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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미녀는 괴로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1-11 00:00:00
조회수 : 777
요한복음 3장 4부 문제
아들을 믿는 자
말씀 요한복음 3장31-36
요절 36절

제일장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 에 계시나니” 이 말씀은 위로부터 오시는 이와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같은 분이십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대조를 이루어서 땅에서 난 이가 나옵니다. 땅에서 난 이는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말합니다. 흙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멀리는 서양의 링컨이나 케네디 대통령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까이는 나의 할머니 할어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흙으로 돌아가고 나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왜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한 후에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입니다. 누구도 이 형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가 인생 무상을 노래했고 많은 철학자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연구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죽음의 시간을 연장시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우리가 만든 모든 문화도 이 죽음에 근거하여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이숙경 교수님이 뇌경색으로 단대 병원에 입원해서 병문안을 갔다 왔습니다. 그분은 성공하신 분이십니다. 여자로서 단국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회장으로 부자이십니다. 호숫가에 집을 짓고 많은 땅도 샀습니다. 아들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사 며느리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남편도 얼마 전에 뇌일혈로 중풍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부와 명예와 자녀가 질병으로 고통하는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신 이는 다릅니다. 하늘에서 오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질병을 앓으시고 또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에서 오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우리도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중국의 윈 형제의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비록 땅에서 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50일을 굶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담을 뛰어 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은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예수님께 부어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의 증거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인간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다. 저는 구약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어떻습니까?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첩을 얻어서 죄의 씨앗을 낳았습니다. 믿음없이 13년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남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는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믿음이 없는 에서에게 별미를 대접한다고 장자권을 물려 주고자하였습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우리가 배워서 알다시피 사깃꾼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서원 기도를 하고 30년만에 갚은 사람입니다. 그 열두 아들은 어떻습니까? 의붓어머니와 잠을 잔 사람 며느리와 잠을 잔사람, 살인자들 어머니를 죽게 하고 태어난 사람 첩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이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고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높은 지위에 오릅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하여 경건에 흐르는 연습을 하기도합니다. 많은 양들을 치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다만 믿음으로 살면서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물이 불어나면 돌이 안 보이는 것이지 돌이 없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기억해야 역설적으로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일생에 큰 업적을 이루신 분들이 죄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일을 하고 나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높은 명예를 얻은 분이 물질 문제 이성 문제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니면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면서 속으로 썩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선적이 되고 가식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죄인임을 알고 겸손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죄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같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인간을 초월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같은 고통을 체험하고 인간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고통을 똑같이 체험하셨습니다. 질병도 죽음도 가난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였습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님 외에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 이름은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예수, 그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 이름은 사랑의 이름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중풍병자가 낫고 문둥병자가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군대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고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름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오동춘 형제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캠퍼스 양들의 문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오프라 윈프리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8살 때 사촌 오빠에게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친구 친척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남자 친구와 사귀다가 마약에 중독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위대함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고 마음이 정화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성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도 자신의 연약함이나 허물을 고백하고 힘있게 살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살아서 영생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영원한 기쁨과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 살아갑니다. 죽은 후에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돈은 버는 것도 힘이 들지만 지키는 것도 쓰는 것도 힘이 듭니다. 돈은 적당히 살 만큼 있으면 됩니다. 명예도 우리가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명예는 우리의 사람을 구속합니다. 사람들의 기대 수준에 따라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자신의 분수만큼의 명예만 있으면 됩니다. 건강은 하나님의 일을 할 만큼 필요합니다. 너무 건강해서 죄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차라리 병들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텐데 너무 건강해서 온갖 사기치고 오입질하며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고 다른 사람을 섬길 만큼의 건강이 필요합니다. 이런 건강을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말입니다. 이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제이장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해야합니다.
이렇게 좋은 복음을 증거하는 데 예수님의 증거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의 증거를 받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의 증거를 받는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증거를 받는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나가는 자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습니다. 의원은 병든 자에게 쓸 데 있습니다. 의인이라면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병을 인정해야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야 치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나의 죄를 담당하신 분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저는 목자인 나의 마음에 때로 정욕과 미움과 이기심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나같은 자가 어떻게 목자의 자격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 주님은 나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내가 죄인임을 깊이 인정할수록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미녀는 괴로워가 650만의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요즘의 이슈가 되는 다이어트 문제를 소재로 다룬데 있습니다. 그리고 아베 마리아라는 노래가 들어가서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의 압권은 김아중이 한나로 생활하다가 성형수술한 후에 제니리는 가명으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친구 아버지도 부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거짓이 탄로나게된 극적인 순간에 자신이 바로 한나였다고 고백을 합니다. 관중들은 괜찮아를 연호합니다. 그 상태에서 한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저도 이 순간에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됨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서 괜찮아를 연호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량없이 주신다는 것은 무한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영접한 사람에게는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흘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산에 가서 소나무 하나는 뽑을 정도로 힘을 쓰고 부르짖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렇게 악을 써서 받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인격적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샘이 되십니다. 성령님이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 속에 솟아오릅니다.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십니다.

제삼장 믿는 자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그 손에 주셨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시요.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맏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복음의 모든 축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러면 믿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도 요한은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순종치 않는 자는 영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것과 순종하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 없는 행위입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나오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금식도 하고 구제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기도할 때 이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이들이 손을 들 때 눈을 감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이 형식만 남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살던 시대도 이런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람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당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둘째는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말로는 예수님을 잘 믿는데 행함이 없고 순종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죽으면 입만 구원받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거짓 믿음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집은 홍수가 나면 무너집니다. 믿음이 다 헛것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귀신을 쫓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요.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말하면서 행함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구원받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업습니다. 우리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올해 우리는 말씀이 우뚝 서게 하자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말씀이 우뚝 서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작은 것부터 순종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순종을 통하여 천안 유비에프에 말씀이 우뚝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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