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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주제 3강 메시지 죄인을 부르러오신 예수님

작성자 : 강이삭
작성일 : 2012-07-04 00:00:00
조회수 : 1,442
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강의 제3강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말씀 : 마가복음 2:13~17
요절 :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원인 레위를 부르는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레위를 부르셔서 그를 성마태로 변화시켰습니다.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죄인이고 우리를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하게 하니님 나라를 누리는 삶이 어떤 삶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제1장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며 말씀이 은혜롭다는 소문이 쫙퍼졌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후 예수님은 바닷가를 따라서 가다가 가버나움을 지나갔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중심이고 로마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심대 세관 중에 하나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세관을 지나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반항심이 커서 징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여 세금을 로마에 바쳐야 했습니다. 세관원은 자신의 민족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어 정한 것은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졌습니다. 세관원은 이스라엘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였습니다. 민족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레위 또한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레위는 어려서 돈에 한이 맺혔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빚쟁이들이 몰려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어려서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두져서 다른 사람이 먹다 버린 치킨을 먹었습니다. 그는 세관원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인정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민족보다 돈을, 하나님보다 돈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착취하여 자신의 부를 쌓았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알아준다고 하더라도 돈은 자신을 알아준다고 여겼습니다.(돈) 그래서 레위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돈을 모았습니다. 집도 사고 차도 샀습니다. 주말에는 레져생활도 즐겼습니다. 자녀들은 비싼 돈을 들여 로마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아내에게는 명품 옷을 사주고 비싸고 맛있는 아웃백이나 빕스에 데리고 가서 외식도 시켜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만족감도 들었지만 돈이란 쌓이고 쌓여도 욕심이 끝이 없었습니다. 1억이면 만족할줄 알았는데 1억이 되니 2억을 모으고 싶고 2억이되니 3억이 그의 인생목표가 되어갔습니다. 돈은 세리에게 행복을 주기보다 삶을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매국노라 천대받으며 레위의 마음의 상처는 또한 커져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이 열병과 귀신들린 자들의 병을 고치시며 나병환자도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더러운 병으로 구분되어 사회생활도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사람을 병을 고치심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이 자신과 같은 죄인일지라도 은혜를 베푸시고 행복을 주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 앞을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고 세관에 앉아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계셨으며 많은 사람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관앞을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레위의 아픔과 고통을 아셨습니다. 레위을 보시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때 레위는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마음에 한점의 망설임이 없이 일어나 따랐습니다. 레위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바로 예수님만이 자신의 행복이 됨을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어떤 사람인줄 아십니까? 바로 나뿐인 사람입니다. 나의 “돈” 나의 “가족” 나의 “명예”를 위해서만 사는 사람입니다. 세리는 바로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의 표본이었습니다. 이기적인 것이란 자신만을 사랑함을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할까요? 이기적인 사람은 어떠합니까? 이익이 되기만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합니다. 또한 자신이 손해가 되는 일을 안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것보다 더 큰 죄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이웃보다 돈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다 아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기를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행복을 얻었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영광과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자 레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레위가 위대한 점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말씀하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에 행복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탐욕이 있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오면서도 이 올가미를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욕심은 욕심을 낳으며 만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된 우리는 이 죄문제에 있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먼저 이기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제2장 레위는 잔치를 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예수님이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하신 말씀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살던 데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면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가 될 소망을 갖고 부르셨습니다. 성마태가 되어 주옥 같은 산상수훈이 담긴 마태복음을 쓸 소망을 갖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레위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현재의 직위와 돈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부양하는 가족에게도 고통을 주어야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리석은 선택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세관원이라는 직분을 로마로부터 쉽게 얻을 수 있는 직분도 아닐 뿐터라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위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닌 “돈”과 “명예”일 때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랐을 때 온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기적이던 세리가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화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세리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웃백이나 빕스보다 더 푸짐하게 차렸습니다. 안서동의 뜰안채보다 푸짐한 채소도 나왔습니다. 이 잔치는 천국 잔치와 같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세리는 회개를 통하여 큰 기쁨이 마음에 임하였고 행복했습니다. 세리는 회개를 통해 자신이 상처에서 자유함을 얻고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행복한 세리는 행복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하며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인은 창녀들입니다. 세리는 민족에게는 “왕따”였으므로 민족으로부터 외면받던 세리나 창녀들 알고 지냈습니다. 레위가 세리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창녀촌에 가서 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는 이 기쁨을 세리친구들이나 창녀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세리는 동병상련인 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민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아 고통받았던 것과 같이 이들 또한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레위는 이들도 예수님께 나와서 행복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세리로 인하여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께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레위의 집에서 잔치는 천국 잔치와 같았습니다. 변화된 우리도 이제는 나와 같은 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천국 잔치를 맛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3장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오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거룩하신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세리와 창녀 등 죄인들과 식사를 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며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항상 율법책을 펴 놓고 율법을 지키는 자는 선인이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악인이라 정죄합니다. 자신들은 율법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지키는 깨끗한 자라 여겼습니다. 