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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6장 강해 솔로몬 왕의 기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7-12 00:00:00
조회수 : 5,36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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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6장 강해 솔로몬 왕의 기도
역대하 6장 1-역대하 6장 42
요절 역대하 6장 3.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오늘 말씀에는 솔로몬왕이 성전이 완성된 후에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기도를 통하여 왕의 내면성을 가진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전의 역할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성전]

“1.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2.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1, 2절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새성전으로 옮긴 후 여호와께서 성전에 임하셨음을 보고(5:13, 14)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한 가운데 솔로몬이 주께 아뢰었습니다. 주께서는 캄캄한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스로 직접 구름에 계신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전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던 방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캄캄한 데에 해당하는 아라펠은 짙은 구름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캄캄하고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출 19:9 신 4:11),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모세의 회막에 임재하실 때도 구름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출 40:34, 35 레 16:2).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임하셔서 인간이 하나님의 지존(至存)한 영광을 직접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구름 가운데 임하신 주님은 이후에 성막에 임하셨습니다. 삼하 7:6에서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시길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막이나 회막의 어두운 구름 가운데만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이곳에 계시라고, 솔로몬은 이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이 집은 주께서 영원히 계실 곳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성전에 영원히 임재하여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실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도래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언급한 전은 표면적으로는 솔로몬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이라고 명백히 언급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성전아 결코 하나님께서 거하실 영원한 처소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솔로몬이 언급한 전은 삼하 7:13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할 영원한 전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영원히 드러내 주는 예수 그리스도(요 1:14)와 그의 교회(요 14:23) 그리고 그의 영원한 나라(계 21:1-3)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왕상 8:13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백성들에 대한 솔로몬의 축복)

“3.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그런 다음에, 솔로몬 왕은 얼굴을 돌려, 거기에 서 있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둘러보며,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얼굴을 돌이켜는 사실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지금까지 성전을 향하여 섰다가 이제 백성들에게로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얼굴을 돌이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때 자주 언급되는 말이므로(민 6:25 시 31:16 등) 여기에 영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였다는 것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왕이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1-3절의 내용은 삼하 7장에 나오는 다윗 언약의 부분적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약속을 이루심)

“4.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솔로몬은 백성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하였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솔로몬은 다시 그리스도의 예표로서가 아닌 이스라엘의 왕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로서 여호와를 송축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이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언약(삼하 7:14-17)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셨습니다. ‘그 손, 즉 하나님의 손이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시 10:12 37:24 사 59:1). 여기서 그 손으로라는 표현은 다윗의 언약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 역사적인 사실로 성취되었음을 뜻합니다. 약속을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왕위를 이어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다윗과 예루살렘을 선택함)

“5. 내가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였으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될 사람을 아무도 택하지 아니하였더니 6.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또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가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호와가 당신의 이름을 기릴 집을 지으려고,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서 어느 성읍을 택한 일이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주권자를 삼으려고, 어느 누구도 택한 바가 없습니다. 이름을 두시려고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였으며 수많은 이스라엘 성읍들 중 오직 예루살렘을 택하사 성전터로 삼으셨습니다. 다윗과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제는 당신의 이름을 둘 곳으로 예루살렘을 택하였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으로 다윗을 택하였습니다. 이름을 두시는 것은 초월성과 내재성을 설명합니다. 예루살렘과 다윗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자신이 헌신한 것에 대해서 자기 의나 피해의식이 없습니다. 히 12:22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을 상징합니다. 행 13:22에 따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에서 다윗으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건설될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성 새예루살렘을 사모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 짓고자하는 마음을 받으심)

“7.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께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으려고 생각하셨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성전 건축하기를 갈망했는가는 그가 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 122:1-9)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만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성전 건축에 쓰일 많은 재료들을 손수 준비함으로써(대상 22:2-5, 14-16 28:2 29:2-9) 그의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성전 모든 부분의 식양을 그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대상 28:12-29). 다윗이 여호와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다윗이 품은 성전 건축 계획 그 자체는 기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나드 향유한 옥합을 예수의 머리 위에 부어 예수의 죽으심을 미리 준비한 한 여인의 마음과 유사합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내가 좋은 일을 하였다"(막 14:6)고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네가...생각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평화의 왕 솔로몬을 성전 건축할 자로 택하심)

