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시편 49편 강해 깨닫지 못하는 부자는 짐승 같도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4-22 00:00:00
조회수 : 2,824

문제지풀이(2)

    iconA_19532A.hwp  (27.50KB)

    iconA_19532B.hwp  (27.50KB)

시편 49편 강해 깨닫지 못하는 부자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편 1-시편 49편 20
요절 시편 49편 20절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지도자를 따라서 부르는 찬송입니다. 교육적인 의미를 가진 시입니다. 계속되는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돈으로도 인간의 지혜로도 명예로도 할 수 없는 것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죄값을 치르고 생명을 속량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속량하려면 죄없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는 이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부자도 짐승과 같은 자입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지혜를 들으라)

1-4절을 보십시오.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시인은 뭇백성들과 세상 거민들에게 지혜의 말을 듣도록 초청합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합니다. 부자들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도 깨달아야합니다. 존귀한 뿐 아니라 비천한 자도 깨달아야합니다. 사람은 다 평등합니다. 사람은 동질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극소화해야합니다. 존귀한 자나 비천한 자나, 배운 자나 무식한 자나 죽습니다. 서구국가는 위생을 지키고 깨끗하게 살지만 중국은 일년 내내 목욕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다 죽습니다. 잘 생기고 못생기도 하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건강하고 병든 것, 오래 살고 일찍 가는 것도 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도주의의 기본철학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우리의 깨달음입니다.
시인은 입으로 지혜를 말하고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립니다. 우리는 말도 듣고 책도 읽고 지혜를 얻어야합니다.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묵상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어떤지 인생이 무엇인지 묵상해야 합니다. 명상하며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그는 비유로 오묘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통해서 말하는 함축적인 뜻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 비유입니다. 개미를 보고 부지런을 배웁니다. 나무 땅 하늘도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합니다. 새는 걱정 안해도 잘 사는데 왜 걱정하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비유 해독 능력을 배워야합니다. 영화도 비유입니다. 아마겟돈 영화가 있습니다. 그곳에 많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보아야합니다. 해독 능력이 없으면 보나마나 입니다. 성경의 많은 역사도 비유입니다.
시인은 수금을 연주하며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을 말합니다. 노래하며 수수께끼를 풀며 말합니다. 감성적인 이해도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이치를 깨닫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노래방이 성행합니다. 노래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우리는 노래하면서 깨달아야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청산에 살아리랏다, 너를 행복하게 하지 않고는 나는 행복이 없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통하여 인생을 깨닫습니다.

(의인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5절을 보십시오.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죄악이 시인을 따라다니며 환난이 에워싸도 시인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깨닫고 보니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죽이려고 해도 어짜피 죽을 인생입니다. 악을 꾸미는 자들이 시인을 뒤쫓고 노려보아도 이 곤경에서 시인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대속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속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너무 큰 엄청난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피흘리심으로 죄값을 치러주셨습니다. 사단이 죄악된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재물을 자랑하는 자는 구원하지 못한다)

6-10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사람들은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진리를 깨닫고 보니 부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을 시기하고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죽음을 깨닫고 보니 믿지 않는 자들은 맛있게 못 먹고, 믿는 자들은 맛있게 먹습니다. 부자들은 돈만 있으면 다 할 것 같습니다.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원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세상의 권세도 얻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도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재물이 죽을 목숨을 살려 주시지 않습니다. 죽음을 알고 나니 돈 많은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 많다고 죄사함 받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보석이 있어 돈을 주고 감옥에서 나오나 하나님께는 돈을 주고 지옥에서 나오는 보석이 없습니다. 재물이 많은 자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형제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죄없는 생명을 드려야합니다. 오직 에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재물로는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지 못합니다.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재물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지혜 있는 자도 망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합니다. 세상의 재물로 생명을 얻을 수 없듯이 지혜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재물이나 지혜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 잘 믿고 성령 받는 사람이 가는 나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산을 많이 모으지만 그들의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합니다. 내가 모아 놓은 것을 엉뚱한 사람이 씁니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 따라서 인격이 결정됩니다. 돈쓰는 것에 따라서 지혜가 결정됩니다. 돈을 많이 모아두고 죽으면 미련한 것입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없어야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사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찾아보니 삼백만원 있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 돈이 많이 남아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돈을 쓰는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허망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짐승과 같습니다. 돈을 가지고 가려고 하면 짐승입니다. 죄를 속량하려고 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부자들이 깨달아야할 것)

