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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13장 강해 여호와와 싸우지 말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7-20 00:00:00
조회수 : 2,33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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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3장 강해 하나님과 싸우지 맙시다.
역대하 13장 1-역대하 13장 22
요절 역대하 13장 8.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아비야가 왕이 됨]

“1.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고 2a.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여로보암 왕 십팔년입니다. 여로보암의 즉위 연대는 B.C. 930년경입니다. 그러므로 이 해는 B.C. 913년경이 되는 셈입니다.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세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아비야에 대해서 열왕기서는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었습니다(왕상 15:3).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 미가야입니다. 아비야의 모친은 마아가로서 압살롬의 손녀였습니다. 마아가란 이름은 압제란 뜻인 반면 미가야는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는 뜻입니다. 11:20에서 이미 설명하였듯이 우리엘은 압살롬의 딸 다말의 남편이며 마아가는 압살롬의 손녀입니다.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싸움)

2b,3절을 보십시오.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3. 아비야는 싸움에 용감한 군사 사십만 명을 택하여 싸움을 준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큰 용사 팔십만 명을 택하여 그와 대진한지라”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비야는 전쟁에 용감한 군인 사십만을 뽑아 싸우러 나갔습니다. 르호보암 왕 때에는 유다의 군사가 18만에 불과하였습니다(11:1). 그런데 여기서 40만의 군사가 모였다는 것은 유다가 시삭의 침입 이후에 군사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음을 암시합니다. 여기 기록된 이 스라엘과 유다의 군사 수는 다윗 때에 요압이 조사한 수와 비슷합니다(삼하 24:9대상21:5). 그 후에도 유다는 계속해서 군세(軍勢)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아사왕 때에나 (14:8), 여호사밧 때에는(17:14-18) 훨씬 많은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로보암 역시 정예 군인 팔십만을 뽑아서 맞섰습니다.

(유다는 소금 언약을 받았음)

“4.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이르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간지역에 있는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소리쳤습니다. 수 18:22에 따르며 스마라임은 베냐민의 한 성읍으로서 벧아라바와 벧엘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나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라스 에즈 제이마라로 베냐민 지파 경계와 에브라임 지파 경계의 접경지입니다. 이곳의 스마라임 산은 에브라임 산맥 중에 포함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비야가 스마라임 산에서 이스라엘 열 지파에게 연설하는 모습은 옛적 요담이 그리심 산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연설하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삿9:7)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은 아비야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소금으로 파기될 수 없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가리켜 소금 언약(a Covenant of Salt)이라고 표현한 곳은 여기와 민 18:19 두 곳입니다. 레 2:13에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소금이 뜻하는 바는 불변성, 방부제, 영원함을 의미합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여 끝까지 변치 않게 하는 방부제로서의 소금을 가리킵니다. 또 소금은 음식들을 섞었을 때 맛이 서로 어울리도록 하는 양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둘 사이를 강하게 맺어주는 결속력, 또는 유대감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비야가 말한 소금 언약은 다윗 언약을 가리킵니다(대상 17장). 아비야가 여기서 다윗 왕조를 소금 언약과 연관시키고 있음은 다윗 언약의 영원성을 강조합니다. 다윗의 후손인 르호보암과 아비야 자신의 왕위 계승이 적법하다는 사실을 변호합니다. 그 반대로 북이스라엘의 건국 자체는 언약을 깨뜨리는 패역한 행위임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이 유다를 대적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윗이 다스릴 나라로 영원히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반역하였음)

