자이자 혁명가인 바라바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대역 죄인으로 여기고 무리들을 충동시켰고 몇 명이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자 다른 무리 모두가 덩달아 바라바 바라바를 외쳤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이고 악인지 모른 채 다수의 결정에 따라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게 됩니다.

12절-14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는 예수가 로마에 정치적 위협이 된다고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를 석방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할 건지 재차 물어보았고,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놓아주느니 차라리 민란과 살인을 행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진짜 위협이 되는 정치 혁명가인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부탁했을 때 빌라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민란과 살인을 행한 중죄인 바라바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제 3장.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15절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사도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는 이렇게 신앙고백을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총독이요 재판관입니다. 그는 법을 따라서 바르게 재판해야했습니다. 처음에는 비록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석방시켜주려고 마음을 먹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결국 예수님에게 십자가 처형을 내립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처형하는 것을 원하자 그들을 만족시키고 싶었습니다. 무리에게 만족을 주어 인기를 얻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유능한 지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리들을 따르지 않으면 총독에서 쫓겨날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기를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채찍질합니다. 예수님은 뼛조각과 쇠붙이가 묻은 가죽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한 번 채찍에 맞을 때마다 몸의 살갗이 떨어지고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그렇게 39대를 맞으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을 것을 아시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제 4장.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16-20절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은 공회에서 조롱 받으시고 빌라도 관정에서 군인들에게 다시 조롱을 받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웁니다. 이유는 죄목이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힌 것이고 면류관 대신에 가시관을 엮어 씌운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에 예수가 어떻게 유대인이 왕이냐는 듯 비웃으며 경례합니다. 그리고 갈대로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머리를 칩니다. 칠 때마다 그 가시로 인해 머리에서 피가 나십니다. 고통 하십니다. 우리가 작은 가시 하나 찔려도 아파하는데,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독하였고, 예수님은 철저히 멸시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멸시를 받으셨고, 예수님이 멸시 받음으로 우리는 존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21-22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예수님은 지난 밤에 종교지도자들에게 밤새 심문을 받고, 새벽에는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채찍질 맞으므로 온 몸은 피투성이고 걸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키의 1.5배는 되는데 몸에 힘이 다 빠졌으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기엔 버거우셨습니다. 그 때 마침 시골에서 올라온 시몬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아니었고, 은혜를 입은 자도 아니었으나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초라한 모습으로 앞에 있습니다. 그 때 마침 로마 군병 하나가 구레네 시몬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대신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시몬은 도망가고도 싶었고 예수님을 부인하며 못한다고 떼를 쓰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인들이 무서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언덕을 오릅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레네 시몬이 본의 아니게 진 십자가였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23-24절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사형수들에게 신 포도주 즉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몰약은 마취제의 일종으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진통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죄인일지라도 인간이 감당하기에 십자가 처형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시고 온전히 받아야 할 모든 분량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온 인류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처절하게 고통을 겪으며 숭고하게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제 5장.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25절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시간이 6시간 차이 납니다. 제 삼시면 우리나라 시간으로 보면 오전 9시입니다. 군병들은 십자가를 뉘우고 그 곳에 예수님의 발목과 팔목에 못을 박습니다. 그들을 예수님을 못 박은 십자가를 높이 세웠습니다. 못이 박힌 뼈가 으스러지고 살은 찢겨지고 9시 뙤약볕 속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어 가십니다. 시편 22편 14-16절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시편기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물과 같이 힘없이 밑으로 쏟아져 내리셨습니다. 그 뼈는 대못에 의해 어그러졌고, 예수님의 마음은 밀랍 같이 녹아버렸습니다. 힘이 말라 그 몸은 질그릇 조각 같이 부서졌습니다. 또 침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을 지경이었습니다. 개와 같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대못을 박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어가셨습니다.

