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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2025 부활절 메시지 더욱 행복하십니까?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5-04-15 10:14:16
조회수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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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부활절 메시지 2 더욱 행복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5장 이부 강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의 부활 161

말씀 고린도전서 1512-28

요절 고린도전서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해피 이스터! 부활절은 행복한 부활절이라고 인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하면 왜 행복한 부활절이라고 인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첫째, 예수님의 부활이 과연 확실한가 둘째,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알 때 우리는 행복한 부활절을 보내고 더 행복하게 살다가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부활의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칸트는 확실한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는 감각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있는데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기차를 타면 풍경이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착시를 하는 것입니다. 1+1=2이라고 하지지만 이것도 항상 참은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이것을 부정합니다. 성령님과 하나님과 예수님은 세 분이지만 함께 모이면 사랑 안에서 세 분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데카르트는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고 있는 확실한 사실에 기초하여 확실한 것을 하나씩 찾아나갔습니다. 이것이 칸트 철학의 핵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에게 부활을 그냥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여 보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집단 착시 현상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오르라와 같은 것은 여러 사람의 눈에 보이지만 집단 착시 현상입니다.

사도바울은 반증법을 통해서 부활을 부정합니다. 반증법은 반대의 경우를 가정하여 그것이 거짓임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오서 오요한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었다면 내가 여기서 말씀을 전할 수 없으므로 살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기독교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부활을 부정하면 기독교의 모든 체계가 무너집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이루어진 2천년의 인류 역사도 무너집니다. 성도는 예수님 부활을 증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면 우리는 거짓증인이 되고. 우리가 전하는 것이 헛것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데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면 수억 명이 믿은 기독교가 와르르 무너녀 내립니다. 기독교는 지난 이천 년의 역사 동안에 세계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그 모든 역사가 다 부정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를 부정할 수 없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가 모든 것을 다 의심해도 하나 의심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의심할 수 없는 그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은 부활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나에게 죄사함을 주신 예수님의 피의 효력을 영원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이 나의 죄를 깨닫게 하셨고, 피의 효력을 영원하게 하시고, 죄사함의 확신을 주셨고, 나중에 심판받지 않는다는 승리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자의 내면에 성령님이 들어와 살아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것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동생 요셉이 짐승에 의해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짐승의 피가 묻은 옷을 증거물로 제시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서 요셉을 만난 후 아버지에게 돌아와 요셉이 살았고 총리가 되었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의 피묻은 옷을 보고 요셉이 죽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형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가 타고 오라고 왕의 수레를 야곱에게 보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보낸 왕의 수레를 보고는 요셉이 살았고 총리가 된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총리가 되지 않았다면 바로왕이 타는 수레를 보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타고 하늘 나라에 오라고 수레를 보내셨습니다. 그 수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부활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수레를 타고 가서 요셉과 상봉을 하듯이 우리도 성령의 수례를 타고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공중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좌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 신앙의 대전제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증거하고 이것은 진실이고 우리의 믿음은 부활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 큰 목소리로 한 번 외쳐 봅시다, “예수님 부활하셨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2)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도 부활합니다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가장 큰 은혜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도 죽은 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번째 열린 사과를 보면 그 다음에 열릴 사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도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에 갔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배우게 되겠지만 예수님이 공중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들림 받아서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둘째 사망을 맛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생하여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다시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네. 나도 부활하겠네.”

예수님처럼 나도 부활할 것을 믿을 때 현재 우리의 삶이 무엇이 달라질까요? 사도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고 많은 성도들이 집과 고향을 떠나서 나그네 생활하고 지하 카타콤 생활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자 밥이 되어 죽고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고 하나님 나라도 없다면 더욱 불쌍한 자입니다. 예수님께 인생을 사기 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순교한 사람들은 가장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수고한 사람들은 더욱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더욱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더욱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의 부활할 것이고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더욱은 영어 성경에는 most 다른 성경에는 가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것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취업 승진 건강 인간 갈등을 염려합니다. 인간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이런 염려를 극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만약 취업 못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장에서 해고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병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염려하는 것의 최악의 상황에는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마지막인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후에 부활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영광스럽고 썩지 않는 모습으로 그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죽어도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더욱 좋은 것이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악조건을 만나도 마지막에는 가장 좋은 결말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행복을 누리며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한 목동과 욥기를 마쳤습니다. 욥기의 결론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의 어원은 칼랄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왔는데 칼랄완벽하다’. ‘왕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이 영광스러운 왕관처럼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고난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섬세하고 정확하고 완벽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에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마치 지구가 자전을 하며 해를 도는 공전을 정확하게 하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정확하게 섭리하십니다. 생명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돌보듯이 그렇게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섭리하십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을 잃었어도 하나님은 아름답게 섭리하십니다.

이 말씀을 공부한 목동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욥이 살았고 갑절의 복을 받았으니 그렇게 고난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욥이 죽었다면 그렇게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욥이 죽었어도 욥의 고난은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면 죽은 후에 더 좋은 몸으로 더 좋은 나라에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후에 완벽한 아름다움과 완벽한 영광스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한 목동은 두 번의 백혈병이 걸린 자매 목동입니다. 그는 첫 번 백혈병이 걸렸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병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백혈병이 재발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백혈병이 치료되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때문입니다. 일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이라도 열이 나거나 몸에 상처가 나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혹시 세 번째로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재발되면 다시 조혈모세포 이식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목동이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쩌면 이해가 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동이 다시 재발 된다고 하더라고(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의 고난은 아름답다고 저는 그 목동에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다시 재발 되어 죽는다고 하여도(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때는 더 좋은 몸으로 더 좋은 곳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고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사랑하는 자녀가 젊어서 죽었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울다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한 분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장미꽃밭에 가서 어떤 꼿을 꺾어서 병에 담아 두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자녀를 데려가 영원히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죽은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고 싶어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는 이를 깨닫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꺽고 열매가 익었을 때 추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시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신앙이 성장했기 때문에 대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이 죽음이라도 그 고난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잠시 이별은 슬프지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고난이 완벽한 아름다운 왕관을 가진 것처럼 변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부활이 있으므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고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입니다. 요셉이 수레를 보내서 아버지 야곱을 데리고 왔듯이 예수님은 성령의 수레를 보내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 갈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는 우리는 세상에서 더욱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할 것이고 우리는 세상에서 더욱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죽음의 순간에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의 부활도 믿는 가운데 지금 여기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더욱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람이 하경이가 부모님과 함께 노는 모습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이 세상에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가든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디든지 주님 함께 가시면 우리는 겁이 없고 어디든지 주님과 함께 하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백혈병이 나은 목동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난 주 백혈병이 나은 목동과 각원서 벚꽃 구경을 갔습니다. 그녀는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자갈을 밟는 것도 꽃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못느끼는 행복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 드리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과 함께 가장 행복하게 살다가 주님이 계신 곳에 가서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5장 이부 강해 더욱 행복하십니까? 161

말씀 고린도전서 1512-28

요절 고린도전서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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