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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주제 일강 메시지 솟아나는 샘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7-04 00:00:00
조회수 : 1,266
요한복음 4장 1부 메시지

말씀 요한복음 4장 1-14절

요절 14절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여름은 목마름의 계절입니다. 웰치스 포도맛, 마운틴듀, 핫식스같은 음료를 마셔도 목이 마릅니다. 인간은 물이 몸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는 잠시 먹는 한 바가지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만족을 주는 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나 하나만 먹을 만큼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내 가족과 이웃과 천안,안성,아산,청주캠퍼스를 먹을 만큼의 샘물이 솟아납니다. 우리 모두 이 샘물을 소유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물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일장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셨습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례를 요한 보다 많이 준다는 말이 바리새인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갈등을 피하여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이 갈라진 후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그들은 망한 후에 더 우상을 숭배하고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을 할 때 “이 사마리아 놈아” “이 귀신들린 자야”라고 하였습니다.(요8:48)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 땅을 거쳐서 통행해야 합니다. 사마리아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마리아로 다니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서 먼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마치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에 갈 때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인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셨습니다.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는 영어로 ‘he had to go''''로써 통행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였을까요?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목말라 하는 자들에게도 영생수를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슬렘들과 북한 사람들에게도 영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더 나가서 예수님은 이번 여름수양회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제이장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우물곁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셨습니다. 당시는 제육시로 지금의 낮 열두십니다. 이때는 중동 지방에서 시에스타라고 합니다. 관공서도 문을 닫고 상점도 문을 닫고 군인들도 전쟁중에 휴식을 취하고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시에스타 시간을 피하여 아침 저녁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물을 길러나옵니다. 라헬이 물을 길러 나왔다가 야곱을 만난 것도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이들은 나와서 동네의 중요한 정보도 얻고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그거 들었어? 천안UBF에 담을 헐어서 단대로 가는 길이 뚫렸대”. 처럼 말입니다. ‘지도 밖으로 여행하라’는 한비야씨의 책에 의하면 이곳의 여름 온도는 50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이런 찌는듯한 더위로 예수님은 목이 타셨습니다. 배도 고프셨습니다. 매우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목마른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적인 피곤함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친히 목마르고 피곤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영혼에게 영생수를 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갈증이 나셨습니까?

7절을 보십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왔습니다. 여자는 당시 사마리아 여자들에게서 소외된 여자였습니다. 당시는 엄한 율법사회였습니다. 부정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는 사회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이런 율법이 많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이런 의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한 남자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이 여인을 볼 때 벌레 보듯이 징그럽게 여겼습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무시 받을수록 더욱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혼자서 생활하였습니다. 여인은 고독하고 소외되었습니다.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좀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자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타레박도 없는 위치로 낮아졌습니다. 여인이 타레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존중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는 순간에 다섯남편을 두었던 과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의 과거를 아시고 내가 다 알아, 회개해. 라고 했다면 여인은 마음 문을 닫고 “너나 잘 하세요.” 하고 도망을 갔을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비록 죄많은 여인이라도 하나님의 황공주와 같이 존중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존중히 여기시면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들 특히 결혼하신 분은 다른 사람을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먹이고자하는 마음을 자극하여 말을 거셨습니다. 여인은 지금 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관심사인 물을 통해서 여인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여인의 내면에 상처를 치료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을 달라고 하심으로 우리와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대화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수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제삼장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관심갖기를 원하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여인의 반응은 쌀쌀맞았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유대인 남자로만 보았습니다. 서로 상종치 못할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역사적인 상처가 묻어나 있습니다. 그 여자가 남자에게 받았던 상처가 반발심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쌀쌀한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여자의 말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왜냐면 여자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여자의 태도가 달라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선물 받기를 좋아합니다. 여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가장 좋은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독자입니다. 죄인들에게 죄문제를 해결해주실수 있는 꼭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건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복주시고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많은 생명의 열매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배우자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장래와 직장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안다면 예수님을 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에 좋다면 뭐든지 찾고 구합니다.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텐트를 치고 며칠 전부터 기다립니다. 어느 가게에서 산 로또 복권이 잘 당첨된다는 말만 들어도 그 가게로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자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좋은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소외시킵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편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방에도 불구하고 좋은 남자만 만나면 행복할 줄 생각하고 줄기차게 구했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피곤함과 상처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제 남자 헌팅하는 것을 중지하고 대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구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옵니다.