11-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셀라)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부자들의 속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을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들이 땅을 자기 이름으로 구입하였더라도 그들의 영원한 집, 언제나 머물 곳은 무덤뿐입니다. 아무리 동상을 세우고 교과서에 이름이 나와도 그 사람이 영원히 살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짐승 같은 면이 있습니다. 나고 죽는 것이 짐승 같습니다. 육체는 동물성이 있습니다. 다윈은 진화론에서 사람은 동물성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진화된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동물생식 본능의 발로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동물과 사람이 하나라고 합니다. 개가 가까이 오면 할아버지가 죽어 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개와 같이 자고 같이 나옵니다. 도교는 사람은 신이라고 하여 신선이 되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이 신이 되지 못합니다.
때로는 오히려 짐승이 더 착하고 깨끗합니다. 개가 사람들의 말을 알아 들으면 어떨까요? “사람이 이 개같은 놈아!” 하면 개는 우리끼리는 “이 사람들 같은 개야” 하며 욕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장구하지 못합니다. 거북이, 학, 뱀만큼 못삽니다. 사람의 수명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루에 새끼 먹습니다. 뱀이나 곰은 한 겨울 안 먹어도 삽니다. 동물만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정신이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동물보다 높은 정신이 있고, 동물이 없는 영혼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과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존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육체를 지배해야합니다. 그래야 사람은 존귀힌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짐승만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사람이 육체가 됩니다.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홍수로 쓸어버립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동물이지만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습니다. 이성이 영혼의 심부름을 합니다. 이성이 타락하면 육체의 시종이 됩니다.
사람은 영혼이 건강해야 이성이 제 기능을 합니다. 인간은 구원받은 이성을 가져야 행복합니다. 가치를 즐기고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이성의 기능입니다. 우리가 중생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중생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살아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은 존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죽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짐승처럼 죽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부자들이 하는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도 짐승처럼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단지 시간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부를 의지하는 자들은 양과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사망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입니다. 양이나 소가 끌려 가 죽고 말듯이 사람들은 죽음에 몰려 저승으로 곧장 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아침에 그들은 이슬처럼 사라지고 영원히 저승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됩니다.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사람들은 스물넷만 되면 늙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들은 부활의 그 날에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년 왕국에서 이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신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우리는 인간의 본래성을 깨달아야합니다. 종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는 옷을 벗듯이 벗고 하나님께로 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품으로 영접하여 주십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이 영접하십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영적인 생명은 윤회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늘 말합니다. 그는 착한 일을 하면서 비방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나는 너의 자랑이 되고 너는 나의 자랑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갔을 때를 생각하고 마음을 이미 그리스도에게 두고 살아갑니다. 이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으니 면류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비굴할 것도 부하다고 교만한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영접하실 날을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이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돈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돈으로 하나님을 친구로 이웃을 친구로 사귀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영접해주실 것이빈다. 하나님이 의인의 영혼을 스올에서 건져내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너는 부자를 두려워말라)

16-1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합니다. 땅을 내 이름으로 등록해도 내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집을 지어도 그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일시적입니다. 요즘에 원룸이 유행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툭툭 털고 떠납니다.
돈 많은 사람이 돈으로 권세를 부립니다. 불신자들이 부자가 되어 영광이 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합니다. 부자도 결국 죽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 있는 사람, 권세 부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다 죽을 것입니다. 다 없어질 것입니다. 부자가 큰 소리쳐도 잠간만 기다리라고 하면 됩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그가 죽으면 아무 것도 가겨가지 못합니다. 그의 영광도 다 사라집니다.
부자가 살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축하합니다. 그는 칭찬받으며 그들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책을 쓰고 기념비를 세우지만 다 골동품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깨달음이 있어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도 마침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캄캄한 지옥으로 가야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 같다)

20절을 보십시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결론입니다. 존귀하지만 생명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자들입니다. 짐승은 잘 먹고 살지만 어느날 갑자가 도살장에 끌려가 죽게됩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지만 어느날 죽음의 재앙이 그들을 덮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길을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신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생명의 길을 가야합니다. 우리는 부와 지혜와 명예의 한계를 알아야합니다.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집니다.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가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아멘!
시편 49편 강해 깨닫지 못하는 부자는 짐승같도다
시편 49편 1-시편 49편 20
요절 시편 49편 20절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편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7 [시편] 시편 57편 강해1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오요한 2008-04-22
56 [시편] 시편 56편 강해 눈물 속에서 드리는 감사제 오요한 2008-04-22
55 [시편] 시편 55편 강해 친구의 배신을 당할 때 기도 오요한 2008-04-22
54 [시편] 시편 54편 강해 십사람들이 다윗을 신고하였을 때 오요한 2008-04-22
53 [시편] 시편 53편 강해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오요한 2008-04-22
52 [시편] 시편 52편 강해 푸른 감람나무와 같이 살고자하는 다윗 오요한 2008-04-22
51 [시편] 시편 51편 강해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 오요한 2008-04-22
50 [시편] 시편 50편 강해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오요한 2008-04-22
49 [시편] 시편 49편 강해 깨닫지 못하는 부자는 짐승 같도다 오요한 2008-04-22
48 [시편] 시편 48편 큰 왕의 성 예루살렘 같은 교회 오요한 2008-04-22
< 11 12 13 14 15 >