“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주께서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집을 지을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대상 28:3에 따르면 다윗은 용사로서 전쟁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은 화평과 화해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마 5:23, 24 딤전 2:8). 그러므로 타인의 피를 흘리게 한 자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입니다. 다윗의 몸에서 태어날 다윗의 아들이 여호와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의 왕인 다윗의 아들 솔로몬(그의 이름은 히브리어 솰롬 이란 단어와 동일한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평화라는 뜻이다)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자로 택함 받은 것은 최고의 은혜입니다. 마리아가 성모로 선택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다는 사실이 큰 은혜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성전)가 결코 세속적인 힘이나 다툼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평화로운 방법에 의해 성취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전 건축에 다윗의 때와 솔로몬의 때가 그 성격상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의 때는 하나님의 전이 건축될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으나 솔로몬의 때는 여호와 집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기에 적절했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일의 때와 시기는 여호와로 말미암는 것입니다(전 3:1, 11).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

“1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 이스라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11. 내가 또 그 곳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넣은 궤를 두었노라 하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이렇게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었습니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시고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절대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다윗의 위(位)를 계승한 사실을 누차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왕상 2:12 10:9). 솔로몬으로 예표되었던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사실을 상기케 합니다(눅 1:27). 솔로몬이 다윗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위에 앉았다는 사실은 그의 왕권이 하나님에게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솔로몬은 말씀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넣은 궤를 여기에 옮겨다 놓았습니다. 언약을 넣을 궤에서 언약은 과거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시내 산 언약의 요체(要諦)이자 핵심인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가리킵니다. 이 돌판은 언약궤 속에 보관되었는데(출 25:16) 솔로몬이 그 언약궤를 새로 지은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시켰습니다(5:2-10). 역대기 저자는 본절을 통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의 의의 및 가치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언약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중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실 것을 의미합니다.(출 25:22). 한편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하시는 성전입니다(고전 6:19). 따라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 위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솔로몬]

“1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과 마주 서서 그의 손을 펴니라 13. 솔로몬이 일찍이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다섯 규빗이요 너비가 다섯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에 두었더니 그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그런 다음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주의 제단 앞에 서서, 두 팔을 들어 폈습니다. 단은 번제를 드리는 놋 제단을 가리킵니다(4:1). 솔로몬은 이 놋 제단 앞에 놋으로 만든 대를 세우고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 회중을 향하여 손을 편 채 기도하였습니다(13절). 제사장이 아니라 성전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는 일반적으로 물동이나 물두멍 또는 단지처럼 둥근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단상을 가리키는데 아마도 그 모양이 마치 물동이처럼 둥근 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일찍이 놋쇠로, 길이 다섯 자, 너비 다섯 자, 높이 석 자인 대를 만들어 뜰 가운데 놓았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그 대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들어 폈습니다. 무릎을 꿇은 것은 존경(왕하 1:13), 경배(롬 14:11 빌 2:10), 겸손(마 17:14막 10:17)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에스라(스 9:5), 다니엘(단 6:10), 베드로(행 9:40) 등은 물론 예수께서도 종종 이처럼 무릎 꿇고 기도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눅 22:41). 솔로몬이 이와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나라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백성들 앞에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편 것은 자신의 존재를 진솔하게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구하는 기도와 자세입니다(시 28:2 63:4 134:2). 이 같은 솔로몬의 기도 자세는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를 연상시켜 줍니다(마26:36-46). 왕상 8:22 주석 참조.