“6.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 7. 난봉꾼과 잡배가 모여 따르므로 스스로 강하게 되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으나 그 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그들의 입을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였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서, 자기 임금에게 반역하였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가리켜 솔로몬의 신복이라고 한 것은 열왕기에 나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왕상 11:11, 26).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왕위를 계승하기에 적합치 못한 자였음을 말합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과 그의 왕조를 마땅히 섬겨야 할 신하의 위치에 있었던 자이지 그의 적법한 후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통성이 없는 자입니다. 건달과 불량배들이 여로보암 주변으로 몰려들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습니다.
난봉꾼은 허탄하고 변덕스런 사람이라는 뜻인데 삿 9:4에는 방탕하고 경박한 유로, 11:3에는 잡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잡배(베네 벧리야알)는 문자적으로 벧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같지 않은 사람, 불량자를 가리킵니다. 훗날 신약 시대에는 이 말이 사단(고후 6:15)이나 적그리스도(살후 2:3)를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욍이 된 그 때에 르호보암은 아직 어리고 마음도 약하여, 그들을 막아 낼 힘이 없었습니다 어리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소년(왕하 2:24), 종(왕하 4:12)을 가리키나 때때로 경험없는 젊은이(대상 22:529:1왕상 3:7)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41세에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 (12:13)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그가 매우 무지하고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란 뜻입니다. 마음이 연약하다는 말은 신 20:8에서는 두려워하 고 겁내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상을 숭배함으로 정통성을 잃었습니다. 그 후 르흐보암은 여로보암과 전쟁을 하였지만 (12:15) 뚜렷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살에 대한 아비야 나름의 평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대(對) 북이스라엘에 대한 아비야의 강력한 징벌 의지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북 왕국 정벌을 포기하고 말았자만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합니다.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는 여로보암)

“8.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북이스라엘은 수도 많습니다. 여로보암이 너희들의 신이라고 만들어 준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해서, 지금 다윗의 자손이 맡아 다스리는 주의 나라를 감히 대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윗의 나라를 여호와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에는 유다의 정통성과 이스라엘의 비정통성에 대한 아비야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는 다윗의 왕권을 물려 받은 여호와의 나라이며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신으로 모신 패역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큰 무리라고 했는데 무리(하몬)란 짐승떼 또는 스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했기 때문에 조롱거리로 붙여진 말입니다. 올바른 제사장이 없이 금송아지만을 추종한 그들은 정통성을 지닌 여호와의 나라의 백성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짐승 떼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돈만 내면 제사장이 되는 북이스라엘)

“9. 너희가 아론 자손인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들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북이스라엘은 아론의 자손인 주의 제사장들뿐 아니라 레위 사람들까지 내쫓았습니다. 주의 제사장은 허무한 신의 제사장과 대비되는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쫓아낸 제사장과 레위인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아론의 자손들입니다. 아비야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비정통성을 공박하고 있습니다.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하듯이, 그들 마음대로 제사장들을 임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백성들처럼 정통적인 제사장 가문 중에서 제사장을 세우지 아니하고 보통 사람으로 아무나 일정한 의식만 거치면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공박은 외형적인 종교의 모양만 갖추면 된다는 안일주의에 빠져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책망합니다. 누구든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만 끌고 와서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출 29장에 따르면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을 때 드리는 제물은 하루에 어린 수송아지 하나와 흠없는 숫양 둘이며(출 29:1), 이것을 7일 동안 계속 드려야 했습니다.(29:35-37). 이스라엘에서는 새 제사장을 급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일곱을 끌고 오기만 하면 누구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아비야가 이 사실을 미완료 시제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처음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제사장이 된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장이 아닌 금송아지 신, 즉 허무한 신의 제사장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금송아지가 참 신이 아님은 호세아 선지자도 주장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음)

“10.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들이 수종 들어 11.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잔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그러나 유다에게는 주님만이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비야는 이스라엘의 허무한 신 금 송아지(8절)와는 대조적으로 이처럼 여호와가 자신들의 신임을 주장함으로써 유다 왕국의 정통성을 설득력있게 표명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다 아론의 자손입니다. 레위 사람들도 자기들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정규적인 방법으로 직무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주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때 드리는 제물은 일년되고 흠없는 수양으로서 아침에 한마리, 저녁에 한 마리씩 바쳤습니다. 향을 피워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제단 앞에 향 재료를 사르는 일은 매일 두 차례씩 행해졌습니다(출 30:6-8). 이때 향은 하나님께 상달되는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깨끗한 상에 빵을 차려 놓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매 안식일마다 떡상에 진설병 12개를 놓아야 했는데 그 진설병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였습니다. 솔로몬 당시 진설병 상은 모두 10개가 만들어졌는데(4:8) 본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번 깨끗한 상을 사용하기 위해 하나씩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금등잔대에는 저녁마다 불을 밝힙니다. 성소 안을 밝히기 위한 기구입니다. 이 등대는 매일 저녁에 불을 켰다가 아침에 끄는 것이 상례였습니다(출 25:31 이후30:7, 8:40:24, 25레 24:3). 이렇게 유다 사람들은 주께서 정하여 주신 법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그 법도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싸우지 말아야함)