시편에는 의인은 죄인들과 가까이 하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따라서 세리나 창녀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인과 함께 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더 중요한 법이 사랑과 자비의 법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창녀인 고멜조차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정죄와 판단을 합니다. 성경에서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인하여 누구나 죄인입니다. 아무리 깨끗하다고 한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의 크기를 잰다고 하면 “도토리 키제기”에 불과합니다. 자비와 사랑을 잃고 다른 사람의 죄를 재고 판단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굉장히 교만한 자들입니다. “야 너 모했어 했어 했어”라하며 자신의 위신을 높이고 안하는 자를 바닥으로 내리려는 자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신을 죽이고 감사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합니다. 양들을 돕는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못했다고 해서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말씀을 보는 것을 귀하게 여겨주시지만 하나님께서 보는 것은 율법을 얼마나 지켰냐가 아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있는가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가입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이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사람일지라도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바라새인과 서기관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습니다. 교만은 우리의 마음과 영성을 해칩니다. 교만은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항상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한 자기만족만을 추구하기에 자기는 조금 기쁨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피곤합니다. 매일 자기 자랑질만 합니다. “나는 했어 했어 했어”“잘 났어” 너는 왜 이것을 못해!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참 피곤합니다. 하지만 겸손은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사랑과 기쁨을 허락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높이 세웁니다. 또한 사람에 대하여 배려할 줄 알며 자기보다도 남을 치켜 세워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의사는 병든자가 있을 때 필요합니다. 만약 이 세상에 병든 자가 없다면 의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훌륭한 의사일수록 중환자를 고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의인이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된 종이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며 우리를 살펴주시기만 하시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의사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십니다. 여기서 죄란 살인, 간음 육신적인 죄뿐만아닌 마음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정욕 등 모두를 말합니다.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미워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에 음욕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누구나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이러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가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우리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해야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고 순종해야합니다. 불평과 원 망대신에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죽이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9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고 장사도 잘되었지만 아버지의 병으로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3 수능을 앞두고 돌아가셨으며 이런 삶의 배경은 가족이란 울타리가 내게 가장 소중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삶의 목적은 오직 가족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보다 더 많이 마음 고생을 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든 벽이 있다고 할지라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대학시절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저는 종교도 어떤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자신만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어린시절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한 번 말씀공부를 하며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 시작한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죄인을 치유코자 하셨습니다. 저는 낫고 싶었습니다. 주변에서 자신감 있게 행동하며 자기를 포장하였지만 저는 항상 마음에 상처가 있으며 연약하고 연약한 겁쟁이였습니다. 현실이 어려우면 도피처를 찾아 꽁꽁 숨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삶의 방향이 돈과 가족이었던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심은 굉장히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학생시절 은혜의 강물은 믿음을 견고케 하였습니다. 4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갈 무렵 부족한 자이지만 스텝의 방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분대장을 두 번을 하고 기독교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포병업무를 마치고 군종병으로도 일도 하였지만 저는 리더쉽의 부재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이 어눌함을 더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말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말씀도 잘써야 한다는 자격지심이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도피처로 제대를 하면 직장을 잡고 빨리 가정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회사에 들어가고자 예약을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하더라도 사용하시는 긍휼의 주님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말이 어눌하고 말씀을 잘쓰는 재주가 없다하더라도 믿음만을 쓰심을 알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제대후 죄인을 인턴으로 삼아주셨고 아무것도 없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행복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차량사고와 치과치료로 동생에게 돈을 빌리며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왔습니다. 제가 돈 100만원조차도 갚을 길이 없어 고민하다가 아르바이트로 학원일을 시작했습니다. 월급을 타고 십일조를 하면 99만원 정도였지만 어머니께 용돈도 드릴 수 있었고 차량수리와 동생에게 빌린돈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몸이 아프셔서 일을 그만두셨는데 내가 장남으로써의 책임을 전혀 안함에 책임감을 느끼고 직장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일 년만에 저는 인턴을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천안에 남아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월급이 적더라도 학원을 다녔지만 사람의 욕망이란 끊임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만족했던 마음이 120만원에서 만족했던 마음이 이제는 200만원 이상을 받아도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가정을 이루려면 더 좋고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목적은 하나님보다도 돈과 나의 가족에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스텝의 방향성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돈”과 “가족”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 더 많은 돈을 벌고 어머니께 더 많은 용돈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효자라고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칠 때 위로가 되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현실이 어렵다 하더라도 행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정말 돈이 없어 빚쟁이가 되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가는게 은혜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독일로 선교사로 갈 길을 예비를 하셨지만 어머니를 두고 떠날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족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가야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인 온전히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목적을 두시고 이 땅에 부르셨습니다. 부족한 나일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면 사용하셔서 한 양을 먹이십니다. 예수님께 절대적인 새벽기도 생활과 양식을 먹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나의 욕심에 따른 삶은 기쁨도 행복도 없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선하신 삶은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 종이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으로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교회와 캠퍼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면 상황이나 나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조건적인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형제 자매님께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언제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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