(최고봉 하나님)

“14a.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와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하나님으로 찬양합니다. 왕상 8:23에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2:5)는 말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신 창조주이심(唯一性)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의 앞에서 사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14b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15.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그분의 도우시는 은혜가 영원토록 함께할 것입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주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때 그것은 주의 종들에게 곧 은혜가 된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인 솔로몬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주께서 친히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인생과 같이 식언(食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축복이 하나님이 하신 언약이 성취된 것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새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메시야의 약속 성취를 위한 기도)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그들의 행위를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율법대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부터 나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17.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 주의 종인 솔로몬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저마다 길을 삼가서,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살아온 것같이 여호와의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의 말씀은 삼하 7:8-16과 대상 17:7-14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과 관계된 조건부적 약속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유언(왕상 2:1-4)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삼가서 율법을 지키라고 할 때 삼가다에 해당하는 솨마르는 그 기본 개념이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다입니다. 삼가다는 소극적으로 조심하거나 경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십계명을 실천하는 행동적 의미를 지닙니다. 솔로몬은 주의 말씀을 삼갈 때 이루어주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의 종인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주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 14, 15절에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한 솔로몬은 이제 본절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다윗에게 말씀하신 바 언약을 보존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언약을 확실하게 하옵소서에 해당하는 예아멘은 이미 언급되어진 사항을 확언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에게 주셨던 다윗 언약(삼하 7:8-16)을 획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강조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실 수 없음)

“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감히 바랄 수 없습니다.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솔로몬이 지은 이 성전이야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사람과 함께란 말은 특별히 역대기 저자가 첨가한 것입니다(왕상 8:27 참조). 아무튼 하나님이 인간처럼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최고 높은 하늘(the highest heaven)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늘조차도 하나님의 처소로서 부족할 정도로 하나님은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곳 성전)

“19.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러나 주 솔로몬의 하나님, 주의 종 솔로몬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에 해당하는 테힌나는 자비와 동정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전제한 간청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의 앞에서...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은 성전이 기도하는 집임을 인식하고 또 그러한 집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56:7 마 21:13). 주께서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곳은 주께서 주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의 종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전은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가 당신 이름을 두신 곳이다. (2) 여호와께서 주야로 살피시는 곳이다. (3) 주의 종들이 향하여 기도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내재성(內在性)과 초월성(超越性)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 성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자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로 말미암아 오늘날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엡 2:14). 예수께서는 친히 당신 자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이(마 1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사함을 주시는 성전)

“21.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종인 솔로몬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던 중보의 장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 5:43 14:6). 성전에서 기도는 죄사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자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할 때 그를 용납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눅 18:9-14). 역대서는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공의로운 재판을 하는 성전)

“22.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에게 범죄하므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23.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의 행위대로 그의 머리에 돌리시고 공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으시옵소서”

사람이 이웃에게 죄를 짓고, 맹세를 하게 되어, 그가 이 성전 안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 나와서 맹세를 할 수 있습니다. 범죄란 넓게는 (1) 법률상의 죄(crime), (2) 윤리적, 도덕적 잘못들(wrongs), (3) 종교상의 죄(sin)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웃이라는 말이 앞에 전제되어 있으므로 주로 법률상의 도덕상의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 부분(1-4계명)보다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 명령을(5-10계명) 파괴한 것입니다.(출20:1-17).
어떤 사건에 대하여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없을 경우, 하나님께 맹세토록 한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우연히 분실물을 습득한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였을 경우, 그는 그 물건을 결코 훔친 것이 아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야 했습니다(출 22:10, 11). 성전 뜰에 있던 번제단을 향하여 맹세합니다.(4:1). 그러면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종들을 심판하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판결하셔서 벌을 주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판결하셔서 그의 의로움을 밝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맹세자의 기도가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해내는 판단 행위를 뜻합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제 3계명과 관련된 것으로 거짓 맹세함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에 대하여 벌할 것을 요구하는 기도입니다(출 20:7).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값없이 주시지만 믿음으로 행한 행위에 따라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시 62:12 잠 24:12 전12:14 렘 17:10 겔 18:30). 이 같은 원리는 신약 성경에도 명백히 드러납니다(마 16:27 롬 2:6 고후 5:10 벧전 1:17 계 20:1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의 믿음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약2:14-17).