“1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아비야는 똑똑히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함께 계십니다. 여호와가 유다의 우두머리이십니다. 그의 제사장들은 북이스라엘을 공격할 때에 불려고, 비상 나팔을 들고 서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은 엄격히 말하자면 음악적 도구보다는 신호용으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달(新月), 안식일의 시작,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집회시나 전투시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 제사장이 나팔을 분 것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수 6:5, 20)와,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패퇴시킬 때(삿 7:20) 불었던 나팔과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적군을 놀라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민 10:9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나팔을 불 때 여호와가 저희를 기억하사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나팔은 제사장들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5:12) 여호와는 나팔이 있는 유다의 편이 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아, 그들의 주 조상의 하나님과 싸울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와 싸우는 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우면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는 이 말은 연설을 마무리 짓는 논리적 결론입니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이스라엘에게 형통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비야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은 유다)

“13. ○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14. 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미 복병에게, 유다 군 뒤로 돌아가 있다가 뒤에서 나오라고 지시하여 두었습니다. 복병이 매복하는 동안, 중심 공격 부대는 유다 군과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군대의 수가 유다의 배나 되었던 여로보암(3절)은 아비야가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에 유다 진영을 포위하였고 뒤에는 복병(伏兵)을 숨겨 두었습니다. 유다 군이 둘러 보니, 앞뒤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대적을 만났을 때 여호와가 계신 전(殿)을 향하여 기도하면 이에 대해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은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대하 6:34, 35). 여로보암은 유다를 겁주기 위해 복병 전술을 썼지만 이로인하여 유다는 더욱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였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세속적이며 인위적인 수단에 호소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기도할 때에라야 바울과 실라를 거두었던 철문이 열렸던 것처럼(행 16:26) 모든 어려움은 제거될 것입니다. 유다가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제사장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때에 유다가 전적으로 여호와께만 의지하였습니다(18절)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치심)

“15.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16.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17. 아비야와 그의 백성이 크게 무찌르니 이스라엘이 택한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진 자들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18.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유다 군이 함성을 지르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군 앞에서 치십니니, 이스라엘 군이 유다 군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군을 유다 군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아비야와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뽑혀 온 정예병 가운데에 죽어 쓰러진 병사가 오십만 명이나 엎드려졌습니다. 여로보암의 전체 군대 80만(3절)의 과반수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로서 여로보암의 완전한 패배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전쟁의 승패가 군대의 다수나 전술상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의 군병된 우리 역시 대적자 사단의 막강한 세력에 대하여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사단의 정수를 찍어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창 3:15마 4:1-1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군이 항복하고 유다 군이 이긴 것은, 유다가 주 조상의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을 단순한 동족간의 싸움으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신(8절)과 유다의 여호와(10절)의 전투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역대기 저자가 열왕기 기자처럼 아비야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비야가 승리함)

“19.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들과 여사나와 그 동네들과 에브론과 그 동네들이라 20.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21. 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거느려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더라 22. 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위와 그의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에 기록되니라”

아비야는 여로보암을 뒤쫓아 가서, 그의 성읍들, 곧 베델 그 주변 마을들을 빼앗았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북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입니다. 이 벧엘(Beth-el)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웠던 곳이며(왕상 12:29)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성지(聖地)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여사나와 그 주변 마을들, 에브론과 그 주변 마을들을 빼앗았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비야 생전에 다시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주께 벌을 받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비야는 더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아내 열넷을 두었으며,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습니다. 아비야 통치 때의 다른 사건들과 그의 치적과 언행은 잇도 예언자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비야의 전쟁으로 점점 그 세력을 잃고 급기야 그의 즉위 22년(B.C. 910년경)에 죽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여로보암은 아비야(B.C. 913-910)와 거의 동시대에 죽은 셈입니다. 여로보암과 대조적인 아비야의 점점 강성한 축복된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역대하 13장 강해 하나님과 싸우지 맙시다.
역대하 13장 1-역대하 13장 22
요절 역대하 13장 8.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역대하 1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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