29-32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 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서기관들도 대제사장들도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죄수들까지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을 합니다. 진짜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라면 지금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충분히 구원하여 십자가에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려와서 로마 군인들과 대제사장 서기관 무리들 모두를 징벌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죄로 인하여 모두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온 인류가 죽음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심판하는 대신에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대신 책임져주셨습니다. 머리엔 가시가 박히고 채찍에 맞아 살갗이 떨어져나갔습니다. 손목과 발목에는 15cm나 되는 대못이 박히고 뼈는 어그러지고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축 처진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참으십니다. 그리고 온전히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참으시며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심에도 내려오지 않는 것은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이 사랑으로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었고 십자가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제 6장.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33-34절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많은 제자들에게도 그리고 대제사장과 무리들, 빌라도, 로마 군인들에게도 마침내 하나님에게까지 버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모든 이에게 버림받으신 이유는 성령으로 오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제육시에 온 땅에 온 하늘에 우리의 죄로 인한 어두움이 덮습니다. 제 육시는 오후 12시입니다. 12시면 해가 가장 높이 떠있는 때로 가장 햇빛이 강렬하고 밝은 시간입니다. 세시까지 깜깜한 밤처럼 그 어두움은 계속됩니다. 인류의 죄로 인해 받을 고통과 어두움을 온 몸으로 받으십니다. 어두움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도 예수님의 고통을 눈감고, 귀 닫고, 외면하신 것을 말합니다. 대제사장, 빌라도, 제자들, 많은 무리들 뿐 아니라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마저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불신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정말 세상에 홀로 남겨지십니다. 몸이 찢겨지는 고통을 겪고 홀로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극에 달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소리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어둠가운데 있는 죄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기에 우리는 죄 값을 달게 받아야했습니다. 그러나 진노의 술잔은 예수님이 대신 마십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어두움의 죄를 담당시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당하고 버림받으시고 심판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버림받음을 통해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대신 버림받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조롱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신 예수님이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37절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성전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 곳은 거룩히 구별된 곳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성소는 오직 제사장만 출입할 수 있었던 반면, 지성소는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에 한해 1년에 단 하룻 만의 출입만 허용되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지성소는 성소 안에 있으며 둘 사이는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인간은 대제사장을 거치지 않고서도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성전에서 수송아지이나 양, 염소 같은 희생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그 희생제물이 죽임을 당해야 우리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희생 제물로 우리 대신 죽으셔서 인간은 그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 때나 어디에서나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39절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예수님이 죽으심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대신 십자가를 질 수도 고통을 참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을 죽기까지 사랑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42-47절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의로운 공회원으로 유대인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상시 은밀하게 예수님을 믿었지만 십자가를 본 후에 담대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대리인인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자신의 무덤에 모시려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칫 종교지도자들과 빌라도가 한 일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비쳐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마음에 두거나 걱정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담대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자도 십자가를 영접하면 담대한 자로 변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저는 지금 누가 보아도 잘 외로움을 타지 않고, 사람에게 잘 의지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젊은 나이이지만 남자친구 굳이 없어도 상관이 없고 친구 좀 만나지 않아도 괜찮고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지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도 몰랐지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왜 외롭지 않게 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7살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맞벌이시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유치원이 끝나면 저녁이 올 때까지 늘 혼자 집을 지켰습니다. 집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엄마아빠가 오시기만 기다렸고, 오시기 전에는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사랑 받기 위해 항상 집을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외로움과 혼자라는 것이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옆에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불쑥 불쑥 혼자라는 외로움과 극도의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엄마 아빠를 안는다거나 스킨쉽을 해야 그나마 안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워낙 못되고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욕을 아주 잘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여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마저 배신을 당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괜찮은데, 친구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미술 시간과 점심 먹는 시간이 저에게는 공포였습니다. 미술 시간에는 마음에 맞는 아이들끼리 테이블에 앉는데 아무도 저랑은 앉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 아무도 저랑 같이 밥을 먹어주지 않았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에 아버지가 손이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저는 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너무 외로웠습니다. 부모님께서 들으시면 마음 아파하실까봐 부모님에게 조차 말 못할 고민이었습니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과 의지할 데가 없어 어린 마음에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매일 밤 저는 그런 공포와 불안함과 쓸쓸함 속에 혼자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 따돌림은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저의 성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상처 받지 않기 위하여 착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이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속에서는 앙심을 품고 있어도 겉으로는 착하게 대합니다. 착하게 말하려다보니 말도 덩달아서 어눌해졌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외롭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외로운 존재입니다. 나는 내가 아무리 외롭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결국 외로운 존재입니다. 내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도덕적으로 살아도 나는 부끄러운 죄인일 뿐입니다.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이냐면 저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를 배신했습니다. 그 여자애도 우리 반이었고 사귀던 남자애도 우리 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둘이 사귀고 있었음에도 그 남자애랑 만났습니다.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일시적인 사랑일 뿐이었지 영원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빈자리를 채워보려고 또 남자친구를 만나보았지만 깊은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남에게 상처주고 배신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내 삶의 깊은 어두움과 외로움을 담당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나의 빈 마음을 채우려고 했던 것은 나의 상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배신과 조롱과 아픔과 외로움을 모두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해주셨습니다. 내가 조롱 받고 멸시받아야 할 것을 그 분이 대신 받으시고, 나를 높여주셨습니다. 내가 받아야할 외로움의 고통을 그 분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죽어 마땅한 이 죄인을 그 분이 죽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날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자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실 때에 평안을 주시고 사랑과 기쁨을 충만케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님으로 내 안에 오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영원토록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에게 의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정죄하시지 않으시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 수치스런 죄를 이미 예수님이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아직도 그 나의 본능적인 죄성이 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찜질방을 간다던가 수학여행을 가거나 수련회, 교회 모임 등 단체로 낯선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모일 때 잘 놀다가도 갑자기 불현듯 군중 속에 고독 같은 낯설음과 불편함과 불안함이 나를 찍어 누릅니다. 그럴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며 나의 이러한 고통과 같은 고통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년에 한 번 그럴까 말까 할 정도로 많이 나아졌지만 이 십자가 예수님을 믿을 때 나의 고통이 완전히 깨끗하게 치료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일생동안 처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의 단절을 경험한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가장 무서운 것은 내 앞의 상황이 주는 절망감이나 사람의 배신이나 단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의 단절이 더욱 두렵고 진정한 절망과 외로움입니다. 나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를 깨닫고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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