(적군에게 패배했을 때 사죄를 구함)

“24.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주께로 돌아와서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25.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죄를 지어 적에게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포로로 잡혀갈 수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뉘우치고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할 수 있습니다. 선민(選民)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는 참된 회개의 요소와 순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죄을 인정함 (2) 주의 이름을 인정, (3) 기도와 간구(욥 33:27, 28 시 34:18 요일 1:9)입니다.
18-2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성전에서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이스라엘의 참 회복이 있을 것임을 암시해 줍니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언약에 따라 그 후손들에게 주신 기업(基業)입니다(창 12:7 13:14, 15).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 언약을 저버릴 경우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징벌까지 당하였습니다(왕하 25:8-12). 그들이 조상들의 기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왕상 8:34 성전을 적군에게 패한 자에게 승리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가뭄 때 사죄를 기도)

“26.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는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27.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께 죄를 지어서, 그 벌로 주께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려 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는 종종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언급됩니다(레 26:19 왕상 17:1).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던 아합왕을 징계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왕상17:1 약 5:17). 이에 비추어 볼 때 최근 세계적으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자연 재해들(기아, 지진, 환경 오염, 가뭄, 이상 기온) 역시 인간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그분이 돌보시고 간섭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권위 및 주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살아갈 올바른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주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다시 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르쳐 주다에 해당하는 야라는 어떤 사건을 통해 주는 교훈이나 깨우침을 의미합니다. 본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결코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는 우매한 인간들에게 재난이나 징벌 등을 통해 돌발적, 강제적으로 임하는 깨우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하여 가뭄을 극복하고 비를 내려주십니다. .

(기근이나 역병의 때 회개의 기도)

“28.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들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거나를 막론하고 29.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수 있습니다. 역병이 돌 수 있습니다.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나 누리 떼가 곡식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때가 있습니다. 황충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줍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의 수단으로 황충이 나옵니다.(사 33:4 욜 1:4 계 9:3).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의 백성 전체가, 저마다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란 말은 하나님 백성들의 개인적인 회개를 뜻하며 온 백성이라는 말음 민족적, 공동체적인 회개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한 개인이나 전체 백성에 의하여 올 수 있듯이 이에 따른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도 한 개인이나 전체 공동체에 의하여 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도하면 성전에서 기도를 들으시고 전염병이나 병충해를 없애주십니다. 황충을 없애주십니다.

(항상 주를 경외하고자하는 사무엘)

“30.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31.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며 주의 길로 걸어가리이다”

주께서는, 주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 하는 외면적 행위 때문에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는 진정한 마음을 보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처럼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분별하고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뿐입니다(렘 17:9, 10). 주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들은, 주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신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며, 주의 길을 따라 살 것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기능을 말합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고 죄사함을 받는 곳이고 하나님께 나가는 곳입니다.

(이방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전)

“32.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그들이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3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모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의 크신 이름과 강한 손과 편 팔로 하신 일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와서, 이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주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들어 주셔서, 땅 위의 모든 백성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방인이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세계만민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이 성전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임을 알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다섯 번째 간구로서 지금까지의 기도와는 다른 독특한 형식과 내용, 그리고 대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먼저 형식면에서 지금까지의 기도는 거의가 (1) 범죄, (2) 재앙, (3) 회개, (4) 자비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기도는 (1)-(3)항 없이 곧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지금까지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본 기도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용면에 있어서 이 기도는 유대인 특유의 민족적인 배타성과 편협성을 초월한 복음의 우주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의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어집니다. 성전이 그렇게 우주적인 성격을 지니게 될 때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분을 경외케 될 것입니다. (민 15:14, 15 사 43:19,20 56:3, 7, 8). 솔로몬은 세계 만민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경외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에 나갈 때 승리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

“34. ○주의 백성이 그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이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3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옵소서”

주의 백성이 적과 싸우려고 전선에 나갈 때에, 주께서 그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 곳에서, 주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솔로몬이 주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며, 그들이 주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국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실 때에 이러한 성전을 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성전(聖戰)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이 교만해져서 주를 향한 열심이 부족할 때는 반드시 그 전쟁에 실패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의 아이 성 공격 실패가 그 좋은 예입니다(수 7:4, 5). . 주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노래의 후렴구와 같은 것으로서 기도자의 간절한 염원을 증거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돌아보옵소서 에 해당하는 아사 미쉬파트는 원래 공의를 행하다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하고 기도자들의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할 경우에만 들어주십니다. 성전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도우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백전 백승을 거둘 수 있는 영적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엡 6:10-17) 우리는 성전에서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포로로 사로 잡혀 갔을 때 죄사함을 위한 기도)