제사장 예수님은 솟아나는 샘물이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인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우물물를 계속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타레박도 없이 물을 주려한다고 핀잔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이 우물을 판 야곱을 비교하였습니다. 혹시 야곱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가 물었습니다. 여자는 야곱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한 여자를 라헬을 위해 14년을 봉사한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야곱과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야곱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자는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일곱 번째 남자로 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여자가 예수님께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는 잠시 만족이 있지만 다시 목마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물은 세상적인 것을 말합니다. 세상적인 이성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모든 것은 이 물에 속합니다. 겜이나 도박이나 육체적인 쾌락도 이 물에 속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 만족을 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김수현처럼 잘 생긴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 생겼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둘째로 삼성 이건희 회장같이 돈 많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돈은 있었지만 이해심과 사랑이 없었습니다. 셋째로 차인표같이 이해심 많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이해심은 있었지만 너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집에 형광등 하나 제대로 갈지 몰랐습니다. 넷째로 여자는 현실적으로 일 잘하고 섬겨주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어깨도 잘 주물러주고 일을 잘 했지만 나쁜 남자같은 카리스마가 없었습니다. 다섯째는 박력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춤바람 난 남자였습니다. 여자는 이제 다시 이혼하고 또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물은 다시 목이 마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의 갈한 영혼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혼의 만족이 있습니다. 영원한 만족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솟아 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 한 바가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샘물 자체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샘물은 계속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항상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샘물이 많이 솟아나서 자신과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다 먹게 할 수 있습니다.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솟아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샘물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먹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샘물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먹는 것을 순종하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이 좋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샘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합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구해야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왕으로 모셔야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하고 예수님의 샘물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오장.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여인에게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그 샘물을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신비로운 샘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인은 그런 물을 먹고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지긋지긋한 물 긷는 생활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그런 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물은 우물에서 나오는 샘물이 아닙니다. 성령의 샘물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성령의 샘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수를 구하는 여인에게 생뚱맞게 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였을까요? 남편과 함께 생수를 받아가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물을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갑자기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는 데는 엄청난 비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본질을 꿰뚫는 예수님의 영적 통찰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먹으려면 반드시 남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편을 불러오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 죄 문제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죄가 있으면 성령님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남자에게서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남편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여 죄를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여자가 하나님에게는 무관심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질투하여 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그래야 천대까지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기뻐하고 분노하며 슬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면 이를 회개해야합니다.

둘째 우리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면 마음에 그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으면 의지하는 그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이 상처가 있으면 성령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여러 남편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과만 이혼해도 상처를 받는데 다섯 번 이혼하였으니 얼마나 상처가 크겠습니까? 또한 이런 여인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방과 정죄는 더욱 상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상처를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아픈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가 내어놓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놓은 것이 있습니까?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을 충만히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사마리아 여자는 지금까지 남자에게 관심을 갖고 남자를 구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구할수록 더욱 갈증이 났습니다. 남자는 마치 목마를 때 마시는 소금물과 같았습니다. 남자를 구하였을 때 그녀의 마음과 몸이 상처투성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하면 그에게 영생의 샘물이 솟아납니다. 마음의 중심에 남자를 두었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하면 그녀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저도 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세상적인 것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내 남편은 게임과 담배, 술, 정욕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째 남편은 게임으로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게임을 해 왔습니다. 컴보이라는 게임기로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도 게임을 많이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게임기를 키고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때는 컴퓨터를 사주셔서 PC게임을 하였습니다. 또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학교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매일 밤새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제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상처만 주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나빠졌고 학교에서도 거의 포기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도 자책을 하게 되어 미래에 대한 꿈이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중에 은연히 자살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담배와 술 정욕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피워온 담배가 어느새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술과 정욕의 욕심도 버리지 못하고 이런 것들로 계속하여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바라볼 때 한심한 생각과 더불어 내 자신도 나를 어떻게 통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중에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믿음 생활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믿고 순종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풍성히 베풀어 주셨습니다. 대학 생활 중에서도 학고를 받고 학점이 0점대이던 저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4학년 제때 졸업하게 하여 주시고 4학년때는 장학금도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천안에서 직장을 얻게 하여 주시면 천안에 남아 목자로 살겠다고 서원기도를 하였을 때 천안에 직장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밀린 십일조를 모두 드렸을 때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마다 마음에 참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맛보지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밤에 학교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였고 일하시는 부모님을 잡고 기도를 하고 말씀공부를 같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대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하였습니다. 좋은 선물되신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안에서 넘치는 샘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또 게임에 대한 욕심 생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게 되고 제 안에 샘물되신 예수님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게임이 주는 쾌락을 따라 살 때가 많았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만족이 있는 것 같지만 다시 허무함과 불안함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속적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상처가 치료되면 다시 게임에 관심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말씀 보는 것을 소홀히 하고 오히려 게임에 더욱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런 게임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럴 때 내 마음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넘쳐 흐를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오신 모든 분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하는 가운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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