“36.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3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며”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솔로몬의 인간관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전적 부패(렘 17:9 엡 2:3)로 인하여 필연코 인간들이 범죄케 됨을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전적 부패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있었기에 솔로몬은 더욱더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하심을 사모하고 백성들을 의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주께 죄를 지어서, 주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겨 주시게 될 때에, 멀든지 가깝든지, 백성이 남의 나라로 사로잡혀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허너남께서는 비록 택하신 백성이라도 범죄하면 징계하심으로 회개케 하십니다.(잠 15:10), 그들이 사로잡혀 간 그 땅에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의 땅에서 주께 자복하여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가 반역하였습니다 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기도는 다른 구절들과 더불어 참 회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24, 26절), (2) 그 죄에서 떠나며(26절), (3)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29)절, (4) 주의 이름을 알며(33절), (5) 스스로 깨닫고(37절) 회개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참된 회개란 철저한 자기 인식과 주님을 올바로 알고 인정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열왕기에는 왜 포로로 잡혀갔는지를 말하고 여기는 성전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포로를 용서해주시는 성전)

“38.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그들이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께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입니다. 주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주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께 죄를 지은 주의 백성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처럼 주가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23, 25, 27, 30, 33, 35, 39절).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땅에 있는 인간과 대조적으로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기도는 마땅히 주의 주(主)되심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므로 원방(遠方)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회개하므로 열조의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사실은 일찍이 모세 시대부터 예언되었던 바입니다(레 26:27-39, 44, 45 산 28:64-68). 솔로몬이 간청했던 바대로 B.C.722년, 앗수르에게 멸망단한 북 이스라엘과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포로로 잡혀간 유다는 70년만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주의 처소에 계시기를 기도함)

“40.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41. 여호와 하나님이여 일어나 들어가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평안한 처소에 계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옵건대 주의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입게 하시고 또 주의 성도들에게 은혜를 기뻐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의 하나님, 성전에서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주께서 눈을 떠 살피시고, 귀를 기울여 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눈을 뜨시는 것은 인간을 살피시고 구원코자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행동을 의미합니다(시 33:18 34:15). 하나님께서 눈을 가리우신다는 표현은 은총을 거두사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또한 기도에도 응답치 않으심을 뜻합니다(사 1:15). 주 하나님, 이제는 일어나셔서, 주께서 쉬실 곳 지성소로 들어가시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의 능력이 깃든 궤와 함께 가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여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하나님, 주를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를 믿는 신도들이 복을 누리며 기뻐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와같이 기도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타적이 될 때 참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힘이 깃들인 궤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리킵니다(11절 5:2-7). 그런데 이 궤를 가리켜 주의 능력의 궤라 칭한 까닭은 그 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궤 안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관계를 유지해 주는 언약의 요체인 십계명 판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기름 부은 왕과 함께 하기를 기도함)

“42.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시옵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더라”

주 하나님,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내쫓지 마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름 아니라 솔로몬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고서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왕상 1:39). 솔로몬은 만왕의 왕 메시야의 모형입니다. 다윗의 자손 중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자는 솔로몬이 아니라 바로 다윗의 혈통을 좇아 난 하나님의 외아들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대상 17:11-14). 얼굴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가장 명확히 나타내 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슬픔 등을 묘사할 때에도 얼굴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시 4:6 10:11 사 64:7). 솔로몬이 얼굴을 돌리지 말아달라는 기도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것을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은총(*, 헤세드)이란 언약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사 45:3). 역대기에서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용서와 치유와 회복의 공간입니다. 세계 만민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돕는 공간입니다. 성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세계 만민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아멘!
역대하 6장 강해 솔로몬 왕의 기도
역대하 6장 1-역대하 6장 42
요절 역대하 6장 3.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역대하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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